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0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80화
발소리를 죽인 채 소리의 근원지로 향하자, 복도 끝에 위치한 화장실이 두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내부에서 들려온 소리.
뒤에 있는 이정우와 전완수에게 기다리라고 손짓한 뒤, 조심스레 화장실 내부를 살폈다.
흙탕물로 얼룩진 화장실 바닥과 물때가 가득한 거울.
4개의 대변기 칸막이.
그중 하나가 굳게 잠겨 있었다.
‘사람인가?’
변종이나 좀비라면 우리의 체취를 맡았을 텐데, 저 안에 있는 존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감지.”
순식간에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고, 조심스레 화장실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슥-
칸막이 속에서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이 끌리는 소리.
하지만 푸른색으로 나타나는 인영은 없었다.
변종이 아니다.
그렇다면 생존자?
긴장되는 마음에 아랫입술을 핥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계십니까?”
“……어?”
선명하게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뒤에 있는 이정우와 전완수를 쳐다보자, 둘도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난 칸막이 속의 생존자에게 얘기했다.
“구조대예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구, 구조대요?”
“나오셔도 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지만, 칸막이 속의 생존자는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겁에 질려 움직일 엄두를 못 내는 것 같다.
이에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제 안전합니다. 겁내지 않으셔도 돼요.”
“……갔어요?”
“예?”
“괴물…… 갔냐고요.”
괴물이라면…… 변종을 두고 하는 말인가?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라스트아크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다른 생존자가 더 있습니까? 지금 혼자에요?”
목소리 톤으로 보아 여자 같은데.
아무리 기다려도 칸막이 속의 여자는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주먹을 말아쥐며 얘기했다.
“나오지 않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란은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자의로 나와주세요.”
“당신, 당신 사람 맞아요?”
“사람이니 이렇게 말을 하죠.”
“즈, 증거. 증거 보여줘요.”
증거?
증거를 어떻게 보여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칸막이 속의 여자가 얘기했다.
“손, 손 보여줘요.”
“나와야 보여주든 말든 하죠.”
“밑으로 손 넣어요.”
칸막이 밑으로 손을 넣으라고?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안 돼. 대장 좀비면 어쩌려고? 손 넣자마자 깨물지도 몰라.”
“감지로 확인했어요. 좀비나 변종은 아니에요.”
또한 건틀릿과 보호대 때문에 물릴 걱정은 없는데…….
그러자 칸막이 속에서 물려? 라는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칵.
뒤이어 칸막이가 서서히 열리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얼굴의 반만 보여주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여자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금세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이어 소리죽여 흐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이정우와 전완수를 쳐다보자, 전완수는 싱겁게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왜 사람을 울리고 그래?”
“어?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싱겁게 웃으며 여자에게 물었다.
“저기요, 괜찮아요? 좀비한테 안 물렸어요?”
“흐흑…… 흑…….”
여자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와중에도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침묵에 익숙해진 것 같다.
치지직- 치직.
-재형아, 박재형. 응답해.
무전기 너머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기해.”
-종합센터 4층에 변종.
설여원의 말을 듣고 놀란 눈으로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내 손에 있는 무전기를 낚아채며 물었다.
“공격하지 말고 기다려. 지금 어디야.”
-저희 3층으로 내려왔어요.
“변종 확실해?”
-네, 알파 변종 같아요. 숫자는 세 마리.
셋이나 된다고?
그러자 바닥에 주저앉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던 여자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공격하면 안 돼요!”
“네?”
“그거, 그것들 정찰대예요.”
정찰대?
무슨 소리야.
변종도 좀비처럼 정찰대가 있다고?
그런 기능은 라스트아크에 없다.
지금껏 만난 변종들도 정찰대의 개념은 없지 않았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눈꼬리를 치켜뜨자, 여자는 양손을 덜덜 떨며 얘기했다.
“그, 그것들 공격하면 들켜. 발각되면 안 돼. 다 죽어. 다 죽는다고!”
여자의 말에 난 곤란한 표정으로 이정우와 전완수를 쳐다봤다.
이정우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안 들키고 빠져나올 수 있어?”
-저희는 괜찮은데 버스가 문제죠. 지금 버스 움직이면 발각될 거예요.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변종들에게 발각될 게 뻔하고, 그렇다고 버스를 두고 이동할 수도 없는 상황.
알파 변종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만, 여자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난 여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찰대를 처리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못 이겨. 이길 수 없어요.”
“이길 수 있다면.”
“……괴물을 잡을 수 있다고요?”
여자는 멍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변종 죽여본 적 있습니까?”
“다, 당신은 괴물 죽여본 적 있고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끝내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안 돼. 정찰대를 건드리면 더 많은 괴물이 몰려와요. 아무리 이길 수 있어도 놈들을 자극하면 안 돼요! 수십 마리가 동시에 공격한다고요!”
여자의 반응을 보고,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예전 금호강 건너에서 알파 변종을 상대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변종이 3마리라던 최현의 말과 달리, 산업도로 방면에서 몰려든 알파 변종으로 인해 많은 군인이 희생되었다.
일반인의 입장에선 3마리의 변종이 정찰대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찰대가 아니다.
변종의 습성일 뿐.
사람이 있는 곳에, 먹잇감이 있는 곳에 모여드는 습성.
불구경을 하러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변종들도 소란이 있는 곳에 모여들기 마련이다.
특유의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재미난 볼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말이다.
변종의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었다.
잘하면 인간을 섭취할 수도 있고, 혹은 아군의 시신을 먹고 진화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이를 뒷받침해 주는 사례가 수성못이었다.
수성못에서도 변종 하나를 처리하자, 근처에 있던 변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원의 개념이 아니라, 먹잇감을 찾기 위함이었다.
