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40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40화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동공의 테두리를 따라 검은 장막이 펼쳐지는 기분.
한계 돌파가 6단계에 다다르며 광폭화를 사용한 상태에서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좀비화가 풀리면서 발생하는 리바운드 증상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두 주먹에 힘을 주었지만, 양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금 힘을 주려는 찰나,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리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전완수는 기절한 박재형을 등에 업고 황급히 버스로 이동했다.
버스 바닥에 박재형을 눕히고, 손목 맥을 짚었다.
다행히 심장은 뛰고 있었다.
과하게 몸을 써서 기절한 것으로 보였다.
전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쉬어라.”
그 길로 곧장 1차 바리케이드로 달려갔다.
크어어어어어!!
박재형의 빈자리는 3분도 되지 않아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십 만의 좀비 떼가 다시금 1차 바리케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전완수가 돌아오자, 이정우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재형이 상태는 어때!”
“잠깐 기절한 것 같아요! 금방 일어날 것 같습니다!”
“다친 부위는 없었어?”
“재생은 안 쓴 것 같아요! 다친 부위가 없으니 금방 깨어날 겁니다!”
결인들은 박재형의 기절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박재형이 정신을 잃을 때면 세 가지 경우가 있었다.
과격하게 몸을 써서 피로누적이거나, 패시브 스킬 재생을 남발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광란을 사용했거나.
지금은 재생을 남발하지도 않았고 광란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피로 누적.
피로 누적으로 기절한 경우는 짧은 단잠을 청한 뒤에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피곤할 때 낮잠을 자는 것처럼 말이다.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앞으로 2시간은 버틴다고 생각해야 돼! 알지?”
“넵!”
아무리 짧은 단잠이라도 2시간은 절대 깨어나지 않는다.
전완수는 바닥에 놓인 철근을 손에 쥐고 1차 바리케이드에 매달리는 좀비들의 안면을 꿰뚫었다.
크어어어어어!!
카하아악!!!
좀비들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자,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우는 생존자들을 향해 외쳤다.
“슬슬 휘발유 준비해!”
물자 보급팀은 일사불란하게 바리케이드 하단으로 내려가 준비한 휘발유를 들고 왔다.
뒤이어 좀비들의 머리 위로 휘발유를 쏟아부었다.
미끈거리는 휘발유로 인해 좀비들은 허우적거리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이정우는 들고 있는 횃불을 내려놓고 모든 생존자에게 외쳤다.
“좀비들이 4m까지 올라오면 불붙일 겁니다! 그때까지 철근으로 찔러요!”
이제 휘발유도 아껴야 하기에, 함부로 화공을 시도할 수 없었다.
가장 보편적이면서 확실한 피해를 주는 화공.
대공습을 대비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휘발유를 모았지만, 좀비들의 숫자가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볼트 더 가져와요!”
좌측에 있던 송하윤이 소리치자, 생존자들은 황급히 보급품을 챙기러 이동했다.
이들은 박재형이 벌어준 40분이란 시간을 알차게 사용했다.
부족한 물자를 옮기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생존자들과 플레이어들은 싸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들의 행동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 * *
‘여긴…….’
흘러가는 강물에 누워 은하수가 쏟아지는 너른 우주를 바라보는 듯한 부유감.
이젠 익숙해진 장소.
난 두 눈을 껌벅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에스파디아의 공간이다.
“에스파디아……?”
슈악-!
그의 이름을 부르자, 하나의 점으로 보이던 빛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눈부신 섬광으로 인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그 속에서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이름을 부르는구나.”
“……슬슬 친근해서 그렇죠.”
“…….”
“이번에도 제가 찾아온 겁니까?”
농담조로 묻자, 눈부신 섬광 속에서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번엔 내가 불렀다.”
“그럴 것 같았어요.”
“알고 있었다고?”
“광란 안 썼거든요. 물론 광란을 써도 이제 이성을 유지할 수 있고요. 이제 당신이 부르지 않으면 여기 올 일은 없는 겁니다. 맞죠?”
섬광은 한 차례 번쩍이더니,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지만, 섬광 속의 에스파디아가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쓸데없는 농담은 치워두고, 난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바쁜 사람 왜 불렀어요?”
“점점 거만해지는 것 같구나.”
“거만한 게 아니라 진짜 바쁘다고요. 대공습 중에 이렇게 수다 떨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덤덤하게 얘기하자, 섬광 속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마.”
“말씀하세요.”
“네게 광란을 준 것은 너를 지키기 위함이자, 나의 모험심이었다. 그리고 넌…… 주어진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어.”
모험심?
무슨 말인지 몰라도, 훌륭하게 해냈다는 건…… 내가 광란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동안 수고했다는 차원에서 하는 말인가?
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칭찬하려고 부르신 겁니까? 이제 불안정한 수준은 벗어났다고?”
“아니, 네게 충고해 줄 것이 있어서 불렀다.”
“충고면…… 혹시 한계 돌파 7단계 이후에 발생하는 해금과 관련된 거예요?”
“그런 단순한 게 아니야. 네 신체 능력이 향상되는 건 온전히 네 노력의 결과다. 내가 걱정하는 건 광란일 뿐이야.”
“…….”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광란이 걱정된다니?
고개를 갸웃거리자, 눈부신 섬광이 한 차례 점멸하며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금을 완료하기 전에, 광란의 사용 횟수가 10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어차피 사용할 생각도 없어요.”
“아니, 넌 사용하게 될 거야. 그러니 명심하거라. 해금을 완료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10번을 채우지 마.”
