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37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83화
칼끝을 내지르자 70㎝가량 쑥쑥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콘크리트도 쪼개는 칼날이기에, 얼음 정도는 쉽게 뚫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드레스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재료로 만든 칼이냐고 묻네요.”
“이거요?”
“네, 일반적인 철이 아닌 것 같다고.”
김명석이 통역해 주기에, 열심히 칼질하며 라스트아크에 대해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마치자, 안드레스는 두 눈을 빛내며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홀로그램을 확인하는 것 같다.
소용없을 텐데?
무장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코인으로는 로그나이트 500g도 구매할 수 없다.
노르웨이 플레이어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더니, 이전과 다른 눈으로 우릴 보기 시작했다.
경계심이 아니라, 경외심이 담긴 눈빛이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카타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좀비를 죽였는지, 이제야 계산이 서는 모양이다.
또한 우리가 칼을 내지르는 속도도 일반인 수준이 아니었다.
굴착기가 땅을 파는 것보다 우리가 눈을 부수고 손으로 치우는 게 더욱 빠르다.
1배속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결인들은 10배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으 씨, 추워서 손도 안 움직이네.”
옆에서 전완수의 투정이 들려왔다.
10배속으로 움직이는 것도 추위로 인해 느려진 속도였다.
쿵!
오래 지나지 않아 칼끝이 거대한 문에 닿는 촉감이 느껴졌다.
살짝 뚫고 들어간 것 같은데, 상관없겠지?
뒤에 있는 시몬을 쳐다보자, 그는 황급히 내 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든 문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경첩이 얼어붙은 건지, 혹은 잠겨서 그런지 도통 열릴 기미가 없었다.
시몬이 곤란한 표정을 짓기에, 뒤로 가라고 손짓했다.
설여원은 한 차례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부수고 들어가려고?”
“다른 방법이 없잖아.”
문 두께부터 상당한 것 같다.
빈틈으로 카타나를 내지르자, 상당히 단단한 압력이 느껴졌다.
강화 콘크리트가 섞여 있는 건가?
톱질하듯이 열심히 움직였지만, 속도가 영 붙지 않았다.
이에 카타나는 칼집에 넣고, 건틀릿을 착용했다.
이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노르웨이 플레이어들.
안드레스는 수염에 붙은 얼음 결정을 털어내며 얘기했다.
“들어갈 방법이 없다고, 일단 공항으로 들어가서 몸부터 녹이자고 그러네요.”
김명석의 통역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면 그만입니다.”
괜스레 오혜선과 한민욱의 얼굴이 떠올랐다.
씨앗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게 그들의 임무라고 했던가?
종자 저장고를 지켜야 하는 시몬에겐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소리결 방식으로 간다.
주먹을 말아쥐자, 김명석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얘기했다.
“어어! 손목 나가요! 노르웨이 시드볼트는 강도 6.5 지진도 버틸 수 있도록 지어진…….”
“가속, 핀치.”
쾅-!!!!!
고막을 울리는 소리에 노르웨이 플레이어들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뼈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굉음.
하지만 내겐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생각보다 문이 견고하다.
경첩이 살짝 틀어진 것 같지만, 여전히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럼 열릴 때까지 쳐야지.
쾅-!! 쾅!! 쾅!! 쾅-!!!!
-최후통첩 효과가 생성됩니다.
-최후통첩은 6회부터 3배의 공격력을 부여합니다.
최후통첩까지 발동되자, 양손으로 묵직한 압력이 전해졌다.
열리지 않으면 부수리라.
꽝-!!!!
견고하게 버티던 문짝에 다이너마이트라도 터뜨린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휘오오오오오-
깨진 틈으로 귀곡성에 가까운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노르웨이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넋 나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Sinnssyk…….”
김명석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당신 보고 제정신 아니래요.”
일주일 뒤에 지구가 멸망하는데 누가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살아남을 방법이 있으면 무슨 수라도 써야지.
