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10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56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음이 진정된 뒤에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떻게 아크로 오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았다.
하남에서 시작한 파티 호수공원이 서울로 진입하고, 한강공원을 따라 이동하면서 합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작디작은 희망이었는데, 천만분의 일의 확률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크로 이동하며 생존자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 설여원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유대감이 깊어졌다고 한다.
서로의 자식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걸 알게 되면서,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가 재형이구나.”
뒤이어 설여원의 부모님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자, 설여원의 아버지가 반쯤 울먹이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고맙다, 우리 딸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저도…… 여원이한테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다들 너무 울어서 눈이 충혈되었지만, 분위기만큼은 화기애애했다.
반면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다.
힘없이 아크로 들어가는 장병철의 부모님을 보고, 모두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두 분에게 달려갔다.
“저기…….”
조심스레 두 분을 부르자, 장병철의 아버지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내 앞을 가로막았다.
위축되는 마음에 주춤거리자, 장병철의 아버지는 서글픈 표정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구나.”
“아…… 네.”
“조금만 마음 추스르고, 우리 아들…… 병철이 얘기 좀 해주겠니?”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장병철의 아버지.
힘겹게 눈물을 삼키지만, 속절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마음을 짓누른다.
심장이 아리다고 해야 좋을까?
아니, 아리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었다.
이에 가볍게 목례하며 대답했다.
“비록 함께 오지 못했지만 병철이 형은…… 정말 멋지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장병철의 아버지는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인 뒤, 가족과 함께 아크로 들어갔다.
뒤이어 한월이 다가오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감사 인사 받을 입장이 안 됩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잖아요.”
한월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거짓으로 모두를 속였을지라도, 생존자를 구출하고 인류를 위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까.
근심의 나날 속에 다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더 이탈하기 전에 우리가 찾아와서 다행이다.
한월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안상진한테 하세요.”
한월은 밤공기가 차다며 어서 아크로 들어가자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부모님의 손을 잡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양손에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끼며 아크로 들어섰다.
* * *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이제 다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부모님을 숙소까지 배웅한 뒤, 결인들이 기다리는 회의실로 향했다.
한월을 따라 이동하자, 여의도 공원 앞에 위치한 호텔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의 로비가 회의실로 이용되고 있었다.
“재형아!”
이정우가 가장 먼저 나를 발견했다.
그러자 로비에 앉아있던 결인들이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전완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여원이랑 재형이 들어온 것 보니, 둘 다 부모님 찾은 모양이네?”
덩달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이곳으로 다가오는 13명의 플레이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들 라스트아크의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파티 압구정은 이미 안면이 있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파티 호수공원과 망원시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뒤이어 두 사람이 성큼 다가오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파티 호수공원의 파티장 진선균입니다.”
“반갑습니다. 소리결 박재형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진선균이 옆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자, 옆에 있던 남자도 오른손을 내밀며 얘기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파티 망원시장의 파티장 최이경입니다.”
“박재형입니다.”
각 파티의 파티장과 악수를 주고받자, 모두의 시선이 한월에게 쏠렸다.
회의의 시작을 한월이 담당하는 모양이다.
한월은 모든 플레이어가 모인 걸 확인한 뒤, 평소처럼 입을 열었다.
“먼저 오늘 일정을 얘기하기 전에, 여러분 모두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한월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마음을 가다듬더니, 90도로 고개 숙이며 얘기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껏 여러분을 속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플레이어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티 소리결과 압구정만이 현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한월은 그동안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했다.
파티 호수공원과 망원시장의 플레이어들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있던 진선균이 입을 열었다.
“예상은 했습니다.”
“예?”
진선균의 말이 더욱 반전이었다.
파티원들은 진선균을 쳐다보며 질문을 쏟아냈다.
알면서 왜 모른 척했냐, 왜 얘기하지 않았느냐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당혹감이 느껴지는 파티원과 달리, 진선균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손해 볼 게 없으니까. 한월 씨가 생존자를 배신한 것도 아니고, 대장 좀비가 아크로 들어온 것도 아니잖아?”
진선균의 대답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진선균은 한월을 쳐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도 확신은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 숨기는 게 있다는 것만 눈치채고 있었죠.”
“그런데도 제 의견에 따라준 겁니까?”
한월이 묻자, 진선균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요. 열심히 머리 쓰는 게 뻔히 보이는데, 그게 생존자를 위한 거니까.”
진선균의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표정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 불안감은 뭘까.
속을 알 수 없다고 해야 좋을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런가?
의도를 읽을 수 없으니 불안한 것이다.
한월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진선균이 이해한다고 하니, 더 얘기하는 게 좋을지 이쯤에서 그만둬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한월을 쳐다보자, 그녀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시위 주동자들을 바깥으로 내보낸 것도 접니다. 제가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자 한월의 뒤에 있던 정명석이 황급히 변명을 꺼내 들었다.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욕심이 죽음을 자초한 겁니다. 꼭 한월의 잘못이라고는…….”
“괜찮아요.”
진선균이 이번에도 태연하게 대답하자, 정명석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선균은 눈썹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 부분은 최이경 씨랑 이미 얘기 끝났어요. 그렇죠?”
