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1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01화
그렇게 1분, 2분, 3분…….
처음엔 완벽하게 좀비들을 저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쳐가는 건 설여원이었다.
좀비는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지만, 설여원은 아니었다.
거기에 압도적인 물량까지.
10분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 설여원은 땀으로 샤워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숨은 거칠어지고, 환기 되지 않는 비상구는 피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산소와 후덥지근한 열기로 인해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설여원은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카하아악!!
좀비 하나가 설여원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대로 잡아당기는 좀비.
“윽!”
균형을 잡기 위해 설여원은 다급히 난간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또 다른 좀비가 설여원의 상체를 덮쳤다.
설여원의 머릿속으로 죽음이란 두 글자가 선명히 떠오르는 순간.
퉁-!
퍽!
좀비의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기다란 볼트 한 발.
퉁! 퉁! 퉁! 퉁! 퉁!
연달아 들려오는 파공음과 함께 계단에 들어찬 좀비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설여원은 떨어뜨린 손도끼부터 황급히 쥐고, 발목을 붙잡은 좀비의 손목을 잘라냈다.
곧바로 시선을 돌리자, 비상구 입구에서 볼트를 발사하는 천호진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호진은 두 눈 부릅뜨고 계단에 들어찬 좀비들을 향해 쉴 새 없이 볼트를 발사했다.
곧 설여원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물었다.
“빨리 일어나요!”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뒤이어 천호진과 함께 좀비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힙을 합쳐 처절하게 싸운 끝에, 700마리의 좀비를 모조리 처리할 수 잇었다.
설여원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더는 도끼를 쥘 힘도 없는지,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눈을 감았다.
천호진은 설여원의 발목과 손목, 전완근을 살피며 물었다.
“누나 괜찮아요? 물린 곳, 물린 곳 없죠?”
“안 물렸어. 걱정 마.”
문득, 본인의 입에서 나온 ‘걱정 마’라는 대답에, 설여원의 머릿속으로 박재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기분이구나.’
조금은 박재형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본인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게 어떤 순간이고,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다.
또한 천호진의 행동 덕분에, 본인이 고수해야 하는 위치가 어디인지 깨닫게 되었다.
조연.
주인공을 보조하며 함께 나아가는 존재.
그것이 본인의 위치라 생각했다.
설여원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걔는…… 본인이 주인공인 줄도 모르겠지만.”
“네?”
천호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설여원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아니야, 그보다 무전기.”
“누나한테 있잖아요.”
“아. 나한테 있구나.”
설여원이 무전기를 손에 쥐는 순간, 정진영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여원아! 호진아! 내 목소리 들려?
“들려요.”
-너희 어디야!
“저희 공원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요. 오빠는 어디에요?”
-어휴…… 진짜. 걱정했잖아 인마! 공원에 있겠다더니 왜 거기 있어?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요. 지금 공원이에요?”
-한참 찾아도 안 보여서 죽은 줄 알았다!
짜증 가득한 목소리지만, 그 속에 안도감이 묻어났다.
설여원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1층으로 내려갈 테니 건물 앞으로 와줘요. 호진이 다리 다쳐서 멀리 못 가요.”
-다리? 그냥 거기 있어. 우리가 올라갈 테니까. 몇 층이야?
“여기가…… 5층이요. 비상구 계단.”
-기다려. 금방 간다.
설여원은 들고 있던 무전기를 내려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일행이 올 때까지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 * *
좀비화를 사용한 덕에 체력적으로 버겁거나 통증을 느끼진 않지만, 서서히 팔이 올라가지 않기 시작했다.
카타나를 휘두를 때마다 뼈에서 비명이 들려오는 기분.
근육과 뼈에 충격이 쌓이고 있었다.
몇 마리나 남았지?
주변을 살피자, 어느새 800마리도 안 남은 상황.
이러한 생각을 하다 문득, 나도 모르게 콧방귀가 나왔다.
800마리도 안 된다라…….
예전이었으면 800마리의 좀비를 보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텐데, 그동안 열심히 살아남긴 열심히 살아남은 모양이다.
“후…….”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며, 뻐근한 어깨를 빙빙 돌렸다.
어느새 좀비화의 남은 시간은 4분.
이곳으로 접근하는 좀비들을 응시하며,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외쳤다.
“크어어어어어어!!”
-포효를 내질러 반경 50m 내의 적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이 각인된 적은 1분간 이동속도 30% 반감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울링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10분.
쿨타임마다 사용한 탓인지 목이 칼칼하다.
또한 목청껏 소리쳐서 그런지, 골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좀비들의 이동속도는 현저히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난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읊조렸다.
“가속.”
쾅!!
중력을 거스르는 부유감.
지면을 딛자마자 황급히 발목을 비틀어 전신을 회전했다.
촤라락!
카타나로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좀비들의 목을 상체와 분리시켰다.
신체에 쌓인 피로가 극에 달했는지, 더는 양팔이 가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팔 힘으로 카타나를 휘두를 수 없다면 온몸으로 휘두르면 그만.
상체를 비틀어가며 카타나를 사선으로 그었다.
어차피 좀비화 중에는 물려도 감염의 위험이 없으니, 몸으로 짓누르고 박치기로 처리하기도 했다.
남은 4분간 젖 먹던 힘을 다해 싸운 끝에, 두호동의 모든 좀비를 처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좀비를 처리하고 몇 차례 숨을 가다듬는 찰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좀비화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뒤이어 아찔한 현기증이 몰려오고, 사지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두 발 딛고 서 있을 힘이 없어서, 갈대처럼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등을 축축하게 적시는 좀비들의 핏물.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움직이고 싶은데, 지금은 숨 쉬는 것도 버거웠다.
이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격하게 뜀박질치는 심장의 고동에 집중했다.
