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9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19화
모두의 예상대로 포항에 남은 좀비는 그리 많지 않았다.
건물 내부까지 샅샅이 확인하면 더 있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그나마 효곡동에 다수의 좀비가 있어서, 좀비 카운트가 올라가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효곡동에만 대략 2만 이상의 좀비가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2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왔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위협도 느낄 수 없었다.
최현과 함께 왔기에, 인형극으로 손쉽게 카운트를 높였다.
최현은 서로 죽이라는 명령 대신 서로의 신체를 훼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단 30초 만에, 2만이 넘는 좀비는 사지가 덜렁거리는 걸레짝이 되었다.
지면에 널브러진 좀비들을 빗자루로 쓸듯이 태연하게 좀비 카운트를 올렸다.
효곡동을 정리한 뒤에는 남쪽의 연일대교를 타고 괴정리로 들어섰다.
연일대교 밑으로는 동의 개념보다 읍면리의 분포가 많았다.
좀비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수의 좀비가 있었다.
정진영은 지도를 살피며 얘기했다.
“어디서 자꾸 나오나 했더니, 여기도 아파트랑 학교가 많네.”
“얼마나 돼요?”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아파트들이 괴정리를 중심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어.”
한꺼번에 몰려드는 좀비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특정 도로에 진입할 때마다 100마리 단위로 우르르 몰려드는 좀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학교를 탈출할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인구 단위가 적은 읍면리의 특징이라고 해야 좋을까?
한꺼번에 대량의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보다, 지금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도로에서 우르르 나오는 일이 많았다.
동네 자체가 하나의 번화가에 집중된 탓이었다.
빠르게 카운트를 올리며 모든 골목을 확인했다.
얼추 좀비들의 정리를 끝내고, 정진영은 지도를 살피며 얘기했다.
“여기가 끝이야.”
“더 없어요?”
“없어.”
검푸른 하늘이 천지를 물들인 시각, 더는 거리를 거니는 좀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정진영은 눈이 침침한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지도를 살폈다.
“괴정리 밑에 남포항IC가 있고, 동쪽이 포항 신항이야. 다 돌았어.”
그러자 뒤에 있던 설여원이 얘기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서 사람들 돕자. 없는 좀비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것보다 그게 훨씬 생산적이지 않겠어?”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형 트럭으로 이동했다.
차량으로 돌아가며 좀비 카운트를 살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38213/70000
대략 2만 6천 카운트 올린 건가?
내가 이 정도 올렸다면, 일행은 3만 코인 정도 획득했을 것이다.
최현의 인형극 덕분에 손쉽게 카운트를 높였다.
앞으로도 최대한 인형극을 활용해서 좀비 카운트를 높이면 큰 위협 없이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 * *
쉘터에 도착하자마자 차량 정비와 저녁 준비를 돕고, 근처 주유소를 털어 휘발유와 경유를 보충했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챙겨야 하는 잡다한 물건이 많아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운송 수단이 많아졌다는 것?
영일만항의 생존자들이 버스와 승합차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포항을 떠나 부산으로 이동한다는 생각에, 생존자들은 싱숭생숭한 것으로 보였다.
일찍이 잠을 청하라고 했지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많았다.
이는 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적응할 때도 됐는데, 지역을 옮기는 건 여전히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안정을 떠나 미지의 개척지로 발을 들이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헥, 헥헥.
옥상에 앉아 보초를 서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내 품에 상체를 들이밀었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자, 성견이 된 장군이가 허락도 없이 내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이구, 이 녀석 묵직한 거 봐라.”
“신기하지 않아?”
장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설여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장군이를 풀어줬나 했더니, 설여원이 밤 산책을 위해 데리고 나온 모양이다.
지금처럼 안전이 확보된 상황이 아니면 산책을 시킬 수 없기에, 장군이에게는 이 순간이 굉장히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난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신기해?”
“장군이 말이야. 짖지를 않아.”
이에 말없이 장군이의 표정을 살폈다.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잠긴 눈빛.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새끼 때 지랄 맞기로 유명한 종이었다.
