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7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쫓고 쫓기는 자 6화
하지만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육체 제어권도 넘기지 않고, 미동도 없이 루시퍼를 응시했다.
‘뭐 하는 거예요?! 빨리 제어권 넘기라고요!’
‘일격도 버티지 못한다면, 그게 너와 나의 한계겠지.’
‘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일격을 버텨?
일부러 맞아주겠다는 거야?
루시퍼의 마력이 방출되고, 그의 오른손으로 기다란 낫이 생성되었다.
만화 속 사신이 들고 다니는 서슬 퍼런 낫처럼, 금방이라도 목을 도려낼 것 같았다.
“에스파디아, 당신은 고통이 뭔지 몰라.”
루시퍼의 말에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에스파디아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에스파디아!!’
목청껏 불러도 에스파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훙-!
뒤이어 루시퍼의 낫이 날아들었다.
쾅-!!!!!
우측 어깨부터 좌측 옆구리까지, 깔끔하게 휘두른 공격.
즈즈즉-
명왕의 갑주를 감싸고 있던 마력장의 일부가 찢어지고, 빈틈이 생겼다.
루시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쉴 새 없이 맹공을 이어갔다.
콰과과과과과과광-!!!!!!
이러다간 죽게 생겼다.
‘에스파디아 내 말 들어요. 루시퍼 안 죽일 테니까, 당장 제어권 넘겨요.’
침착하게 얘기하자, 뒤이어 심장의 고동이 귓가로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고동에 귀를 기울이자, 에스파디아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에스파디아는…… 슬퍼하고 있었다.
이에 눈꼬리를 치켜뜨자,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죄가 크구나.’
‘…….’
‘루시퍼의 한이…… 이렇게 깊을 줄이야.’
갑주를 입고 있으니, 루시퍼는 에스파디아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에스파디아가 울고 있다는 것을.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에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애잔함, 슬픔, 미안함, 죄책감, 후회 등.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에스파디아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육체다.
내 몸이란 말이다!
에스파디아는 의욕을 잃었지만, 난 아니다.
‘당장 제어권 넘겨요. 지금 안 넘기면 두 번 다시 제어권 넘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
‘루시퍼 안 죽일게요. 약속할 테니 빨리.’
에스파디아는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제어권을 넘겨주었다.
텁!
제어권을 얻자마자 황급히 손을 뻗어 날아드는 낫을 붙잡았다.
“하! 이제야 싸울 생각이 들었습니까?!”
“한심한 새끼.”
경멸에 찬 목소리로 얘기하자, 루시퍼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투구를 벗고, 루시퍼를 똑바로 쳐다봤다.
두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을 그제야 확인했는지, 루시퍼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에스파디아의 심정을 그렇게 몰라? 네가 그러고도 충신이야?”
“에스파디아는 어디 갔지?”
“알아서 뭐하게? 부모 가슴에 대못이나 박는 청개구리 새끼야.”
“…….”
루시퍼는 마른침을 삼키며 좌우로 눈을 굴렸다.
이에 콧방귀 뀌며 얘기했다.
“눈 굴리는 꼬락서니하고는. 당연히 내 안에 있지 어디 멀리 갔을까 봐?”
“에스파디아 데려와. 너 따위가 끼어들 대화가 아니다.”
“내 몸이야 새끼야. 내 육체고, 내 성배라고.”
“…….”
“에스파디아가 오죽하면 울더라. 수천, 수억 년이 지나도 여전히 깨달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발전 없는 새끼.”
광기에 찬 표정으로 거친 말을 쏟아내자, 루시퍼는 심히 놀란 표정으로 엉거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루시퍼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며 얘기했다.
“야, 하나만 묻자.”
“감히 필멸의 존재 따위가 내게…….”
“넌 그게 문제라고, 이 한심한 새끼야.”
“……?”
“넌 에스파디아 입장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내, 내가 에스파디아를?”
루시퍼는 입술을 벙긋거릴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너만 이해받고 싶은 줄 알아?”
“그럼 충직한 신하를 죽인 에스파디아가 옳다는…….”
“닥쳐. 머릿속에 모 아니면 도밖에 없냐? 왜 중간이 없어.”
“…….”
