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31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77화
이정우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곧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재형이를 의심하기보다…… 사실 무서운 것 같아.”
“뭐가.”
“이제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거기에 우리가 기다리던 게 없을까 봐.”
이정우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정진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리가 기다리던 게 있어?”
“평온.”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이정우의 소망에, 정진영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정우는 허망한 표정으로 본인의 양손을 쳐다봤다.
너무 많은 피를 묻혔다.
아무리 씻어도 피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흡연자의 몸에서 니코틴 찌든 내가 나는 것처럼, 이정우의 몸에도 비릿한 피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정우가 우수에 젖은 눈을 하자, 정진영은 대답 대신 모닥불을 쳐다봤다.
뒤이어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뭐가 걱정이야.”
“…….”
“우리가 다 같이 있는데, 당연히 돌아갈 수 있지.”
정진영은 인벤토리를 열고 어쿠스틱 통기타를 꺼내더니, 6개의 줄을 조율하며 얘기했다.
“자, 형이 한 곡 뽑아줄게.”
“형은 무슨.”
정진영은 손가락을 풀며 심호흡하더니, 탭핑 하모닉스와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마츠이 유키의 Friend라는 곡이었다.
* * *
김포공항 정리를 마친 수색대가 돌아오고, 소리결과 공격대 파티원들은 63빌딩 1층에 모였다.
회의의 주된 안건은 당연히 세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시드볼트로 이동해야 하기에, 비행기에 탑승할 플레이어를 선정했다.
파티 압구정과 호수공원, 망원시장의 플레이어들이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이를 박재형이 거절했다.
“시드볼트는 저랑 여원이, 완수, 현이, 재우, 덕록이, 그리고 진영이 형이 갑니다.”
처음에는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박재형의 설명을 듣고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좀비를 처리하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다.
씨앗을 챙기러 이동하는 것이고, 아크를 지킬 수비 인력이 필요했다.
박재형은 혹시 모를 진화 변종을 상대하기 위해 탑승해야 하고, 독 안개 제거기가 파괴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설여원과 전완수가 탑승한다.
생존자, 혹은 대장 좀비를 만나면 속내를 알아내기 위해 최현이 있어야 하고, 조종사와 부조종사로 박재우와 황덕록이 함께 간다.
그리고 부상자를 대비하기 위해 정진영도 있어야 한다.
아크에 수비 인력이 필요한 이유는 낮에 있었던 일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5단계 변종은 아크 내에서 10분이나 난동을 부렸다.
이는 4단계도 3분 이상 버틸 수 있다는 게 기정사실이었다.
변종을 저지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남아야 한다.
이정우는 모든 설명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여기서 수비 강화하고 저지선 구축하고 있을게.”
“네, 늦어도 5일 이내에 돌아올게요.”
“이동 시간만 합쳐도 이틀이야.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출발은 어떻게, 지금 당장 하는 거야?”
“아니요.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박재형이 박재우를 쳐다보자, 박재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뜨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는데, 착륙이 문제에요.”
“하긴, 유도선도 안 들어올 테니.”
이정우가 이마를 긁적이자, 박재우의 설명이 이어졌다.
“항공유는 최대한 채워둔 상태지만, 혹시 모르니 헬싱키에서 다시 한번 채우고 이동할 겁니다.”
“헬싱키? 핀란드?”
“네, 핀란드죠.”
“한 번에 갈 수 있나?”
“가능합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비상상황도 이미 생각해뒀어요.”
“어떤 비상상황?”
“활주로 상황을 알 수 없잖아요. 관제탑이랑 연락도 안 되는데.”
박재우의 설명에 이정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박재우는 머릿속으로 지형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헬싱키에 착륙할 수 없는 상황이면 스톡홀름, 거기도 위험하면 덴마크나 독일, 네덜란드로 들어갈 거예요.”
“차라리 더 올라가서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로 바로 들어가는 게 안전하지 않아?”
“물론 그 일대 공항도 전부 확인해야죠. 곧장 노르웨이 트롬쇠 공항으로 갈 수도 있고요.”
“트롬쇠? 그런 곳도 있어?”
“예전엔 스발바르 제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항공편이나 배편이 트롬쇠에 있었어요.”
박재우의 말에 이정우는 콧잔등을 긁적이며 물었다.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백두대간 수목원에 적혀 있었어요. 시드볼트에 대한 설명에 스발바르 제도와 트롬쇠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거든요.”
박재우의 말에 주변에 있던 일행은 낮게 탄성을 뱉었다.
박재우는 남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것도 꼼꼼하게 확인하는 성격이었다.
이정우는 모든 설명을 듣고 현재 시각을 살피며 얘기했다.
“그럼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은데, 이동하는 사람들은 다른 생각 말고 푹 자. 순찰은 우리가 돌 테니.”
어느새 아크의 모든 권한이 소리결의 손에 들어왔다.
식사와 불침번, 경계 범위와 구역, 인원수까지 이정우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월과 진선균, 최이경도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이다.
소리결의 의견에 따르는 게 최선이라는 걸 말이다.
* * *
여명이 밝아올 무렵,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시큼한 겨울 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었다.
옷소매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코를 훌쩍이며 패딩을 걸쳤다.
입구에서 5분 정도 기다렸을까?
결인들과 공격대원들이 밖으로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벌써 나왔어? 6시에 모이기로 했잖아.”
“잠이 안 와서.”
설여원의 물음에 간략하게 대답하고, 모든 플레이어에게 얘기했다.
“저희가 없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이정우는 인벤토리를 열고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정사각형 모양의 붉은색 봉지를 건네주었다.
