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1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59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밤이 지났다.
플레이어들의 마음에 쌓인 섭섭함과 묵은 체증을 해소한 밤이었다.
아침이 밝자,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에 감았던 두 눈이 떠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하자, 문 앞에 있는 한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월의 표정이 밝다.
까칠하게 보이던 인상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그동안 강해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는 걸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부스스한 머리를 넘기며 묻자, 한월은 엄지로 뒤편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식사하셔야죠. 알약 자판기 위치 아세요?”
“아…… 어디로 가면 되죠?”
“의사당 앞으로 오세요. 여자 방은 맞은편이죠? 제가 깨울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한월은 가볍게 목례하며 반대편 현관을 두드렸다.
난 남자들을 깨운 뒤, 대충 머리만 감고 밖으로 나갔다.
완전히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시각.
공기가 차다.
어느새 시큼한 겨울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었다.
전신을 부르르 떨며 입구를 쳐다보자, 하품하며 나오는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들 잠이 덜 깼는지,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내 뒤에 줄을 섰다.
“뭐해?”
“줄 서 있는 거 아니야?”
설여원이 묻기에,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 기다리고 있었지. 여기서 줄을 왜 서.”
설여원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내 옆으로 붙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모두가 1층에 모이고, 국회의사당까지 길을 안내했다.
설여원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공격대 구성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야?”
“아침 먹고 바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아직 60일이나 남았는데, 여유롭게 움직여도 되지 않아?”
“60일이 아닐 거야.”
덤덤하게 대답하자, 설여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에스파디아는 위치를 들켰다고 그랬어. 알약 자판기는 60일 남았지만, 지구 침공은 그 전에 시작될 거야.”
“쉴 틈이 없네.”
설여원은 입맛을 다시며 두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뒤이어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지금껏 한계 해금은 일정한 수치를 달성하면 열렸는데, 이번엔 에피소드 클리어가 기준이라는 게.”
설여원의 의견에 이마를 긁적이며 홀로그램을 열었다.
플레이어 정보에 적힌 한계 돌파 조건.
-세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시 한계가 해금됩니다.
설여원의 말대로, 이러한 기준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자,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혹시 힌트 아닐까?”
“힌트?”
“은연중에 세 번째 에피소드가 끝이라는 걸 알려준 게 아닐까 싶어서.”
“근거는.”
“저번에 하남 스타필드에 있을 때도 얘기했지만, 네 번째,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이미 클리어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하긴, 우린 부산 대공습을 버텨냈고 함선에 생존자들을 태워서 안전지대로 보냈다.
이미 네 번째, 다섯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굳이 세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된 이유는…… 독 안개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하면 사실상 게임 클리어나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한계 돌파 해금 조건을 세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로 정해둔 걸까.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반복하자, 설여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흠…… 머리 아프네.”
“나중에 에스파디아 만나게 되면 그때 확실하게 물어볼게.”
설여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손가락을 튕기며 물었다.
“아 참, 성물 효과는 확인했어?”
설여원의 물음에 홀로그램을 열고 해금된 성물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유서]-은인을 기억합니다.
-유서에 적힌 물건을 그의 부모님께 전달했습니다.
-원하는 스킬의 지속 시간을 2배 증가시킵니다.
설여원은 성물에 적힌 설명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지속 시간 증가?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니야?”
“맞아. 안 그래도 스킬 지정하려던 참이야.”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스킬 목록 1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스킬, 강화된 좀비화를 눌렀다.
띠링!
-스킬 ‘강화된 좀비화’에 성물을 적용하시겠습니까?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고, 고민 없이 수락을 눌렀다.
그러자 좀비화의 지속 시간이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변경되었다.
설여원은 본인 일처럼 기뻐하며 뒤따라오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재형이 이제 좀비화 2시간이에요!”
결인들은 우르르 달려와 내 홀로그램을 살폈다.
다들 탄성을 뱉었다.
이정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이젠 걱정 안 해도 되겠네.”
2시간이면 웬만한 지역구 하나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5단계 변종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르겠지만 말이다.
여의도에서 김포공항까지 직선으로 길을 뚫으면 대략 12㎞에서 13㎞ 거리.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단 한 번의 좀비화로 뚫을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안상진이 도와준다면 어려울 게 없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체 모를 고함이 들려왔다.
여의도공원을 지나 의사당대로에 들어선 찰나였다.
수많은 인파가 보이고, 몇몇 사람이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고함치고 있었다.
“여러분! 전부 사실입니다! 파티 소리결이 설명해 주실 겁니다!”
저 멀리, 단상 위에서 확성기를 들고 외치는 한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크의 독 안개 제거기가 작동하면서 안개가 말끔히 사라졌기에, 400m 거리에 있는 한월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한월도 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저기 오셨네요! 여러분 길을 비켜주세요! 파티 소리결입니다!”
그러자 빼곡하게 들어찬 인파가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가장 뒷줄에 있던 우린 사람들의 시선에 멋쩍을 표정을 지었다.
“애들이잖아?”
“고등학생 아니야? 많아 봐야 대학생인데.”
“저런 애들이 희망이라고?”
웅성거리는 군중의 목소리.
