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4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34화
경건한 마음으로 건틀릿을 착용하고, 그 옆에 놓인 카타나를 손에 쥐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숙사 옥상에 서서 어둠에 잠식된 세상을 응시했다.
예전엔 안개만 봐도 위축되었지만, 지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조차 평온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내 앞을 가로막든, 모조리 부숴버리고 나아갈 자신이 있었다.
에에에에에에엥-!!
뒤이어 고막을 찌르는 사이렌 소리가 천지를 울리기 시작했다.
예정대로, 이정우가 레버를 당긴 모양이다.
띠링-
동시에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아크에서 레버를 당겼습니다.
-부산 아크의 방어 기능이 사라집니다.
-생존자를 위한 함선이 출발합니다.
-도착 예정 시간: 20시간
띠링-!
-대공습이 시작됩니다.
-반경 100㎞ 이내의 좀비와 변종들이 자극을 받아 달려옵니다.
-대공습은 24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대공습이 끝날 때까지 전 세계 알약 자판기의 유지 시간이 24시간 증가합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심장에서 쿵, 하는 아찔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크를 중심으로 반경 100㎞ 이내의 모든 좀비와 변종이 달려온다고?
여기서 100㎞면…… 대구까지 포함되는데?
대구뿐만이 아니다.
북쪽으로 울산과 경주, 포항이 해당하고, 서쪽으로는 김해와 거제, 통영까지 범위 안에 들어간다.
대공습이 시작되면 부산에 있는 좀비들이 모여들 것이라 예상했는데, 반경 100㎞라니.
“하…… 에스파디아 이 새끼. 적당히가 없어.”
욕이 절로 나온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칠흑 같은 장막 너머로, 천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의 잡념을 털어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먹고 포기할 수는 없지.
어차피 부산에 있는 좀비들만 정리하면, 그 뒤에 모여드는 좀비들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다.
대구에서 부산까지 달려서 와야 한다.
아무리 좀비들이라도, 하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좀비도 고통을 느끼지 못할 뿐, 신체적 한계는 존재하니까.
그러니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옳다.
우선 가까운 거리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집중했다.
“감지.”
-25초간 전방 9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움직임이 포착된 적은 감지의 지속 시간이 끝나도 10초간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감지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40분입니다.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는 좀비들의 모습.
무전기를 들고 일행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들 홀로그램 확인했지?”
-확인!
-100m도 아니고 100㎞라니? 장난해?
-까짓거 들이받아 버리지 뭐!
-이 X같은 시스템! 때려 부수자고!
일행의 반응에 웃음이 터졌다.
100㎞라는 범위를 보고 절망감에 사로잡힐 법도 한데, 두려움에 잠식된 사람이 없었다.
다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모양이다.
이에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다들 살아서 보자.”
무전을 마치고 하체를 접으며 읊조렸다.
“가속.”
쾅!!!
옥상을 박차며 좀비들이 달려오는 방면으로 뛰어올랐다.
전신을 잡아당기는 중력에 몸을 맡긴 채, 눈앞의 푸른 물결을 응시했다.
안개의 표면에 발끝이 닿는 순간,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하며 충격을 완화했다.
훙-!
중력을 거스르는 도약에 오장육부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급강하하는 자이로드롭이 다시금 위로 솟구치는 느낌.
하지만 당혹감은 들지 않았다.
매일같이 연습하며, 이젠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크어어어어어!!
안개 속에서 울부짖는 좀비의 얼굴이 두 눈에 들어오고, 놈의 안면을 짓밟으며 지면에 착지했다.
쾅!!!
수박처럼 터져 버리는 머리.
사방으로 흩날리는 뇌수.
빠르게 주변을 에워싸는 좀비들의 움직임.
난 좀비들의 성대를 직시하며 쉴 새 없이 카타나를 휘둘렀다.
* * *
크어어어어어!!!
저 멀리, 끝을 알 수 없는 좀비들이 1차 바리케이드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박재형이 좀비들의 시선을 유도하며 견고한 방파제처럼 흐름을 끊고 있지만, 쓰나미를 저지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1차 바리케이드의 길이만 3㎞.
