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쫓고 쫓기는 자 2화
아스모데우스가 격노한 모습을 보이자, 이를 지켜보던 굴라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진정해라 아스모데우스!”
“진정 같은 소리. 얻어맞고 배시시 웃는 병신이 어디 있어.”
“아스모데우스! 넌 아이라의 힘을 모른다!”
굴라가 소리치자, 허공에 있던 아이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만.”
두근-
그 한 마디에, 아스모데우스에게 흡수되던 마력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본인의 마력도 아니고, 타인의 마력을 말 한마디로 차단했다.
뒤이어 아이라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회갈색의 갑주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선고한다.”
“자, 잠깐.”
아스모데우스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손사래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라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주제도 모르고 내게 대든 죄, 내 명령을 거역한 죄, 너그러운 마음으로 선고하겠다.”
“아이라, 내가 진짜로 네게 대들 생각이었다면……!”
아이라가 허공으로 손을 뻗자, 그의 손아귀로 기다란 창이 생성되었다.
무기를 손에 쥐었을 뿐인데, 일대의 시공간이 뒤틀리고 칠흑 같은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콰광! 우르르- 쾅!
온 천지에 번개가 치고, 아이라의 손끝으로 거스를 수 없는 방대한 양의 마력이 응축되었다.
아이라의 안구에서 이채가 번뜩이고,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왔다.
“사형.”
훙-!
모든 것을 꿰뚫는 아이라의 창이 아스모데우스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아스모데우스는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죽음을 감지한 아스모데우스의 머릿속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루시퍼…….’
즈즈즉-!
그 순간, 아스모데우스의 등 뒤로 적갈색의 게이트가 열리더니, 사슬에 묶인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톡-
물방울이 수면에 닿은 것처럼, 게이트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아이라의 창끝에 닿자, 매서운 기세로 날아들던 창이 움직임을 멈췄다.
떵-!!!
동시에 아이라의 창은 그대로 반사되었다.
순식간에 날아든 창은 정확히 아이라의 안면을 노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이라는 다급히 고개를 비틀었다.
핏-!
아이라의 볼에 생채기가 생기고, 먹구름을 걷어내며 사라져 버린 창.
아이라의 두 눈에 독기가 담기고, 안색은 금세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곧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네놈이…… 어떻게 여길…….”
즈즈즉-
뒤이어 적갈색의 게이트가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지옥불에 떨어진 영혼의 비명과 절규로 점철된 게이트.
타락한 영혼들이 마력의 흐름을 따라 회전하고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게이트가 완성되자, 그곳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아이라.”
7대 악의 하나.
악마들의 이단아.
오만의 루시퍼였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백발의 머리, 창백한 피부, 적색의 안구와 수려한 눈매.
엷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인자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겹겹이 쌓인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아스모데우스와 루시퍼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루시퍼의 팔에 묶인 사슬을 보고 물었다.
“그 사슬은…….”
“아아, 이거요?”
루시퍼는 손에 묶인 사슬을 풀더니, 바닥에 던지며 얘기했다.
“누구의 것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마몬의 것이더냐.”
“저를 감시한 죄, 그 죗값을 받았을 뿐입니다.”
파스스-
바닥에 떨어진 사슬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7대 악마의 마지막 수장.
마몬.
그는 아이라의 명에 따라 500년간 루시퍼를 감시했다.
하지만 마몬의 사슬이 가루로 변했다는 건…….
아이라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더니,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마몬의 근원은 어떻게 했느냐.”
“절 아시지 않습니까?”
루시퍼가 흡족한 미소를 짓자, 아이라의 이마 위로 핏줄이 솟아났다.
아이라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네놈이…… 먹었느냐?”
“생각만큼 맛나지 않더군요. 아주 질기고, 텁텁한 근원이었습니다. 주인이 밥맛이어서 그런가?”
“…….”
“아이라의 충성스러운 두 마리의 개. 마몬이 죽었으니 이제 남은 건…… 아?”