하지만 장군이는 짖거나 발광하지 않았고, 성견이 되어서는 짖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설여원은 내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더니, 장군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장군이는 아는 것 같아.”
“뭐를?”
“짖으면 안 된다는 걸.”
“우리가 짖지 말라고 가르쳐서 그런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위급한 상황에는 반사적으로 짖는 게 본능이야.”
“…….”
“예전에 생각 안 나? 우리 학생회관에 있을 때, 알파1이 건물 외벽에 붙은 거 보고 장군이가 짖었잖아.”
아, 맞아. 그런 적이 있었지.
알파1이 건물 외벽을 타고 창가로 접근하자, 장군이는 창문을 쳐다보며 짖었다.
그 이후로 그런 적이 없는 것 같다.
설여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장군이는 자기가 짖어서 괴물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
“어쩌면 학생회관까지 오는 길에도, 사람을 보고 짖었다가 좀비들이 나타나는 보고 깨달은 것 아닐까?”
장군이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장군이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자, 장군이는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긴가민가한 마음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강아지 우울증 아니야? 최근 들어 장군이 눈에 힘이 없는 것 같은데.”
“우울증 걸린 개들은 이러지 않아. 오히려 더 난리를 치지.”
“그래?”
“주인한테 행패 부리거나, 말 안 듣고 아무 데나 똥 싸는 게 강아지 우울증 증상이야.”
설여원의 설명을 듣고, 장군이의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우리 장군이 똑똑하네.”
월.
그러자 장군이가 미세하게 짖었다.
짖어? 짖었다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한숨 쉬는 것처럼 들렸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우리 장군이 왜 이렇게 똑똑해. 마음 아프게.”
이걸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강아지가 똑똑해서 마음 아프긴 처음이었다.
온종일 주인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앞으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놀아줘야겠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장군이를 쓰다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콧방귀 뀌며 얘기했다.
“참나.”
“왜.”
“아주 세상 인자한 얼굴이네.”
“…….”
“장군이 제일 반대했던 사람이.”
동물을 싫어하거나, 장군이가 싫어서 반대했던 게 아니다.
책임감의 문제였다.
한 번 정을 주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감정기복을 겪을지도 모르기에, 그게 부담스럽고 무서웠을 뿐이다.
설여원은 말없이 장군이와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책임감이 별거야? 있을 때 잘해주면 되지.”
이에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른 아침,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아파트단지 중앙에 모였다.
전완수와 박재우, 황덕록은 피곤한 안색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좀비카 수리를 마치기 위해 밤잠을 설친 모양이다.
이에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버스 운전할 수 있겠어?”
“거뜬하지.”
자신 있는 말과 달리, 표정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자 정진영이 다가오며 얘기했다.
“완수야, 안 되겠다 싶으면 얘기해. 내가 운전하면 되니까.”
“진영이 형 버스 운전할 줄 알아요?”
“배웠지.”
전완수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그럼…… 형이 좀 해줘요.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졸려 죽을 것 같아요.”
정진영은 전완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영일만항의 생존자들이 차량에 탑승하고, 인원 확인을 마친 송하윤이 내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대열은 어떻게 할 거야?”
“저희 버스랑 승합차가 선두에 설 거예요. 그 뒤로 붙어주세요. 후방은 희연이가 운전하는 중형 트럭이랑 정우 형이 운전하는 중형차가 따라갈 겁니다.”
“우린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잠깐만 한눈팔아도 선두 차량 놓칠 수 있으니 잘 따라오세요.”
혹시라도 영일만항의 생존자들이 선두 차량을 놓칠 수 있기에, 후방에 중형 트럭과 중형차가 따라가는 것이다.
송하윤은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차량으로 이동했다.
정진영이 운전하는 버스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설여원이 운전하는 승합차가 붙었다.
그 뒤로 영일만항의 차량이 줄지어 서고, 수리가 끝난 중형차와 중형 트럭이 그 뒤에 섰다.
