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4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쫓고 쫓기는 자 3화
의문을 품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구나. 너무 조용해.’
“이미 눈치채고 도망친 것 같은데요.”
‘내부를 확인하는 게 좋겠구나. 성내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게이트를 열었다면 그 좌표가 성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야.’
“성 밖에서 게이트를 열었다면요?”
‘그럼 처음 계획대로 모든 행성을 돌아다녀야지.’
부디 흔적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서둘러 내부로 이동했다.
압도적인 규모만큼이나 구조도 복잡했다.
신기한 것은 시중을 드는 마물도 없고, 생명체의 기운이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아이라와 굴라는 이곳을 떠난 것이다.
그 밑에 있던 수하들, 마물들도 같이 이동한 건가?
모르겠다.
아슈루의 모성을 버리고 수장들부터 처리할 걸 그랬나?
지난날 내게 주어졌던 여러 선택지와, 내가 내린 결단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돌아보지 마.’
“네?”
‘네 선택으로 아슈루의 백성 50억을 구출했다. 그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냐.’
“당연히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지만…….”
주어진 5년이란 시간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지금도 아틀란티스로 이동한 결인들은 5년 후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설여원과 나눈 약속에 늦을까 봐 조급할 뿐이다.
‘지구에 그런 말이 있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인류학 박사 다 되셨네요.”
‘먼 미래를 보면 불안감에 휩싸일 뿐이다. 현실에 집중하거라.’
“…….”
에스파디아의 말이 맞다.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며, 평안하다면 현실을 사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하고,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여기 지하도 있는 것 같은데, 거기부터 확인할까요?”
‘지하가 있다고?’
“안 느껴져요? 지하에 마력 응축된 거.”
대답이 없다.
에스파디아는 이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자, 다소 긴장한 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느낄 수 있고 내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쩌면 함정이 있을지도 몰라.’
“함정이요?”
‘관리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 금단의 장소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넌 육체를 지닌 생명체기에 눈속임을 피할 수 있는 거지.’
“함정이 있다는 건 보물이라도 있다는 거네요?”
‘조심해서 이동하거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명왕의 갑주를 착용하고 명월에 마력을 실었다.
뒤이어 흑도 명월을 치켜들자, 에스파디아는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하는 게냐?’
“내려가야죠.”
‘계단은 저쪽에 있는…….’
“함정 있다면서요? 그럼 새로운 길을 뚫어야죠.”
‘잠깐, 너 또…….’
“예술과 토목, 건설, 그리고 함정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요?”
‘제발 당황하게 만들…….’
“폭발입니다.”
쾅-!!!!
그대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쩌적-!! 쾅!!!!!
거미줄 모양의 균열과 함께 지반이 뚫리고, 커다란 공동으로 떨어졌다.
“엄청 깊네요!”
‘날개, 날개 펼쳐!’
펄럭!
에스파디아가 시키는 대로 날개를 펼치고, 발밑으로 보이는 낯선 공간을 살폈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명월의 빛으로 비추자, 서서히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에스파디아, 이거 요람 아닙니까?”
에스파디아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웬일로 이렇게 긴장했지?
곧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떨렸다.
‘이런 정신 나간 짓을……!’
“왜요, 무슨 일인데요?”
‘언노운의 무덤이다.’
“네?”
요람처럼 생겼는데, 이게 무덤이라고?
그것도 생명체의 무덤도 아니고 언노운의 무덤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이러한 의구심을 품자, 에스파디아의 대답이 이어졌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는 법.’
“그게 무슨 말이에요.”
‘타락한 영혼들의 무덤 위에 절망의 요람을 세워라. 금서에 적힌 내용이다.’
“금서요?”
훙- 타닷!
가벼운 날갯짓으로 속도를 줄인 뒤, 요람 위에 안전하게 안착했다.
위에서 볼 때는 분명 요람의 형태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끝을 알 수 없는 시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눈살을 찌푸리자, 에스파디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금서와 함께 사라진 줄 알았는데…….’
“금서 내용이 뭔데요.”
‘관리자를 창조한 절대 주신이 있고, 그와 대적한 자의 이야기가 적혀 있지. 후세를 위한 예언도 적혀 있고.’
