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6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26화
동영상에는 벙커 내부의 모든 벽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늘에 열린 거대한 구멍.
그곳에서 떨어지는 기괴한 괴물들.
대지가 불타고, 천지에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모든 동식물이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이 그림에 담겨 있었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자, 그들의 앞으로 거대한 함선이 생성되었다.
또한 살아남은 이들을 태운 함선이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 보이는 벽화를 보고, 난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바다 밑에 존재하는 거대한 돔 형태의 장막과, 그 속에 있는 대도시의 모습.
동영상을 확인하고,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이거 혹시…… 아틀란티스 같은 거예요?”
“나도 동감이야.”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해저 도시 아틀란티스.
그게 실존한다는 말이 아닌가?
벽화의 내용을 해석하면, 하늘의 군단이 지상을 침공하는 날 아틀란티스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는 것 같다.
그리고 길을 만들어주는 이는 에스파디아.
에스파디아는…… 분명 균형을 원한다고 했다.
이는 지구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닌, 범우주적인 개념이라 생각한다.
또한 좀비도, 변종도, 본인에게는 자산이라고 했다.
에스파디아가 자연의 섭리에 관여하면서까지 인간을 좀비로 변질시킨 건, 하늘의 군대가 지상을 공격했을 때 이에 저항할 세력을 만들기 위함인가?
하지만 좀비와 변종을 만들어도 승리를 가늠할 수 없기에 플레이어를 만들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살아남아봐라, 하는 의미로 라스트아크라는 튜토리얼을 만든 것 같다.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이 마침내 해소되었다.
아크가 무엇인지, 좀비와 변종, 플레이어는 어째서 이 세상에 나타난 건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다음에 에스파디아를 만나게 된다면, 이제 그만 진실을 가르쳐달라고 해야겠다.
곽찬혁은 이정우와 내 눈치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두 사람은…… 그게 뭔지 아는 눈치 같네?”
“알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아크의 비밀은 이게 다예요?”
“아니, 그 동영상 마지막에 보면 레버 같은 거 있지?”
레버?
벽화에 집중하느라 못 봤다.
영상의 가장 마지막 부분을 확인하자, 정말 레버 같은 게 설치되어 있었다.
곽찬혁은 영상에 있는 레버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기에 손을 얹으면 아크를 소환할 거냐는 안내 메시지가 떠올라.”
“조건은 없어요?”
“조건은 없어. 다만 중국 파티가 전멸한 걸 보면…… 레버를 당기자마자 아크가 소환되는 건 아니겠지.”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레버를 당기면, 분명 알약 자판기의 유지시간처럼 아크가 소환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공지될 것이다.
그럼…… 대공습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공습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에스파디아는 인류의 자격을 시험하고 싶은 걸까?
살아남으면 자격이 있는 거고, 좀비로 변하더라도…… 에스파디아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없다.
그만큼 군사가 더 많아진 것이니 말이다.
상황파악을 마치고, 곽찬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형, 자판기에서 포만감 알약 꺼내면 유통기한 같은 건 없어요?”
“24시간. 이미 실험해 봤지.”
하긴, 아크에 도착한 지 2시간도 지나지 않은 나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실험을 했을 것이다.
포만감 알약을 비축하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다.
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자판기의 남은 시간은 3일.
지금의 아크는 철옹성과 같지만, 레버를 당기면 바리케이드에 흐르는 모든 전력이 차단될 것이다.
그리고 좀비들의 공습이 시작되겠지.
앞으로 3일 이내에, 부산에 있는 좀비들을 최대한 많이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대공습을 버틸 수 있다.
난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형,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아요.”
“선택지? 무슨 선택지.”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좀비를 정리해야 합니다.”
“그게 최선이야?”
“아무리 계산해도 이게 최선이에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반복한 결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하나였다.
지금 당장 설여원과 함께 서울로 가는 것도 생각했다.
