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1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31화
설여원의 직설적인 말에 윤성민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이는 생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박재형이 얼마나 강한지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말이 얼마나 거만한 소리인지,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
설여원은 사람들의 표정을 가만히 살피더니, 끝내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시체부터 정리하죠.”
“……죄송합니다.”
“저도 흥분했네요. 죄송해요.”
설여원과 윤성민, 생존자들이 시체 정리에 나서자, 상황을 지켜보던 최현은 이정우의 옆으로 붙으며 속삭였다.
“형, 이거 맞아요?”
“나도 모르겠다.”
“여원이가 걸크러쉬 폭발하는 건 알았는데, 오늘은 좀 과격하네요.”
“…….”
이정우도 생각이 많았다.
어쩌면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을 설여원이 대신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정작 박재형의 노고를 가장 잘 아는 본인이,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자 시체를 옮기던 설여원이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오빠도 빨리 도와요!”
“아, 그래!”
이정우는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의 잡념을 털어냈다.
사과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시체 정리에 집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 * *
키리리릭! 키에에에엑!!
좌측에서 날아드는 변종의 오른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관자놀이로 날아드는 변종의 오른팔이 두 눈에 들어오고, 머릿속으로 팔의 궤도가 그려졌다.
난 변종의 오른팔을 잡고 그대로 엎어치기를 가했다.
쾅!!
아스팔트 바닥에 변종의 육중한 몸이 내리꽂히자, 놈은 외마디 비명을 토하며 버둥거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알파1의 안면을 지르밟았다.
콰직!
바닥에 떨어뜨린 카타나를 손에 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감지.”
크어어어어어!!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물결.
바다에서 시작된 거센 파도가 도로까지 침범이라도 한 듯, 장관이 펼쳐졌다.
10만의 좀비를 처리하기 위해 나름 머리를 굴렸다.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최대한 많은 좀비를 처리하고, 체력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변 건물을 이용하는 것.
한계에 다다르면 좀비화를 사용해서 마저 정리하면 그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명 좀비부터 처리했다.
광안리에 도착하자마자 공명 좀비부터 처리하고, 그 과정에 골목에 숨어 있던 알파1까지 처리하게 되었다.
슬슬 공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공명 좀비는 씨가 마른 것으로 보였다.
남은 건 좀비들 정리.
이에 황급히 좌측 건물로 진입해 계단을 막아섰다.
카하아아악!! 카하악!!
건물 내부에 있는 좀비들부터 처리하고, 밑에서 올라오는 좀비들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다.
카타나만 놓치지 않으면 충분히 저지할 수 있기에, 눈도 깜박이지 않고 카타나를 휘둘렀다.
시체가 쌓여서 좀비들이 올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창문이나 옥상을 통해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다.
좀비들의 시체는 되도록 건물 내부에 두는 게 이롭다.
건물이 악취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에, 추후 냄새를 맡고 좀비들이 모여드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 나오는 좀비들.
도로를 가득 채운 좀비들의 머리를 도려내고, 스킬 급가속을 이용해 맞은편 건물로 도약했다.
거기서도 계단을 막고 좀비들을 처리했다.
이런 식으로 최대한 체력적 부담감을 줄이며, 쉴 새 없이 좀비들의 머릿수를 줄여나갔다.
하지만 해가 떨어진 시점부터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짧은 시계가 더욱 짧아지니 건물의 형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적절한 건물을 찾는 게 어려워진 것이다.
통행 가능한 계단이 하나뿐인 건물에서 좀비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도착해서 보면 대지면적만 300평 이상인 경우가 발생했다.
건물 내부에 계단이 두 곳 이상이면 배후를 노리는 좀비들이 나타난다.
앞뒤로 에워싸이는 형국이라 더욱 높은 집중도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체력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너무 안일했나?
남천2동의 좀비들을 정리하고 한계 돌파 4단계에 접어들자, 눈앞으로 이러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체력 스탯의 수치가 50 증가합니다.
-위의 스탯은 기본 수치가 아닌 추가 수치로 적용됩니다.