어두컴컴한 내부.
깊이를 알 수 없는 기다란 복도가 두 눈에 들어온다.
시몬은 마른침을 삼키며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손전등을 켜며 얘기했다.
“Come.”
간단한 영어와 함께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시몬을 따라 들어가며 옆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사람들 호위해 줘.”
일행은 파티 오로라와 김명석을 감싸는 형태로 복도를 거닐었다.
빠득-
그 순간, 귓가를 간질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 파편을 지르밟는 소리.
복도의 특성상 소리가 울리기에, 정확한 거리나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에 시몬을 옷깃을 쥐고 내 뒤로 보냈다.
그는 파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김명석 씨, 열쇠 보관함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봐 주세요.”
김명석은 잔뜩 긴장했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통역했다.
“50m만 더 들어가면 좌측에 길이 있대요. 거기 열쇠 보관함이 있다고 합니다.”
김명석의 대답을 듣고 슬쩍 뒤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다들 여기서 기다려요.”
일행을 복도에 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감지.”
-8분 동안 50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시몬의 말대로 50m 앞에서 움직이는 자줏빛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덩치로 보아 알파2.
발소리를 죽인 채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저, 저 친구 괜찮은 겁니까?”
김명석은 안절부절못하며 결인들에게 물었다.
반면에 설여원은 칼자루를 말아쥐며 태연하게 얘기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되도록 조용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예?”
“다른 소리가 섞이면 위치 파악하기 어려워요.”
“지금 뭐가 들린다고…….”
설여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김명석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합죽이가 된 채 숨까지 참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와 최현까지 설여원의 옆에 붙고, 박재우와 황덕록, 정진영이 후방을 담당했다.
그 순간.
쾅-!!!!
복도를 울리는 굉음.
노르웨이 플레이어들과 김명석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천장에서 고드름이 떨어지고, 넓은 복도의 좌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뭐, 뭐뭐 뭡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김명석이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듯이 묻자, 설여원은 코인 메시지를 확인하며 얘기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20코인이 지급됩니다.
“잡았네요.”
“예? 뭐, 뭐를요?”
“변종 잡았다고요.”
터벅- 터벅-
뒤이어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시몬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복도 끝을 향해 불빛을 비추었다.
데구르르르-
바닥을 굴러오는 무언가.
시선을 내리자, 그곳엔 알파2의 머리가 있었다.
* * *
“정리됐습니다. 가시죠.”
멍하니 서 있는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하자, 설여원은 이마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건 왜 가져왔어?”
“보여줘야 안전하다고 믿을 것 같아서.”
설여원은 뒤에 있는 노르웨이 플레이어들을 쳐다보더니, 금세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르웨이 플레이어들은 다들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흐이익!”
김명석이 변종의 머리를 보고 호들갑을 떨자, 설여원은 오른발을 치켜들며 그대로 변종의 머리를 으스러뜨렸다.
“가시죠.”
설여원이 가자고 손짓한 뒤에야 석고상처럼 굳어 있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노르웨이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알파 변종.
그런 변종을 주먹으로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
안드레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
설여원은 슬쩍 뒤를 돌아보자, 김명석이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통역했다.
“이제 알겠답니다.”
“뭐를요?”
“어제…… 전완수 씨가 왜 박재형 씨 보고 괴물이라고 했는지.”
김명석이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헤벌쭉 웃으며 얘기했다.
“거봐요.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요.”
“혹시…… 여러분도 변종을 주먹으로 잡아요?”
“어휴, 우린 저렇게 야만적으로 안 싸워요. 아주 야만인이야 야만인.”
전완수가 호쾌하게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김명석은 전완수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바, 박재형 씨 듣겠습니다. 그런 막말은…….”
내 눈치를 보는 건가?
그러자 전완수는 깐족거리며 얘기했다.
“어휴 괜찮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괴물이에요.”
“예에?”
하긴, 일행의 기본 신체 능력이 376이다.