“대적한 자가 언노운의 시초격이에요?”
‘맞아. 관리자가 절대 주신의 몸에서 창조된 것처럼, 모든 악의 근원도 그자의 몸에서 창조되었다.’
“그자? 이름이 뭡니까.”
‘오그도아드. 일곱 가지 대죄의 창조주이자 제8의 눈을 개안한 절대 악. 타락한 성배.’
제8의 눈?
타락한 성배?
성배에 관리자들의 근원이 담기면 절대 주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타락한 성배에 언노운의 근원이 담기면 오그도아드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저도 상대할 수 없어요?”
‘오그도아드는 절대 주신만이 상대할 수 있어.’
“그럼 뭡니까, 여기서 아이라와 굴라가 오그도아드의 부활이라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 마법진은…… 오그도아드의 완전한 부활을 위함이 아니야. 오그도아드의 힘을 불러내는 의식이지. 타락한 성배를 사용하지 않고, 오그도아드의 힘을 이용하려는 거야.’
“부활이랑 힘을 불러내는 의식이랑 뭐가 달라요?”
‘이런 의식이 더 위험하다. 육체가 없는 오그도아드의 힘을 누가 감당하겠느냐? 1초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할 거야.’
“오그도아드의 힘이 폭발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우주가 사라진다.’
하긴, 흘러넘치는 마력을 감당하기 위해 성배를 제작한 것처럼, 오그도아드의 마력을 담을 그릇도 필요할 것이다.
그릇도 없이 힘을 습득한다면…… 이는 파멸을 자초할 뿐이다.
에스파디아는 혀를 끌끌 차며 얘기했다.
‘언노운의 모성이 왜 이렇게 됐나 했더니,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니.’
“이 의식에 필요한 게 뭐예요. 무덤 위의 요람이랑 또.”
‘모든 관리자의 근원과 타락한 성배의 조각.’
“그런 얘기를 왜 이제 해줘요?”
‘그건 전설로만 내려오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비록 루드라바의 근원은 굴라가 흡수했지만, 그 이상 근원을 담으면 굴라가 버티지 못해.’
“관리자의 근원은 옮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맞아, 아무리 아이라가 도와주더라도, 한계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고 있잖아요. 다른 방법이 생긴 거 아니에요?”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살아 있는 관리자를 한자리에 모으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생겼다.
지금껏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세 명의 악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소할 열쇠가, 남은 세 명의 악마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에스파디아. 루시퍼랑 아스모데우스, 다른 한 명은 누구예요?”
‘마몬.’
“그놈들 특징이랑 성향 얘기해 줘요.”
‘아스모데우스는 변태적 성향이 강해. 고문과 타인의 슬픔, 고통을 보며 즐긴다.’
“말고 다른 놈들은요?”
‘마몬은 아이라를 따르는 악마다. 굴라와 마몬이 아이라의 오른팔과 왼팔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게야.’
에스파디아는 설명을 하다 말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남은 악마.
루시퍼.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관리자와 루시퍼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괜찮으니 빨리 설명해요. 루시퍼한테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루시퍼는…… 본래 내 종속이었다.’
“네? 종속이요? 인비디아를 따르던 12명의 대장처럼, 당신도 그런 대장들이 있었다고요?”
‘옛날 일이야. 가늠조차 되지 않을 만큼.’
“아무튼 그래서요.”
‘루시퍼는 내 파편을 지닌 아이였고, 타락하는 과정 역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그래서 내 손으로 처리했지.’
“그런 존재가 언노운의 행성에서 악마로 다시 태어났고요?”
에스파디아는 대답을 망설였다.
내 말이 맞는 모양이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지난날은 캐묻지 않을 테니, 루시퍼의 특징이랑 성향만 알려줘요.”
‘관리자를 향한 분노와 배신감, 억울함으로 점철된 아이지. 가장 강한 힘을 지녔고.’
“가장 강하다고요? 아이라보다 더?”
‘거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모순?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스파디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루시퍼의 힘은 관리자를 상대할 때만 강할 뿐, 반대로 악마들에겐 약해.’
