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5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05화
다 죽어가는 좀비들을 처리하는 건 단순반복 작업이나 다름없었다.
카타나로 좀비들의 두개골과 관자놀이를 꿰뚫으며 카운트를 높여갔다.
긴장감은 고사하고 지루할 지경.
대략 3,000마리 정도 처리한 찰나, 무전기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직- 치직.
-재형아, 아직 사거리야?
“어, 이모네는 찾았어?”
-생존자는 없고, 대신 쪽지는 있어.
“쪽지?”
-들고 갈 테니까 거기 있…….
쉭-!
그 순간, 귓바퀴를 간질이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증가한 반사신경 덕분에, 무언가가 관자놀이로 날아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돌아볼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오른팔로 관자놀이를 방어하자, 손등을 찌르는 감촉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자, 손등을 치고 바닥에 떨어진 쇠뇌 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볼트보다 기다란 형태.
건틀릿을 뚫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진 화살은…….
잠깐, 화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화살이 날아든 방면을 응시했다.
쉭-!
그러자 또 한 발이 내 인중을 향해 날아들었다.
화살의 궤도가 선명하게 두 눈에 들어온다.
텁!
왼손으로 화살을 붙잡고,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이 날아든 방면으로 튀어 나갔다.
곧 자욱한 안개 너머로 흐릿한 인간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조명!”
낯선 여자의 외침과 함께 정면에서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갑작스러운 불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주춤거리는 찰나, 또 다른 외침이 들려왔다.
“쏴!”
쏴?
이에 하체를 숙이며 읊조렸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좌측으로 이동하는 찰나, 빗금을 그으며 날아드는 화살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간발의 차로 화살을 회피하고, 좌측으로 보이는 담벼락 뒤로 몸을 숨겼다.
“쏘지 마! 사람이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정적.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들이 담벼락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담벼락 위로 날아드는 눈부신 빛이, 그들의 시선이 이곳에 집중됐다는 방증이나 마찬가지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뒤이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약을 팔아. 사람이 화살을 피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러는 당신은? 좀비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닥쳐라. 사람 행세나 하는 쓰레기 새끼.”
“사람이라니까?”
“대장 좀비인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여자의 대답을 듣고 의구심이 들었다.
대장 좀비?
설마 라스트아크 플레이어?
난 아랫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당신, 플레이어야?”
“빠져나갈 생각하지 마. 대장 좀비가 인간인 척 연기하는 거 역겨우니까. 플레이어가 물리면 대장 좀비로 변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나를 대장 좀비라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확신하는 것 같다.
곤란한 마음에 세차게 혀를 차며 외쳤다.
“대장 좀비면 수하들을 불렀겠지! 대장 좀비가 길거리 좀비들 죽이는 거 봤어?”
“……좀비를 죽였다고?”
“사거리 가서 직접 확인해.”
“개수작 부리지 마.”
의심도 지나치면 병이라더니, 심각한 수준인데?
물론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인 건 맞지만, 어떻게 오해를 풀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당신, 플레이어라면 파티도 있겠지?”
“……알 바 없잖아.”
“파티명이 뭐야? 대장 좀비는 파티 목록을 확인할 수 없으니, 내가 당신 파티의 랭킹을 알면 사람이라는 거 인증하는 거잖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여자가 망설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여자의 대답이 들려왔다.
“자사모.”
“자사모?”
“자전거를 사랑하는 모임.”
동호회 사람들인가?
난 홀로그램을 켜고 파티 목록을 살폈다.
뒤이어 랭킹 18위에 있는 자사모 파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목록에 적혀있는 설명을 소리 내 읽었다.
“자사모 28위! 파티장 송하윤! 플레이어 4명?”
“…….”
“잠깐, 4명? 어떻게 4명이 파티를 만든 거지? 당신들 공격대 소속이야?”
“너도 파티명부터 얘기하는 게 예의 아닌가?”
여자의 물음에 자신 있게 외쳤다.
“소리결!”
“소리결…… 소리결?”
여자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묻어났다.
뒤이어 몇몇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결이면…… 랭킹 1위 파티 아니야?”
“플레이어만 10명인 파티잖아.”
“진짜 소리결이라고?”
“미친, 랭킹 1위 파티가 왜 포항에 있어?”
웅성거리는 목소리로 보아, 못해도 5명은 있는 것 같다.
치지직- 치직-
-야 박재형, 너 어디야?
무전기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황급히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나오지 마. 안에 있어.”
-우리 이미 사거리야. 너 어디…… 어?
설여원이 사거리에 도착했다면, 담벼락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뒤이어 설여원의 물음이 이어졌다.
-너 설마, 지금 담벼락 뒤에 있어?
“어떻게 알았어.”
-웬 사람들이 담벼락 주시하고 있어서. 여기서 100m 거리.
“움직이지 말고 있어. 대화로 해결하고 있으니까.”
-생존자야? 아니면 사이코패스?
“플레이어 같은데, 좀비에 대한 경계가 심해.”
-……지원 필요하면 얘기해.
지원 필요하면 얘기하라니?
설여원이 저렇게 얘기하니, 섬뜩한 마음에 오한이 들었다.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담벼락 너머의 사람들을 죽일 것 같았다.
뒤이어 담벼락 너머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소리결이라는 증거 있어?”
증거?
증거라면 충분히 많지.
“당신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증거 아닌가?”
“뭐?”
“죽일 생각이었으면 진즉에 죽일 수 있었어.”
“……무슨 자신감이야?”
“내가 혼자라고 생각하나?”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묻자, 담벼락 너머에서 또다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신체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뒤이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항으로 온 이유가 뭐지?”
