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79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아슈루의 모성 6화
에스파디아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그럼…… 성배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건가?
에스파디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네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런 것 같구나.”
“그럼 제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
에스파디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불투명한 빛의 형태인 아슈루가 다가왔다.
그녀는 에스파디아의 손을 잡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성배의 진정한 힘은 개방하기 위해선 관리자들의 근원이 필요합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루드라바는 이미…….”
“살아 있습니다.”
아슈루의 말에 에스파디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럴 리가. 굴라에게 먹히는 걸 분명히 확인했는데?”
“아직 살아 있어요. 루드라바의 마력이 느껴집니다.”
“…….”
“다소 변질되었지만, 여전히 루드라바의 정신이 느껴져요.”
아슈루의 말을 듣고, 난 헛기침과 함께 물었다.
‘저기 에스파디아, 방해해서 죄송한데 아슈루 이분은 어떻게 아는 거예요? 저는 루드라바의 마력이 안 느껴지는데.’
조심스레 묻자, 머릿속으로 에스파디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슈루는 우주의 보호, 유지, 번창의 신이다. 생명체의 에너지를 누구보다 잘 느끼지.’
‘그럼 진즉에 언노운의 마력을 확인했으면 이런 일은 안 생기잖아요.’
‘그들은 생명체가 아니야.’
‘아…….’
이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풀리지 않은 의문을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그…… 에스파디아.’
‘또 뭐.’
‘성배의 진정한 힘은 관리자들의 근원이 담겨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에스파디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직도 내게 숨기는 게 있는 건가?
이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서로한테 솔직하기로 했잖아요.’
‘정말 알고 싶으냐.’
‘네.’
진지하게 대답하자, 에스파디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관리자들은…… 하나의 육체에서 분리된 존재들이다.’
‘……예?’
‘초기 우주, 빅뱅과 함께 분리되어 각자의 자아가 형성되고, 그 뒤로 균형을 이루며 지금까지 살아온 거야.’
어라? 이런 얘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불교는 아니고, 기독교, 천주교도 아니고…….
‘힌두교?’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지자, 에스파디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교리는 다소 과장되었지만, 네 생각이 맞다.’
인도의 절대신들.
창조의 신 브라마, 질서와 유지의 신 비슈누, 전쟁과 파괴의 신 시바.
그 모티프가 에스파디아와 아슈루, 루드라바였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그들의 배경과 관리자들의 성향이 동일했다.
그럼 7명의 아이들은 뭐지?
이러한 생각을 하자, 에스파디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인간이 흔히 알고 있는 7대 악마가 녀석들이다.’
‘언노운의 수장인 7명의 아이가 7대 악이라고요?’
‘이름부터 뻔히 보이는데 몰랐느냐?’
‘네?’
‘인간의 언어로도 읽을 수 있을 텐데.’
‘한글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데…….’
‘라틴어로 붙여진 이름일 게야.’
내가 라틴어를 어떻게 알아.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자, 에스파디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처리한 인비디아, 그의 다른 이름은 레비아탄이다. 질투의 악마지.’
‘그들도 신이에요? 관리자들처럼?’
‘조화를 이루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악의 근원에서 태어난 악신이야. 같은 신이라도 근본부터 다르다.’
‘…….’
‘오늘 처리한 피그리티아의 다른 이름은 벨페고르, 나태의 악마다.’
‘아이라랑 굴라는 뭐예요?’
‘탐욕의 악마 굴라. 다른 이름은 바알제불이야. 그리고 아이라는…….’
에스파디아는 말끝을 흐리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분노의 악마. 인간이 흔히 아는 이름은 사탄이다.’
왠지, 피그리티아의 기억을 들여다봤을 때 딱 봐도 나쁜 놈 같더니.
나쁜 놈들 대장이었네.
‘그래서, 그것들 전부 잡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가장 위험한 세 명의 힘은 우리도 가늠할 수 없어.’
셋? 아이라와 굴라 말고 또 있어?
이에 의문을 품자, 에스파디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다른 한 명은 우리도 못 본 지 오래됐어.’
7대 악마 중 사탄이 가장 강한 거 아닌가?
‘그게 누구예요?’
‘교만의 루시퍼.’
아, 루시퍼가 있었구나.
종교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의 배경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이에 팔짱을 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성배에 관리자들의 힘이 담기면……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언노운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럼 타락한 영혼들은 어디서 환생해요? 그들이 관리자들의 모성이나 다른 행성에서 태어나면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니에요?’
‘성배에 관리자들의 힘이 담기면 언노운의 모성도 새롭게 창조할 수 있고, 타락한 영혼의 성불도 가능해.’
‘성불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다시금 깨끗한 영혼이 되어 환생의 기회를 얻게 되지.’
‘그럼 모든 행성이 지금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맞아, 쉽게 말하면 모든 악의 근절이자, 초기화를 뜻하지.’
‘오…….’
‘하지만 이 또한 한계는 존재한다. 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악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아. 모든 생명체가 이타적일 순 없으니까.’
그래서 언노운이 그토록 무(無)의 세계를 얘기하는 건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무의 세계.
이는 지성을 지닌 모든 생명체의 소멸이었다.
관리자들이 그토록 7대 악을 멸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힘의 균형이 완전히 기울어 버렸으니,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들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이에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한계가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럼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타락한 영혼들이 모여드는 언노운이 탄생한다는 거죠?’
‘맞아.’
‘그럼…… 결국 반복 아닙니까?’
‘그것은 네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리 세대의 이야기는 여기서 막을 내리기에, 너희에게 더 많은 힘을 주고 우리가 풀지 못한 숙제를 맡기는 거야.’
