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9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아틀란티스 1화
“만약?”
루시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불만 있으면 본인이 해결하고 바꿀 생각을 해야지. 세상 탓, 남 탓, 허구한 날 탓만 하면서 만약에 이랬으면, 저랬으면, 노래 부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놈들.”
치를 떨며 얘기하자, 루시퍼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들의 삶의 가치와 기준을 네가 판단하는 건 오만하지 않은가?”
“누가 뭐래? 원하는 게 없으면 마음대로 살아도 돼.”
“……?”
“대신 투쟁하고 노력하는 사람 발목은 잡지 말라고. 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고, 어떻게든 해낼 거야. 반대할 거면 여기서 갈라서.”
“적과 싸울 힘이 없다면?”
“적이랑 싸우다니?”
루시퍼를 쳐다보며 묻자, 그는 다시 한번 물었다.
“네가 투쟁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상대방이랑 투쟁하라는 게 아니잖아.”
“그럼 누구와 투쟁한다는 말이냐.”
“누구긴 누구야.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 자신이지.”
“…….”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 단단히 먹고 나아가야지. 난 어떻게든 해낼 거니까 옆에서 기운 빠지는 소리 하지 마. 그게 발목 잡는 거야.”
루시퍼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본인의 나약한 마음과 싸운다라…….”
“남들이랑 싸워서 뭐해? 남들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
“결국 내 인생 바꾸는 건 나거든. 무언가를 해내고 싶으면, 스스로에게 모질 게 굴 수 있어야 돼.”
“…….”
그러자 루시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에스파디아가 너를 예뻐하는 이유를 알겠구나.”
“무슨, 내가 잘해서 에스파디아가 옆에 있는 거지.”
루시퍼는 그제야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흑도 명월을 말아쥐며 얘기했다.
“됐고, 어서 움직이자고. 아이라의 마력이 마지막으로 느껴진 행성이 어디야?”
“그래, 쇠뿔도 단김에 뽑아야지.”
루시퍼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곧 손끝으로 마력을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루시퍼의 손끝에서 시작된 마력이 게이트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붉게 물든 게이트가 형성되고, 난 기다렸다는 듯이 게이트로 나아가며 얘기했다.
“가자.”
* * *
생존자들을 태운 함선은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돔 형태의 마력장이 함선을 감싸고, 함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이 어둠을 밝혔다.
결인들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는 갑판 위에서 바닷속 풍경을 살폈다.
“와…… 대박이다. 저거 봐.”
전완수는 바닷속을 유영하는 상어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반면에 최현은 옆에 있는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이 함선 찌그러지는 건 아니겠죠? 이 정도 깊이면 압력 장난 아닐 텐데.”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겠지.”
“끼익거리는 소리가 불안해서요.”
“…….”
사실 이정우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1만의 생존자가 탑승하고 있는 함선이다.
슬쩍 주변을 살피자, 생존자들의 표정으로 긴장감이 엿보였다.
반면에 아이들은 바닷속 생물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아빠! 나 저거 아쿠아리움에 봤어!”
아이들은 이곳을 아쿠아리움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아이들 중에는 안상진의 자녀들도 있었고, 인간으로 변한 안상진은 자녀들을 번쩍 들어 올리며 수중 생태계를 보다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저거 봐. 저 상어 엄청 크지?”
“댑따 커!”
안상진의 물음에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상어 관람에 열을 올렸다.
바닷속엔 감염된 동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감염된 동식물의 진액이 물에 닿으면 사라지는 것처럼, 바다는 인류의 보고이자, 지구상에 다시 없을 최후의 안식처였다.
뒤이어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우 오빠, 저기.”
설여원은 이정우의 팔을 잡아끌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설여원이 가리키는 방향을 살피자, 바닷속 깊은 곳에서 눈부신 빛이 일렁이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응시하자,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설로 내려오는 도시.
아틀란티스였다.
“도착인가?”
정진영이 다가와 이정우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묻자, 이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드디어 보이네. 최종 목적지.”
1만의 생존자가 탑승한 함선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우주 정거장에 도킹하는 것처럼 섬세한 조정과 함께 멈춰 섰다.
치이이익-
함선의 마력장과 아틀란티스의 마력장이 서로 연결되자,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출입구가 열렸다.
이정우는 결인들을 데리고 서둘러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아틀란티스 내부의 모습을 살폈다.
곧 이정우는 두 눈을 껌벅이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입구를 따라 기다랗게 이어진 산책로, 그 너머로 보이는 아름답게 꾸며진 조경.
돔 형태의 천장에는 인공 태양과 푸른 하늘, 조각구름 등이 떠다니고 있었다.
에덴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믿을 수 없는 풍경에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정우를 따라 입구로 내려온 생존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저게 뭐야?”