내가 아무런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을 때 381인 것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일행은 레이첼 버프가 적용되기에, 강화제 알약을 먹지 않아도 추가 능력치로 (+676)이 추가된다.
즉, 강화제 알약을 먹지 않아도 평상시에 1052의 신체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면 내가 일행보다 약한 수준.
김명석이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자, 이번엔 옆에 있던 설여원이 얘기했다.
“시답잖은 농담하지 말고 집중해.”
전완수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어깨를 으쓱였다.
반면에 김명석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온 겁니까.”
그러자 뒤따라오던 박재우가 대답했다.
“한국은 생지옥이었어요.”
“…….”
“지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쩌겠어요. 괴물이 돼야지.”
의도적으로 강해진 게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어느새 강해진 거지.
결인들은…… 상황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 * *
추운 날씨를 이용해서 자연친화적으로 설계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종자 저장고의 구조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몬을 따라 이동하며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이 건물에 대피하지 못한 생존자는 없었나요?”
김명석은 내 뒤에 바짝 붙으며 통역을 도와주었다.
“탈출하지 못한 사람이 몇 명 있긴 한데, 감염 여부는 모르겠답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입구부터 변종이 있는데 생존자가 있을까? 지금쯤 굶어 죽거나 좀비로 변했겠지.”
“좀비로 변했다면 다른 변종으로 진화했을지도 모르겠네.”
전완수도 거들었다.
일행의 말이 맞다.
공명 좀비로 변이된 사람이 있다면 베타, 감마, 델타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스킬 감지의 지속시간이 1분도 남지 않을 동안, 그렇다 할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참이나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커다란 문짝이 벽 전체를 가리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시몬은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얘기했다.
“이 너머가 저장고로 이동하는 복도래요. 또 다른 변종이 이 안에 있으니, 다들 집중하라고 하네요.”
김명석의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안에 변종을 어떻게 가둔 겁니까?”
“탈출을 돕던 2명의 플레이어가 있었대요. 한 명은 변종을 유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여기로 들어갔대요.”
“…….”
“다른 한 명도 좀비에게 물린 자국이 있었고요.”
“물린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좀비로 변이되기 전에 시몬에게 도망치라고 했나 봐요. 시몬은 종자 저장고에 동료들을 두고 도망친 거죠.”
시몬의 표정을 살피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 숙이고 있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이에 뒤에 있는 최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확인했던 기억이랑 맞아?”
“어.”
“고의적인 행동 패턴은 있어?”
“없으니까 내가 별말 안 했지. 종자 저장고 빠져나올 때 울면서 빠져나온 기억도 확인했고.”
어젯밤, 모닥불에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통성명과 함께 악수를 주고받았다.
최현은 이들의 기억을 전부 확인했으니, 거짓은 없을 것이다.
뒤이어 최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몬은 스발바르 제도를 탈출하기 직전까지 망설였어. 비행기를 구하고 떠나기 전에 종자 저장고를 다시 한번 확인하러 왔고.”
“혹시라도 동료가 살아 있을까 봐?”
“어, 하지만 시몬이 돌아왔을 때 발견한 건 방금 네가 죽인 변종이었어. 그래서 문을 닫아버린 거야.”
모든 설명을 듣고 시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사람의 감정은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몬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위로에도 눈물이 고인다.
남들에게 말도 못 하고, 홀로 마음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이에 김명석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전해주세요. 저 안에 있는 친구는…… 이제 그만 쉬게 할 테니, 시몬은 정리 끝나면 들어오라고.”
“아, 네.”
김명석이 통역하자, 시몬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는 줄 알았으면 아까 열쇠 보관함에 있던 변종도 내가 알아서 잘 숨겼을 텐데…….
괜히 변종으로 변한 동료의 머리를 보여줬다.
시몬에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것 같아서,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저지른 만행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앞으로 잘해야지 어쩌겠는가.
카타나의 내구도를 확인한 뒤, 시몬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