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1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아슈루의 모성 8화
에스파디아의 말을 듣고 속으로 되물었다.
‘역시 그렇죠?’
‘김민기가 마력을 받아들이는 힘이 강하다면, 이 녀석은 운용하는 힘이 강하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거예요?’
‘김민기는 너처럼 많은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에 적합한 인간이고, 홍정연은 마력과 동화되는 힘이 강한 거야.’
‘마력이 있으니 당연히 동화되는 거 아니에요?’
‘벌써 잊었느냐? 너도 마력 사용에는 소질이 없었어. 그래서 스킬과 발동어를 만들어서 마력이 알아서 운용되도록 만들었잖아.’
아,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되었다.
홍정연은 스킬과 발동어를 만들지 않아도 마력을 자유자재로 개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흔히 말하는 천재.
그것이 홍정연이었다.
이에 에스파디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이 녀석…… 어떻게 할까요?’
‘악한 기운은 없어. 김민기와 같다.’
‘그럼 내버려 둬요?’
‘단점이라면 아직 힘 조절이 안 돼.’
방금 휴대폰을 파괴한 것도 내가 그런 게 아니었다.
마물들을 처리하고 생존자들을 확인하려는데, 잔해 너머로 마력이 느껴져서 나도 놀랐다.
홍정연을 치료할 때 에스파디아의 마력이 사용되어서 그런가?
홍정연의 육체에서 에스파디아의 마력이 느껴졌고, 그것이 공기 중에 퍼진 아슈루의 마력과 혼선을 빚으며 휴대폰이 터진 것이다.
홍정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휴대폰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직 할부도 안 끝난 폰이라…….”
“너, 느꼈지?”
“예?”
홍정연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양손으로 본인의 상체를 가리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콧방귀 뀌며 얘기했다.
“아니 그거 말고. 마력 말이야.”
“마력…… 이요?”
“휴대폰 터질 때 신체의 변화 느껴지지 않았어? 손끝으로 무언가가 잔뜩 모이는 느낌이라거나.”
홍정연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뭔가 정전기 같은 게 막…… 아니, 몸속에서 털이 쭈뼛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리와.”
오른손을 내밀자, 홍정연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가볍게 손짓하며 얘기했다.
“안 잡아먹으니까 빨리. 시간 없다니까?”
“아…… 옙.”
홍정연은 헛기침과 함께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머리를 붙잡자, 빠르게 회전하는 체내의 마력이 느껴졌다.
지금껏 김민기만 신경 써서 몰랐는데, 이 녀석 보통이 아니다.
결인들이 에스파디아의 파편을 처음 받았을 때, 동기화 작업에 들어간 상태의 마력 회전과 비슷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이럴 수가 있나?”
“예?”
홍정연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내 얼굴을 쳐다봤다.
김민기의 기억을 들여다봤을 때, 이미 이들의 관계는 파악했다.
소꿉친구인 김민기와 홍정연.
두 사람은 마력과 관련되어 천재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
귓가로 들리는 에스파디아의 질문에, 입맛을 다시며 속으로 대답했다.
‘제한을 걸어야죠. 힘 조절을 못 하니 자칫 잘못하면 본인을 파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제한을 풀어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런 날을 대비해서 시스템을 구축하면 되지 않겠어요?’
‘네가 얘기한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물론이죠. 에스파디아 당신은 게임과 영화, 드라마만 너무 봤어요.’
‘게임, 드라마, 영화 외에 인간의 상상을 자극하고,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안이 있더냐?’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현실적인 접근도 가능한 게 하나 있습니다. 소설이죠.’
‘소설?’
에스파디아의 목소리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책 읽는 재미는 모르는 건가?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많은 사람이 아는 흔한 소재가 있습니다. 그걸 기반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면 좀비 게임보다 몇 배는 친숙하게 느껴질 거예요.’
‘그게 뭔데.’
‘헌터물이요.’
‘……무슨 물?’
‘헌터물 몰라요? 인간사 헛사셨네.’
