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07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53화
한월은 헌팅 나이프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지만, 이정우의 악력을 이길 수 없었다.
“……놔요.”
“최소한 본인이 싸지른 똥은 치우고 가야지.”
“…….”
“무책임하게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무릎 꿇고 진심으로 빌어. 그동안 속여서 미안하다고. 나머지 속죄는 행동으로 보이고.”
한월의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끝내 헌팅 나이프를 손에서 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정우는 그 모습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뭘 잘했다고 울어.”
텁.
정진영은 이정우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이정우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세차게 혀를 찼다.
정진영은 이정우의 손바닥에 있는 헌팅 나이프를 빼앗으며 얘기했다.
“로그나이트로 만든 2레벨 헌팅 나이프야. 너 손가락 떨어질 뻔했어.”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
말은 차갑게 하지만, 사람이 죽는 건 원치 않는 이정우였다.
이를 알기에, 정진영은 싱겁게 웃으며 이정우의 손을 치료해 주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파티 압구정의 플레이어들은 멍하니 한월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한 사람, 정명석이 한월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위로하는 건지, 기억을 들여다보는 건지 모르겠다.
그 모습을 끝으로 이정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화해하든 서로 물어뜯고 싸우든, 뒷일은 파티 압구정이 해결할 문제라 여겼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난 두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일으켰다.
뒤늦게 이마가 지끈거리고, 시야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췄다.
감염된 식물을 처리하고 한숨 돌린 기억은 있는데, 그 뒷일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대로 기절한 건가?
라꾸라꾸에서 일어나 몇 차례 심호흡을 반복하자, 반쯤 열린 텐트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뻐근한 몸을 풀며 텐트 밖으로 나가자, 식사가 한창인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일어났나?”
박재우가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하고, 오른손을 흔들며 어서 오라고 했다.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밥그릇을 들고 있었다.
어질어질한 정신을 붙잡으며 일행의 곁으로 향하자, 설여원이 수저와 밥그릇을 건네며 얘기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네?”
“몇 시간이나 기절한 거야?”
“2시간. 별로 안 지났어.”
최소 4시간은 기절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수저를 손에 쥐고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식욕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배를 채워야 다시 힘을 쓰기에,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서 억지로 욱여넣었다.
밥을 먹으며 현재 시각을 살피자, 시침과 분침이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 덕에 전투와 기절을 반복하고도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정우와 정진영, 전완수와 최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어?”
설여원을 쳐다보며 묻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삼파전하러 갔어.”
삼파전?
그게 무슨 말이야.
누구랑 싸운다는 거야.
농담인 것 같은데, 몽롱한 정신으로 인해 머리 회전이 원활하지 않았다.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멍한 표정을 짓자, 설여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말싸움하러 갔어. 파티 압구정이랑 소리결, 그리고 대장 좀비.”
대장 좀비라는 말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몽롱하던 정신이 맑아졌다.
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어디 있어.”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 먹고 얘기해.”
“그 자식 엄청 강하다고!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어떻게 나올지 모른…….”
그러자 국자를 들고 있던 설여원이 쓰읍! 하는 소리와 함께 얘기했다.
“앉아. 다들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밥부터 먹어.”
“…….”
“정 급하면 먹으면서 들어.”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침착한 설여원을 보고, 불안하던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내가 기절한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아 허겁지겁 밥부터 먹었다.
* * *
설여원에게 모든 상황을 전해 듣고,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역시 세상사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더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참…… 여러모로 피곤하게 살지?”
“자존심 문제 아니겠나.”
박재우가 덤덤하게 대답하자, 황덕록은 어깨를 으쓱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월을 두고 하는 말일까, 아니면 이정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아니, 피곤하지 않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설여원은 산책로 중앙에 모닥불을 피우며 내게 물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지?”
“그래야지. 좀비화도 재사용 대기시간이고.”
12시간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길다.
스킬 강화권으로 시간을 단축시키긴 해야 할 것 같다.
이에 홀로그램을 열고,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했다.
[플레이어 정보]-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한계 돌파 7단계
*세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시 한계가 해금됩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314420/100000
-남은 포인트: 607
-스킬: 좀비화, 강화된 급가속, 감지 Lv.MAX, 하울링 Lv.MAX, 강화된 광폭화
-패시브 스킬: 재생, 광란(5/10)
-특수 스킬: 연격, 난동
-보유 중인 칭호: 4
-보유 중인 성물: 3
단 한 번의 전투로 31만 카운트를 올렸다.
알파5가 15만의 카운트에 해당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를 포인트로 환전해도, 새로운 스킬이나 기존 스킬 강화는 불가능했다.
5만 포인트는 역시 쉽지 않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스킬 목록으로 들어가 좀비화를 확인했다.
스킬 강화권을 사용하는 게 아깝긴 하지만, 지금은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줄어야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이에 고민할 필요 없이 좀비화에 스킬 강화권을 사용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스킬 강화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기존 능력: 재사용 대기시간 12시간
-추후 변화: 재사용 대기시간 6시간
수락을 누르자, 재사용 대기시간이 절반으로 감소하며 좀비화의 스킬 설명이 떠올랐다.
[강화된 좀비화]-1시간 동안 좀비의 성향을 지닙니다.
-좀비에게 물려도 감염되지 않으며, 모든 신체 능력이 2배 증가합니다.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6시간입니다.
이제 감지랑 하울링만 강화하면 끝인가?
필요한 포인트는 20만.
만약 에덤 화이트 전용 스킬 강화권을 얻게 된다면 감지와 하울링부터 강화해야겠다.
듣기로는 여의도 아크에 있는 파티는 총 3개라고 한다.
파티 압구정과 파티 호수공원, 다른 하나는 마포구에서 온 파티라고 한다.
