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6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6화
랜선을 쥐고 있는 손에 악력을 더했다.
죽이는 것과 생포하는 건 수준이 다른 문제였다.
한 놈을 생포하기 위해 장정 셋이 달라붙었다.
정진영과 전완수는 재빨리 좀비의 양팔을 잘라버리고, 뒤에 있던 설여원은 좀비의 입에 쇠파이프를 물렸다.
가방 속에 쇠파이프를 들고 다니는 설여원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설여원의 선택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기다란 랜선을 이용해 좀비의 입에 물린 쇠파이프를 목과 엮어서 서로 풀리지 않도록 고정했다.
그래도 줄이 남기에, 다리까지 묶어버렸다.
그사이 설여원은 학생회관으로 달려가 뒷문을 열어둔 상태였다.
랜선을 이용해 동그랗게 말아버린 좀비를 5층까지 끌고 올라갔다.
정진영과 힘을 합쳤지만, 묵직한 좀비를 5층까지 끌고 가려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비좁은 원형 계단이라 그런지, 열기도 빠지지 않고 산소도 부족한 기분이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간신히 5층에 도착하자, 앞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전완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서 돕던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결 맞은편에 있는 춤사랑 동아리방에 좀비를 밀어 넣었다.
방문을 닫자마자 옆구리에 손을 얹으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전완수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야, 재형이 힘 좋네.”
“죽을래?”
진지하게 딱 한 대만 때릴까?
옆에 있는 정진영을 쳐다보자, 그는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헉헉거리고 있었다.
설여원은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정진영과 내게 건네주었다.
전완수가 본인도 달라고 하자, 설여원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500ml 생수로 전완수의 머리를 툭, 하고 때렸다.
“아, 왜 때려?”
“위험한 상황에 또 장난치면 혼난다?”
설여원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목소리에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전완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설여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발 앞서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졌다.
전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뚱한 표정을 짓더니, 구시렁거리며 동아리방으로 들어섰다.
그래, 장난은 이쯤하고 무사히 도착했다고 얘기부터 해야지.
난 바닥에 누워 있는 정진영을 일으켜 세운 뒤, 함께 동아리방으로 들어갔다.
“저희 왔습…….”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동아리방의 책상 앞으로 네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정우와 최현, 윤혜리, 이렇게 세 명이 있어야 정상인데…… 저 이름 모를 뒤통수는 누구란 말인가.
다들 같은 생각인지, 앞서 들어간 설여원과 전완수도 낯선 존재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다들 어서 와. 고생 많았다.”
“누구예요.”
전완수가 경계하며 묻자, 뒤통수만 보이던 이름 모를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꾀죄죄한 외형과 퀭한 얼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여자가 단팥빵을 먹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난 여자의 얼굴을 보고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맞나?
눈에 생기가 없다.
사람을 봤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여자는 단팥빵을 먹으며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살도 어찌나 말랐는지,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다.
이정우는 곤란한 마음에 눈썹을 긁적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일단 앉아. 앉아서 얘기하자.”
“저 여자 혼자 왔어요?”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나 나눌 때가 아니다.
내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이정우는 앉는 걸 포기하고 대답했다.
“혼자 왔더라.”
“저 여자 언제 왔어요?”
“아직 10분도 안 됐어.”
“들고 온 무기는요. 신체검사 했어요?”
내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번엔 이정우의 옆에 있던 윤혜리가 입을 열었다.
“오빠, 얘 제가 아는 애예요. 너무 뭐라 하지 말아요.”
“네가 어떻게 아는데.”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윤혜리는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대학교 1학년의 윤혜리.
대학 내 인맥이 얕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윤혜리가 알아봐야 같은 과 동기 정도가 아닌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혜리 너, 쟤랑 같은 과야?”
윤혜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윤혜리의 과는 사회복지학과.
사과대에서 온 여자다.
* * *
난 동아리방을 박차고 나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의 철문을 열어젖히고 사과대 건물을 응시했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은 시간에 육안으로 사과대 건물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력이 끊긴 세상은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꼬리가 붙었는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시금 동아리방으로 돌아와 단팥빵을 먹고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
“말해. 누구랑 같이 왔어.”
두 눈을 부라리며 물었지만, 여자는 퀭한 눈으로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자의 덤덤한 표정이 더욱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를 무시하는 건가?’
이에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기에 생존자가 있다는 걸 알고 온 거야? 사과대에 있는 놈들도 여기 사람 있다는 거 알아?”
“…….”
“입이 있으면 먹지만 말고 말을 하라고!”
언성을 높이자, 맞은편에 있던 이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야, 목소리 안 낮춰? 밖에 좀비들 들으면 어쩌려고.”
“형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대낮에 온 것도 아니고, 해 떨어진 뒤에 무기도 없이 어떻게 혼자 여기까지 와요.”
“…….”
“그것도 이렇게 비쩍 마른 여자 혼자? 이 여자 거의 한 달간 아무것도 못 먹은 거라고요.”
“야, 당사자 앞에 두고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사과대에서 오려면 농구코트 지나야 하는 거 몰라요? 농구코트 상황은 누구보다 형이 더 잘 알잖아요!”
주변에 있던 일행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보다 못한 정진영이 헛기침을 하며 중재에 들어갔다.
“둘 다 진정해. 정우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우린 밖에 있다가 와서 예민해진 상태라 그래.”
“저 지금 지극히 정상입니다. 제가 틀린 말이라도…….”