루시퍼는 지면에 있는 굴라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거기 있었군요. 아이라의 강아지.”
가만히 있던 굴라에게 불똥이 튀었다.
충분히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말이지만, 굴라는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으하하! 500년이 흘러도 여전히 오만하구나.”
“지겹지도 않습니까? 아이라에게 밀려 평생을 2인자로 지내는 게.”
“…….”
“그러지 말고 저한테 오시죠. 잘해드릴게요.”
루시퍼는 옆에 있는 아스모데우스를 쳐다보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아스모데우스의 꼬리가 루시퍼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라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물었다.
“아스모데우스, 네놈이 루시퍼를 도운 게냐?”
“그걸 이제 알았어요?”
“정말 마몬을 죽이고, 그 근원을 루시퍼에게 주었다는 게냐?”
“그러면 안 됩니까?”
“왜 하필 지금…….”
그 순간, 아이라의 머릿속으로 아차 싶은 생각이 스쳤다.
“설마, 지금이라서?”
“관리자들을 사냥하러 다닌다는 소식은 진즉에 접했죠.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관리자들이 버거운 모양입니다?”
“내가 방심하길 기다린 게냐?”
“그러게 내실을 다지셨어야죠.”
아스모데우스가 히죽거리자, 아이라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스모데우스는 아이라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더니, 한쪽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내실을 다지랬더니, 실성하셨나?”
“재미있구나. 버러지들이 꾸역꾸역 기어오르는 모습이.”
“…….”
“기생충들이 간과하는 게 있지. 욕심을 부리면…… 본인이 먹을 식량이 말라 비틀어 죽어버린다는 것을.”
“기생충한테 뇌까지 파먹힐 생각 하니까 억울하신가 보죠?”
아스모데우스는 기고만장하게 얘기했지만, 아이라의 입꼬리는 귓불에 걸릴 만큼 올라갔다.
뒤이어 살기가 담긴 서늘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뇌? 아니, 너희는 내 발끝만큼도 올라오지 못했다.”
“…….”
“선고한다.”
콰르르르- 쿠르릉-
아이라의 천명이 떨어지자, 또다시 먹구름이 생성되며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한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스모데우스가 마른침을 삼키자, 그녀의 옆에 있던 루시퍼가 똑같이 마력을 방출하며 읊조렸다.
“거절한다.”
루시퍼의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자, 굴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아이라 조심해라!”
“…….”
“저 녀석의 마력이 예전과는……!”
“시끄럽다.”
아이라는 더더욱 강한 마력을 끌어모으며 루시퍼에게 얘기했다.
“마몬의 근원을 흡수했으니, 이제 언노운에게 대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때려보면 알겠죠.”
“주제도 모르고 오만방자하게 날뛴 죄, 그 죗값은 달게 받아야 할 게야.”
“죗값이라…… 아이라께서 노망이라도 나셨나 봅니다.”
“……뭐?”
금방이라도 핏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루시퍼의 붉은 입술에서,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은…… 나보다 강한 사람이 주는 거야.”
두 악마의 권능이 순식간에 서로에게 날아들었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마력이 서로 맞닿자, 일대의 모든 것이 진공 상태에 놓이더니.
쾅-!!!!
콰과과과과과과광-!!!!!
천지를 뒤엎는 굉음과 함께 충격의 여파가 발생했다.
일대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고, 불길은 곧 행성 전체로 뻗어 나갔다.
* * *
아슈루의 모성으로 모든 생존자를 전이시키고, 그들의 세계에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스템이 정상작동하는 걸 확인한 뒤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이제 끝난 거죠?”
‘시작이 불안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알아서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처음부터 바로 적응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너는 적응하지 않았느냐?’
“잊었어요? 저 기숙사에 있을 때 보름이나 숨만 쉬고 살았어요.”