한계 돌파를 할 때마다 생성되는 메리트.
이번엔 스킬의 페널티를 없애주거나, 특수 스킬을 주는 대신 체력 스탯을 높여주었다.
현재 근력은 94.
반사신경과 동체 시력은 56.
골밀도와 표피강화는 68.
무엇보다 체력은 94(+50)이 되었다.
이에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좀비를 처리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싶었다.
포항에 있을 때보다 체력이 2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체력 회복제가 없는 이상,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고 모조리 섬멸하는 건 무리였다.
3만의 좀비를 처리한 시점에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이브.”
두근-
심장에서 아찔한 충격이 느껴지고, 칠흑 같던 어둠 속에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읊조렸다.
“광폭화.”
지옥불에 떨어진 것처럼 전신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혈관이 불끈 솟아나고, 아드레날린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기다란 대못으로 폐를 찌르는 것처럼, 찢어지는 통증 끝에 입밖으로 숨이 터져 나왔다.
“크윽……! 하악!”
입 밖으로 터져나오는 뜨거운 숨결.
밤공기가 차가워진 탓일까?
희뿌연 입김이 허공을 수놓고, 모든 세포가 첨예한 칼날처럼 번뜩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세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작디작은 소리에도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두 팔을 스치는 바람 속에, 좀비들의 위치와 규모가 담겨 있는 기분.
광폭화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이 아니면 실험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광란이 발동되더라도 아군이 다칠 일이 없으니까.
한계 돌파 4단계에 도달하며 정신력도 대폭 증가했다.
254였던 정신력은 단번에 330이 되었다.
난 고개를 들고 좀비들을 응시했다.
다행히 광폭화를 사용하자마자 이성이 끊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난 좀비들을 바라보며 하체를 접었다.
칼자루를 부서질 듯 말아쥐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가속.”
쾅-!!
총구를 떠난 탄알처럼.
아니, 포구를 떠난 포환처럼 튀어 나갔다.
마치 세상을 접었다가 편 것처럼, 100m 밖의 좀비들이 눈 깜짝할 새에 코앞으로 나타났다.
대폭 증가한 신체 능력은 나조차 제어할 수 없었다.
쾅!!!
좀비와 정면으로 부딪치자, 놈은 일격 효과가 적용되어 전신이 터져 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물풍선처럼 머리만 터지는 게 아니라, 전신이 말이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좀비들이 들어찬 길거리를 돌아보며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콰과광!! 퍼벙!! 펑! 쾅!!
몸에 닿는 모든 좀비가 곤죽이 되었다.
일격이 유지되는 20초가 끝나고, 황급히 두 다리에 제동을 걸며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내가 달려온 길은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아니, 이곳에 비하면 지옥도 천국일 것이다.
좀비들의 살점과 오장육부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핏물이 은은한 은하수처럼 허공을 수놓고 있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비릿한 피냄새에, 인중을 닦으며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크어어어어어!!
포효를 내지르며 이곳으로 달려오는 좀비들.
카타나를 고쳐 쥐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가능할 것 같은데?”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남은 7만 이상의 좀비.
1시간 이내에 전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 * *
정리를 마치고 이정우와 최현, 윤성민, 아크의 생존자들은 오륙도 아파트로 돌아갔다.
반면에 설여원은 무전기를 들고 전완수를 불렀다.
“완수야, 지금 어디쯤이야?”
전완수와 박재우, 황덕록이 텐트를 설치하기 위해 대학교로 들어갔다는 걸 이정우에게 들었다.
치지직- 치직-
오래 지나지 않아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리 끝났어?
“어.”
-지금 어디야. 데리러 갈게.
“바리케이드 앞이야.”
-거기서 기다려. 금방 간다.
설여원은 무전을 마치고 노면에 주저앉았다.
좀비 시체를 치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백 마리면 몰라도 3만 구가 넘는 시체를 치웠으니, 지치는 게 당연했다.
홀로 남은 설여원은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혼자 있는 게 얼마 만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자연대가 마지막인가?’
그날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박재형을 구출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박재형을 구출한 뒤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괜스레 결인들과의 첫 만남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색하던 첫 만남이, 어느새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해졌다.