‘헌터인가 뭔가가 사람들에게 친숙하다는 게냐?’
‘친숙하죠. 그리고 아슈루의 마력 덕분에 이 행성의 사람들은 마력에 반응하는 힘도 강하니, 더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어요.’
에스파디아는 반박 대신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좋다, 네 방식대로 진행해 봐.’
‘그럼 시스템 구축 전에 사람들부터 구하고, 마물부터 정리할게요.’
‘좋아.’
에스파디아의 대답을 듣고, 앞에 있는 홍정연을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살짝 따끔할 거야.”
“예?”
즈즉-
“윽!”
두개골에 작은 충격을 주었다.
상해를 입히려는 게 아니라, 마력 사용에 제한을 걸기 위함이었다.
“이제 놀랄 일은 없을 거야. 어서 게이트 들어가.”
“저, 저 죽는 건 아니죠?”
“내가 널 왜 죽여.”
홍정연은 입술을 달싹이며 의구심을 거두지 못했다.
머리로 느껴진 짧은 충격으로 인해 경계심이 강해졌다.
두려운 마음에 모든 것을 걱정하는 심리, 충분히 이해한다.
이에 인자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가 사람들 죽이러 온 것처럼 보여?”
“……아니요.”
“그럼 설명이 더 필요한가?”
홍정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로 들어갔다.
철로에 있던 모든 생존자가 게이트로 들어갔다.
이에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를 닫고, 뻐근한 어깨를 풀며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리 시작할까요?”
‘속도 높여. 안정화 작업이 길어지면 아이라와 굴라가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지도 몰라.’
“빨리빨리 좋죠. 딱 한국 스타일이야.”
이에 마력을 방출하며 흑도 명월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감지.”
그러자 천지에 널린 마물의 모습이 두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명월을 휘두를 수 없기에, 감지의 설정을 변경했다.
“감지 대상 추가. 인간.”
-생명체 ‘인간’을 감지합니다. 표시할 색상을 선택해 주세요.
마물이 푸른빛으로 보이니, 인간은 상반되는 색이 좋겠다.
“붉은색.”
-감지 대상을 추가합니다.
-표시할 색상이 추가됩니다.
뒤이어 붉게 보이는 존재들이 시야에 추가되고, 명월을 말아쥐며 하체를 접었다.
“이틀 안에 마물들 정리하고 시스템 설정합니다.”
‘이틀이라…… 좋다.’
“갑니다.”
쾅-!!!!!
지면을 박차며 빛과 같은 속도로 정리에 돌입했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시원하게 휘두르고 싶지만, 다수의 생존자로 인해 일대를 날려 버리는 건 불가능했다.
“흐이익!”
생존자를 찾을 때마다 그들은 기겁하며 신음을 흘렸다.
흑백의 갑주를 보고 기절하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어색한 대사를 들려주었다.
“구조대입니다.”
* * *
시스템 구축까지 이틀이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무려 나흘이나 걸렸다.
곳곳에 숨어 있는 마물을 찾는 것도 일이었고, 무엇보다 마물을 피해 숨어든 인간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감지는 벽을 투시하는 능력이 있기에 생존자가 바깥에 있는지, 실내에 있는지, 지하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나흘 만에 행성 전체를 정리하고, 하늘에 열린 언노운의 게이트도 모두 닫았다.
‘이제 어쩔 거지?’
에스파디아가 묻기에 주변 일대를 살피며 대답했다.
“지구로 보낸 사람들 데려와야죠. 잔해가 너무 많아서 어디로 불러야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나흘이나 걸린 이유에는 이러한 문제도 있었다.
아슈루의 행성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여의도에 몰아넣는 건 한계가 있었다.
여의도 땅에 수십억 인구가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니까.
결국 지구로 돌아가 서울 일대를 정리하고, 계속해서 범위를 넓히며 아슈루의 행성을 정리했다.
이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허비되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었다.
지구와 동일한 80억 인구가 살아가던 아슈루의 행성.
