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0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아슈루의 모성 7화
맞은편에 있던 아슈루는 에스파디아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얘기는 정리되셨나요?”
“끝났네. 아슈루 자네의 말대로 진행하지.”
“그럼…… 제 손을 잡아요.”
아슈루의 말대로 에스파디아는 아슈루의 손을 잡았다.
뒤이어 두 사람 사이로 은은한 빛이 일렁이더니, 아슈루의 마력이 체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와…… 뭐예요 이거?’
‘아슈루의 마력이다.’
따뜻하다.
에스파디아의 마력이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이라면, 아슈루의 마력은 봄날의 숲속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서로 결이 다른 것 같지만, 그 미묘한 조화가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이래서 아슈루를 음유시인, 몽상가, 이렇게 부른 건가?
뒤이어 강남 3구 전체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맴돌더니, 내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에스파디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 땅이 허공에 떠오른 건 피그리티아 때문인 것 같구나.’
‘피그리티아요?’
‘이 땅은 아슈루의 마력이 강하고, 이곳 어딘가에 근원을 숨겼다고 생각한 거지.’
‘그렇다고 부유성을 만들어요?’
‘이 땅을 공중으로 띄우고, 파괴하기 전에 아슈루더러 나오라고 협박했을 게야.’
‘아슈루도 보통이 아니네요. 끝까지 안 나간 걸 보면.’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에스파디아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원래 낭만주의자들이…… 은근히 고집이 강해.’
피그리티아는 아슈루의 근원이 필요하기에, 정작 이 땅을 파괴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에스파디아와 내가 이곳에 도착했고, 우리를 유인해서 근원의 위치를 파악하려 한 모양이다.
피그리티아가 머리는 잘 썼지만, 한 가지 망각한 사실이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책략이라도, 압도적인 무력으로 찍어누르면 그만.
뒤이어 아슈루의 권능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치유와 관련된 권능이었고, 눈앞으로 이러한 문구가 떠올랐다.
-아슈루의 갑주와 무기는 착용할 수 없습니다.
이에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에스파디아, 지금도 시스템 메시지 같은 게 뜨는데, 라스트아크 클리어한 거 아니에요?’
‘지구의 시스템은 끝나지 않았다.’
‘네?’
‘모든 에피소드는 끝났지만, 지구 안정화 작업 역시 시스템이 하는 거야. 아틀란티스를 이루는 구조도 시스템이고.’
‘아…….’
이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보다 아슈루의 갑주와 무기가 문제구나. 이걸 방치할 수도 없고 흡수할 수도 없으니…….’
‘근원이 저한테 들어왔는데 왜 착용이 안 돼요?’
‘성배를 이루는 근간은 내 마력이고, 네가 착용할 수 있는 갑주와 무기는 한때 내가 사용하던 갑주와 무기뿐이야.’
‘그럼…… 이거 어떡하죠?’
에스파디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이 행성에 있는 김민기라는 친구에게 갑주와 무기를 맡기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까는 파편이랑 무기도 생색내더니, 관리자의 갑주랑 무기를 주자고요?’
‘어차피 근원이 없어서 사용하지 못할 게야.’
‘…….’
‘언젠가 마력을 확보하여 갑주와 무기를 착용하더라도, 권능을 사용할 정도의 힘은 얻을 수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권능은 무조건 근원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거죠?’
‘맞아.’
‘그럼 아슈루의 근원부터 흡수하고, 그 뒤에 김민기 찾아보죠.’
에스파디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아슈루의 형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에스파디아는 더는 인간의 형체도 유지하지 못하는 아슈루를 바라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이제…… 편히 쉬게. 나의 오랜 동료여.”
이미 형체를 잃은 탓에 아슈루의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흐려지던 빛이 한 차례 점멸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체내에 흡수된 마력이 그 뜻을 해석해 주고 있었다.
영원한 안녕이자, 그녀의 염원이 느껴졌다.
* * *
“전부 뒤로 가요!”
김민기는 철로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철로에 도착하자, 터널에 몸을 숨긴 2백 명의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급 시 대피소로 사용되기에, 멀리 가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숨어든 것이다.