“에스파디아가 다 잘했다는 게 아니잖아. 네가 정말 충직한 신하라면 에스파디아가 꾸지람을 주고 변화를 바랄 때, 적어도 한 번은 따라줬어야지.”
“…….”
“너 혼자 네 방식대로 충성하면 그게 충성이냐? 에스파디아가 원하는 길로 나아가야 충성이지?”
루시퍼는 어벙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 멍청한 표정을 보고 더욱 미간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손빨래 하랬더니 세탁기에 집어넣고, 취급 주의 상자 있는 힘껏 던지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머리에 나사 빠진 새끼야.”
“…….”
“넌 대화가 뭐라고 생각하냐?”
“……어?”
“본인의 방식이 옳다고, 칭찬해 달라고 따지는 게 대화냐?”
“나는…….”
“의견을 조율하고 수정하고, 한쪽이 양보도 하고, 양보하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그러면서 나아가야지. 그게 대화의 이유 아니야?”
“…….”
“하여튼 신이라는 놈들, 하나같이 똥고집에 옹고집들이야. 나도 고집 센 편인데, 너희에 비하면 내가 양반이네.”
에스파디아와 루시퍼의 대화를 지켜보며 차곡차곡 쌓아온 불만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쉴 새 없이 몰아붙이자, 루시퍼는 붕어처럼 입술을 벙긋거렸다.
‘나도…… 포함되는 말이더냐?’
귓가로 들리는 에스파디아의 목소리에, 뚱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포함되죠. 아무리 미워도 당신을 따르는 신하를 죽이면 어떡해요?’
‘…….’
‘라스트아크도 봐요. 시스템부터 너무 과격하다 했어. 도와주기도 하고 으쌰으쌰 힘내라, 파이팅! 이런 게 있어야지.’
‘…….’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죽어라, 죽어라, 굿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누가 좋아해요?’
‘너, 너는 클리어했잖아.’
‘제가 클리어하고 제일 먼저 한 말이 뭔지 알아요?’
‘뭔데.’
‘이 X같은 게임. 1년 동안 함께해서 즐거웠고, 함께 해서 더러웠다!’
‘…….’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에스파디아도 루시퍼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루시퍼를 노려보자,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눈만 껌벅였다.
이에 루시퍼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루시퍼 당신이 원하는 게 뭐야. 정말 에스파디아를 죽이는 게 목표야?”
“…….”
루시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머릿속으로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구나. 천하의 루시퍼를 꼼짝 못 하게 만들다니.’
‘칼에 맞은 상처는 아물지만, 팩트폭행은 쉽게 아물지 않죠.’
‘팩트…… 뭐?’
‘있어요. 사람도 고장 나게 만드는 무기.’
‘인간에겐 정말 많은 무기가 있구나.’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자, 뒤이어 루시퍼의 대답이 들려왔다.
“내가 원하는 건…….”
“인정 욕구?”
“……말 좀 끊지 마.”
“그럼 버벅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하든가!”
루시퍼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말발로 루시퍼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여태 쏘아붙였으니, 슬슬 당근을 던져줄 차롄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주변을 못 봐. 경주마처럼 앞만 보게 된다고.”
“…….”
“그 뒤엔 어떻게 될 것 같냐? 보상심리만 강해지고, 자존감은 떨어지고, 그렇게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거야 인마.”
“감히 너 따위가, 내가 망가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냐?”
“어, 개판이야. 망치로 때려 부숴도 이렇게 망가지진 않아.”
루시퍼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대놓고 앞에서 욕을 하니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신이라 할지라도, 21세기 인류의 말발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에 계속해서 팩트 폭행을 가했다.
“너 타락 천사라며. 원래 선한 마음도 있었을 것 아냐? 이렇게 망가진 상태로 있을 거야? 부끄럽지도 않아?”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너무 멀리…….”
“멀리 왔으면 힘내서 돌아갈 생각을 해야지 한심한 새끼야!! 집에 안 갈 거야? 포기하는 게 취미야?!”
“네까짓 게 뭘 안다고 내게……!”
“변명 좀 작작해!!”
언성을 높이며 마력을 방출하자, 루시퍼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며 기 죽은 모습을 보였다.
이에 삿대질과 함께 말을 이었다.
“끝까지 인정 안 하지? 계속 고집부리면서 오그도아드로 변신할래? 파멸이 그렇게 좋아?”
“…….”
