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50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96화
일행은 박재형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다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거 데자뷰 아니야?”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사람은 전완수였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전완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예전 수성못에 있을 때는 땅에 머리 박으라고 하더니, 이번엔 바다야?”
“지금은 지면의 진동을 감지하잖아. 바다에 빠져야 아무것도 못 하지.”
그러자 설여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바다에 5분 동안 머리 박고 있으면…… 익사하는 거 아니야?”
“재형이 신체 능력에 5분이 문제야? 쟤 30분도 참을걸?”
최현의 대답에 정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좀비화 중에는 체력도 무제한이라며? 체력이 무제한이면 폐활량부터 말이 안 된다는 거야.”
설여원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반박 대신 현재 시각을 살피며 물었다.
“좀비화 끝나려면 아직 8분 남았어요. 마리오네트 유지 시간이 5분인데, 남은 3분은 어떡해요?”
“지금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길 바라야지.”
정진영의 대답에 다들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광란이 중첩 발동된 상황이다.
괜히 박재형을 진정시키려다 머리가 날아가는 수가 있다.
최현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아까 좀비들 처리한 건물 옥상에서 재형이 관찰하자.”
“거기서 선착장 안 보여.”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면 우리도 위험해. 당연히 천리안으로 관찰해야지.”
“아.”
다들 최현의 의견에 동의했다.
선택지가 없기에, 결인들은 좀비와 변종의 시체가 산처럼 쌓인 건물로 향했다.
그곳 옥상에서, 설여원은 천리안을 사용하고 박재형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반응 없어?”
최현이 묻자, 설여원은 천리안으로 박재형을 관찰하며 대답했다.
“좀비화 끝날 때 됐는데, 여전히 물속에 머리 넣고 있어.”
“로봇이야 뭐야? 물속에 들어갔다고 진짜 고장이라도 난 거야?”
“지금은 재형이도 좀비나 다를 바 없잖아.”
“대체 좀비나 변종들은…… 왜 물만 보면 저렇게 고장 나는 거지?”
“혹시 그런 거 아닐까? 물속에 있으면 청각 시각, 후각이 마비되잖아.”
“아, 그런 건가?”
설여원은 계속해서 박재형을 관찰하더니, 뒤이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가자, 좀비화 끝난 것 같아.”
“확실해?”
“확실해. 어깨에 힘이 빠졌어.”
옥상에 있던 결인들은 설여원을 따라 선착장으로 향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유유자적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박재형의 육체가 바다를 표류하고 있었다.
설여원은 황급히 물속으로 들어가 박재형을 끌고 나왔다.
정진영은 맥박부터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후…… 살아 있어.”
“기절한 거예요?”
“광란 중첩 사용했으니 당연히 기절하지. 재생도 많이 사용한 것 같은데.”
박재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더니, 이마를 긁적이며 물었다.
“광란 중첩 사용에 재생까지 남발했다면…… 최소한 10시간은 기절할 것 같은데, 이제 어쩌죠?”
박재우의 물음에 황덕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선착장에 있는 거대한 요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야, 재우야. 저거 어때?”
“응?”
“재형이가 회피하는 대신 대놓고 싸운 이유가 저 요트 때문인 것 같아서.”
족히 300명은 탈 수 있는 거대한 요트.
요트라고 해야 좋을지, 유람선이라고 해야 좋을지 모를 모호한 크기였다.
박재우는 요트로 들어가 상태를 확인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결인들을 불렀다.
“상태 좋다! 이거 타고 가면 되겠어!”
전완수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얘기했다.
“됐네.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그대로 태워서 가면 되겠네.”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한 사람, 황덕록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야, 만약 재형이 기절한 사이에 바다에서 문제 생기면 어떡해?”
“무슨 문제?”
전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황덕록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감염된 바다 생물이라도 나오면 위험하잖아.”
“물은 감염된 동식물이나 좀비, 변종한테 독이야.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런가?”
“당연하지. 무슨 걱정한 거야?”