카하악-!! 카각!!
뒤이어 철로로 들어서는 온갖 마물들.
“어, 어떡해, 어떡해!”
“엄마……! 엄마아!”
생존자들은 절망에 젖은 눈으로 접근하는 마물들을 쳐다봤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널을 울리고, 겁에 질린 생존자들의 신음과 비명으로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홍정연은 앞뒤를 번갈아 살피더니,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김민기가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인마!”
“죽기 전에 영상 정도는 남겨야지!”
“죽긴 누가 죽어?!”
“뒤에서도 오잖아!!”
홍정연의 외침에 김민기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퇴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홍정연의 말대로, 온갖 마물들이 앞뒤로 접근하고 있었다.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야 하는 어두운 철로.
김민기는 이 악물고 마물들을 응시하더니, 두 주먹을 말아쥐며 얘기했다.
“내가…… 길 뚫을 테니까 따라와.”
“미쳤어?! 저것들을 무슨 수로 잡아? 더럽게 많다고!”
“그럼 여기서 죽을래?!”
김민기가 두 눈에 힘을 주며 외치자, 홍정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이미 공포와 절망에 점철되어 의욕을 잃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에이 씨…….”
홍정연은 바닥에 내려둔 쇠파이프를 손에 쥐더니, 김민기의 옆에 붙으며 얘기했다.
“생전 마지막 영상도 못 찍고 가겠네.”
“어차피 봐줄 사람도 없어.”
“야, 내 방송 실시간 시청자 500명이거든?”
“영상 송출도 안 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후…… 홍팔이TV, 막방도 못하고 이렇게 가네.”
홍정연은 인터넷 방송에서 활동하는 스트리머였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스트리머지만,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종군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던 홍정연.
비록 기자는 되지 못했지만, 발로 뛰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를 통한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홍정연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억지로 웃으며 얘기했다.
“하! 방송만 가능했으면 오늘 있었던 일 전부 생중계하는 건데.”
“이런 상황에 촬영 생각이 드냐?! 실성했어?”
점점 접근하는 마물들.
60m, 50m, 40m…….
이윽고 온갖 마물들이 20m까지 접근한 찰나.
쾅-!!!!
천장이 무너지며 퀴퀴한 연기가 두 사람을 덮쳤다.
쏟아진 잔해들이 철로를 틀어막고, 접근하던 마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를 확인한 김민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황을 파악하더니, 곧 마른침을 삼키며 읊조렸다.
“기, 기회다. 기회야!”
“콜록! 콜록! 뭐야 갑자기!”
홍정연은 연신 기침하며 양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민기는 뒤쪽으로 이동하여 접근하는 마물들을 상대했다.
앞뒤로 찌그러지는 구도였는데, 천장이 무너지며 시기 좋게 정면이 막혔다.
뒤에서 접근하는 마물만 상대하면 그만.
김민기는 황급히 인파를 헤치고 후방으로 이동했다.
“콜록, 콜록! 야, 야! 김민기!”
홍정연은 두 눈을 껌벅이며 얼굴에 묻은 가루를 털어내고, 멀어지는 김민기를 쳐다봤다.
쾅-!! 쩌적- 쩡!!
그 순간, 홍정연의 뒤로 우레와 같은 폭음이 울렸다.
쏟아진 바위들로 인해 시야 확보가 불가능하지만, 무언가가 마물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홍정연의 머릿속으로 반짝이는 빗금이 스쳤다.
이에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송수신은 안 되지만, 동영상 촬영은 가능하니까.
지금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났던 존재.
어쩌면 김민기의 심장을 고쳐주고, 본인의 상처를 치료해 준 ‘신’이 이곳에 강림한 게 아닐까?
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을 절호의 기회였다.
홍정연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동영상 촬영을 눌렀다.
지지직- 지직-! 퍽.
하지만 휴대폰으로 정전기가 발생하더니, 충격과 함께 전원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홍정연이 얼빠진 표정을 짓자, 뒤이어 시야를 가리고 있던 잔해를 뚫고 익숙한 존재가 걸어 나왔다.
“함부로 촬영하면 안 되지.”
예상대로, 김민기의 심장을 고쳐준 신이었다.