파티명이 망원시장이라나?
홀로그램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현 위치를 살폈다.
광나루한강공원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암사생태공원.
여기서 잠실종합운동장까지 대략 6에서 7㎞.
좀비화는 쿨타임이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충분히 아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손톱을 깨물며 잠실 방면을 살피자, 설여원이 다가오며 물었다.
“왜, 포인트 부족해? 코인 교환할까?”
“아니야, 괜찮아.”
치지직- 치직-
-아아, 여원아 들려?
뒤이어 설여원의 무전기로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여원이 무전기를 들고 대답하자, 전완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재형이 아직 기절 중이지?
“조금 전에 일어났어. 왜?”
-아 그래? 그럼 여기로 오라고 해줘. 대장 좀비가 재형이랑 얘기하고 싶다고 그러네.
설여원이 내 얼굴을 쳐다보기에,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지금 그리로 보낼게.”
설여원은 무전을 마치고 모닥불 앞에 모여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재형이랑 대장 좀비 만나고 올게.”
박재우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지며 다녀오라는 손짓을 보였다.
수비팀을 뒤로한 채 설여원을 따라 이동하자, 한강공원 운동장 뒤편에 위치한 주차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차장 중앙에 설치된 대형 텐트를 열고 들어가자, 책상 앞에 모여 있는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대장 좀비는 내 얼굴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오른손을 건네며 얘기했다.
“설명은 들었습니다. 아까는 실례가 많았어요.”
그의 두 눈은 보랏빛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존댓말을 쓰다니, 의외였다.
이에 덤덤하게 악수를 주고받고,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우측으로 보이는 파티 압구정의 플레이어들.
다들 복잡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장 좀비를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일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정우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얘기했다.
“재형이도 왔으니,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래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가 아크에 도착하면 생존자들 데리고 아크 외벽으로 모일 겁니다.”
“시간 맞춰서 수하들 10마리 보내면 되는 겁니까?”
“네, 좀비들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하니, 저희를 공격하라고 명령해 주세요.”
“괜찮겠어요? 내 수하들 신체 능력은 255나 되는데. 하나하나가 알파2랑 동일한 신체 능력을…….”
“저희도 그 정도 됩니다. 충분해요.”
이정우와 대장 좀비의 대화를 듣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물었다.
“생존자들한테 좀비를 보여주려고요?”
“어, 아크에 있는 시위대도 알아야지. 바깥 상황이 얼마나 최악이고, 본인들이 얼마나 복에 겨운 상황인지.”
“굳이 수하들로 실험할 필요 있을까요. 길거리 좀비로 해도 될 텐데.”
“여의도 근처에는 길거리 좀비가 없대. 안상진 씨가 이미 정리를 다 했어.”
안상진?
대장 좀비의 이름인 모양이다.
이에 대장 좀비를 쳐다보자, 그는 본인이 아는 바를 상세히 들려주었다.
“여의도를 기준으로 반경 3에서 4㎞는 깨끗합니다.”
“그럼 다른 곳에서 길거리 좀비를 끌고 오면 되잖아요.”
“길거리 좀비를 끌고 오려면 전투를 피할 수 없어요.”
“안상진 씨가 들어가도 변종들이 공격해요?”
“변종과 대장 좀비는 상극입니다. 생존자와 좀비처럼.”
“그럼…… 지금 보유하고 있는 수하들이 전멸하면 어떻게 보충해요?”
“전멸하기 전에 목숨 걸고 들어가야죠. 수하가 없는 대장 좀비는 연료 없는 자동차나 다름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대장 좀비에 대한 정보가 알아두면 좋기에, 궁금한 것들을 전부 물었다.
대장 좀비의 기본 신체 능력과 보유 중인 스킬, 그리고 증가하는 능력 폭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물었다.
대장 좀비는 성장할 때마다 거느릴 수 있는 수하의 숫자가 2배씩 증가한다.
이건 이전과 마찬가지지만, 10단계 대장 좀비가 되면 그 후로는 변동이 없다고 한다.
1단계 대장 좀비가 500마리의 수하를 거느릴 수 있었으니, 안상진은 대략 25만의 수하를 거느릴 수 있다.
또한 10단계가 되면서 변종도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변종 에덤은 거느릴 수 없지만, 다른 변종의 경우는 달랐다.
3단계 이하의 변종을 각각 20마리씩 거느릴 수 있다고 한다.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그리고 진화가 거듭되면 수하들의 신체 능력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1.3배 증가하지만, 대장 좀비는 6단계부터 2배씩 증가한다고 한다.
그럼 수하들의 기본 신체 능력은 대략 255, 안상진은 2200이 된다.
내가 좀비화와 광폭화를 사용해야 2300 정도 되는데, 안상진은 기본이 2200인 것이다.
거기에 각종 스킬을 사용하면 이전에 경험한 것처럼 수하들과 안상진의 신체 능력이 대폭 증가하게 된다.
모든 설명을 듣자, 지금 마주하고 있는 안상진이 인간의 편에 서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내 이름을 불렀다.
“박재형 씨.”
“네.”
“고맙습니다.”
“네?”
뜬금없는 감사 인사에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안상진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목을 가다듬으며 얘기했다.
“박재형 씨 덕에…… 오해가 풀렸다고 들었어요.”
“저요?”
당혹감에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정우의 현란한 말솜씨가 활약한 모양이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공을 나한테 돌린 건가?
민망한 마음에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저희 파티원 덕이죠. 가장 중요한 건 안상진 씨가 인간의 편에 서준 덕이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안상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참회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무리 겉모습이 좀비더라도, 마음은 인간이었다.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처음부터 인간의 편에 서서 싸운 건 아닐지라도, 누구나 갱생의 기회는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존자든, 플레이어든, 대장 좀비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안상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