“찾을 사람이 있어서.”
“누구.”
“내 일행의 부모님이 포항에 계셔.”
“부모님 성함은?”
“그건 나도 모르지.”
여자는 머릿속이 복잡한지,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다른 일행과 상의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뒤이어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얘기했다.
“천천히 밖으로 나와.”
“무기부터 치워.”
“어차피 다 피하면 무슨…….”
“상향등이라도 꺼.”
그러자 담벼락 위로 날아들던 불빛이 사라졌다.
난 조심스레 담벼락 너머를 살핀 뒤, 조심스레 그들의 곁으로 향했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6명의 인영이 나타나고, 곧 한 여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대략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여자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거 설마…… 보호대?”
“이제 믿을 수 있겠어?”
“…….”
“이제 대답해. 어떻게 4명이서 파티를 이룬 거지? 첫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가 안 될 텐데?”
파티 설정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았다.
여자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두 주먹을 파르르 떨며 얘기했다.
“죽었으니까.”
“뭐?”
“원래 있던 사람들, 전부 죽었다고.”
아, 파티를 형성한 뒤에 일행이 사망한 건가?
그래서 4명으로 표시된 거구나.
난 여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쉘터가 있나?”
“…….”
여자의 눈빛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가 담겨 있었다.
이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빨리 대답해. 시간 없어.”
“시간?”
“중국 파티가 아크에 도착했어. 언제 두 번째 에피소드가 끝날지 몰라.”
여자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한숨과 함게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대부분 플레이어는 두 번째 에피소드가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고 묻는데, 이 여자는 독 안개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뒤이어 여자의 대답이 들려왔다.
“항구에 쉘터가 있어.”
“항구? 여기서 동쪽에 있는 항구 말하는 거야?”
“그래, 영일만항.”
우리의 예상이 맞았다.
정말 항구에 쉘터가 있을 줄이야.
난 여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포항 신항에도 쉘터가 있나?”
“거기까진 몰라. 나도 가본 적이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 정리부터 끝내고 같이 가지.”
“정리?”
“좀비들.”
난 카타나를 손에 쥐며 사거리로 향했다.
그러자 등 뒤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
“그렇게 못 믿겠으면 같이 가든가.”
“…….”
혹시 대장 좀비나 인간의 배신으로 동료가 죽은 건가?
여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의심이 심하다.
난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싫으면 계속 그렇게 있어.”
세차게 혀를 차며 사거리로 이동했다.
쉘터의 위치도 알았겠다, 더는 실랑이나 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자초지종은 이동하며 들어도 상관없으니, 지금은 카운트부터 획득해야 한다.
* * *
이름 송하윤.
나이는 서른하나, 나보다 10살 많은 누나였다.
송하윤의 나이를 알게 된 뒤로 존댓말을 사용했다.
파티 자사모는 아직 각성을 못 해서 코인의 개념을 모르고 있었다.
좀비를 정리하며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결과, 이들은 식량을 구하러 나왔다가 소란을 듣고 이곳까지 정찰을 왔다고 한다.
평소 잠잠하던 좀비들이 갑자기 포효를 내지르니, 대장 좀비의 등장을 우려했다고 한다.
또한 영일만항 쉘터에 살아 있는 생존자는 52명.
본래 장량동에 있던 생존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영일만항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영일만항에 쉘터를 만들고, 그 뒤에 생존자 수색과 식량 조달을 하며 살아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두 달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생존자 수색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남쪽에서 온 생존자 무리가 쉘터를 이간질했고, 그 과정에 몸싸움이 발생한 것이다.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끝내 화재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불길이 점점 거세게 타오르자, 화염을 발견한 좀비들이 영일만항을 공격했다고 한다.
본래 150명에 달하던 영일만항 생존자들의 태반이 사망하고, 그 과정에 송하윤의 파티원 5명도 사망했다.
하필이면 5명 중 3명이 가브리엘이라서, 시야 확보에 차질이 생기며 이도 저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장 좀비는 없었냐고 묻자, 영일만항을 공격한 좀비가 대장 좀비 무리였다고 한다.
송하윤이 그토록 사람을 의심하고, 대장 좀비에게 분노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쪽에서 온 생존자들에 대해 묻자, 송하윤은 이렇게 얘기했다.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피신한 사람들이었어.”
즉 두 달 전에 영일대 해수욕장이 좀비들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고, 피난민들이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뜻.
송하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처음엔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도와주려고 했어. 일단은 생존자니까. 하지만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었어. 개새끼들이었지.”
송하윤의 말에 따르면, 마치 5살짜리 어린애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툭하면 투정 부리고, 불평불만만 쏟아내며 분위기를 망치는 인간들.
얘기만 들어도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황금동 쉘터에 있던 성김공.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송하윤에게 그동안의 사건 사고를 들으며 사거리의 좀비들을 정리하다 보니, 단순반복 작업도 금방 끝났다.
모든 좀비를 처리하고, 카타나를 칼집에 넣으며 뒤를 돌아봤다.
설여원과 최현은 애써 태연한 척을 하지만, 송하윤의 일행을 주시하며 경계하고 있었다.
뒤이어 송하윤은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팔짱을 끼며 물었다.
“정말 좀비를 잡고 카운트를 높일 수 있다고?”
“네.”
“그래서 그렇게 강해진 거야?”
“그건 아니고, 제 직업이 에덤이라서 그래요.”
“에덤이면…… 신체 강화?”
“네.”
송하윤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내 일행에도 에덤이 있어.”
에덤이 있다는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에덤이 있다고요?”
“정확하게 말하면…… 있었지.”
아……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5명의 동료.
그 5명 사이에 에덤이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