‘…….’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르는 거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뭐 이런 거예요?’
에스파디아는 대답 대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아슈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스파디아,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
“루드라바가 당하기 전에 7명의 아이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아슈루, 네 마력을 성배에 담으면 이 행성은 버티지 못할 게야. 그래도 괜찮다는 거냐?”
“그래서 당신이 오기를 기다린 겁니다.”
에스파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슈루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저는 관리와 유지에 소질이 있지, 창조에는 소질이 없어요.”
“…….”
“그러니 당신의 모성처럼, 이곳의 생명체에게 스스로 싸워서 살아남을 시스템을 만들어주세요.”
“평범한 생명체는 시스템을 버티지 못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행성 전체에 제 마력을 담았습니다. 그 여파는 이미 보셨을 텐데요?”
문득, 아슈루의 모성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발견한 김민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에스파디아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김민기…… 그 아이가 특별한 거야. 모든 생명체가 마력에 동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그래서 당신의 시스템이 필요한 겁니다. 초석은 제가 닦았으니, 그 위에 안정적인 방안을 마련해 주세요.”
“…….”
“당신이 이곳을 떠나면…… 이곳에 남은 생명체들은 언노운의 공습을 버텨낼 수 없습니다. 최소한 스스로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네 목숨을 내게 맡기고, 네 모성을 지켜달라는 게냐?”
“그렇습니다.”
아슈루의 대답에 에스파디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생명체의 번영을 위해,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본인의 삶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
에스파디아가 망설이자, 아슈루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우린 살 만큼 살았잖아요.”
“…….”
“노쇠하고 쇠약해진 우리와 달리, 모성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자라나고, 성장할 겁니다.”
“자네…….”
“몽상가의 작은 바람입니다.”
몽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아슈루였다.
에스파디아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재형아.’
‘말씀하세요.’
‘가능하겠느냐?’
‘네? 뭐가요.’
‘시스템 구축 말이다.’
시스템 구축을 나더러 하라고?
‘저는 언노운 때려잡을 생각만 했지 시스템 구축까지는…….’
‘너도 알지 않느냐?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신이라는 것을.’
하긴, 좀비를 배경으로 세상을 구할 생각을 한 건…… 너무했다.
아무리 라스트아크가 로그라이크 게임이라 해도 그렇지,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난이도도 미쳐 날뛰었다.
그러니 요즘 추세에 걸맞은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건가?
이에 헛기침과 함께 얘기했다.
‘뭐,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가능하겠느냐?’
‘대신 파편을 지닌 김민기의 기억은 지웠으면 합니다.’
‘이유는?’
‘본인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거만해지는 게 사람 심리니까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를 변수는 사전에 제거해야죠?’
‘그럼 신체를 치료한 홍정연의 기억도 같이 지워야겠구나.’
‘지우는 김에 같이 있던 여동생들도 지우죠. 그래야 깔끔하니까.’
에스파디아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아슈루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네게 담기는 거지.’
‘아슈루의 근원을 우리가 흡수하는 겁니까?’
‘성배를 제작하기 위해선 바로 나, 에스파디아의 마력이 초석이 되어야 한다. 그 뒤에 아슈루와 루드라바의 마력을 담으면 새로운 기원을 이룰 수 있지.’
‘그럼 이렇게 하죠. 아슈루의 근원은 우리가 흡수하되, 생산되는 마력은 이곳으로 보내죠.’
에스파디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에,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우리가 전부 가져가면 시스템을 어떻게 돌려요?’
‘하긴, 지구에서 내 마력으로 시스템을 가동한 것처럼 이곳도 마력이 필요하겠구나.’
‘그러니 근원만 우리가 챙기고, 아슈루의 근원에서 생성되는 마력은 전부 이 행성으로 보내죠.’
‘그것으로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마력을 보내도 근원이 이 행성에 없다면 한계가 있을 텐데.’
에스파디아가 묻기에,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있는 인간들도 싸워야죠.’
‘……?’
‘이 행성의 인간들이 게이트와 언노운, 마력에 친숙해지도록 유도할 겁니다. 스스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서 마력을 구할 수 있도록요.’
‘생명체가 게이트를 이용하도록 만들자는 게냐?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많…….’
‘에스파디아 당신이 그랬잖아요? 이 우주에는 생명을 지닌 행성이 무수히 많다고.’
에스파디아가 고개를 끄덕이기에,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언노운은 그런 모든 행성을 침공했으니, 마물들이 점령한 행성이 많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마물에게도 마력이 있던데, 그걸 통해서 이곳의 생명체들이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더 안전하지 않겠어요?’
‘보호만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안전을 지킨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하잖아요. 집안을 다스리고, 나아가 나라를 다스려야죠.’
‘…….’
‘저 혼자 마력을 공수하는 건 버거워요. 그러니 수비 정도는 이곳의 사람들이 해야지.’
‘공격을 통해 수비를 도모한다?’
‘그렇죠.’
‘많은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
‘당신이 희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 않아요?’
정곡을 찔렸는지, 그는 헛기침과 함께 대답을 회피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하지만, 70억 인구의 태반이 죽었다.
아니, 태반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이곳의 생명체들에게 나와 같은 고통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전쟁이 끝난 뒤에 황폐해진 땅을 개간하고,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닌 자족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에스파디아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너는…… 벌써 진리를 깨달았구나.’
‘진리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
‘당연하죠. 제가 라스트아크 클리어하려고 얼마나 피똥 쌌는데. 물론…… 좋은 동료들이 있기도 했고.’
‘좋다. 네가 구상한 방안으로 이 행성의 시스템을 구축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