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8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쫓고 쫓기는 자 7화
루시퍼는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
“일단 죽은 자를 위한 예부터 갖춰야지. 적이든 아군이든, 죽음 앞에선 평등하니까.”
차디찬 송장으로 전락한 아스모데우스를 가리키자, 루시퍼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손끝에 마력을 집중해서 지면을 가리켰다.
쾅-!!!
손끝에서 방출된 마력이 지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그곳에 아스모데우스를 묻어주었다.
마땅한 묘비가 없어서, 무너진 성의 잔해로 묘비를 세웠다.
“비문은 네가 적을 거야?”
루시퍼를 쳐다보며 묻자, 그는 검지에 힘을 주어 묘비에 글자를 적었다.
-이해받지 못한 자, 이해받지 못한 이를 대신하여 이곳에 묻히다.
거참, 은근히 짠한 녀석이네.
루시퍼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건 사실이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스모데우스의 묘도 만들었으니, 감상은 접어두고 현실을 직시해야겠다.
“루시퍼, 혹시 아이라와 굴라의 마력이 느껴지나?”
“벌써 마력이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감지된 행성이 어디야.”
“안내하지. 단,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한다면.”
루시퍼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얘기하라는 몸짓을 보이자, 루시퍼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이라와 굴라를 죽이려는 이유가 뭐지?”
“관리자를 죽이려고 하잖아.”
“관리자의 삶이 악마들의 삶보다 가치 있다는 거냐?”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되겠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기에, 다른 대답을 들려주었다.
“오그도아드의 힘을 불러내려고 했으니까.”
“오그도아드의 힘을?”
“몰랐어?”
“아스모데우스에게 간략하게 들었지, 정확한 상황은 듣지 못했다.”
“아이라가 요람을 만들었어. 난 그걸 부수고 오는 길이고.”
요람이란 말에 루시퍼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루시퍼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세차게 혀를 차며 얘기했다.
“마몬에게 빈틈이 생기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군.”
“아 맞아, 그것 좀 정확하게 알려줘. 네가 마력 개방하면 마몬의 마력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된 거야?”
“마몬의 근원을 내가 흡수했으니까.”
“네가 마몬을 어떻게 이긴 거야? 타락한 성배의 조각은 악마들에게 힘을 쓸 수 없다고 들었는데.”
루시퍼는 이마를 문지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설명을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나와 아스모데우스는 아이라에게 반기를 들었다.”
“오그도아드가 되려고?”
“아니, 아이라가 선을 넘었으니까.”
고개를 갸웃거리자, 루시퍼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아이라는…… 타락한 영혼을 관리하는 대신, 그들의 마력을 본인의 양분으로 흡수했어. 거기엔 자연 식물도 포함되어 있었지.”
“자연 식물이라면…….”
“행성의 기운까지 흡수한 거야. 그래서 언노운의 모성은 죽은 별이 된 거고.”
이에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래서 반기를 들었다고?”
“그래. 아무리 타락한 영혼이 모여드는 언노운의 모성이라 해도, 마력과 자연이 순환하는 장소였어. 그걸…… 아이라가 망쳤다.”
루시퍼가 지성을 지닌 생명체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겠다.
에스파디아와 의견을 조율할 수 없는 이유도 알 것 같다.
루시퍼에게 소중한 것은 행성의 자연 식물이지, 그 속의 생명체가 아닌 것이다.
지성을 지닌 생명체와 벌레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에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자연의 순리는…… 오직 식물이야?”
“식물이 있어야 동물이 있는 거야. 생명의 기준은 오직 자연 식물이다.”
에스파디아는 행성 전체의 순환을 자연의 순리라 생각하지만, 루시퍼의 기준은 아니었다.
정신이 얼떨떨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루시퍼의 말이 이어졌다.
“자연 식물의 보전을 위해 지성을 지닌 생명체의 수는 규정하는 게 마땅해.”
“그래서 에스파디아의 종속으로 있을 때, 그 많은 행성의 생명체를 죽인 거야?”
“맞아. 내가 죽인 생명체들은…… 전부 자연을 파괴하는 종족들이었다.”
“아이라에게 대든 이유도 언노운의 모성에 서식하는 식물의 마력까지 뽑아가서 그런 거고?”