하지만 변수가 많고, 변수에 대응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동하는 길에 긴급 퀘스트라도 생성돼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차라리 두 번째 에피소드를 여기서 끝내고, 부산에 있는 생존자들을 해저 도시로 보낸 뒤, 자판기의 유지시간을 늘려서 서울로 이동하는 게 옳다.
물론 게임이 클리어되면 더 좋고.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여기서 기다려. 좀비카랑 부산 지도 가져올게.”
이정우가 바리케이드 내부로 들어가고, 옆에 있던 곽찬혁은 홀로그램을 켜며 물었다.
“코인은 공유했어?”
“공유요?”
“지금은 파티 간의 거리가 20㎞ 이내잖아. 그동안 모은 코인 공유할 수 있어.”
깜박하고 있었다.
곽찬혁이 코인 공유를 누르자, 좀비 카운트 4,000이 올라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공격대에 속한 파티가 좀비를 처리하면 절반의 코인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난…… 절반으로 줄어든 코인을 또다시 5분의 1로 나누어서 받는다.
즉, 공격대에 속한 파티가 좀비 10마리를 잡아야 1카운트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0이나 올라갔다는 건, 그동안 파티 황금동도 상당히 많은 좀비를 처리했다는 말이 된다.
뒤이어 바리케이드 입구에서 나오는 낯선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완수와 함께 나온 생존자들은, 정진영과 윤혜리를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을 보였다.
곧 눈시울을 붉히더니, 정진영과 윤혜리를 품에 안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자, 뒤따라 나온 전완수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인사드려야지. 진영이 형이랑 혜리 부모님이셔.”
“아.”
살아계셨다.
정진영과 윤혜리의 부모님 모두, 건강히 살아계셨다.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찾아온 부산에서, 마침내 정진영과 윤혜리는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괜스레 코끝이 짠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안부를 확인한 뒤, 내 곁으로 다가왔다.
곧 내 손을 잡고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얘기 들었어요. 학생이 고생 많았다고…… 정말 고마워요. 정말…… 너무 고마워.”
“아닙니다. 저도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정진영과 윤혜리를 쳐다보자, 정진영은 눈물을 참기 위해 한 차례 코를 훌쩍이며 하늘을 쳐다봤다.
반면에 윤혜리는 양손으로 눈을 비비며 흐느껴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완수는 헛기침과 함께 얘기했다.
“재형아, 그리고 이분이…… 너를 꼭 만나고 싶다고…….”
입구에서 걸어 나오는 한 여자.
20대로 보이는 여자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여자는 내게 꾸벅 고개 숙이더니,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여러분이 포항에서 오셨다고 들었어요.”
“아, 예.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포항입니다.”
“포항 신항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황급히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낡은 일기장을 꺼내어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혹시…… 이 일기장 주인이세요?”
여자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키가 이 정도 되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없었어요? 이름은 김상진이고, 몸은 다부진 편이고…….”
여자의 목소리에서 초조하고, 간절한 마음이 엿보였다.
포항 신항 1부두에서 발견한 육아 일기장.
그 속에 적혀 있던 상진이라는 이름.
씁쓸한 마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포항 신항에 생존자는 없었습니다.”
“아.”
여자는 짧은 탄성을 뱉더니, 금세 울먹이며 되물었다.
“아, 아니요.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 좀비들 쫓아내고 금방 따라오신다고 했는데…….”
“포항 생존자는…… 저희와 함께 온 송하윤 씨 일행이 전부에요.”
“그,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 분명 금방 온다고 하셨는데. 금방 따라온다고…….”
여자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였다.
품에 안긴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자, 전완수는 여자와 아기를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들어가시죠. 밖은 위험합니다.”
“흐흑…… 상진 아저씨…… 아저씨…….”
난 일기장의 내용을 확인했기에,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아기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를 받아야 했던 여자.
그런 여자와 아기를 옆에서 끝까지 지켜준 사람이 김상진이었다.
