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74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아슈루의 모성 1화
“뛰어!! 이쪽으로!!”
쾅-!!!
천지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는데, 하늘에서 쏟아진 괴수들은 순식간에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을 파괴했다.
쉴 새 없이 사이렌이 울리고, 아비규환에 빠진 도로 위로 사람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군부대도 소용없었다.
집채만 한 괴수들은 총포에 맞아도 죽지 않았고, 압도적인 크기와 물량으로 모든 군 장비를 파괴했다.
“김민기 빨리와!! 이쪽!!”
홍정연이 소리치자, 흙먼지를 뒤집어쓴 김민기가 여동생들의 손을 잡아끌며 도로를 가로질렀다.
전신에 타박상을 입었음에도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사방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괴물들이 활보한다.
동생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김민기는 두 눈 부릅뜨고 좌우를 살피며 이동했다.
쾅!!!
굉음이 울릴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고막을 찌르는 이명이 이어졌다.
김민기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이 악물고 떨쳐냈다.
동생들이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고, 차마 이성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정신 놓으면 다 죽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악착같이 정신을 다잡았다.
홍정연은 대피안내자가 흔드는 야광봉을 직시하며 김민기를 불렀다.
“사람들 저쪽으로 간다!! 빨리 와!”
“따라가면 안 돼!”
김민기가 소리치자, 홍정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저쪽이 대피소라고!!”
“괴물들이 사람들 쫓아가잖아!! 사람 많은 곳에 괴물도 몰린다고!!”
키리리릭- 키리릭-
귓가를 간질이는 기이한 소리에, 김민기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뒤를 돌아봤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뚫고 2m 크기의 괴물이 기어 나왔다.
거미처럼 생긴 괴물은 김민기를 똑바로 응시하더니,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었다.
김민기는 양손에 잡고 있던 동생들을 홍정연이 있는 곳으로 밀치며 괴물을 응시했다.
빠르다.
인간의 발로는 도망칠 수 없다.
훙-!
괴물의 팔이 김민기의 얼굴로 날아들자, 그는 빠르게 사이드스텝을 밟으며 회피했다.
한때 복싱 유망주였기에, 김민기의 스텝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후후훙-! 훙!
하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괴물의 공격을 인간의 몸으로 모조리 회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민기의 양팔과 허벅지에 생채기가 생기고, 점점 피해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김민기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뒤에 있는 홍정연에게 외쳤다.
“빨리 가!!”
“김민기!!”
“가라고 이 새끼야!!”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는 찰나, 섬뜩한 살기가 김민기의 정수리로 날아들었다.
아차 싶은 마음에 황급히 정면을 살피자, 괴물의 기다란 팔이 단두대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백스텝을 밟았지만, 하필이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뒤꿈치가 걸리고 말았다.
뒤로 넘어지는 와중에도 괴물의 공격 궤도를 살폈다.
점점 가까워지는 괴물의 팔을 보고,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죽음이 다다랐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깨닫자, 고막을 찌르던 이명이 사라지고 정체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에, 그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푹!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대로 김민기의 가슴을 꿰뚫고 나오는 괴물의 팔.
심장을 꿰뚫은 팔을 보고, 김민기는 피를 토하며 괴물을 노려봤다.
“오빠!!”
그 모습을 보고 절망하는 동생들.
둘째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막내는 눈물을 쏟으며 김민기에게 달려왔다.
텁!
홍정연은 막내의 팔을 붙잡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얘기했다.
“가야 돼.”
“놔요, 이거 놔요 빨리!”
“가야 된다고!”
홍정연이 동생들을 데리고 대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민기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뱉었다.
키리릭- 키릭-
하지만 도주하는 동생들을 주시하는 괴물.
이를 파악한 김민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본인의 심장을 꿰뚫은 괴물의 팔을 붙잡았다.
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숨은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았다.
자꾸만 두 눈이 까뒤집힌다.
하지만 보내줄 수 없다.
지금 괴물을 보내주면…… 동생들과 친구마저 개죽음을 당한다.