“아이라 때문에 언노운의 모성은 죽은 별이 됐다고 얘기했을 텐데?”
그래서 언노운의 모성에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은 건가?
에스파디아도 언노운의 모성이 너무 많이 변해서 알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퍼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반기를 든 죄로, 지난 500년간 난 봉인되어 있었고.”
“아스모데우스는 뭐야?”
“아스모데우스는 황폐한 세계를 원치 않았어. 누군가는 저질스러운 취미라 할 수 있지만, 아스모데우스는 지옥의 광경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 행성을 지옥처럼 꾸민 거야?”
“맞아, 그 뒤로 타락한 영혼들도 언노운의 모성이 아닌 이곳으로 이동하도록 좌표를 바꿨지.”
“그걸 바꿀 수도 있어?”
“에스파디아의 모성과 아슈루의 모성이 닮지 않았는가?”
루시퍼의 질문에 움찔거리고 말았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아니지, 한때 에스파디아의 종속이었으니 아는 게 당연한가?
그러자 루시퍼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악마들의 행성은 언노운의 모성을 모티브로 여러 차원에 생성되었어.”
“악마들이 총 7명이니, 6개의 행성이 생성된 거야?”
“맞아. 최초의 모성은 아이라가 관리하고, 그 뒤에 생성된 행성들은 각 악마들이 관리했지.”
“여긴 아스모데우스의 행성인 거고?”
“이해가 빠르구나. 문제는 7개의 행성 중에서 4개가 파괴되었지.”
“행성이 파괴됐다고? 왜.”
“아이라가 부순 거야.”
“…….”
왜 멀쩡한 행성을…….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왜 그런 거야?”
“본인이 유일무이한 절대자로 남고 싶으니까. 다른 악마들이 관리자를 흉내 내는 걸 불쾌하게 여겼지.”
어이가 없네.
아이라 본인도 관리자를 흉내 내는 꼴이면서 말이야.
“4개의 행성이 파괴되었다고 했는데, 누가 관리하던 행성이야?”
“인비디아와 피그리티아, 마몬, 굴라의 행성이다.”
파괴된 4개의 행성은 전부 아이라를 따른 악마들이 관리하는 행성이었다.
그렇다면…… 따르고 싶어서 따른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따른 모양이다.
생각을 정리하며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물었다.
“아스모데우스와 네 행성을 남겨둔 이유는 뭐야?”
“다른 악마들은 행성이 파괴되는 걸 보고 아이라에게 무릎 꿇었지만, 아스모데우스와 나는 절대 굽히지 않았거든.”
“아스모데우스랑 너는…… 행성 부수지 말라고 대든 거였어?”
“맞아. 모성의 자연을 파괴한 아이라에게 분노했고, 악마들의 행성을 파괴하는 모습에 치를 떨었지.”
“그럼 반기를 든 게 아니라 지키려고 한 거네?”
“그렇다.”
아이라 이 새끼가 문제구나?
인상을 찌푸리자, 루시퍼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명분도 좋고, 의심하기도 좋았지. 난 타락한 성배의 조각이니까.”
“네가 오그도아드로 각성하려고 반기를 들었다, 아이라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500년이나 감시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를 봉인하는 조건으로 아스모데우스의 행성은 파괴하지 않았다. 물론 말이 좋아서 보전이지, 사실상 유배에 가깝다.”
그 유배가 묘략을 세울 신의 한 수가 된 건가?
“그럼…… 유배당한 아스모데우스가 이곳에서 힘을 키우고 다른 계획을 세운 거야?”
“맞아.”
“그게 혹시…… 너를 오그도아드로 만들 계획이었나?”
“그렇다. 내게 모든 힘과 권능을 줄 테니, 악마들을 죽이자고 하더군.”
“넌 진심으로 그럴 생각이었고?”
“…….”
루시퍼는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어.”
“확실하게 대답해 줬으면 하는데.”
“정말 모르겠어. 내겐 아스모데우스뿐이었고, 그녀의 바람이 오그도아드의 강림이었다.”
“…….”
“아이라를 향한 복수심과 아스모데우스의 염원, 내겐 두 개의 목표가 있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오그도아드의 힘이 필요하고.”
“아스모데우스의 염원은 포기해. 아스모데우스가 원하는 세상은 모든 생명체의 절규와 절망으로 점철된 세상이잖아.”