귓가로 들리는 이명이 서서히 옅어지고, 호흡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부우웅- 부우우웅-
멀찍이서 들려오는 차량의 엔진소리.
여기 있다고 알려야 하는데,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팔도 올라가지 않았다.
기진맥진이라고 해야 좋을지, 빈사지경이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힘들어 죽겠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내심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재형아!”
“박재형! 어디 있어!”
“재형이 형!”
일행의 목소리가 아득한 꿈처럼 들려왔다.
난 앓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간신히 한 마디 뱉었다.
“여!!”
여기라는 말도 힘들어서, 앞글자만 얘기했다.
그러자 좀비들의 시체로 이루어진 둔덕을 지나, 일행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완수는 내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곧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이야…… 이게 좀비야 사람이야.”
“…….”
“허허, 다 죽어가고 있네.”
“너 때문에 죽겠다, 인마.”
너무나도 지친 나머지, 실소를 터뜨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자 설여원과 천호진이 다가와 나를 부축해 주었다.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자, 뒤에 있던 정진영은 천호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리는 어때. 괜찮아?”
“네, 형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다리?
천호진이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천호진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걱정 마세요, 진영이 형이 치료해 줬어요.”
정진영의 치료 덕에 이제 괜찮은 모양이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전완수는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떡하지?”
“해수욕장 확인해야지.”
덤덤하게 대답하자, 전완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차 때문에.”
“차?”
“중형차 망가졌거든.”
자초지종을 묻자, 휠 사이에 말려들어 간 좀비의 시체 때문에 휠 밸런스와 얼라인먼트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전완수는 옹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자, 이게 휠이고 이게 타이어야. 그런데 이렇게, 균형이 깨진 거지. 캠버랑 캐스터 각이 눈에 띄게 휜 것만 봐도…….”
전완수는 양손을 이리저리 돌리며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자동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겐 외계어나 다름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얘기했다.
“어휴, 아니다. 그냥 고장 났다고 생각해. 그리고 전봇대 박아서 새로 부착한 뼈대도 망가졌고.”
“좀비카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거지?”
“어. 정확한 건 까봐야 알지만…… 전봇대 박고 바닥에 물 고인 거로 봐서는 냉각수도 문제 생긴 것 같고.”
“쉘터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
“시동 걸리면 천천히 굴려보고, 안 되면 들고 옮겨야지.”
그럼 문제없다.
우리에게 중형차 한 대 들고 옮기는 건 일도 아니니까.
곧 정진영이 다가와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으며 얘기했다.
“지금 바로 움직이는 건 무리 같고, 조금만 쉬자.”
이번엔 나도 동감이다.
오늘 일정을 전부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재형이 너는 치료 필요 없어?”
정진영이 묻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괜찮아요. 10분만 쉬면 다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럼…… 일단 승합차로 돌아가서 쉬자. 여긴 도저히 휴식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네.”
사방이 시체 밭이었다.
선혈이 낭자하다, 라는 말로는 부족한 광경.
지옥의 일부를 덜어낸 것처럼, 참담함 그 자체였다.
* * *
길거리 정리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일행의 부축을 받아 승합차를 세워둔 근린공원 앞으로 이동했다.
난 공원 앞의 벤치에 앉아 뻐근한 어깨를 풀었다.
상처는 패시브 스킬 재생으로 금방 회복되지만, 가빠진 숨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다소 더딘 편이었다.
그래서 벤치에 앉아 휴식도 취할 겸, 홀로그램부터 열었다.
-좀비 카운트가 목표치를 달성했습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30160/28000
-포인트를 회수하고 다음 지령을 받으세요.
역시, 이번에 처리한 좀비는 20,000마리가 넘었다.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했다.
[플레이어 정보]-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한계 돌파 2단계
*한계를 돌파할 때마다 기존 모든 스탯이 1.3배 증가합니다.
*다음 한계 돌파에 필요한 포인트는 3000입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2160/50000
-남은 포인트: 3397
-스킬: 좀비화, 급가속 Lv5, 감지 Lv5, 하울링 Lv1, 광폭화 Lv2
-패시브 스킬: 재생, 광란
*좀비화의 능력치 반감 페널티 ‘과부하’가 사라집니다.
일행이 처리한 좀비의 합이 대략 8,000마리.
그럼 내게 들어온 어시스트는 1,600카운트가 된다.
마지막에 확인했을 때 좀비 카운트가 14,578이었으니, 대충 계산하면…… 이번에 나 혼자 처리한 좀비가 14,000마리라는 건가?
아니지, 천호진의 본가에서 1,000마리 가까이 잡았으니, 두호동에서 올린 카운트가 13,000 정도 될 것이다.
좀비화를 사용하고 쉴 새 없이 싸웠을 경우, 길거리 좀비 13,000마리를 사냥할 수 있다는 게 된다.
어마어마한 숫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 손으로 직접 행하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얼떨떨한 정신을 다잡으며 습득한 포인트로 한계 돌파를 시도했다.
-3000포인트를 소모하여 한계를 돌파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획득합니다.
스킬?
이번엔 기존의 스킬을 상향시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다.
-스킬 ‘연격’이 생성됩니다.
[연격]-하나의 대상을 1초 이내에 5회 이상 타격 시 발동됩니다.
-연격 발동 시 다음 10회의 공격은 공격력의 1.5배에 해당하는 피해를 줍니다.
-연격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30분입니다.
스킬 설명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발동 조건도 어렵지 않은 조건부 스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격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스킬 연격은 레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시, 스킬명의 옆으로 레벨이 존재하지 않으면 스킬 레벨업은 불가능한 모양이다.
그래도 기본 성능 자체가 워낙 좋은 스킬이라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스킬이었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게 성취감인가?
고생한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