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1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58화
김포공항?
공항을 정리하자는 건…… 스발바르 제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자는 건가?
이정우는 아크의 안정화뿐만 아니라 노르웨이로 이동할 계획까지 하고 있었다.
추후 수색대와 수비팀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뉠 것 같다.
이정우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파티 압구정은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 같으니, 압구정을 이용해서 생존자들과 접촉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시위대가 가장 싫어하는 게 파티 압구정 아니에요?”
“플레이어를 향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아보면 답이 나올 거야.”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압구정을 향한 시위대의 분노만 가라앉힐 수 있다면, 모든 생존자가 우리의 손을 들어줄 거야.”
“손만 들어준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최소한 수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동감이야. 어쩌면 시위대의 반발은 무기력함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있거든.”
“무기력함이요?”
“본인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사람이 밑바닥에 떨어지면 감정이 뒤틀릴 수밖에 없어.”
“…….”
“그걸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지.”
이정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도 기숙사에 갇혀 있을 무렵, 지긋지긋한 무기력감에 시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목숨마저 손에서 놓아버리는 게 무기력이었다.
무기력의 골이 깊어지면 사람은 병들게 되고, 감정의 기복이 커진다.
그리고 갈피를 잃은 감정은 근본을 알 수 없는 분노만을 야기한다.
결인들도 한 번씩 겪어본 감정이기에, 쉽게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우는 현재 시각을 살피며 얘기했다.
“우선…… 들어가서 쉬자. 시간이 늦었어.”
“호텔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저대로 두고요?”
“혼란스러울 거야. 서로 의견을 나누며 감정을 다스릴 시간을 줘야 돼.”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서로 헐뜯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동안 서로를 향한 불신이 너무 컸어. 서로 속마음을 얘기한 적이 없으니, 이제라도 공유해야지.”
“만약 부정적으로 변하는 파티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조심스레 묻자,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싹을 잘라야지.”
이정우의 대답에 결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냉정한 말이지만, 썩은 뿌리는 역병과도 같다.
다른 뿌리까지 퍼지기 전에, 미리 뽑아버리는 게 이롭다.
뒤이어 정진영이 다가오며 물었다.
“재형이는 배정받은 숙소 위치 알아?”
“못 들었어요. 어디에요?”
“따라와. 63빌딩 바로 옆에 있는 주상복합이야. 건물 진짜 좋아.”
63빌딩 바로 옆이면 아크의 외벽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누구나 살고 싶은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바깥이 훤히 보이는 탓에 아무도 눈독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좀비와 변종을 바라보며 잠드는 건 누구도 원치 않을 테니 말이다.
* * *
일행이 숙소로 이동하고, 설여원과 난 부모님의 숙소로 이동했다.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장병철의 부모님을 만나 장병철의 학교생활과 용맹했던 업적을 찬찬히 들려주었다.
밤이 깊어가고, 우리의 대화도 깊어졌다.
치지직- 치직-
-재형아, 지금 어디야.
그 순간, 무전기에서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이랑 같이 있습니다.”
-대화 중에 미안한데, 여기로 와야겠다.
“무슨 일 있어요?”
-아크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찾아왔어.
플레이어가 찾아왔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있던 설여원도 덩달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부모님의 얼굴을 쳐다보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밥은 먹었어?”
어머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파티에 혜리랑 희연이라고 있는데, 요리 솜씨가 굉장히 좋아요. 저 살찐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일부러 아랫배를 불룩하게 만들며 인심 좋은 아저씨처럼 웃었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엶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어.”
아버지의 표정과 목소리를 들으니 이유 없이 쑥스러웠다.
좀비들 앞에서는 이성적이던 마음도, 부모님 앞에만 서면 투정 부리고 싶은 꼬맹이로 변한다.
멋쩍은 마음에 목덜미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키는 고등학교 때 다 컸죠.”
“친구들이 찾는 거야?”
“하하!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를 않아.”
일부러 과장되게 표현하자, 부모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쉬운 마음을 삼켰다.
이에 두 분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녀올게요.”
“몸조심하고.”
“네.”
그 길로 설여원과 함께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둑한 밤거리를 지나 숙소 근처에 다다르자, 1층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과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진선균과 이정우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자,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저기 왔네요.”
진선균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도 꾸벅 고개 숙였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네?”
“초면에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선균의 표정에 웃음기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는 실실 웃으며 분위기를 주도하더니, 지금은 죄인처럼 착잡해 보였다.
그러자 한월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로비를 빠져나가고, 3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 네.”
“비록 첫 단추는 잘못 끼웠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로 잡고 싶습니다.”
한월의 표정도 이전보다 한층 밝아졌다.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걸까.
설여원과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이번엔 최현이 입을 열었다.
“한월 씨, 진선균 씨, 제가 대신 설명해도 될까요?”
“예?”
“제가 확인했으니, 제가 얘기해야 재형이도 편할 것 같아서요.”
“아,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선균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현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이들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벌써 악수를 통해 확인한 모양이다.
소리결이 호텔 로비를 빠져나간 뒤, 회의실은 냉전 분위기였다고 한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정명석이었다.