중앙에서 아무리 시선을 유도해도, 양옆으로 새는 좀비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드는 좀비들을 보고 곽찬혁은 마른침을 삼키며 생존자들에게 외쳤다.
“온다! 다들 준비해!”
그러자 쇠뇌와 활을 소지한 생존자들이 바리케이드 상단에 일렬로 줄지어 섰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지면을 울리는 육중한 발소리에, 생존자들은 떨리는 눈으로 안개 속을 응시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중압감에, 시위를 당긴 생존자들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전멸이기에,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바리케이드에 올라섰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점점 웅장해지는 발소리.
크어어어어어어어!!!
크하아아아악!! 카하아악!!
그와 함께 들리는 쩌렁쩌렁한 좀비들의 포효.
안개의 표면이 일렁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흩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좀비들이 신선로에 다다르자, 곽찬혁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쏴!”
퉁퉁! 퉁! 퉁! 퉁!
수백 발의 볼트와 화살이 좀비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크어어어어!! 크허악!!
카하악!! 카악!!
선두의 좀비들이 쓰러지자, 뒤따라오던 좀비들은 발이 걸려 넘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좀비들의 공세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바닥을 뒹굴며 달려드는 좀비들.
터덩! 텅! 터더덩!!
바리케이드에 도달한 좀비들이 벽을 넘기 위해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곽찬혁은 빠르게 쌓여가는 좀비들을 보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자기장이 사라졌다! 휘발유 가져와!”
박재형의 예상대로였다.
지금껏 바리케이드에 닿은 좀비들은 가루가 되었는데, 대공습이 시작되자 바리케이드에 흐르던 전류가 사라졌다.
드드득- 터덩- 끼이이익-
길이 3㎞나 되는 5m 높이의 바리케이드에서 파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좀비들의 압력으로 인해, 충격이 쌓이고 있었다.
생존자들이 헐레벌떡 휘발유를 들고 오자, 곽찬혁은 좀비들의 위치를 살피며 외쳤다.
“전부 부어!”
좀비들의 머리 위로 휘발유가 쏟아지자, 곽찬혁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외쳤다.
“불화살 준비!!”
“불화살 준비!!”
“쏴!!”
퓽! 퓽! 퓽!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수백 발의 불화살이 좀비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화르르르륵!!
크어어어어! 크아아아악!!
하아아아악!! 크하아악!!
거대한 화마가 좀비들을 집어삼키자, 좀비들의 아우성이 생존자들의 정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지옥 불에 허우적거리는 망령처럼, 불바다를 배회하는 좀비들의 모습은 생존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코를 찌르는 휘발유 냄새와 인간의 살점이 타들어 가는 악취, 심지어 후끈거리는 열기로 인해 생존자들은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
“다들 정신 차려! 멈추지 말고 쏴!”
반면에 곽찬혁은 달랐다.
황금동에서 대명동 좀비들을 처리하며 이와 비슷한 싸움을 경험했다.
곽찬혁이 솔선수범하여 쉴 새 없이 볼트를 발사하자, 생존자들도 하나둘 정신을 다잡기 시작했다.
본인의 팔뚝이 익어가는 것도 잊은 채, 좀비들이 벽을 넘지 못하도록 쉴 새 없이 볼트와 화살을 쏟아부었다.
그어어어어…… 어어어…….
선두의 좀비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들자, 후방에 있던 공명 좀비들이 허공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좀비들이 우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좀비들은 불길이 퍼지지 않은 곳으로 이동하더니, 바리케이드 입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입구는 좌우로 갈라지기는 형태라서, 방어에 가장 취약했다.
문이 뚫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판을 덧대고 지지대를 만들어둔 상황.
끼이이익-! 끼긱- 드드득-!
하지만 압력이 가해질수록, 찢어질 듯한 파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곽찬혁은 좀비들의 위치를 살피며 무전기를 들었다.
“진영아! 거기 상황 어떠냐!”
치지직- 치직-
-아직 할만합니다!
“지원, 지원 부탁한다! 입구 막아줄 사람이 필요해!”
-현이랑 혜리, 완수 보낼게요!
무전을 마치고, 곽찬혁은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좀비들의 위치를 살폈다.