“넌…… 쿨럭! 너는…… 못 간다.”
즈즈즉-
그 순간, 허공에서 푸른빛의 게이트가 열리며 인간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는 김민기를 직시하더니,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쾅-!!!!
쏜살같이 날아든 인간의 형체는 그대로 괴물을 짓밟았다.
흑백의 갑주를 입고, 기다란 흑도를 쥐고 있는 존재.
전신이 으스러진 괴물은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김민기는 그 자리에 축 늘어지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토했다.
뒤이어 흑백의 갑주를 입고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에스파디아, 아무래도 늦은 것 같은데요.”
* * *
유럽 정리를 마치고 아슈루의 행성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좌표가 틀리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지만, 도착해서 보니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폐허로 변한 도시.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아비규환에 빠진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또한 굉음과 함께 들려오는 마물들의 울음소리는 참혹한 현장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마물과 싸우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물에게 심장이 꿰뚫린 채 죽어가는 남자와 울부짖는 두 명의 여자.
그런 여자들을 억지로 데려가는 남자.
굳이 묻지 않아도, 그들의 관계를 알 것 같았다.
친한 친구, 혹은 가족이겠지.
그럼…… 일단 마물부터.
훙-!
공기를 박치며 쏜살같이 마물의 정수리를 짓밟았다.
쾅-!!!!
마물의 죽음과 동시에 심장이 꿰뚫린 남자가 종이 인형처럼 엎어졌다.
“에스파디아, 아무래도 늦은 것 같은데요.”
‘아직 늦지 않았어. 아슈루의 마력이 느껴진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말이냐.’
“서로 다른 두 개의 마력이 공기 중에 퍼져 있어요. 아슈루의 마력과 언노운의 마력.”
‘그게 왜.’
“아슈루의 마력이 너무 잘 느껴져서 이상한 거 아니에요? 공기 중에 이 정도 마력을 쏟고 육체를 유지할 수 있어요?”
‘…….’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섣부른 판단 대신 공기 중의 마력을 파악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설마 아슈루 이놈…….’
“왜요. 뭡니까.”
‘정말 이것이 최선이란 말이냐…….’
탄식이 느껴지는 에스파디아의 목소리.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혼자만 알지 말고 설명 좀 해줘요. 뭔데요.”
‘아무래도 아슈루는…… 이미 육체를 잃은 것 같다.’
“예전 에스파디아, 당신처럼요?”
‘이 정도 마력을 개방했다면 마력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본인의 마력을 모성에 뿌린 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왜 그런 선택을 해요? 그렇게 하면 언노운을 막을 수 있어요?”
‘이 행성의 생명체들이 마력에 친숙해지기를 바란 거지.’
마력에 친숙해져?
생명체들 스스로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를 바랐다는 건가?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들었는데.
그러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시스템을 만든 것처럼, 아슈루도 본인의 방식으로 모성의 생명체를 지키려고 한 거야.’
“썩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네요. 모두를 살리려다 모든 걸 잃은 것 같은데.”
‘맞아. 허황된 이상일 뿐이다. 언노운의 침공이 임박한 마당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과정은 좋은 선택이 아니야.’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거네요.”
‘아슈루는 그런 친구였지. 재능이 많지만 몽상가 같은 기질이 있었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극단적인 방안을 선택한 에스파디아가 옳았고, 모두를 살리려고 했던 아슈루가 틀렸다니.
“일단…… 여기 있는 마물들 전부 처리하면 되죠?”
‘마물도 마물이지만 뭔가 이상해. 너도 느꼈겠지만…….’
“네 알아요. 이 행성, 인비디아처럼 압도적인 마력이 안 느껴져요.”
인비디아가 강림했을 때는 전신의 털끝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은 언노운 특유의 이질적인 마력은 느껴지지만, 압도적인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곧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어딘가에 피그리티아의 종속들이 있을 게야.’
“종속이요? 인비디아를 따르던 대장 같은 놈들이요?”
‘맞아, 그놈들을 찾아서 기억을 확인해라. 그놈들을 잡으면 피그리티아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오케이, 그럼…….”