광란을 사용한다는 건 그만큼 강한 적이 존재한다는 뜻.
이는 대공습이 끝나도 클리어가 안 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는 건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에스파디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껏 네가 관철해 온 의지는 나 또한 높이 산다. 실망시키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네게 정이 가는구나.”
“…….”
“하지만 그 의지로 인해, 넌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거라.”
바람직한 인간을 살리겠다는 의지.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에스파디아의 말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광란을 사용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광란을 10번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충고였다.
그럼 해금한 뒤에는 10번 이상 써도 되는 건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섬광이 옅어지며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심하거라.”
“알겠어요. 해금하기 전에 광란 10번 사용 금지. 이제 저도 궁금한 것 물어봐도 돼요?”
“얘기하거라.”
“벽화에 그려진 그림도 그렇고, 계속 저한테 하는 말도 그렇고, 혹시 지구에 외계 생명체의 공습이라도 발생하는 겁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 섬광의 테두리만 은은하게 일렁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을 기다리자, 섬광 속에서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모르는 어딘가에, 생명체가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다.”
“…….”
“인간은 이 세상 어딘가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열어두면서, 정작 믿지 않더구나.”
“생명체라면…….”
“그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도사리고 있는데 말이지.”
설마 하는 마음에, 난 섬광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그…… 당신이 말하는 적이 지구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겁니까? 좀비를 이용해서 그 적과 싸우려는 거예요? 인간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서?”
에스파디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눈앞의 섬광이 한차례 점멸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야 에스파디아가 입이 닳도록 얘기한 균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미지의 적이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한 이유도 알겠다.
좀비, 변종, 인간, 누가 승리하든, 미지의 적과 싸우는 건 변함이 없다는 말이었다.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나와 함께 했던 동료들은 이미 내 곁을 떠났고, 홀로 남은 내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지.”
“…….”
“내가 자연의 순리에 개입한 것도, 내 목숨이 아닌 내가 창조한 세계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
“인간의 기억 속엔 크나큰 상처로 남을지 몰라도, 이것이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체를 보존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지구가 파괴되면…… 당신도 사라지는 거예요?”
“무형의 존재가 존재 의미를 잃었다는 건, 완전한 무(無)로 돌아가는 걸 뜻하지.”
에스파디아의 뜻을 온전히 파악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당신이 만든 각각의 에피소드. 그게 추후 발생할 위협에 대한 사전 연습입니까?”
“사전 연습이자, 내 작은 기대감이었다.”
“기대라면…….”
“내가 얘기했을 텐데? 네게 모험을 걸었다고.”
“…….”
에스파디아는 좀비, 변종, 인간, 모두가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지만, 내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다.
좀비화라는 스킬과 광란이라는 변수를 말이다.
광란은 인류를 위한 최후의 방파제가 될 수도 있고, 종의 멸종을 야기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는 스킬이었다.
그러니 에스파디아가 얘기하는 모험심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인류의 보존을 걸고, 내게 모험을 건 것이다.
내가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 남을지, 광기에 빠진 변종으로 변이될지, 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훌륭하게 해냈다고 했으니, 본인의 모험심이 뜻대로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좀비가 이기든 변종이 이기든, 혹은 인간이 이기든 관심 없다더니…… 내심 인간의 편에서 응원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알겠느냐?”
“의도는…… 알 것 같네요.”
“좀비와 변종이 있다면 미래에 발생할 전쟁에서 수월하게 싸울 수 있겠지. 하지만 승패를 확정 지을 정도는 아니야.”
“…….”
“또한 승리를 거머쥐더라도, 전쟁이 끝난 뒤의 세상은…….”
“폐허뿐이겠죠.”
뒤이어 눈부신 섬광이 은은한 빛을 발하더니, 그곳에서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너의 길을 응원한다.”
“당신, 결국 인간의 편에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놈들이 내 존재를 알아챘어.”
“놈들이라면 미지의 적을 말하는 겁니까?”
“부디 내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에피소드를 완료하고 해금을 완료하거라.”
눈부신 섬광이 점멸하더니, 한순간에 내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하지만 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새하얀 빛이 전신을 감싸며 부유감이 사라졌다.
* * *
“헉!”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로 느껴지는 차가운 버스 바닥의 냉기.
지끈거리는 두통으로 인해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두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오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주변을 살폈다.
치지직- 치직-
레그홀스터에 넣어둔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우야! 광안대교 방면 함락! 함락!! 2차 바리케이드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2차 바리케이드로 이동하겠습니다!
치지직- 치직-
-여기는 이덕배! 둘 다 퇴각이면 우리도 빠져?
-당연하죠! 덕배 아저씨는 2차 바리케이드로 곧장 이동하시면 됩니다! 찬혁 형님은 생존자들 2차 바리케이드로 보내고 북쪽 능선 맡아주세요!
-알았다! 너희가 남쪽 담당하는 거로 알고 있을게!
대체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작금의 상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1차 바리케이드가 함락됐다는 건 알겠다.
타다닥- 탁!
뒤이어 버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전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어났냐!”
“어? 어어.”
“더 자! 아직 괜찮으니까!”
괜찮은 거 맞아?
크어어어어어어!!!
뒤이어 고막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울음소리에 몽롱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지.”
-1분 30초 동안 25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감지를 사용하자, 이곳으로 접근하는 좀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1차 바리케이드의 곳곳이 무너진 상태였고, 방파제를 뚫고 넘어오는 거친 해일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