줄지어 선 차량을 보고, 괜스레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좋을까?
예전엔 좀비카 한 대를 제작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는데, 어느새 움직이는 쉘터 수준이 되었다.
버스에 탑승하며 정진영을 쳐다보자, 그는 시동을 걸고 비상등을 점멸했다.
사이드미러로 연달아 점멸하는 비상등을 확인하고,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출발하죠.”
부우우웅-
삼각뿔을 장착한 버스를 시작으로, 모든 차량이 뱀처럼 그 뒤에 따라붙었다.
귓가를 간질이는 자동차들의 엔진소리가, 웅장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 * *
포스코대로를 타고 남포항IC로 향했다.
그러다 형산대교 앞에서 잠시 정차할 수밖에 없었다.
형산대교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뜯어내야 차량 진입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바리케이드를 해체하며 쓸 만한 철판은 짐칸에 싣고, 다시금 길을 나섰다.
생존자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암담한 풍경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아름다운 바다보다 바로 앞에 널브러진 좀비들의 시체가 더욱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정진영은 쉴 새 없이 좌우를 살피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재형아, 우리 뒤에 여원이지?”
“네, 승합차요.”
“위치 바꾸자고 해줘. 도저히 속도를 못 내겠다.”
지금까지는 익숙한 지형이라서 어떻게든 왔지만, 이 뒤로는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이에 무전기를 들고 뒤따라오는 설여원에게 선두로 나와달라고 했다.
-부산까지 직진만 하면 되는 거지?
“어, 계속 직진하면 광안대교까지 이어져.”
우리가 남포항IC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하는 이유.
고속도로를 타고 직진만 하면 광안대교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잘못 들어갈 수 있으니, 계속 무전기 들고 있어.
“알았어.”
부아아아앙-!
뒤에서 거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버스를 추월하는 승합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비상등을 점멸하며 선두를 차지하더니, 곧장 남포항IC로 들어섰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크게 위협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없었다.
자욱한 안개에 잠식된 을씨년스러운 도로를 끝도 없이 달릴 뿐이었다.
계속해서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어서 그런가?
우리가 앞으로 가는 건지, 뒤로 가는 건지,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진영도 마찬가지인지, 두 눈을 껌벅이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에 정진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형 괜찮아요?”
“잠 와서 눈 감은 거 아니야.”
“알아요. 그냥 피곤해 보여서…….”
“저 앞에 승합차 엉덩이만 쳐다보면서 운전하니까 공감각이 마비되는 것 같아. 이런 걸 정우는 계속한 거야? 눈 빠질 것 같은데, 대단하네.”
승합차 운전은 대부분 이정우가 많이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막상 정면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운전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상향등을 켜고, 차량 상단에 부착한 LED 조명을 켜도 시계는 50m가 되지 않았다.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 뒤로 얼마나 달렸을까.
무전기에서 이민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직- 치직.
-재형아 들리니?
“네 이모, 말씀하세요.”
-그…… 휴게소 한번 들릴 수 있을까? 애들이 화장실 가고 싶다고 그래서.
“앞에 전달할게요.”
무전기를 들자, 설여원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화장실 간다고?
채널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설여원도 들은 모양이다.
“어, 애들 화장실. 앞에 휴게소 보여?”
-2㎞ 앞에 휴게소 있다는 간판은 봤어. 통도사휴게소. 거기로 갈까?
“그러자. 가서 식량도 찾아보고, 휘발유랑 경유도 더 챙길 수 있으면 챙기고.”
-오케이.
무전을 마치고 3분 정도 지났을까?
선두의 승합차가 우측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찰나, 승합차가 갑자기 정차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진영이 황급히 비상등을 켜며 정차하자, 무전기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지직- 치직-
-무기 챙겨.
무슨 일인지 몰라도, 설여원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좀비, 혹은 변종이라도 발견한 건가?
이에 황급히 카타나를 뽑는 찰나.
퍽! 퍼벅! 퍽!
버스 창문으로 검은색 물감이 날아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무전기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