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76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22화
일격 효과가 유지되는 동안 주변을 둘러싼 모든 좀비를 찢어발기며 피의 축제를 열었다.
60초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2,000마리의 좀비와 70마리의 변종을 처리했다.
한 가지 알아낸 게 있다면, 매번 음속으로 달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음속의 기준은 1초에 340m.
좀비화, 광폭화, 급가속, 거기에 성물 효과까지 중첩되어야 음속을 넘을 수 있었다.
성물 효과를 받지 못하면 음속에 살짝 못 미치는 속도였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두 다리로 달려서 음속을 돌파한 건…… 지구 역사상 내가 최초일 것이다.
* * *
수색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뒤이어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재형이 혼자 다른 게임 하는 거 맞지?”
다소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
다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설여원은 박재형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할 때라고.
박재형을 넘어서진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박재형의 발치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박재형을 쫓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눈으로 좇기도 힘든데 어떻게 비벼.’
이러한 생각이 들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박재형과 싸워본 적은 없지만, 완패를 인정하는 기분.
체념이었다.
“서쪽 방향은 재형이한테 맡기고, 우린 북쪽으로 이동할까?”
전완수가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팔짱을 끼고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산곡2교 방면에서 무전 들어온 건 없지?”
“없어.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어?”
“여원아, 너 독 안개 제거기 복구 완료됐어?”
최현이 묻자, 설여원은 스킬 목록을 살피며 대답했다.
“완료됐어. 지금 가동할까?”
“아니야. 아까처럼 안개 제거기 노리는 베타 변종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완수 거 파괴되면 그때 가동해.”
독 안개 제거기가 일제히 공격받으면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나기에, 하나씩 돌아가면서 사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다들 최현의 의견의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진영은 멀어지는 박재형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재형이는…… 우리 도움 필요 없겠네.”
정진영의 목소리에 지금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한순간에 급이 달라진 후배의 모습에, 조금은 씁쓸한 마음을 느낀 모양이다.
정진영의 말에 전완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고, 최현은 대답 대신 입맛을 다셨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설여원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여원은 일행의 표정을 살피더니, 박수를 치며 얘기했다.
“자자! 다들 표정 왜 그래요? 누구 죽었어?”
“…….”
“우리가 할 일은 따로 있잖아.”
설여원은 전완수와 최현의 팔뚝을 잡고 북쪽으로 끌고 갔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힘차게 나아가자, 전완수와 최현은 못 이기는 척 끌려갔다.
홀로 남은 정진영도 한숨을 내쉬며 설여원을 따라나섰다.
설여원의 말이 맞다.
박재형이 아무리 강해도, 홀로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박재형이 나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지칠 때 도와주면 된다.
그게 결인들의 역할이었고, 그거면 족하다.
‘내가 게임 속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지.’
이러한 생각을 하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주인공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
지금의 잔혹한 게임을 하루빨리 끝내는 게 중요할 뿐이다.
정진영은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상황에 집중했다.
* * *
급가속이 유지되는 동안 쉴 새 없이 좀비와 변종을 처리하며 서쪽으로 이동했다.
설여원의 말대로 무수히 많은 아파트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앞에도 아파트 뒤에도 아파트 옆에도 아파트.
하남에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쯔득-!
그 순간,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저항력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사방에 끈끈한 액체가 흩뿌려져 있었다.
지금이라면 힘으로 뜯어낼 수 있지만, 밑창이 끈적하면 추후 움직임에 제약이 걸린다.
이에 인벤토리를 열고 생수를 뿌린 뒤, 액체가 흘러온 방향을 살폈다.
우측 대각선 방면의 아파트 단지에서 감염된 식물의 액체가 질퍽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자, 아파트 입구에 뭉쳐 있는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끈끈한 액체 때문에 한데 뒤엉켜 있는 수백 마리의 좀비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놈들이었다.
목젖을 갈며 꿈틀거리는 모습이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무시하고 지나쳐도 괜찮을까?
그래, 어차피 액체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굳이 나서서 처리할 필요는 없다.
이에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귓가를 간질이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뿌드드득-
다시금 좀비들이 뭉쳐 있는 곳을 쳐다보자, 좀비들을 감싸는 덩굴식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덩굴은 좀비들을 으스러뜨리며 어딘가로 끌고 가는 모습을 보였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눈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상황을 알아야 추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지금 살수차 가져올 수 있는 사람 있어?”
치지직- 치직-
-너 어딘데?
설여원의 물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30m 뒤에 하남소방서가 존재했다.
좀비들을 처리하느라 소방서를 지나친 것도 몰랐다.
“아니야, 찾았어.”
-뭘 찾아.
“소방서.”
무전을 마치고 황급히 소방서로 향했다.
다행히 살수차가 있었다.
“차 키, 차 키…… 있다.”
긴급출동을 대비하기 위해 항상 차 키를 꼽아둔다더니, 정말 꽂혀 있었다.
부우웅-
곧장 시동을 걸고, 끈끈한 액체가 뿌려진 지역으로 이동했다.
간만에 핸들을 잡아서 그런지 어색하기도 하고, 차량이 커서 불편하기도 했다.
카하학!! 하아악!!
대로에 진입하자, 차량으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좀비들이 쌓이며 차가 미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부우웅-!! 부아아앙!!
엔진 소리는 거칠게 들리는데, 도저히 좀비들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에이 씨, 귀찮게……!”
차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6차선 도로를 질주하며 이곳으로 달려오는 존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좀비들을 쓸어버리며 달려오는 수색대였다.
수비팀을 도와주러 간 줄 알았는데, 무전을 듣고 이곳으로 달려온 모양이다.