정진영을 쳐다보며 반박하자, 그는 내 귓가에 얼굴을 들이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야, 적당히 해. 다른 애들 표정 안 보여?”
“…….”
“자초지종은 들어봐야지.”
정진영의 낮게 깔린 음성에 흥분했던 마음이 일순간 소각되었다.
뒤늦게 일행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불안한 눈빛으로 이정우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흥분했다.
이마를 짚으며 시선을 회피하자, 정진영도 한풀 꺾인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정우가 너보다 형인데 그러는 건 아니지 인마.”
“…….”
머리가 지끈거린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을 어떻게 달래야 좋을지 모르겠다.
묵비권을 행사하며 식량만 축내는 저 여자를 어떻게 믿어?
무슨 말이든 하면 몰라.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분을 삭이자, 정진영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내가 정우랑 얘기할 테니까, 너는 좀 쉬어.”
고조되었던 분위기를 정진영이 가라앉혔다.
난 한 차례 심호흡을 통해 격해진 감정을 진정시키고,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저 여자 내일 아침까지 입 안 열면, 여기 두는 거 찬성할 수 없습니다.”
여자를 노려보자, 여전히 퀭한 눈으로 내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한다.
귀신이야 뭐야.
당장 사형선고를 내린 것과 같은데, 어떻게 저리 태연하지?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며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문 앞에 있던 설여원이 내 팔을 잡으며 물었다.
“어디가.”
“헬스장.”
나도 선 넘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걸 어떡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화부터 가라앉히고, 맑은 정신으로 다시 생각하고 싶었다.
* * *
“후우…….”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1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더니 한층 맑아진 정신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지금 동아리방에 있는 여자가 윤혜리와 같은 과라고 해서 꼭 사과대에서 왔을 가능성은 없다.
사과대에 살인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건지도 모른다.
그녀를 받아줘야 하는 건가?
받아주는 것도 사람 봐가면서 받아야지.
말도 안 하는 여자를 어떻게 믿고 등을 맡기겠는가?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는 건…… 본인이 사과대에서 왔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찔리는 게 있으니 입을 다물지.
합당한 근거와 이유를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정쩡하게 대처하고 싶지 않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천천히 이마를 문질렀다.
“다 끝났어?”
헬스장 입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정면을 바라보자, 설여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난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며 대답했다.
“끝이 어디 있어. 그냥 하는 거지.”
“너도 참 특이해. 난 운동하는 거 진짜 싫은데.”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그러냐.”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설여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살려고 하는 거지. 탓하기 싫어서 하는 거고.”
“무슨 탓.”
“짐처럼 여겨지고 싶지 않아서?”
체력적인 한계.
남녀의 신체 능력이야 태생적인 것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설여원은 스스로 이겨내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왜, 사람들이 네 탓 하는 거 듣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잘나야 남한테 뭐라 하지.”
“…….”
“내가 이 정도 하는데 넌 그것도 못 하냐? 이렇게 얘기하려면 내가 힘을 키워야지.”
주변 사람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본인이 강해져야 한다는 발상.
설여원다운 생각이다.
지금까지 설여원의 행동을 생각하면…… 단 한 번도 남 탓을 하거나 투정 부린 적이 없었다.
묵묵히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남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설여원은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물었다.
“재형아.”
“왜.”
설여원은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우리끼리 도망칠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솔직히 네 동아리 사람들…… 너무 물러.”
쾌활할 때는 말괄량이처럼 혼자 잘 놀더니, 진지할 때는 엄격하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양반다리를 하고 있던 설여원은 한쪽 팔로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도리나 법규가 있는 세상도 아니고, 당장에 생존이 문제잖아.”
“그렇지.”
“여자보다 남자가 살아남기 유리한 세상이고.”
“……그것도 그렇지.”
“나보다 약한 남자는 싫거든. 네 동아리 사람 중에 똑 부러지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허, 그럼 난 똑 부러지냐?”
슬쩍 거리를 두며 묻자, 설여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뭐야, 무슨 의미야 저건.
잠시나마 침묵이 내려앉았다.
설여원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자, 그녀는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동아리방에 있는 여자, 윤혜리의 동기라서 쉽게 들어왔겠지?”
“아마 윤혜리가 바리케이드를 치워줬을 거야. 우리한테 그랬던 것처럼. 정우 형은 얼떨결에 모르는 여자를 받은 거고.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에 우리가 들어와서 당황했겠지.”
“그걸 아는 사람이 정우 오빠한테 뭐라 한 거야?”
“아까는 거기까지 생각 못 했어. 러닝머신 뛰면서 생각 정리한 거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설여원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생각한 결과가 뭐야?”
“인정할 건 인정하고, 양보할 수 없는 건 양보하지 말자.”
“인정할 건 뭐고, 양보할 수 없는 건 뭔데?”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한 건 잘못이고, 저 위에 있는 여자를 이대로 두는 건 인정할 수 없다는 거?”
설여원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다툼이 생기더라도 그걸 해결하고 나아가는 단체는 더 발전하는 거고, 해결 못 하는 단체는 무너지는 거야.”
“…….”
“이번 상황이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설여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까는 동아리 사람들이 무르다고, 나더러 둘이서 도망치자고 그러더니?
설마 나를 떠본 건가?
내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이 팀의 수명을 파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불화가 오래가는 팀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조율이 가능한 팀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동행인지 파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설여원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섬세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당했다는 생각에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설여원의 말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