하체를 접으며 뛰어오르려는 찰나.
“저기요!”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았다.
뒤를 돌아보자,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여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저희 오빠 좀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요.”
“예?”
“성당도 자주 가고 예배도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 제발, 제발 저희 오빠 좀 살려주세요. 제발…….”
지금…… 내가 신인 줄 아는 거야?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애걸복걸하던 여자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얘기했다.
“부, 불교? 아, 서, 성당 말고 절, 사찰! 열심히 갈게요. 108배도 하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아니 그만, 진정해요.”
뭐야, 사람이랑 너무 똑같이 생긴 거 아니야?
생김새뿐만 아니라, 심지어 믿는 종교까지 같아?
이러한 생각을 하자, 에스파디아가 대답했다.
‘이들도 사람이다. 너희와 같은 인간.’
“네?”
‘관리자의 모성은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어. 삶의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그들도 인간이다. 종교까지 같은 건 의외구나.’
평행우주 이론, 뭐 그런 건가?
에스파디아와 관리자들의 세계가 다중 우주 개념이라는 건 알았지만, 모성의 모습이 이렇게까지 똑같을 줄은 몰랐다.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쳐다봤다.
이미 숨을 거둔 건가?
아니, 미세하지만 맥이 느껴진다.
심장이 꿰뚫렸는데 살아 있다니.
‘설마.’
이에 황급히 남자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대자, 그의 신체에서 흐르는 묘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슈루의 마력이다.
마력의 적응력이 뛰어난데?
언제부터 마력에 노출됐는지 몰라도, 신체에 융합되는 속도가 빠르다.
심장이 꿰뚫린 상태에서 아직 죽지 않은 것도 아슈루의 마력 덕분이었다.
“에스파디아, 이 남자 살릴 수 있어요?”
‘가능하지. 하지만 이 남자를 살리면 내 마력이 노출되고, 피그리티아가 눈치챌 거야.’
“오히려 좋죠. 오라고 해요. 싹 쓸어버리게.”
‘아까 얘기했잖아. 피그리티아는 겁 많고 게으른 놈이라고.’
“당신의 마력을 느끼면 도망갈 수도 있다는 거예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우리 이 행성 지키러 온 거 아닙니까?”
‘…….’
에스파디아가 고민하는 동안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남자의 기억을 살폈다.
혹여나 악인을 살릴지도 모르기에, 그의 성장 과정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가정에 사랑이 가득하고, 받은 사랑을 주변에 전파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몽상가 기질이 강한 아슈루의 마력이 반응한 건가?
곧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정말…… 한 마디를 안 지는구나. 그렇다면 네 선택을 존중하겠다.’
“오케이, 땡큐.”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하세요.”
‘네가 이 남자를 살리면, 이 남자는 이중 마력자가 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겠지?’
이중 마력자?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스파디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 남자는 내 마력과 아슈루의 마력,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존재가 되는 거야. 훗날 어떤 파장이 발생할지 알 수 없어.’
“문제가 생기면 그때 제 손으로 처리할게요.”
‘너무 자만하지 말아라. 아슈루가 몽상가 기질이 강해서 그렇지,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야.’
“당신도 못 이겨요?”
‘진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승리한 적도 없다. 성향 자체가 다르니까.’
“성향? 게임으로 치면 당신이 전사유형이고, 아슈루는 마법사예요?”
‘마법사는 아니고 원거리에서 강한 힘을 발휘한다.’
“걱정하지 말아요. 만약 이 남자가 폭주하더라도, 제가 이겨드릴 테니.”
‘할 수 있겠느냐? 이 남자는 아슈루의 마력과 네 마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존재가 될 텐데.’
“자만이 아니라 자신감입니다. 제가 누군지 잊었어요?”
‘…….’
“에스파디아 당신이 그랬잖아요. 마르지 않은 샘물이라고.”
결국 에스파디아도 승낙했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살폈다.
신체가 마력에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적당히 힘 좀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자, 이 꽉 물어요. 따끔합니다.”
후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