“왜요?”
‘루시퍼가 언노운의 모습으로 세상 밖에 나오던 순간, 오그도아드의 마력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관리자들이 절대 주신의 몸에서 나뉘었고, 서로의 근원에 이끌림을 느낀다고 했지?’
“네.”
‘놈들도 마찬가지야. 악마들의 근원은 모두 오그도아드의 것이었기에, 루시퍼가 다른 악마를 죽이는 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그 뜻은 루시퍼가 특별한 존재라는 거 아니에요?”
‘맞아. 루시퍼가 바로 타락한 성배의 조각이다.’
그래서 루시퍼가 관리자에게 강하고 악마들에게 약하다는 건가?
그럼 타락한 성배의 조각이라는 건…… 오그도아드의 부활에 필요한 재료라는 말이 되고, 루시퍼는 오그도아드의 부활을 위한 매개체라는 말이 된다.
“그럼 이 요람에 루시퍼도 제물로 들어가는 거예요?”
‘맞아.’
“그럼…… 루시퍼 혼자는 아무것도 아닌 거네요? 해봐야 관리자를 상대하는 방패 역할 아니에요?”
‘꼭 그렇지도 않아. 루시퍼가 언노운의 근원을 4개 이상 흡수하면…… 오그도아드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할 거야.’
“그 정도면…… 지금까지 오그도아드가 안 나타난 게 다행 아니에요? 루시퍼가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얘기했잖아. 루시퍼의 마력은 언노운을 상대로는 힘을 낼 수 없다고.’
“아.”
‘다른 악마들이 스스로 제물이 되기를 자청한다면 루시퍼가 그들의 근원을 흡수하고 오그도아드로 변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
‘지금까지 오그도아드가 부활하지 않은 건 악마들이 루시퍼를 배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악마들도 소멸은 원치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다.’
하긴, 이미 왕위에 앉은 7대 악마들의 입장에서 굳이 오그도아드를 부활시킬 필요는 없다.
“그럼 아이라는…… 희생 없이 오그도아드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이런 마력진을 만들고 의식을 준비했다는 거예요?”
‘정확해. 그래서 루드라바의 근원을 파괴하지 않고 가져간 거야. 본인이 오그도아드의 힘을 계승하려는 속셈이지.’
“제가 만약 아이라와 굴라에게 패배하면 인류는…….”
‘인류의 종말이 아니라 우주가 사라질 거야.’
“…….”
일이 점점 커지네.
부담도 이런 부담이 없다.
“그럼…… 지금 아이라와 굴라만 잡으면 되는 거죠?”
‘아니, 어쩌면 더 쉬운 방법이 있다.’
“무슨 방법이요.”
‘근원을 담을 수 있는 건 탐욕의 악마, 굴라가 유일해.’
“굴라만 죽여도 이 마력진은 쓸모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렇지.’
에스파디아의 대답을 듣고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금 1층으로 이동했다.
성 밖으로 이동한 뒤, 흑도 명월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얘기했다.
“일단 요람부터 박살 내죠.”
‘언노운의 성은 쉽게 무너지지…….’
“부서질 때까지 때릴 겁니다.”
‘…….’
검파를 말아쥐며 전신에 힘을 주자, 방대한 마력이 명월에 담기며 눈부신 월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깨끗하게 지우고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자고요.”
훙!
있는 힘껏 명월을 휘두르자, 거대한 마력 파랑이 출렁이며 순식간에 언노운의 성을 가격했다.
쾅-!!!!!
콰과광-!! 쿠궁- 콰광-!!
에스파디아의 말대로 쉽게 무너지지 않았지만, 일격에 무너지지 않으면 무너질 때까지 휘둘러서 부숴버리면 그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남았으니까.
콰과과과과과과광-!!!!
수십 번을 휘두른 끝에,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리며 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즈즈즉- 즈즉-
뒤이어 폐허로 변한 대지 위로 기이한 마력장이 생성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에스파디아, 저게 뭐예요?”
그 순간, 에스파디아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쫓아가라, 어서!’
“네?”
‘횡재다. 숨겨둔 경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