* * *
김민기에게 파편을 넣어서 다행이다.
파편이 위치추적기의 역할을 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철로에 있던 생존자들은 전원 사망했을 것이다.
‘에스파디아, 혹시 여기 있는 사람들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어요?’
‘생명체를 인벤토리에 담는 건 한계가 있어.’
‘그럼…… 이 사람들 게이트는 통과할 수 있습니까?’
‘게이트는 통과할 수 있지. 잠깐, 너 무슨 생각을…….’
“게이트.”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자, 터널을 가득 채우는 푸른빛의 게이트가 형성되었다.
겁에 질린 생존자들은 게이트를 보고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이트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내가 만든 게이트에서 마물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이에 생존자들을 향해 외쳤다.
“살고 싶은 자는 이곳으로 들어가라!”
최대한 근엄하게, 신의 계시처럼 들리도록.
생존자들은 그제야 내 모습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흑백의 갑주, 은은한 월광을 발하는 장검.
누가 봐도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온갖 마물을 정리하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내게 의구심과 경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저, 저기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생존자 사이에서 질문이 들려오기에,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희의 세상이 안전해질 때까지, 이 공간이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너희가 애타게 찾던 존재.”
그러자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한 사람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게이트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한 사람이 게이트로 진입하자 너도나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박재형, 제정신이냐?’
‘그럼 어떡해요. 여기서 사람들 지키면서 싸울 수도 없고.’
‘아직 좀비들이 남아 있단 말이다!’
이 게이트는 에스파디아의 모성, 즉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였다.
이에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좀비들 없는 장소는 누구보다 제가 잘 알아요. 안전한 곳으로 좌표 설정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
‘생존자들이 안전지대 벗어나지 못하도록 설정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언제 그런 것까지…….’
‘저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하…… 그런 건 미리미리 얘기해야지! 놀랐잖아!’
‘제 생각 읽을 수 있잖아요.’
‘모든 걸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즉흥적인 판단은 읽기 어려워.’
그건 몰랐네.
이에 이마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앞으로 주의할게요.’
생존자들이 게이트로 들어가기 시작하고, 저 멀리 마물을 상대하는 김민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터널에 들어찬 마물들을 처리했다.
쾅-!!!!!
흑도 명월을 휘두르자, 터널에 들어찬 마물들은 모조리 가루가 되었다.
김민기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고생했어.”
“다, 당신은…….”
“따라와.”
가볍게 손짓하며 게이트 앞으로 이동하자, 어느새 김민기의 여동생들과 홍정연만 남은 상태였다.
“여기로 들어가면 안전해. 들어가서 쉬어.”
“어, 어디로 이어지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너희에게 익숙한 장소일 테니.”
여의도로 통하는 게이트였다.
온갖 마물과 전투를 치르며 여의도 일대는 개미 한 마리조차 남지 않았다.
좀비도, 변종도, 감염된 동식물도, 마물도 없다.
아크의 외벽은 무너졌지만, 생존자들이 여의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마력장을 설치해 둔 상태였다.
그 무엇도 여의도를 빠져나갈 수 없고, 들어올 수 없다.
김민기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저 안에서…… 얼마나 지내야 하는 거죠?”
“글쎄, 나흘 정도?”
“…….”
“아, 잠깐.”
깜박할 뻔했네.
김민기의 심장에 손을 얹자, 파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파편의 모양에 변화를 주었다.
에스파디아의 파편뿐만 아니라, 아슈루의 파편까지 심었다.
아슈루의 파편을 심어야 그녀의 갑주와 무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뭐예요?”
김민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기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선물이다.”
김민기는 아슈루의 갑주와 무기가 본인에게 흡수된 줄도 모를 것이다.
“어서 들어가.”
“뭐, 뭔가 느낌이…….”
김민기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바쁘니까 잔말 말고 빨리.”
파편이 하나 더 늘었으니, 마력의 변화는 감지한 모양이다.
역시 성장이 빠르다.
김민기는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여동생들과 함께 게이트로 들어갔다.
한편, 홀로 남은 홍정연은 망가진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문제인데…….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에스파디아도 느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