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32화
4층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즉 죽여야 했는데.’
김희연에게 헌팅 나이프를 건네주는 게 아니었다.
남자들이 비명을 지르기 전에 내 손으로 처리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설여원과 전완수가 제압 대신 목을 그었다면…….
미간을 찌푸리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지난 일은 생각하지 말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긴장감으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침착하게 강의실의 상태를 살폈다.
모든 강의실의 앞문과 뒷문에는 안팎을 볼 수 있는 세로로 기다란 유리가 있기에, 슬쩍슬쩍 내부를 살피며 복도를 거닐었다.
그러다 문득, 505호 강의실의 뒷문으로 갈색 액체가 굳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배설물은 아닌 것 같다.
직접 확인하기 위해 505호 뒷문으로 서서히 다가간 순간, 뒤늦게 액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바닥에 말라붙은 피.
곳곳에 붉은색 덩어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하루도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일전에 얘기한 소정이란 여자를 여기서 살해한 건가?
고개를 살짝 내밀어 강의실 내부를 살폈다.
동시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두 명의 여자.
이미 식량이 되어 썩어가고 있었다.
약육강식의 세계.
선천적으로 여성에 비해 근력이 강한 남성.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쳐다봤다.
인륜을 저버린 놈들.
철민이란 남자, 쉽게 죽여선 안 되겠다.
고통스럽게, 본인이 저지른 죄악을 몸소 느끼도록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분기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옥상으로 향하자, 커다란 철문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학생회관과 똑같은 구조.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려봤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무턱대고 들어갈 수도 없고, 죽은 남자들의 비명을 듣고 일찍이 매복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잠시나마 생각을 정리하고,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다급해 보이도록 철문을 두드렸다.
철민을 문 앞으로 불러내는 게 우선이다.
내가 들어갈 수 없다면, 적이 나오도록 만들면 그만.
죽은 남자들의 목소리와 말투는 선명하게 내 뇌리에 남아 있었다.
방금 죽인 남자 중 하나는 나와 목소리도 비슷했다.
다급한 상황을 이용한다면, 철민이란 남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죽은 남자의 말투를 떠올리며, 망설임 없이 철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철민이 형, 철민이 형! 이것 좀 열어봐요!”
* * *
오래 지나지 않아 철문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성혁이냐?”
“형! 우리 X됐어요! 3층까지 좀비들 들어왔어요!”
“아까 비명 들리던데. 재욱이는?”
“그 새끼 좀비한테 물렸어요! 빨리 이것 좀 열어줘요!”
“넌 안 물렸어?”
동료의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난 세차게 철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아 빨리! 좀비들 계속 올라온다고!”
“그럼 더 열어줄 수 없지 병신아. 죽을 거면 혼자 죽어.”
하…… 이 새끼 봐라?
채찍질에 반응하지 않으니, 당근을 주며 유혹해야겠다.
“이거 안 열면, 형 진짜 후회할 거예요.”
“내가 왜.”
“저 식량이 있는 곳 알아요.”
“…….”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고민하는 건가?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기 위해 세차게 발을 구르며 얘기했다.
“아 빨리!”
“어디 있는데.”
“신학생회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어제 김희연 따라서 밖에 나갔다 왔어요. 거기 식량 더럽게 많아!”
“네가 밖에 나갔다 왔다고?”
“아이 씨, 형은 선영이랑 떡이나 치고 있으니 당연히 몰랐겠지! 빨리 이것 좀 열어달라고!”
선영이란 이름까지 나오자, 철문 너머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선영이란 여자는 살아 있는 건가?
최대한 다급해 보이도록 계속해서 철문을 두드리자, 철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새끼야 철문 그만 두드려! 좀비들 여기까지 부를 생각이야?”
“씨X! 그럼 나도 넣어달라고!”
철컥.
귓바퀴를 스치는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왼손으로 세차게 철문을 열어젖혔다.
상황을 살필 새도 없이 오른손으로 헌팅 나이프를 치켜들었다.
도끼눈을 뜨고 옥상으로 들어서자, 천 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철민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오른팔을 향해 헌팅 나이프를 휘둘렀다.
서걱-
“끄아아아악!!”
철민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선혈이 낭자하는 오른팔을 부여잡았다.
공포에 질린 표정.
공황에 빠진 몸짓.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칼자루로 철민의 안면을 가격했다.
철민의 콧대가 내려앉으며 눈이 풀렸다.
순식간에 철민을 제압하고, 옆에 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선영이란 여자는 놀란 듯이 입을 벌린 채 전신을 벌벌 떨고 있었다.
도깨비라도 본 것처럼 내 얼굴을 응시한다.
“앉아.”
앉으라는 말 한마디에 선영은 풀썩 주저앉더니,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아다.
제압할 필요도 없겠다.
지금 죽일까?
아니, 이렇게 허망하게 죽일 순 없지.
더는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복부를 헌팅 나이프로 쑤시는 그 더러운 감촉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난 기절한 철민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내려갔다.
계단을 지키고 있던 전완수는 내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뭐야, 그 남자가 철민이야?”
“나중에 얘기해. 위에서 여자 내려오면 붙잡고.”
전완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한 철민의 아킬레스건을 끊었다.
그러자 철민은 감았던 두 눈을 뜨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크르르르르…… 크어어어!
저 멀리, 반대편 복도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밖에 있는 좀비들은 거리가 있어서 비명을 못 듣지만, 휴게공간에 있는 좀비들은 비명을 들었을 것이다.
통유리 너머에 있던 네 마리의 좀비가 반응하고 있다.
철민은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다짜고짜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야, 야! 살려줘, 살려줘!”