에스파디아는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들은 낯설어진 세상과 뒤바뀐 일상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그들만의 체계가 잡힐 것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삶에 가치가 있고, 꾸준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김민기와 홍정연은 어떻게 됐지?’
에스파디아가 묻기에, 홀로그램을 열고 두 사람의 정보를 확인했다.
“홍정연은 일전에 제한 걸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 김민기는 기억을 잃으면서 본인 가슴에 생긴 상처에 의문을 가지는 것 같아요.”
‘네가 준 건틀릿은?’
“인벤토리 기능을 만들어서 거기 넣어뒀어요. 김민기는 인벤토리가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만요.”
‘인벤토리 사용법과 마력 개방은 추후 마물들과 싸울 때 개방되도록 설정했지?’
“그럼요. 나중에 게이트 통해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면 그때 개방되도록 기본 설정했습니다.”
‘저기 있는 부유성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허공에 떠오른 부유성.
저걸 내리는 건 다소 위험부담이 있다.
한때 아슈루의 근원을 담았던 땅이다.
방사능에 노출된 대지처럼, 강한 마력에 노출되었던 대지.
아직 마력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기에, 저대로 두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생각을 얘기하자, 에스파디아는 반박 대신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정리도 끝났으니, 언노운의 모성부터 확인하자꾸나.’
“가시죠.”
피그리티아를 통해 알아낸 모성의 좌표.
언노운의 모성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고,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황폐한 대지와 휘날리는 모래바람.
은은하게 깔린 안개와 회갈색의 세상.
쓸쓸하고, 고독하며,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피자, 곧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변했구나.’
“여기 맞아요?”
‘지형의 생김새는 언노운의 모성이 맞아. 탁한 기운이 짙게 깔려 있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 같은데.”
‘죽은 자의 도시라 생각하거라.’
“죽은 자의 도시면…… 지옥 아니에요?”
‘그래, 그렇게 볼 수 있지.’
내가 아는 지옥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고통과 절망으로 점철된 타락한 영혼의 절규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허무하다고 해야 좋을지, 허탈하다고 해야 좋을지, 조금은 무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죽음이다.’
“네?”
‘그 무엇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죽음이야.’
“…….”
‘물론 행성의 모습이 내 기억과 너무 많이 변해서, 나조차도 어색하구나.’
“원래는 어떤 모습이었는데요?”
‘네가 상상한 것처럼 지옥불에 떨어진 영혼들이 절규하는 곳이었지.’
행성 전체의 환경을 바꾸다니.
대체 왜?
누가?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7대 악마의 대장이 아이라라고 했죠? 그럼 아이라가 이렇게 바꾼 거예요?”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스파디아는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아이라가 이런 행성을 만들도록 다른 녀석들이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텐데.’
“다른 녀석이라면 누구요?”
‘아스모데우스와 루시퍼.’
“아스모데우스면…… 음욕의 악마요?”
‘맞아, 아스모데우스는 타인의 고통에 희락을 느끼는 아이야. 지옥불에 떨어진 영혼을 보고 즐거워하던 아이가, 이런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좋아할 턱이 없지.’
“그럼 아이라가 강압적으로 환경을 바꿨다는 뜻인데, 언노운 수장들끼리 싸운 거 아니에요?”
에스파디아도 명확한 이유를 모르는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뒤이어 에스파디아는 화제를 돌렸다.
‘일단 북쪽으로 이동하거라. 그곳 어딘가에 언노운의 성이 있을 게야.’
“성?”
‘어린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노는 것처럼, 7명의 아이도 그런 놀이를 좋아했지.’
에스파디아의 말에 따라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십 킬로미터를 눈 깜짝할 새에 돌파하자, 이윽고 거대한 성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에스파디아? 이건 소꿉놀이 수준이 아닌데요?”
‘떡잎부터 다른 아이들이었지.’
웅장하다고 해야 좋을지, 압도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고개를 한참이나 들어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언노운의 모성에 도착했는데…… 악마들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