최대한 빨리 도착했고, 최대한 빨리 정리했지만 인구 30억이 사망했다.
지구에 비하면 훨씬 적은 사망자가 나왔지만, 이 또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억은 어떻게 지울 생각이지?’
에스파디아가 묻기에,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들이 언노운과 싸우기 위해선 종말을 경험했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그래서.’
“지구로 이동한 기억과 제 존재만 그들의 기억에서 지우면 됩니다.”
‘시스템은?’
“이 행성에 마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타 행성으로 이동해야 하니, 특정 지역에 게이트를 만들어둬야겠습니다.”
‘그럼 각 국가의 수도에 하나씩 만들어야겠구나.’
“그게 좋겠죠. 그럼 여기는…… 저쪽 어때요?”
‘저쪽? 여의도 말하는 게냐?’
“아슈루의 모성은 지구와 굉장히 흡사한 거 아시죠?”
‘알다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기억을 완전히 지우더라도, 혹여나 몸이 기억할 감각을 대비해야 한다.
기억과 현실을 혼동하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기에, 그 오차범위를 줄이기 위해선 여의도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기억이 복구될 가능성은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최대한 그들의 기억과 비슷하고, 익숙한 장소에 게이트를 만드는 게 좋을 것이다.
에스파디아도 동의하는지, 반박 대신 계획을 물었다.
‘향후 계획은? 생존자들의 성장은 어떤 식으로 진행할 거지?’
“나약한 마물이 있는 행성부터 시작하죠. 그 뒤에 점차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좋겠죠? 에덤처럼요.”
‘성장은 김민기나 홍정연처럼 마력에 적응력을 지닌 사람만이 가능해.’
“적응력이 없는 사람은 성장 대신 강화기능을 넣어주면 되죠.”
‘강화?’
“그들이 싸울 무기도 결국 마력으로 만들 텐데, 무기는 강화할 수 있어야 강한 놈도 잡죠. 로그나이트랑 덤프로 만든 무기에 레벨이 있는 것처럼.”
‘좋다.’
에스파디아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아슈루의 모성으로 생존자들이 도착했을 때, 황폐해진 대지를 개간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계획을 수립하고, 성배의 마력이 끓을 때까지 마력을 방출했다.
즈즈즈즉-! 즈즈즉!
전신에서 번쩍이는 스파크가 튀더니, 이윽고 눈부신 섬광이 행성 전체를 뒤덮었다.
에스파디아와 아슈루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시스템의 탄생이었다.
뒤이어 에스파디아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얘기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마력이구나.’
“뭐가요?”
‘지구에 라스트아크 시스템을 만들었을 당시, 난 육체를 형성할 힘을 잃었다.’
“그래서 빛의 형태로 남은 거예요?”
‘맞아, 간신히 숨만 쉬고 살아 있는 게 한계였지.’
“…….”
‘이 정도 마력을 개방하고도 무리가 없다니. 성배의 힘은 실로 놀라워.’
에스파디아의 목소리에 정체 모를 착잡함이 느껴졌다.
지난날, 본인의 부족함에 안타까워하는 느낌이 강했다.
에스파디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살아 있는 것도 벅찬 마당에 내게 근원을 주었으니, 에스파디아 입장에선 굉장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성배를 만들지 않으면 언노운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런 위험한 수를 둔 게 아닐까?
“심장 졸이는 날이 많았겠습니다?”
‘이제 와서 얘기하지만, 결인들만큼 나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지.’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믿어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이스터에그 회수하지 않은 덕에 저도, 제 일행도,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어요.”
‘…….’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감동이라도 받았나?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스파디아의 씁쓸한 심정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많은 생명을 살린 관리자로 기억될 게야.’
“……?”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모성의 생명체를 죽인 피의 군주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이겠지.’
“최선이었다는 거 알아요. 그 덕에 지구의 인류가 보존된 겁니다.”
‘그 공은 네가 가져가거라. 나는…… 네가 얘기했던 죄책감의 무게를 견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