화마로 인해 주변이 밝아졌다.
하지만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끝도 없이 밀려드는 좀비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항대교 방면을 담당하는 500명의 생존자와 플레이어들은 할만하다고 하는데, 광안대교 방면은 그렇지 않았다.
광안대교 방면에 1,200명의 생존자를 배치했지만, 아무리 생존자가 많아도 1 대 100의 각성 플레이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했다.
만약 좀비들이 입구를 뚫고 들어오면…… 순식간에 전세가 기울 것이다.
곽찬혁은 좌우를 살피며 누군가를 찾아 나서더니, 곧 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박성훈 씨!”
박성훈 중위.
그는 곽착혁의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곽찬혁이 손으로 수신호를 보내자, 박성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는 생존자들에게 외쳤다.
“수류탄 가져와!”
설여원과 최현, 윤혜리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 * *
난 광안대교와 북항대교 사이에 위치한 석포여자중학교 옥상에 자리 잡았다.
고지대에 위치한 석포 여중까지 좀비들을 유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좀비들의 시선을 유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
공명 좀비를 끌고 다니면 된다.
일부러 공명 좀비 하나를 붙잡고 석포 여중으로 뛰었다.
공명 좀비의 목덜미를 쥐고 달리자, 나머지 좀비들이 알아서 따라붙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공명이 봉화대처럼 퍼져나가, 반경 1㎞의 좀비들은 모조리 내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중앙 1㎞, 혹은 그 이상을 내가 담당하고 있으니, 광안대교와 북항대교의 생존자들은 한층 수월할 것이다.
나도 바리케이드 내부에서 싸우면 당연히 안전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벽이 무너질 위험이 커진다.
수십, 수백만의 좀비가 일제히 바리케이드를 밀어붙이면, 아무리 두꺼운 벽이라도 무너질 위험이 있다.
또한 시체가 쌓이면 벽을 타고 넘어오는 좀비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에 내가 방파제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크어어어어어!!
학교 옥상으로 올라오는 좀비들을 처리하며, 최대한 체력적 부담을 줄였다.
일행에게 받은 4개의 체력 회복제도 있기에,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10만 이상의 좀비를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지금의 구도가 깨지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
침착하게 좀비들을 도륙 내며 아크의 상황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쾅- 쾅-! 쾅- 쾅!
멀찍이서 들리는 폭음에,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수류탄은 2차 방어선으로 이동할 때 사용하기로 했는데?
아크에 남은 수류탄과 탄알은 많지 않았다.
남은 수류탄을 전부 합쳐도 100개가 안 된다고 들었다.
이에 기관총은 3차 바리케이드에 설치해둔 상태였고, 탄알집도 3차 방어선 내부에 쌓아둔 상태였다.
1차 방어선이 무너지면 모든 생존자는 좀비카를 타고 2차 방어선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동하는 길에 좀비들이 한곳에 밀집되지 않도록 조절하고, 변종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수류탄을 준비했다.
그런데 1차 방어선 앞에서 수류탄을 사용하다니.
설마 시작부터 문제가 생긴 건가?
크어어어어어!!
끝도 없이 밀려드는 좀비들로 인해, 고민하고 있을 여력이 없었다.
이에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말아쥐고, 왼손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카하아아악!!
달려드는 좀비의 가슴에 카타나를 찔러넣고, 그대로 뒤에 있는 좀비들을 꿰뚫으며 옥상 철문까지 밀어붙였다.
입구에서 들어오는 좀비들을 저지한 상태로, 다급히 무전을 보냈다.
“찬혁이 형! 제 말 들려요?”
치지직- 치직-
-얘기해!
“방금 폭음 뭐예요? 벌써 뚫렸어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
생존자들이 불안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일행을 믿어야 한다.
그들이 나를 믿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믿어야 싸움에 집중할 수 있다.
이에 오른손에 쥐고 있는 카타나를 뽑으며 얘기했다.
“2차 방어선으로 이동하거나 변종 에덤 나타나면 얘기해요!”
-우리 걱정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
무전을 마치고, 계단에 들어찬 좀비들을 일도양단 내며 1층을 살폈다.
바글바글한 좀비들 속으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알파1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