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0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30화
김희연을 데려간다는 말에 윤혜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왜, 왜요? 희연이는 왜 데려가요?”
“여기서 사과대 수업 들어본 사람 있어?”
태연하게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과대에서 학생회관까지 이동하는 길은 김희연 씨가 제일 잘 알고, 사과대의 현 상황도 김희연 씨가 제일 잘 알아.”
“저도 사과대 학생이에요. 제가 대신 갈게요.”
“넌 안 돼.”
“왜요? 제가 못 미더워요?”
“어.”
단호하게 대답하자, 윤혜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내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다.
사실 본심은 따로 있었다.
윤혜리가 아무리 물러도 일단은 우리 일행이다.
윤혜리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
아마 윤혜리를 구하기 위해 몸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김희연은?
생판 남에 가깝고, 답답하게 굴면 거리낌 없이 버려도 상관없다.
퀘스트가 실패로 돌아가면 페널티가 주어지겠지만, 윤혜리를 잃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페널티가…… 일주일간 능력상실이었나?’
어차피 실패할 퀘스트라면, 윤혜리보다 김희연을 잃는 게 심적으로 편하다.
사과대로 가는 사람을 전완수와 설여원으로 선정한 이유도 따로 있었다.
전완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어떠한 사건을 받아들이는 데에 덤덤한 면이 있었다.
살인을 저지르게 됐을 때, 다른 사람에 비해 감정의 기복이 적을 것이다.
또한 차량 개조라는 주어진 일이 있기에, 감정의 기복이 생기더라도 집중할 일이 있어서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설여원은 감성보다 이성을 중시하고, 어떠한 상황이든 감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 한계점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일행 중 가장 정신력이 강하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끝내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이성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오만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1년 넘게 봐온 사람들이기에, 개개인의 특징을 감안해서 내가 선정한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어떻게 면전에서 밝히겠는가?
막무가내로 들릴 수 있지만, 이번만큼은 내 의견에 따라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우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느꼈을 것이다.
내가 선정한 사람들의 성향을, 그리고 윤혜리가 아닌 김희연을 데려가는 이유를.
* * *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뒷문의 창살 앞으로 모였다.
전완수와 설여원은 상황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김희연은 불안증세를 보였다.
손톱을 깨물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난 김희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
김희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인 채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플레이어도 아니고, 평범한 생존자니까.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에 길잡이 역할로 되돌아가는 처지니까.
심지어 김희연에게는 아무런 무기도 주지 않았다.
이정우는 쇠파이프라도 주라고 했지만, 내가 반대했다.
아직 김희연을 신뢰할 수 없다.
뒤에서 우리의 뒤통수를 가격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게임이라면 거리낌 없이 진행하겠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김희연은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이는 NPC가 아니란 말이다.
등나무길에 사과대 놈들이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황에 따라 퀘스트가 변동되어 연계 퀘스트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내가 지나치게 의심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방심하다가 골로 갈 바에 의심병에 걸리는 게 마음 편하다.
김희연은 몇 차례 심호흡을 반복하더니,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얘기했다.
“그럼…… 따라오세요.”
태양이 중천에 떠오른 시각, 우린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김희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도서관 맞은편의 숲으로 들어섰다.
은행나무가 우거진 곳.
인적이 드문 길이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장소였다.
우측을 돌아보자, 일전에 경영학과 건물로 이동하며 봤던 (신)학생회관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저곳으로 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이미 좀비들의 유무도 확인했으니 말이다.
난 김희연의 뒤에 바짝 붙으며 물었다.
“이쪽에 길이 있습니까?”
“없죠.”
“……예?”
“길이 없어서 안전한 거예요. 숲을 벗어나면 곧장 등나무길이 나오고, 등나무길을 따라가면 경상대가 나와요. 경상대 옆에 인문대랑 사과대 건물이 있고요.”
엄청 돌아가는 길이다.
뒤따라오는 설여원과 전완수를 쳐다보자, 둘 다 어깨를 으쓱이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 속에서, 그것도 숲을 가로지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희연은 이 길이 익숙한지,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고작 1학년의 김희연은 어떻게 이 길을 아는 걸까.
심지어 가브리엘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의구심에 김희연의 뒤에 붙으며 물었다.
“예전에도 이 길을 자주 이용했습니까?”
“아니요.”
“그럼 무슨 기준으로 길을 알아보는 겁니까?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요?”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전부 안개에 가려져 방향감을 상실하기 일쑤였다.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전완수와 설여원도 갈피를 못 잡는 모습.
김희연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자주 온 건 아니지만…… 어머니랑 같이 은행 주우러 종종 왔어요.”
김희연도 이 동네 출신인 모양이다.
학교에 은행나무가 많다 보니, 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주우러 오는 아주머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김희연을 따라 7분 정도 걸었을까?
끝이 보이지 않던 숲이 끊기고, 그 앞으로 등나무길이 나타났다.
등나무길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이래서 토박이라는 말이 생긴 건가?
김희연은 등나무길을 지그시 응시하더니, 내게 손짓하며 얘기했다.
“저쪽에, 좀비 같아요.”
“어디요.”
“저 끝에.”
뭐가 보인다는 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김희연이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하더니,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2마리 있어.”
난 김희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라스트아크 알아요?”
“네? 라스트…… 어떤 거요?”
플레이어는 아닌 것 같은데, 저게 어떻게 보이는 거지?
“시력이 몇이에요.”
“아, 저 2.0이요. 눈이 좀 좋아요.”
좀 좋은 정도가 아닌데?
몽골 사람도 아니고 한국에서 시력이 2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니.
설여원도 신기한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40m는 떨어진 거리 같은데, 맨눈으로 저게 보여?”