소방서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저기! 저기 보인다! 이야, 여원이 기억력 정확하네!”
뒤이어 정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여원이 소방서의 위치를 아는 모양이다.
부우웅-!
일행이 도착하자, 살수차 주변을 둘러싼 좀비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차량이 움직인다.
“기사님! 어디까지 가십니까?”
밖에서 들리는 전완수의 목소리.
이런 상황에도 장난이라니.
이에 손가락으로 이동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따라와! 살수차보다 앞서가지 말고!”
“오케이!”
좀비들의 시체를 짓밟으며 문제의 아파트로 향했다.
전완수는 달리는 차량에 올라타더니, 그대로 호스를 꺼내서 눈앞의 끈끈한 액체를 향해 살수하기 시작했다.
지면에 흩뿌려져 있던 액체가 쓸려 나가고, 설여원과 최현, 정진영은 달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하며 살수차를 뒤따랐다.
곧 아파트 단지 입구가 나타나자, 전완수는 차량을 텅텅! 치며 물었다.
“저거 뭐야? 존나 징그러워!”
“감염된 식물이 좀비들을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어!”
“어디로?”
“나도 몰라서 가보는 거야!”
전완수는 정문에 뭉쳐 있는 좀비들을 향해 물을 뿌렸다.
그러자 산처럼 쌓여 있던 좀비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과 최현, 정진영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앞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좀비들을 보고 놀란 모양이다.
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전완수에게 소리쳤다.
“미리 얘기를 해줘야 할 것 아냐! 깜빡이는 폼이냐!”
“깜빡!”
“하, 진짜 죽일까.”
최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차자, 정진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진정해, 완수잖아.”
“하…….”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전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그게 무슨 의미예요?”
“아니야! 잘했어 완수야!”
정진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들자, 전완수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칠 시간에 좀 도와!”
설여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치자, 그제야 수색대는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들 경험이 쌓이면서 지나치게 여유로워졌다,
예전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던 여유가, 지금은 전투 중에도 불쑥불쑥 나타났다.
전완수는 투덜거리면서도 바닥에 쏟아진 좀비들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도 차량에서 내려 좀비들부터 정리한 뒤, 액체가 이어진 길목을 살폈다.
우측 담벼락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아, 좀비들을 단지 뒤편으로 끌고 간 모양이다.
“다들 입구 막아줘, 완수랑 나는 아파트 뒤로 이동하자.”
“알았어.”
설여원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독 안개 제거기를 가동했다.
설여원과 최현, 정진영이 정문을 틀어막는 걸 확인한 뒤, 살수차의 핸들을 쥐며 전완수를 불렀다.
“완수야! 위에서 계속 물 쏴!”
“오케이!”
상향등을 켜고, 쏟아진 시체들을 짓밟으며 나아갔다.
전완수는 차량이 나아가는 길을 향해 물대포를 쏘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수압이 강하다 보니, 20m 앞의 액체도 미리 씻어낼 수 있었다.
깨끗하게 지워지는 길을 따라 핸들을 돌리고, 액셀을 밟았다.
곧 아파트 단지 뒤편에 다다르자, 하나의 벽처럼 보이는 덩굴 식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략 11층 높이까지 뻗어 나간 덩굴 식물을 보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선제공격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완수야! 저기다 물…….”
쏴아아아아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완수는 물대포를 발사했다.
쉴 새 없이 물대포를 쏘자, 덩굴 식물은 짓밟힌 지렁이처럼 발악하기 시작했다.
굵직한 덩굴이 무차별적으로 채찍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오우 씨!”
전완수는 천장에 납작 엎드리며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더니,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계속해서 물대포를 발사했다.
그러자 감염된 식물은 물에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11층 높이까지 뻗어 나갔던 덩굴이 쓰러지자, 그 속에 감추고 있던 거대한 알집이 나타났다.
잠깐, 알집?
식물이 왜 알집을 숨기는 거지?
황급히 차량에서 내리며 전완수에게 외쳤다.
“그만! 그만 쏴!”
전완수가 호스를 잠그자, 흐느적거리던 덩굴들이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이에 카타나를 뽑아 들고 꿈틀거리는 덩굴을 쳐내며 알집으로 달려갔다.
작게는 4m부터 크게는 8m까지, 다양한 알집이 존재했다.
그 숫자가 20개에 달했다.
알집의 표면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조심스레 손바닥으로 갖다 대자, 그 속에서 심박이 느껴졌다.
살아 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3단계 변종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건가?
알파1이 알파2로 진화할 때는 동족을 섭취해서 영양분을 얻는다.
2단계 변종이 3단계로 진화할 때는…… 동족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스스로 알을 뚫고 나올 만큼 성장할 수 없기에, 감염된 식물이 변종의 진화를 돕고 있었다.
굵직한 줄기가 알집에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게 탯줄의 역할인가?
줄기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덩굴이 감긴 아파트 외벽으로 무더기의 좀비들이 매달려 있었다.
미라처럼 전신이 비쩍 마른 좀비 시체였다.
감염된 식물이 좀비에게서 영양분을 뽑아 변종에게 공급하는 모양이다.
베타3의 혓바닥 끝에 있던 산성 물질도 그렇고, 감마3의 폭발력도 그렇고, 전부 식물과 좀비의 합작이었다.
이건 뭐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부화장도 아니고…….
이런 설정을 만든 에스파디아가 원망스러웠다.
이건…… 인간에게 너무 가혹한 환경이었다.
“적당히 하란 말이야…… 에스파디아 미친놈아.”
욕설을 읊조리며 눈앞의 알집을 향해 카타나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