그 속에 소리결을 환영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이정우는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재형아, 기선제압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서 무슨 기선제압이요?”
“뛰어넘어.”
“400m를요?”
“안 돼?”
“좀비화 없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저 멀리 보이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직시하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강화된 급가속을 사용하면 가능할 것 같다.
이에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읊조렸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순식간에 도약하자, 드센 바람과 함께 생존자들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연달아 공기를 박차며 뛰어오르자, 단숨에 400m를 돌파할 수 있었다.
쾅-!!!!
단상 앞에 착지하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한월의 곁으로 향했다.
한월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는 생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바, 방금 뭐야.”
“사람이 날았어.”
웅성거리는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소리결을 깔보는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한월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확성기를 건네주었다.
“어디까지 설명한 상태에요?”
“아, 알약 자판기의 남은 시간 얘기하고 있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확성기를 입술로 가져갔다.
“안녕하십니까! 파티 소리결의 파티원, 박재형입니다!”
쩌렁쩌렁하게 외치자, 생존자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보다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방적인 통보보다 생존자들의 경계심을 줄이는 게 우선이니까.
“여기 계신 한월 씨가 먼저 설명해 주셨겠지만, 아직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분들은 지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약 자판기가 초기화되지 않는다고 그러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생존자들 사이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목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맞습니다! 에피소드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자판기는 초기화되지 않아요!”
“저번에는 24시간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남은 시간이 정지됐어요! 그 뒤에 시간이 추가됐는데, 그게 에피소드를 클리어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부산 아크에서 대공습을 버텨냈기 때문입니다!”
“대공습?”
생존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한월을 쳐다보자, 그녀는 눈썹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저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 얘기나 할 수는 없었어요.”
“생존자들은 라스트아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까?”
“대충의 틀만 알지. 세세한 정보는 몰라요.”
“대공습에 대한 건 왜 숨겼어요?”
“대공습을 버텨내면 안전지대로 갈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
“누군가 대공습 레버를 당겼을 겁니다.”
이 또한 불가능한 가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는 노릇.
지금부터라도 찬찬히 설명해야 한다.
난 확성기를 들고 모든 생존자에게 라스트아크에 대해서 설명했다.
* * *
안상진은 양평유수지 생태공원을 거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이는 건 없는데…….’
아크를 중심으로 반경 4㎞에 퍼뜨려둔 수하들.
그중 일부의 신호가 오늘 새벽에 사라졌다.
목동 부근에 있던 수하들 500마리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양평유수지 생태공원에서 안양천을 사이에 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지만,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한월은 잘하고 있으려나.’
마지막으로 전달받은 내용은 이러했다.
-포만감 알약 배분 끝나면 외벽으로 이동할 거야. 외벽에서 500m 떨어진 거리에 수하들 20마리만 배치해줘. 내가 가면 천천히 따라오도록 지시해 두고.
한월의 말을 듣고 안상진은 반신반의의 마음이었다.
정말 1만의 생존자를 설득해서 데려올 수 있을까?
‘쉽지 않을 텐데.’
생존자도 생존자지만, 다른 파티원들도 걱정이었다.
대장 좀비와 유착관계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크에 들어가서 상황이라도 확인하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안상진이 할 수 있는 건 기약 없는 기다림뿐이었다.
틱-
그 순간, 안상진의 머릿속에서 또다시 신호가 사라졌다.
목동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3분 전에 수하를 들여보냈는데, 지형을 파악하기도 전에 사망한 것이다.
두두두두…….
동시에 귓가를 간질이는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
발소리가 점점 선명해지고, 뒤이어 목동종합운동장 방면에서 달려오는 좀비와 변종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 *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만감 알약을 배분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2시간에 걸친 설명 끝에, 더는 질문이 들려오지 않았다.
생존자들이 의문을 가지지 않을 때까지 설명했으니,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질문 없습니까?”
대답이 없기에,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얘기했다.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으니, 저도 궁금한 점을 물어보겠습니다.”
전체적인 기반을 설명했으니, 이제 시위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왔다.
“플레이어를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불신을 가진 이유가 뭡니까?”
“별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기고만장해서는 시간만 버리니까!”
군중 속에서 나온 대답에 눈꼬리를 치켜뜨며 되물었다.
“파티 압구정, 호수공원, 망원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여러분을 데리고 아크로 오지 않았습니까?”
“…….”
“만약 아크가 없었다면, 혹은 이분들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됐을까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분들은 바깥에 있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애쓰신 분들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 그렇게 했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뒤이어 생존자들 사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생존자가 들어온 게 한 달도 더 됐어요! 바깥에서 뭘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직접 나가서 확인하시겠습니까?”
“우, 우리가 어떻게 나가요? 나가면 죽는다고!”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은 죽는 게 두렵지 않아서 나갔을까요?”
사람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조금은 몰아붙일 필요가 있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네?”
“플레이어는 여러분을 보호하는 수호신 같은 존재가 아니에요.”
“…….”
“저 바깥에는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는 플레이어도 있습니다. 그런 살인귀도 아크에 들어올 수 있죠. 그때도 지금 있는 플레이어들을 탓하고 욕하실 겁니까?”
생존자들의 웅성거림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감사인사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호구로 보진 말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