“뭐…… 크라켄처럼 거대 오징어라도 나오면 어쩌나 해서.”
“크라켄이 오징어냐?”
“문어야?”
“나도 몰라.”
“…….”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설여원은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얘기했다.
“시답잖은 얘기 그만하고 일단 돌아가자.”
“요트는 안 가져가?”
황덕록이 묻자, 설여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바다랑 육지도 구분 안 되는데 지금 항해할 수 있어?”
“……그건 그렇네.”
“돌아가서 일단 쉬고, 재우랑 덕록이는 볼트도 다시 만들어줘. 너무 많이 잃었어.”
바다에서 감염된 새들을 처리하며 1레벨에서 3레벨 사이의 볼트를 너무 많이 잃었다.
건물 옥상에서 감마 변종을 처리하며 사용한 볼트는 일부 회수했지만,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코인도 많이 얻었으니, 이번 기회에 부족한 볼트를 확보해야 한다.
전완수가 박재형을 등에 업고, 결인들은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
* * *
“헉!”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얼얼한 뼈마디가 이곳이 현실임을 말해준다.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한 차례 심호흡을 통해 놀란 마음을 가다듬었다.
꿈을 꾼 것 같다.
그것도 지나치게 현실적인 악몽을.
꿈속에서 거대한 양손 도끼를 들고 있는 적과 싸웠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행성이었고, 누군지도 모를 적과 사활을 걸고 싸우는 꿈이었다.
적의 이름을 들은 것 같은데……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그곳에 있다가, 눈을 뜨면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해야 좋을까?
마치 호접몽이라도 꾼 것처럼,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했다.
대체 무슨 꿈이지?
왜 나를 죽이려고 한 거야?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뒤늦게 낯선 방 안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그란 형태의 창문이 보이기에, 게슴츠레 풀린 눈을 비비며 창밖을 살폈다.
이건…… 배?
기절할 때만 해도 저녁이었는데, 어느새 밝아온 태양과 출렁이는 파도가 두 눈에 들어온다.
“뭐야, 여기 어디야.”
혼잣말을 읊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딸깍.
방문이 열리며 설여원이 들어왔다.
“재형아!”
“설여원, 여기 어디야.”
“너 괜찮아?”
“응?”
“꿈에서 에스파디아 만난 거 아니야?”
“에스파디아?”
갑자기 에스파디아가 왜 나와?
기절했다고 해서 무조건 에스파디아를 만나는 게 아니었다.
멍하니 설여원을 쳐다보자, 뒤이어 들어오는 최현도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최현은 내 모습을 보고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너 괜찮아?”
일행이 반응이 평소와 다르다.
하도 기절하는 일이 많아서 무덤덤해진 일행이, 지금은 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최현은 다짜고짜 내 팔뚝을 잡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내 기억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설여원과 최현을 쳐다보자, 설여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너 기절한 동안 식은땀 엄청 흘리고 계속 중얼거렸어. 이상한 이름도 읊조리고.”
“이름? 무슨 이름.”
“그라나다 아우키엘.”
아우키엘?
양손도끼를 들고 있던 놈이 아우키엘인가?
조금 전까지 꿈을 꾸었는데, 적의 얼굴과 이름이 가물가물했다.
설여원은 이마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평소보다 지나치게 안색이 안 좋아서 현이한테 봐달라고 했어.”
“내 기억을?”
“어, 혹시 네 꿈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
“너 막…… 팔다리도 움찔거리고 심하게 뒤척였거든. 에스파디아도 부르고, 이상한 이름도 부르고,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지.”
꿈은 무의식의 영역일 텐데?
데니가 읽을 수 있는 기억은 의식의 영역이지, 무의식까지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너…… 아무래도 에스파디아랑 연결된 것 같다.”
연결?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그러다 문득,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래, 꿈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하지만 에스파디아와 꿈에서 만난 기억을 최현은 읽을 수 있었다.