그동안의 사건 사고를 돌아보고, 서로에게 섭섭했던 부분을 솔직하게 밝혔다고 한다.
그 뒤로 한아람이 얘기하고, 한월과 최이경까지 입을 열었다고 한다.
사과와 용서의 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진선균도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그동안 꾹꾹 눌러온 마음을 꺼내 들었다고 한다.
생존자를 위하던 마음이 언제부터 변질된 것인지, 이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다.
상황에 끌려온 것이다.
아크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이들에게 안락한 에덴 같은 곳이었다.
안락함에 취해 긴장감이 사라지자, 그 뒤로 선과 악을 구분 짓기 시작했다.
벽 너머에 있는 악을 외면하고, 내부에서 악의 근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로 아크에 있는 생존자들과 잦은 불화가 발생했고,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기에 투표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말이 좋아서 투표지, 사실상 지목이나 다름없었다.
마녀사냥이 시작되고, 플레이어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배척되었다고 한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나태해지고, 현실을 회피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허영과 권위에 취해, 현실을 외면했다.
그나마 바깥 활동을 하던 파티 압구정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지만, 한월의 파티에 분란이 생겼다.
리셋 증후군에 걸린 4명의 파티원이 문제의 씨앗이었다.
그 과정에 안상진을 만나게 되었고, 문제의 파티원들을 처리하며 한월의 인간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선과 악의 잣대가 흐려진 것이다.
한월마저 안상진의 등에 숨어 생존에 집중하게 되니, 더는 아크에 책임감을 지닌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들이 변질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목표의식의 부재.
오직 생존에 치중한 나머지, 아크에 도착한 뒤로 목표를 잃은 것이다.
이래서 추진력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가?
소리결의 경우 정확한 목표가 있기에, 지금껏 고행길을 자처하며 강해진 게 아닐까?
진선균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두 주먹을 파르르 떨더니, 대뜸 이정우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얘기했다.
“미안합니다.”
“…….”
이정우도 당황했는지, 한걸음 물러서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선균은 미간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까는 왜 그리 화가 나는지 저도 모르겠더군요.”
“…….”
“하지만 이젠 알겠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데, 뭘 인정하기 싫었는지.”
진선균의 표정에 거짓은 보이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진선균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제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
“발걸음을 뗄 자신이 없어서, 아크에 숨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말씀하세요.”
“호수공원 파티의 대표로서 얘기하는 겁니다. 전부 제 불찰이니, 우리 파티원들은 죄가 없다는 것만 알아줘요.”
진선균의 진심 어린 말에 파티 호수공원의 파티원들은 덩달아 무릎을 꿇으며 얘기했다.
“아니에요. 선균 형님에게 부담을 준 건 우리예요. 우리가 우유부단해서…….”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보고 이정우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런 상황은 예상에 없었다.
누구 하나 잡겠구나 했는데,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이야.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본성이 선한 사람들일 것이다.
선하지 않은 사람은 전부 죽었으니까.
배신으로 죽든, 억울하게 죽든, 악인이 설 자리는 없었다.
만약 악인이 살아남은 곳이라면 1만 명의 생존자가 있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들이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최현과 윤혜리가 호텔 로비에서 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봤을 때, 악의를 느끼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이들은 지쳤을 뿐이다.
현실을 직시할 힘이 없어서, 무기력에 잡혀 살았을 뿐이다.
이정우가 이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려고 한 이유도, 단추를 잘못 끼웠을 뿐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스스로 깨닫고 무릎을 꿇으니, 이정우가 더욱 당황한 것이다.
비록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온 사람들이지만, 지금이라도 제 자리를 찾아서 다행이다.
문득, 예전에 한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인격의 열매가 맺힌다는 말이.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정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정우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더러 해결하라고?
아니면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건가?
이런 건 내 역할이 아닌데…….
이에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시위대가 생겼다는 건, 그들이 여러분을 대표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
“대표가 대표의 역할을 똑바로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으니, 불신이 생기고 반대 시위가 생기는 거라고요.”
“제 불찰입니다.”
진선균은 완전히 회개상태였다.
한월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대표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죠.”
“…….”
“행동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우리를 믿어도 된다, 기대도 된다.”
“무슨 행동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겠어요. 벽 너머에 있는 좀비들 때려잡고, 이 X같은 세상 복구시켜야죠.”
“…….”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다 같이 힘내서 싸우면, 길이 보이지 않겠어요?”
모든 플레이어를 쳐다보며 묻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정우에게 얘기했다.
“형, 안상진 씨 수하들 처리할 때, 여기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나가서 처리하죠.”
파티 호수공원과 망원시장, 압구정의 플레이어들은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간만에 치르는 전투에 긴장할 법도 하다.
이정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안상진 씨의 수하는 너무 강해. 여기 있는 분들은 못 잡아.”
“여기 있는 분들은 강화제 알약 먹고 싸워야죠. 다들 강화제 알약은 있죠?”
그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를 강화할 정도로 코인이 있다는 건, 강화제 알약도 충분히 있다는 뜻이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공격대 구성하려면 다 같이 전투 한 번 해야 돼요. 내일은 시위대 진정시키고 공격대부터 구성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