“…….”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
이번에도 루시퍼는 대답을 회피했다.
하…… 까다로운 녀석 같으니.
마음 놓고 도와줄 수도 없고, 언제든 내 등에 칼을 꽂을 것 같아서 뒤를 맡길 수도 없다.
지금 당장 대답을 바라면 루시퍼가 압박감을 느낄 수도 있기에, 하는 수 없이 내가 한발 물러섰다.
“일단 아이라랑 굴라부터 처리하고 얘기하자. 오케이?”
“오…… 뭐?”
“알겠냐고.”
“알았다.”
“네 행성은 아직 안전한 거지?”
“안전하지 않아. 함정과 마력진으로 도배된 세상이지.”
“네가 봉인 풀고 나올 때를 대비해서 아이라가 설치한 거야?”
“아이라와 굴라, 마몬의 합작이지. 마몬의 함정구조를 아스모데우스가 파악해주었고, 마몬을 죽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덕에 봉인을 풀고 나올 수 있었고.”
“…….”
“어떻게 보면 네게 감사해야겠구나. 500년 만에 아이라의 감시에 빈틈이 생긴 건 네 덕분이니까.”
재밌네.
먹고 먹히는 관계, 물고 물리는 싸움.
아무튼, 아스모데우스의 행성과 루시퍼의 행성이 이미 망가진 상태라면…… 아이라와 굴라는 어디로 간 거지?
이에 팔짱을 끼며 물었다.
“아무튼, 나는 묻는 말에 성실하게 대답했으니 이제 그만 아이라랑 굴라 쫓아가자고.”
“너, 언노운을 왜 언노운이라 부르는지 아느냐?”
이어지는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그것까지 알아야 돼?”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숫자.”
“타락한 영혼의 숫자.”
선한 영혼은 환생을 통해 다시금 생명의 별에 잉태될 수 있지만, 타락한 영혼은 아니었다.
완전히 영혼을 파괴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쌓일 뿐이다.
그리고 규모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건…….
“그럼 언노운의 모성과 아스모데우스의 행성 말고도 타락한 영혼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는 거야?”
“우주는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으니까. 우주가 넓어진 만큼, 행성 하나에 모든 타락한 영혼을 담아내는 건 불가능해.”
“설마 아이라를 제외한 다른 악마들의 행성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인 거야?”
“맞아. 쉽게 말해서 아이라는 온 우주에 마력생성 공장을 돌리고 있는 거야.”
“…….”
“에스파디아가 알려주지 않은 거냐? 언노운의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건 에스파디아도 알고 있을 텐데.”
생각해 보면 에스파디아가 언노운에 대해 처음 알려줄 때도, 내게 비슷한 말을 했다.
언노운의 규모는 가늠조차 할 수 없고, 모성의 위치도 알 수 없다고.
루시퍼는 덤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언노운을 섬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
“처음부터 관리자들이 언노운의 싹을 자르며 관리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잡으려고 하니 앞이 막막한 거지.”
“루시퍼 너도 모든 행성의 위치는 모르는 거야?”
“500년이나 갇혀 있었어. 내가 모르는 행성도 많을 거야.”
“잡초 같은 놈들이네.”
“관리자들이 언노운의 모성만 잘 관리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
“그걸 7명의 아이에게 맡기고 그들은 일탈을 즐겼으니, 화단만 관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 세계에 퍼진 칡뿌리를 걷어내야 하는 수준으로 변한 거야.”
“오케이, 전부 걷어내야지 뭐.”
뻐근한 어깨를 빙빙 돌리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루시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억울하지 않은 거냐?”
“억울? 뭐가.”
“네가 저지른 죄도 아닌데, 그 죗값을 네가 치르는 상황이잖아.”
“억울하다고 투정 부리면 상황이 달라지나?”
“…….”
“나까지 모르는 척하면 내 뒤에 올 사람은 무슨 생각 하겠어?”
루시퍼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맞지.”
“네가 성공하더라도, 네 뒤에 올 사람이 모든 걸 망칠 수도 있고.”
“그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말고 죽을까? 그따위 마음가짐으로 뭘 하겠다는 거야?”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루시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궁금하구나. 네가 싫어하는 게 뭔지.”
“말끝마다 만약에 붙이는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