나 또한 에스파디아와 만났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 무의식이 아니라는 거잖아?
그런데 왜 난…… 적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거지?
이를 최현에게 묻자, 그는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불안정해서 그런지도 몰라.”
“불안정하다니?”
“예를 들면 무전기처럼 말이야. 한쪽이 수신을 보내도, 다른 한쪽에서 못 받기도 하잖아.”
“내가 에스파디아의 기억을 완전히 전송받지 못했다는 거야?”
“그렇지. 아마 수신할 생각이 없었는데, 둘이 연결돼서 에스파디아의 상황이 너한테 전송됐을지도 몰라.”
“아니 그보다…… 내가 왜 에스파디아랑 연결됐는데?”
“이스터에그 가지고 있잖아.”
최현은 설여원의 눈치를 보며 얘기했다.
아, 그래.
이스터에그는 에스파디아가 지닌 마력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를 내게 주었으니, 에스파디아와 내가 연결된 모양이다.
무전기로 같은 채널을 쓰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파디아가 내 꿈속에 찾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구미에서 광란이 처음 중첩됐을 때는 내가 에스파디아의 차원을 찾아갔으니 이 또한 설명이 된다.
멍하니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그라나다 아우키엘, 그리고 인비디아.”
“인비디야? 그건 누구야.”
“네가 얘기한 이름이야. 내가 확인한 기억으로는…… 인비디아가 진짜야.”
“진짜라니?”
“그놈이 사령관이고, 아우키엘은 부하 정도라고.”
최현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나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를 최현이 대신 들여다보고 파악했다.
이에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래서, 그 둘의 계획이 뭐야?”
“뭐겠어. 당연히 지구를 침공하는 거지.”
“…….”
“에스파디아가 아우키엘과 싸우는 꿈을 꿨다는 건…… 꿈이 아닐 거야. 지금 에스파디아랑 아우키엘이 싸우고 있다는 거지.”
최현의 설명을 듣고 반사적으로 멍하니 입이 벌어졌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최현의 설명이 옳은 것 같다.
최현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내가 확인한 기억에서는…… 에스파디아가 밀리고 있었어.”
“에스파디아가 밀려? 아우키엘은 인비디아의 부하라면서? 에스파디아가 부하도 못 이긴다고?”
“지금의 에스파디아는 스스로 마력을 끌어내지 못해. 이스터에그가 없으니까.”
최현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설여원이 옆에 있기에 근원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고 이스터에그라고 했다.
근원이 내게 있으니, 지금의 에스파디아는 스스로 마력을 생성하지 못할 것이다.
지니고 있는 마력을 계속해서 소모하며 아우키엘을 저지하는 것이다.
마력의 형태로 유지되는 에스파디아가 모든 마력을 소진한다면…….
‘사라지는 거야.’
심장에서 아찔한 충격이 느껴졌다.
최현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침공은 처음부터 4일 남은 상황이었고, 에스파디아는 그걸 알면서도 8일이라고 한 것 같아.”
“대체 왜?”
“4일 이내에 우리가 세 번째 에피소드를 끝낼 수 없다는 걸 알았겠지.”
에스파디아는 안개가 퍼진 초기부터 지금까지 소리결의 여정을 지켜보고, 응원했다.
우리의 속도를 알기에, 진실을 얘기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그럼…… 우리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그랬다는 거야?”
“누구보다 인간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존재잖아.”
“…….”
“현실이 너무 암담하면 인간은 무너져. 그래서 희망이 필요한 거고.”
“희망…….”
우리가 입이 닳도록 얘기한 것이고,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온 게 희망이었다.
비록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에스파디아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최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8일은 줘야 우리가 안정감을 가지고 바삐 움직일 거라 생각했겠지.”
“남은 4일은…… 본인 목숨을 걸어서 벌어줄 생각이었다는 거지?”
“그래.”
최현의 말을 듣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먹먹하다고 해야 좋을지 착잡하다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신의 뜻을 이해하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