학습능력이 있는 놈들이다 보니, 아군이 당한 것을 보고 신중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야밤에 나타난 알파 변종들이 그 증거.
그놈들은 아군이 당한 것을 보고 우리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아군의 시체를 노렸다.
당시 전완수가 일찍이 발견한 덕에 변태가 끝나기 전에 알집을 파괴할 수 있었다.
만약 전완수가 변종의 움직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린 미확인 변종들의 먹잇감이 됐을 것이다.
상황 파악을 마치고, 여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다른 생존자는 몇 명이나 있습니까.”
“예?”
“당신 혼자는 아닐 거 아니에요.”
여자는 이정우와 전완수, 그리고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곧 불안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직시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정말 괴물을 죽일 수 있어요?”
“구조하려면 괴물을 죽일 수 있어야죠.”
태연하게 대답하자,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정말 구조대죠?”
“뭐가 의심스러운 거예요?”
“워낙…… 미친놈들이 많아야죠.”
여자의 대답에 머릿속으로 무수히 많은 미친놈이 떠올랐다.
하긴, 세상이 망한 마당에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전완수는 여자의 직설적인 표현이 마음에 드는지, 콧방귀를 뀌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난 이마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저희도 미친놈 많이 봤습니다. 그런 놈들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
“그건 그렇고, 왜 여기 혼자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어요.”
“누구를.”
“제 일행이요.”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자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변종 따돌리겠다고 나갔는데…… 아직 안 왔어요.”
여자의 뒤로 에코백 3개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이 여자는 일행과 함께 식량을 구하러 나온 생존자고, 식량을 챙겨서 돌아오는 길에 변종들에게 발각된 모양이다.
에코백이 3개인 것으로 보아, 함께 나온 사람이 두 명 더 있는 것 같다.
같이 나온 생존자들은 이 여자를 식량과 함께 이곳에 숨겨두고, 변종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착잡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맞은편 종합센터 건물에 3마리의 변종이 뭉쳐 있다는 건…… 그곳에 먹을 게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변종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생존자들은, 이미 변종의 식량이 됐을 것이다.
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같이 가시죠.”
“하지만 제 일행이…….”
“죽었을 거예요.”
덤덤하게 얘기하자, 전완수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에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 얼굴을 노려봤다.
아차.
황급히 여자를 쳐다보자, 여자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민 채 금세 울상을 지었다.
뒤이어 눈가에 고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수롭지 않게 죽음을 입에 담았다.
이 여자에겐 가족이나 다름없을 텐데…….
내 불찰이다.
죽음에 대해 너무 무감각해진 걸까?
언제나 일행의 목숨이 최우선이다 보니, 타인에 대한 태도가 냉소적으로 변했다.
난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여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쪽지…… 남기고 가도 될까요?”
“예?”
“혹시 모르잖아요. 제 일행이 돌아올지도.”
눈물은 많지만, 정신은 강한 사람이었다.
혹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자연스레 감성보다 이성적인 사고의 비중이 늘었을지도 모른다.
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도 내심 알고 있을 것이다.
일행이 살아 있을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하지만 차마 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일행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말이다.
누군가는 미련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나 또한 희망이라 생각하고 싶다.
미련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희망이 없는 삶은 절망뿐이니까.
여자는 에코백에 들어 있는 포스트잇과 볼펜을 손에 쥐고 열심히 글자를 적었다.
-쉘터에서 기다릴게.
짧고 간결한 내용.
여자는 포스트잇을 대변기 뚜껑에 붙이고, 에코백 3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심 미안한 마음에 오른손을 내밀며 얘기했다.
“주세요. 들어드리겠습니다.”
“제가 들 수 있어요.”
여자는 에코백 3개를 어깨에 메며 얘기했다.
“내가 책임질 거예요.”
뒤이어 바닥에 내려둔 쇠파이프도 손에 쥐었다.
이정우와 전완수를 쳐다보자, 전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버려 두라는 시늉을 보였다.
그래, 본인이 들고 가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지.
이정우는 무전기에 입술을 갖다 대며 얘기했다.
“생존자 발견, 버스로 돌아갑니다.”
치지직- 치작.
-저희 못 나가요. 아니, 오빠도 나오지 말아요.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설여원의 목소리.
이에 이정우의 손에 있는 무전기를 낚아채며 물었다.
“왜, 무슨 상황이야.”
-입구에 변종 하나 더 나타났어.
“입구에?”
놀란 눈으로 되묻자, 뒤이어 박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위치에서도 보여. 지금 버스에 있는 사람들은 상체 숙이고 대기 중.
“움직이지 말고 있어. 내가 갈 테니까.”
-안 돼. 맞은편 대로에도 변종 세 마리 있어. 소란 일으키면 저것들 입구로 들어올 거야. 그럼 버스부터 공격당할 게 뻔해.
대체 몇 마리야?
종합센터 4층에 3마리, 병원 입구에 하나, 병원 밖 대로에도 3마리.
총 7마리라는 건가?
섣불리 행동하기에 앞서, 이정우를 쳐다봤다.
이정우는 이마를 문지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아, 변종 4마리 동시에 상대할 수 있어?”
“지금 스탯이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럼 종합센터 입구에 있는 놈이랑 대로에 있는 3마리 부탁할게.”
“형은 어쩌려고요.”
“우린 종합센터에 있는 3마리 처리할게. 밖으로 나오기 전에 죽여야지.”
이정우가 전완수를 쳐다보자, 전완수는 카타나를 뽑으며 얘기했다.
“드디어 써보는 건가? 로그나이트 카타나.”
전완수는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한껏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