아니, 친구라는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울타리 밖을 맴돌던 자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준 박재형.
지금껏 같은 위치에서, 다 함께 힘을 합쳐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금의 박재형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다.
지형만 잘 이용한다면, 설여원도 1,000마리의 좀비를 홀로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박재형처럼 1만, 10만의 좀비가 득실거리는 곳에 서슴없이 달려들 자신은 없었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대공습을 끝으로 게임이 클리어되면 몰라도, 만약 세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독 안개가 퍼지면 다양한 변종이 나오는 건 물론이고, 좀비들의 신체 능력이 대폭 증가할 가능성도 크다.
물론 기존 변종들의 신체 능력도, 독 안개와 함께 증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박재형은 앞으로 계속해서 강해질 텐데, 자신과 결인들이 제자리라면…… 박재형의 발목을 잡는 역할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을 반복할수록, 설여원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지울 수 없었다.
강해져서, 박재형처럼 도움이 되고 싶었다.
부우웅-
저 멀리, 눈부신 상향등과 함께 바리케이드 앞으로 접근하는 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설여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운전석에 있던 전완수가 창문을 열고 얘기했다.
“여원아! 버스 아크에 넣어놓고 올게.”
“아, 그래.”
버스가 아크 내부로 들어가고, 바리케이드 앞에서 5분 정도 기다리자 전완수가 걸어 나왔다.
설여원은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일찍 왔네?”
“정비소까지 가는 건 너무 멀어서 대충 입구에 세워놓고 왔어.”
“차량 정비소가 오륙도 선착장이라고 했지? 거기 두고 와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서 오륙도 선착장까지 3㎞는 될 걸? 세워놓고 걸어오는 것도 일이야.”
“아…… 그래?”
“됐고, 따라오셔.”
전완수는 큰길을 따라 이동하지 않고, 맞은편 수풀을 뚫고 들어갔다.
수풀을 뚫고 100m도 이동하지 않아서, 높다란 건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긴 어디야?”
“대학교 기숙사. 외벽에 행복 기숙사라고 적혀 있더라고.”
“…….”
“차로 들어오려면 입구까지 돌아가야 하지만, 이렇게 수풀 헤치고 들어오면 아크랑 거리도 가깝잖아? 건물 꼭대기에서 아크도 보이고, 서로 오가기 편할 거야.”
“그러네.”
“기숙사에 있던 좀비들은 우리가 정리했고, 근방에 있는 좀비들도 깨끗하게 정리했으니 마음 편히 써. 손님은 특별히 500에 40.”
“뭐?”
“푸핫! 농담이야 인마.”
전완수는 혼자 까르르 웃어젖혔다.
하지만 설여원의 표정이 썩 좋지 않자, 전완수는 민망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뒤이어 헛기침과 함께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항상 강한 모습을 보여오던 설여원이 어딘지 모르게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전완수는 설여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설여원이 입술을 달싹이며 고개 숙이자, 전완수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드디어 왔구먼? 가을 다 끝나가는데, 이제야 가을 타는 거야?”
“아니야 그런 거.”
“그런 날 있잖아. 괜히 생각 많고 힘 빠지는 날.”
“…….”
“나도 그랬어. 부모님 돌아가신 거 알았을 때.”
전완수의 입에서 나온 말에, 설여원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언제나 활력으로 가득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완수는 홀로 슬픔을 삼키고 있었다.
설여원이 말없이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
“네가 아무리 고민해도 변하는 건 없어.”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아? 아무리 고민해도 변하는 게 없다니.”
설여원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전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몰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남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겠어?”
“그게 말처럼 쉽냐.”
“우리도 할 수 있어. 그런 거 잘하는 사람 우리 옆에 있잖아.”
그런 거 잘하는 사람.
설여원의 머릿속으로 박재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완수는 설여원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더니,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걔는 참 특이하지 않냐? 단순한 건지, 머리 회전이 빠른 건지.”
“…….”
“고민해도 답이 없으면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행동으로 옮겨버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