포항 신항이 좀비들의 공습에 함락되는 순간에도, 김상진은 여자와 아기를 먼저 배에 태운 모양이다.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으면 젖병과 분유, 일기장까지 두고 떠났겠는가?
난 멀어지는 여자에게 다가가, 일기장을 건네주며 얘기했다.
“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두 분이 이렇게 건강하니, 상진 아저씨도 편히 가셨을 겁니다. 그러니 끝까지 살아요.”
전완수는 일기장을 대신 받아든 뒤, 여자를 부축하여 아크로 들어갔다.
아크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얘기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제 다들 아크로 들어가요.”
“재형이 넌 어디 있을 거야? 장소는 알려줘야지.”
정진영의 말에, 곽찬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찬혁이 형, 근처에 안전한 장소 있어요?”
“대로 맞은편이 대학교야. 교내는 얼추 정리된 상태라서 그나마 안전할 거야.”
“그럼 여원이랑 저는 학교에서 지낼게요. 텐트랑 식기, 중형차만 준비해 주세요.”
곽찬혁은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아크로 들어갔다.
박성훈과 이병훈, 김석원과도 마저 이야기를 나눈 뒤, 세 사람도 아크로 들여보냈다.
뒤이어 윤혜리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좀비들을 정리하기 위해선 최현과 윤혜리가 필요하다.
최현은 흔쾌히 나서겠지만, 현 상황에 윤혜리를 데려가는 게 맞을까?
찰나의 고민 끝에, 결심을 내렸다.
“저기, 혜리야!”
“네 오빠.”
“너는…… 오늘은 부모님이랑 있고, 내일부터 도와줘.”
“아, 네!”
그러자 윤혜리의 부모님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도와달라니, 뭘 도와달라는 거예요?”
“혜리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모두가 생존하기 위해선 혜리가 필요해요.”
윤혜리의 부모님이 불안한 표정을 짓자, 윤혜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위험한 일은 없어요.”
“사방에 좀비가 득실거리는데 네가 필요한 일이 뭐가 있다고 그래.”
윤혜리의 아버지는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두 분 따님, 강한 여자예요. 지금껏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들으면 깜짝 놀라실걸요?”
“굳이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일 필요가…….”
“안 그러면 나중에 힘드니까 그렇죠. 싫으시면 다 같이 죽어야지 어쩌겠어요.”
설여원의 직설적인 표현에, 윤혜리의 부모님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난 헛기침을 하며 얘기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바이러스에 걸리기 전에 백신 차원으로 혜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부모님의 우려도 이해가 된다.
생사도 알 수 없던 딸이 살아 돌아왔는데, 또다시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
윤혜리도 현 상황을 알기에, 부모님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모두가 살아남으려면 내가 꼭 필요해. 그러니 걱정하지 마.”
“혜리야…….”
윤혜리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할게요.”
“그래.”
“고마워요. 재형 오빠.”
하루 쉬는 게 얼마나 타격이 큰지 윤혜리도 알 것이다.
윤혜리의 부모님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정진영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진영이 형, 들어가서 재우랑 덕록이 프린트 쿨타임 돌아오면 곧장 설치하고, 볼트 제작하라고 전해주세요.”
“로그나이트로 만들면 되지?”
“섞어서 만들어야 해요. 대공습이 시작되면 생존자들도 싸워야 합니다. 쇠뇌가 부족하면 쇠뇌도 만들어야 하고요.”
“오케이, 파티 황금동이랑 자사모 사람들한테도 얘기할게.”
“네, 그리고 현이도 불러주세요.”
“알았어.”
알약 자판기가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75시간.
문득, 에스파디아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꾸준하게 나아가라고.
게으른 자와 아닌 자의 차이가 나타날 거라고.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인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최대한 좀비들의 숫자를 줄이고 좀비 카운트를 높여야 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위협에,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는 사실상 적응기에 가깝다.
생존 게임은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