애걸복걸하는 철민의 모습에 짜증이 몰려왔다.
살려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저 더러운 주둥이로, 인간의 살점이 들어갔겠지?
“내가 왜?”
“나도, 나도 생존자라고!”
“너 생존자 아니야.”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철민에게 발길질을 가하고, 반대편 복도를 살폈다.
챙그랑!
뒤이어 통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복도를 내달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난 철민을 버려두고 다급히 계단을 뛰어올랐다.
철민은 아킬레스건이 잘려서 그런지,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비명만 질렀다.
대략 3층까지 올라왔을까?
“끄아악! 으아아아아!”
1층에서 산 채로 살점을 물어뜯기는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 * *
철민을 처리하고 3층으로 돌아오자, 전완수와 함께 있는 선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탈출하는 과정에 전완수에게 붙잡힌 모양이다.
선영은 내 얼굴을 보고 기겁을 하더니, 다짜고짜 내 손을 잡으며 얘기했다.
“고, 고맙습니다!”
“……예?”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저도 저 개새끼들한테 붙잡혀 있었어요!”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이미 다 알고 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신은 안 먹었어?”
“무, 물론이죠! 나도, 나도 피해자라니까?”
“김희연 알아 몰라.”
“김희연? 희연이! 희연이 알지! 내가 얼마나 친한데? 희연이, 희연이는…….”
대답 대신 선영을 노려보자, 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선영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더니, 초점 잃은 눈으로 내게 물었다.
“당신이 김희연을 어떻게 알아?”
“김희연이랑 같이 왔으니까.”
선영은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굳은 모습을 보이더니, 양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으며 얘기했다.
“나 잘해. 응? 기분 좋게 해줄게.”
난 선영의 손길을 세차게 뿌리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이런 미친…….
무섭다.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머리가 쭈뼛 섰다.
좀비를 마주할 때와는 또 다른 공포.
지금껏 선영이란 여자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안 봐도 훤했다.
전완수는 선영과 내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재형아, 이 여자는 어떻게…….”
“내버려 둬.”
“여기에?”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해.”
매몰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박쥐 같은 여자다.
옮기는 곳마다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존재.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여자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믿고 등을 맡기겠는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피해자로 보이지 않았다.
선영은 내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찰음에 가까운 날카로운 소리에 고막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난 칼자루를 고쳐 쥐며 미간을 찌푸렸다.
“안 닥쳐?”
“뭐 이 씨X놈아!”
“철민이 따라갈래?”
“죽여, 그냥 나도 죽여!”
손에 쥐고 있던 칼자루로 선영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선영은 눈을 까뒤집더니, 그대로 지면에 쓰러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때릴 생각은 없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내 일행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기에 시끄러운 입을 닫아야 했다.
난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여원이랑 김희연 씨는?”
“많이 괜찮아졌어.”
“더 늦기 전에 이동하자. 해 떨어지면 움직이기 힘들어.”
전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여원과 김희연이 있는 강의실로 들어갔다.
뒤이어 설여원과 김희연이 밖으로 나오고, 둘은 덤덤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김희연은 내 뒤에 있는 선영을 쳐다보더니, 눈을 흘기며 내게 물었다.
“다 끝난 거예요?”
“네.”
“저 여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여기 버려두고…….”
내가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선영은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김희연의 다리에 매달렸다.
“희연아, 희연아 언니 알지? 우리 학교 다닐 때 좋았잖아.”
“그래서 소정이를 때렸어요?”
“뭐?”
“저랑 소정이가 먹기 싫다고 했을 때, 깔보면서 웃었잖아요.”
“아니 그건…… 그때 상황이 어쩔 수 없었잖아? 사람이 어떻게 올곧게만 살아? 융통성이 있어야지! 안 그래?”
김희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융통성 있게 여기서 살아남아 봐요.”
“이, 이이 X년아! 이젠 네 세상 같지?”
“…….”
“혼자 고귀한 척 다하지? 내가 모를 것 같아? 괜찮은 놈 물었다고 고개 치켜뜨는 거 봐라? 응?”
김희연은 선영의 말을 듣고 안쓰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미련까지 지워주시네요.”
선영은 김희연의 말을 듣고 어벙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돌변하며 얘기했다.
“아, 아니 아니. 희연아 미안해. 언니가 잘못했어. 언니가 또 선 넘었지? 아…… 아아! 미안해 진짜!”
“가요.”
김희연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반대편 복도로 걸어가는 동안, 등 뒤로 선영의 오열이 들려왔다.
곁눈질로 뒤를 돌아보자, 선영은 우리를 뒤따라오지도 못하고 절규와 같은 욕설만 내뱉고 있었다.
본인도 아는 것이지.
물과 기름처럼, 우리의 성질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걸.
* * *
학생회관에 도착하자, 어느새 서쪽 하늘 너머로 노릇노릇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설여원과 전완수는 피곤한 안색으로 동아리방에 들어서며 라꾸라꾸에 누웠다.
이정우가 그들을 불렀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침대에 누운 채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정우는 당황스러운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입 모양으로 왜, 라는 물음을 던졌다.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흐렸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하나하나 설명할 기운이 없다.
너무 지쳤고,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질문을 잇지 않았다.
정진영과 최현, 그리고 윤혜리까지 우리의 눈치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현장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우리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모양이다.
김희연은 방문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옆에 있는 사진동아리로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소리결로 들어가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이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 들어오고 뭐 해요.”
“네? 아…… 저…….”
“들어와요.”
방문을 열어주자, 김희연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소리결 동아리방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귓바퀴를 간질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울먹임이 섞인 목소리였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벼운 목례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