“네가 아이라랑 다를 게 뭐야? 씨발 뭐 너도나도 세상 박살 내겠다고 지랄이야. 애새끼들 어리광도 아니고.”
“…….”
“대답해. 오그도아드로 변해서 네 자아도 없는 상태로 살아갈래, 아니면 타락 천사 꼬리표 떼고 지금이라도 개과천선할래?”
루시퍼는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돌아갈 수…… 있다고?”
“안 될 게 뭐야?”
“내가…… 다시 관리자의 편에.”
“나한테 묻지 말고 너 자신에게 물어! 신이라는 작자가 마음 더럽게 약하네 진짜!”
“…….”
루시퍼가 망설이기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정 힘들면 얘기해. 그땐 쥐어패서라도 도와줄 테니. 그래도 싫으면 오그도아드로 변해서 아무거나 박살 내고 그 끝에 공허함의 나날을 살든가.”
루시퍼에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모든 게 사라진 뒤에 뭐가 남아? 정말 그런 세상을 바라는 거야?”
루시퍼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손을 파르르 떨더니, 결국 손에 쥐고 있던 낫을 내려놓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눈물을 삼켰다.
“다시…… 돌아갈래…….”
루시퍼의 입에서 흘러나온 열망.
덤덤하게 쳐다보자, 루시퍼의 어깨가 잔잔하게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고통스러웠지만…… 많은 감정을 지니고 있던 그 시절이 그리워.”
분노와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던 루시퍼의 마음에 작디작은 싹이 돋았다.
그런 루시퍼를 보고 에스파디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대단하구나. 명월을 사용하지 않고 루시퍼를 무릎 꿇리다니.’
‘임시방편이에요.’
‘임시방편?’
‘완전한 개과천선은 어려울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에스파디아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묻기에,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개과천선의 가능성은 희박해요.’
‘어째서.’
‘타고난 기본 성향은 절대 바뀌지 않아요. 기질이라고 하죠? 잠깐은 우리 편으로 돌릴 수 있어도, 결국은 허기를 느낄 겁니다.’
‘허기라면…….’
‘살육의 허기요.’
루시퍼는 살육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녀석이다.
아스모데우스의 기억을 확인했을 때, 이미 개과천선이 어렵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아이라와 굴라를 처리한다면, 루시퍼가 아스모데우스를 떠올릴 테니까.
지금은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고, 현란한 말발에 충분히 휘둘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토록 원망하던 에스파디아와의 조우, 그동안 내뱉지 못한 속마음을 시원하게 내뱉으며 스스로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으니까.
사실 팩트 폭행도 감정적으로 동요한 상대만을 제압할 수 있지, 여유를 되찾은 상대에겐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을 에스파디아에게 들려주자,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개과천선에 성공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지금 죽이지 않은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
‘정말 개과천선하면 살 것이고, 조금이라도 악한 기질이 깨어난다면…….’
‘그땐 죽일 게냐?’
‘가차 없이 죽일 겁니다.’
진지하게 대답하자, 에스파디아도 수긍하며 얘기했다.
‘네게 그 정도 도량이 있을 줄이야. 많이 성장했구나.’
‘도량이 아닙니다.’
‘응?’
‘아이라와 굴라를 찾기 위해선 루시퍼가 필요해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관리자끼리 서로의 근원에 이끌리는 것처럼 악마들도 그렇다고.’
사실 아스모데우스의 기억만 봐서는 아이라와 굴라가 어디로 대피했는지 찾을 방도가 없었다.
루드라바의 근원은 굴라의 마력에 가려져 추적에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서 루시퍼를 만난 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마치 루시퍼를 회유해서 아이라와 굴라를 찾으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에스파디아는 짧은 탄성을 뱉으며 얘기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대화를 유도한 게냐?’
‘제가 괜히 입을 털었겠어요? 필요한 게 있으니 최선을 다해서 털었지.’
‘무섭구나. 인간이란 생물은.’
‘창조자가 그걸 모르면 어떡해요.’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에스파디아도 다른 대답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뒤이어 바닥에 주저앉은 루시퍼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내가 도와줄 테니.”
“…….”
“같이 노력해 보고, 그 뒤에도 심란하고 억울하면 얘기해.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
루시퍼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확한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표정에서 내 의견에 따르겠다는 의사가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