5개입 라면 봉지였다.
그것도 10봉지나 되었다.
“가서 한국이 그리우면 끓여 먹어.”
“너무 많은데요?”
“남으면 가져와. 뭐든 부족한 것보단 넉넉한 게 좋잖아.”
이에 싱겁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고, 여의도역 방면을 쳐다봤다.
“부모님께 얘기 안 하고 가도 되겠어?”
이정우의 물음에, 이마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다녀와서 얘기하는 게 좋겠죠.”
그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2번 게이트로 향했다.
씨앗을 챙겨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 * *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밤새 공항을 지킨 안상진과 그의 수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상진은 기지개를 켜며 얘기했다.
“일찍 왔네? 잠은 푹 잤어?”
“가는 길에 푹 자면 돼요.”
“하긴, 아무리 직항이라도 최소 10시간은 가야 할 거야.”
“밤새 김포공항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어제 델타 변종 처리한 뒤로 너무 조용해서 심심할 지경이었어.”
안상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길목을 막아서고 있던 수하들이 좌우로 갈라서며 길을 열어주었다.
안상진의 호위를 받으며 활주로로 이동하자, 어젯밤 준비한 항공기가 두 눈에 들어온다.
“조심해서 다녀와.”
“네. 돌아올 때까지 잘 부탁드려요.”
안상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가볍게 목례하며 비행기로 향하는 찰나.
“아 참, 재형아!”
등 뒤로 안상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그는 내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며 얘기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변종 조심해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특히 변종 에덤.”
변종 에덤?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안상진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얘기했다.
“외국은 한국이랑 달라. 100만은 고사하고 10만 명 이상 거주하는 동네가 그리 많지 않거든.”
“알아요. 오히려 안전해서 좋은 거 아니에요?”
“다른 변종은 몰라도, 변종 에덤은 조심해야지.”
“……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멍한 표정을 짓자, 안상진은 눈꼬리를 치켜뜨며 되물었다.
“혹시…… 너 모르는 거야?”
“어떤 거요?”
“변종 에덤의 진화 조건.”
안상진은 아는 건가?
이에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네가 모를 줄은 몰랐네.”
“알려주세요. 조건이 뭐예요?”
“한계 돌파를 못한 에덤이 감염되면 변종 에덤이 돼.”
“그게 1단계에요?”
“맞아, 에덤의 한계를 돌파 상태에 따라 진화 단계도 달라져.”
그럼 한계 돌파를 한 번 하면 2단계, 두 번 하면 3단계, 이런 식이라는 건가?
3단계 변종 에덤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안상진은 이걸 어떻게 아는 거지?
아니지, 인구 천만의 대도시에서 지금껏 성장한 사람이다.
어쩌면 아는 게 당연했다.
안상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시작한 동네가 경산이라고 했지?”
“네. 금호강 위쪽이요.”
“인구가 적다는 건 좀비도 적다는 거고, 다른 캐릭터들이 서포트만 잘 해주면 에덤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어. 너처럼.”
“…….”
“외국은 더 성장하기 좋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3단계 이상을 만날 수도 있으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편인데 알려줘야지.”
같은 편.
그 말이 고맙게 느껴졌다.
안상진이 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뒤이어 박재우와 황덕록이 기장실로 향하고, 다른 사람들은 빈 좌석에 듬성듬성 앉았다.
창밖을 바라보자, 양팔을 번쩍 들고 좌우로 흔드는 안상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가볍게 손짓하며 그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모든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안상진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아직 확신이 없기에, 따로 얘기하진 않았다.
괜히 희망 고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에스파디아의 힘을 모조리 흡수한다면, 시스템도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다른 대장 좀비는 몰라도, 안상진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소리결 항공을 찾아주신 승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뒤이어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박재우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우리 비행기. 6시 10분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헬싱키로 가는 시드볼트편 소리결 항공기입니다.
“저 자식 신났네.”
전완수가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옆에 있던 최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좋잖아? 진짜 여행가는 기분도 들고.”
-기내가 다소 흔들릴 수 있으니, 안전벨트 등이 꺼지기 전까지 이동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심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스발바르 제도로 가는 게 아니라, 정말 여행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희 비행기, 출발합니다.
뒤이어 거친 엔진소리와 함께 활주로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비행기를 운항해 본 적 없는 박재우와 황덕록.
하지만 두 사람의 실력은 경험 많은 기장이라 해도 믿을 만큼 능숙했다.
이게 로즈의 능력인가?
서서히 비행기가 뜨고, 장기가 꿀렁이는 느낌과 함께 부유감이 느껴졌다.
창밖을 바라보자, 어느새 안상진은 하나의 점처럼 보였다.
여의도 반경 400m를 제외한 모든 곳에 독 안개가 퍼져 있었다.
이번 여정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예전의 깨끗한 지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응? 야, 저거 뭐냐?”
그 순간, 반대편 창가에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왜.”
“이리 와서 저거 봐봐.”
전완수가 창밖을 가리키기에, 그의 옆으로 다가가 바깥 상황을 살폈다.
자그마한 점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비행기를 따라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이에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자, 앞 좌석에 있던 설여원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욕설을 읊조렸다.
“미친……!”
“어?”
설여원은 안전벨트를 풀고 황급히 기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어젖히더니,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속도 높여!! 아니, 고도 높여!!”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황덕록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설여원은 창밖을 가리키며 외쳤다.
“존나 큰 새가 쫓아온다고!!”
설여원의 말에 모두가 석고상처럼 굳은 모습을 보였다.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감염된 동물에는 새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