“아, 네…… 흐릿하게 보여요.”
“움직이는 망원경이네.”
설여원은 콧방귀를 뀌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난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주변에 다른 좀비는 더 없어?”
“모르겠어. 등나무길에 2마리는 확실한데, 그 옆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
“저 앞에 좀비가 숨을 만한 장소가 있나?”
“등나무길 옆으로 연못이랑 분수대 하나 있지 않아?”
난 바닥을 둘러보며 손바닥 크기의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 좀비가 있는 방향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
딱! 따라라라…….
카하악- 하악!
카아아아악!
돌멩이가 떨어지자, 전방 40m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설여원은 정면을 응시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세 마리. 한 마리가 누워 있었네.”
“뚫고 가자.”
뚫자는 말에 전완수는 카타나를 뽑으며 달려나갔다.
설여원이 우측을 담당하고, 내가 좌측에 서서 전와수의 뒤를 따랐다.
곁눈질로 뒤를 살피자, 김희연은 잔뜩 움츠러든 모습으로 우리의 뒤를 따랐다.
좀비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행동에 거리낌은 보이지 않았다.
정신만 지금처럼 온전하면 꽤 쓸 만한 동료가 될 것 같은데.
앞서간 전완수는 순식간에 좀비 둘을 처리하고, 설여원은 우측에서 달려드는 좀비를 처리했다.
딱- 딱- 딱-
머리가 잘려나간 좀비가 치아를 부딪치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난 머리만 남은 좀비의 안구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으며 전완수에게 얘기했다.
“급한 상황 아니면 확실하게 뇌를 공격해. 목을 베거나 심장을 찌르면 20초 정도 숨이 붙어 있다고 얘기했잖아.”
“머리만 남은 놈이 뭘 어쩌겠어.”
“발목도 생각해야지.”
팔뚝과 종아리는 책으로 방어한다 쳐도, 발목은 방도가 없었다.
쓰러진 좀비들이 확실하게 죽었는지 재차 확인한 뒤, 뒤에 있는 김희연에게 얘기했다.
“이제 어디로 갑니까.”
“100m만 더 가면 주차장이 나와요.”
거의 다 왔다.
막상 사람과 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뒤에 있는 일행을 쳐다보자,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파심에 전완수와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망설이면 우리가 당하는 거야.”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 * *
인문대를 지나 사과대 근처에 다다르자, 주변을 거니는 좀비들의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좀비들에게 막혔고, 뒷문으로 통하는 주차장 쪽도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더 가까이 붙으면 놈들의 후각에 발각될 위험이 있다.
김희연에게 다른 길을 묻자, 그녀는 따라오라는 손짓과 함께 건물의 좌측으로 이동했다.
건물의 좌측으로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함께 쪽문이 눈에 들어왔다.
발소리를 죽인 채 유리문 앞으로 다가가 실내의 상황을 살폈다.
안개 때문에 복도의 상황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설여원과 전완수에게 확인하라고 하자, 두 사람은 안전하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조심스레 유리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두 볼을 스쳤다.
통풍도 되지 않고, 눅눅한 안개가 몇 달이나 이곳에 들어차 있었다.
습하고 역한 냄새에 콧잔등을 찌푸리며 뒤에 있는 일행을 살폈다.
다들 인상을 찌푸리며 복도로 들어섰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옆으로 보이는 화장실부터 확인했다.
우리가 지나가는 모든 길에 좀비의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하나라도 공명하는 놈이 나타나면, 이곳이 우리의 무덤이 될 테니까.
화장실을 시작으로 모든 강의실을 살피고, 지하 1층은 좀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계단으로 이동했다.
발소리를 죽인 채 계단을 오르자, 좌측으로 통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휴게공간으로 쓰이던 곳인가?
음료 자판기 3대와 책상, 의자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자판기 앞을 거니는 좀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림잡아 네 마리.
하필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1층 복도로 들어서면 놈들의 시야에 포착될 가능성이 있다.
1층 정리는 포기해야겠다.
계단 난간에 붙어서 2층으로 이동하면 발각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유리문이 닫혀 있으니 체취는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계단 난간을 가리키며 뒤에 있는 일행에게 바싹 붙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난간에 붙어 2층으로 이동했다.
2층으로 들어서자 바닥에 가득 찬 습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벽만 되면 2층까지 안개가 차오르기에, 건물 내부가 습해진 것으로 보였다.
복도에 발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2층에도 좀비와 살인귀가 없는 모양이다.
곧장 3층을 가리키자, 전완수와 설여원은 각자의 무기를 손에 말아쥐며 마른침을 삼켰다.
김희연이 있었다는 302호.
3층부터 살인귀들의 영역이다.
나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3층으로 향했다.
“……해야지.”
“……가서 ……부터?”
3층에 올라서자, 귓가를 간질이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뒤따라 올라오는 일행에게 정지신호를 보내고, 은은하게 들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 이 날씨에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철민이 형이 보관하라잖아.”
반대편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
대략 40m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남자들의 목소리였다.
고개만 슬쩍 내밀고 놈들의 모습을 육안으로 살폈다.
팬티만 입고 있는 두 명의 남자.
그들의 앞으로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여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이어 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이걸 어쩌라는 거야.”
남자는 바닥에 엎어진 여자를 발로 툭툭 차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의 상태를 확인한 순간, 속에서 올라오는 역한 기운에 벽 뒤로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지가 절단된 상태.
설여원과 전완수도 복도를 살피더니, 곧 벽 뒤로 몸을 숨기며 나와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였다.
죽은 좀비를 보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저건 인간이니까.
김희연도 복도의 상황을 살피더니,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소정아…….”
김희연의 입에서 죽은 여자의 이름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