“네. 저도 압니다.”
최이경까지 알고 있다고 하자, 한월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한월 씨가 시위 주동자들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거, 저도 봤습니다.”
“외벽 수비가 저희 일이잖아요.”
최이경과 진선균의 대답에, 한월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잠깐만, 전부 알면서 모른 체했다고요?”
“네.”
“모든 공격대원들이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요, 저랑 최이경 씨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왜 저한테 얘기 안 한 거예요?”
“굳이 얘기해야 할까요?”
진선균의 말재간에 묘하게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런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거지?
이에 옆에 있는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과 악수를 나누고 생각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런 최현이 이런 반응이라면…… 진선균에게 악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의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대체 무슨 생각이지?
뒤이어 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있었다면 최소한 상의는 할 수 있잖아요. 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알고만 있는 것과, 겉으로 행하는 건 다르죠. 제가 한월 씨의 비밀을 안다고 하면, 과연 한월 씨가 이전처럼 행동했을까요?”
“…….”
“같은 말을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결과는 다릅니다. 소리결이 오면서 한월 씨가 진실을 얘기한 것처럼, 저도 상황이 달라졌다는 판단하에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괜히 나서봐야 연대책임이 생기니, 모른 체하고 아크의 외벽 수비에 집중한 건가?
진선균, 이 사람 머리가 비상하다고 해야 좋을지, 간사하다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모든 수를 생각해 두고, 그에 따른 결과를 도출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럼 만약…… 제가 생존자의 편에 서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죠?”
한월의 직설적인 질문에 진선균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회의실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진선균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더니,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죠? 일어나지 않은 일로 머리 아프게 싸워야겠습니까?”
“저를 밀어내고 생존자 대표가 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겁니까?”
“명예나 직위 같은 건 관심 없습니다.”
“그럼 뭐예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상태로 몸을 사리겠다는 거예요?”
“생존자가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건 파티원들이니까요.”
진선균의 대답에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자 호수공원의 파티원들이 진선균의 곁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제야 진선균의 말재간이 그토록 청산유수 같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월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의 진정한 미꾸라지는 진선균이었다.
그가 말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눈속임이지.
단순히 내 기준에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모순이 가득했으니까.
반박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이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익 관계 확실하네요. 서울에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을 이제야 알겠어요.”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이정우에게 쏠렸다.
이정우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등을 맡길 사람이 없네요. 뒤에서 칼은 꽂지 않아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이정우의 표정과 목소리는 태연하지만, 말에 비수가 담겨 있었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이정우의 말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파티 호수공원의 플레이어들이 반박했다.
“초면에 말이 심하네요?”
“젊은 패기는 좋지만, 상황 봐가면서 얘기해요.”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자, 진선균이 일행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소리결의 파티장, 이정우라고 했죠?”
“네.”
“그럼 이정우 씨라면 어떻게 했을 겁니까?”
“전부 얘기했겠죠. 미리 상의하고, 타개책을 생각했을 겁니다.”
“얘기해서 서로 간의 불화만 커진다면?”
“제가 보기엔 한월 씨를 이렇게 만든 데에 여러분의 몫도 있는 것 같은데요? 등을 맡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진실을 밝히겠어요.”
“하하! 이런 결과론적인 사람. 진실을 밝히려다 본인의 파티가 위험해져도 지금처럼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몸 사려서 결과가 어떻게 됐죠? 지금이 더 위험한 것 같습니다만?”
이정우가 물러서지 않자, 진선균은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뒤이어 재밌다는 듯이 물었다.
“뭐가 위험하다는 거죠? 시위대? 시위대는 우리에게 위협이 안 되는데?”
“본인의 파티를 위해서라면 시위대도 죽이겠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너무 극단적인 선택 아닙니까?”
“극단적이라고요? 더는 물러설 곳이 없고, 4000명의 생존자가 여러분을 부정하더라도 죽이지 않겠다? 그럼 본인 파티가 쫓겨나도 상관없다는 것 아닙니까? 아까는 파티원이 가장 중요하다더니?”
“남은 6000의 생존자를 무시하는 겁니까?”
말재간이 보통이 아니다.
이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럼 6000명을 4000명과 싸움이라도 붙이겠다는 말인가요?”
“필요하다면 그래야겠죠.”
“예전에도 생존자들 사이에 문제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식으로 해결하신 겁니까?”
“모두의 동의하에, 의견을 도합해서 행한 겁니다.”
“그건 마녀사냥이잖아요.”
이정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하자, 진선균은 양팔을 활짝 펴고 모두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쫓겨난 사람들이 진짜 마녀인지, 마녀사냥의 희생양인지 어떻게 알죠? 이정우 씨는 그 기준을 아는 것처럼 얘기하네요? 이렇게 오만한 분일 줄이야.”
진선균이 모두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얘기하자, 이정우는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저는 압니다. 누가 마녀인지.”
“본 적도 없으면서 안다고? 당신 제정신입니까?”
“왜 마녀를 아크에서 찾습니까. 저 밖에 널리고 널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