“와…… 천국 아니야?”
“안전지대, 안전지대는 있었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격스러워하는 생존자들.
곧 파티 압구정과 호수공원, 망원시장의 플레이어들도 입구로 내려왔다.
아니, 이젠 플레이어가 아니다.
결인들도 그렇고, 모든 파티원도 그렇고, 이젠 1만의 생존자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생존자였다.
압구정의 파티장이었던 한월은 이정우의 등을 가볍게 치며 얘기했다.
“먼저 들어가요. 우리 공격대대장.”
이정우는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아틀란티스로 들어섰다.
따뜻한 온기와 푹신한 흙길.
이정우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산책로를 따라 진입했다.
“어?”
그 순간, 이정우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경계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기에, 가드부터 올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뒤이어 이정우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떠지고, 심장이 격하게 뜀박질 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를 치고 있던 남자는 덩달아 놀란 표정으로 이정우를 불렀다.
“저, 정우 학생?”
“더, 덕배 아저씨?”
“정우 학생!”
“아저씨!!”
대학교를 벗어나던 시절, 빌라촌에 도착한 소리결이 처음 발견한 생존자.
딸을 구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나아갔던 남자.
소리결에게 쇠뇌 제작법을 알려준 바로 그 사람.
이덕배였다.
이덕배는 손에 쥐고 있던 가위를 바닥에 내던지며 이정우의 곁으로 달려왔다.
곧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사람처럼, 이정우를 와락 안으며 얘기했다.
“아이고 하느님! 살아 있었어, 살아 있었어! 살아남을 줄 알았어!”
“덕배 아저씨.”
“어디 봐. 아이고, 얼굴 상한 것 좀 봐. 아이고, 아이고…….”
이덕배는 감격스러운 마음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뒤이어 정원 깊숙한 곳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현배야! 만석아! 호진아! 예정아!”
그러자 이덕배의 목소리를 들은 생존자들이 미어캣처럼 이곳을 쳐다보더니, 손에 쥐고 있던 바구니를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정우 학생!!”
“정우 형!”
이덕배의 동생 이현배, 이덕배의 친구 최만석, 딸 이예정, 그리고 박재형의 기숙사 방 동생 천호진까지, 모두가 안전하게 지내고 있었다.
곧 함선에서 내린 결인들이 다가오자, 아틀란티스의 정원은 금세 눈물바다가 되었다.
한월을 포함한 1만의 생존자들은 정원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발견한 이덕배가 생존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서들 오시게!”
쩌렁쩌렁한 목소리.
호쾌한 건 여전하다.
머뭇거리던 생존자들이 정원에 들어서고, 이정우는 이덕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오는 길에 위험한 일은 없으셨어요? 부산에서 그렇게 헤어진 뒤로 항상 걱정했습니다.”
“으하핫! 자네들 덕에 지금껏 이리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불편할 게 뭐 있겠어?”
“여기는 뭐예요? 바닷속에 정원이라니.”
“심심해서 만들었지. 여기 남아도는 게 땅이거든. 아직 개척하지 못한 땅이 태반이야.”
“그렇게 넓어요?”
“규모가 어마어마해. 어쩌면 진정한 아크는 부산이나 서울이 아니라, 바로 여기인지도 몰라. 인류를 위한 마지막 안전지대.”
이덕배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우리 딸 예정이랑 현배, 만석이, 호진이랑 같이 가꾸고 있었지.”
“혹시 다른 분들은…….”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다들 잘 지내고 있어. 너무 반가워서 깜박했구먼.”
이덕배가 이마를 치며 호쾌하게 웃자, 옆에 있던 이현배가 콧방귀 뀌며 얘기했다.
“우리 형님 이렇게 밝게 웃는 건 오랜만에 보내.”
“이놈아, 웃을 일밖에 없는데 내가 언제 울상이라도 지었나?”
“심심하다고 노래를 불렀잖아요. 그래서 정원 가꾸는 것도 시작하고.”
“으하하! 그런가?”
이 씨 형제의 만담에 이정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를 발견한 최만석이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우 학생 왜 그래. 괜찮아?”
“아니, 아니요. 그냥…… 덕배 아저씨랑 현배 아저씨 만담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요.”
최만석은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정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생 많았어. 정말 고생 많았어.”
“…….”
“결인들은, 다친 사람 없이 다들 도착한 거야?”
그러자 이정우의 뒤에 있던 설여원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발견한 천호진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재형이 형, 재형이 형은요?”
박재형의 이름이 나오자, 다들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천호진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생존자들을 한 명 한 명 살피며 외쳤다.
“재형이 형, 재형이 형!”
“재형이는 같이 못 왔어.”
전완수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천호진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감격의 상봉에 젖어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이덕배는 입술을 달싹이며 고개 숙였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분위기 왜 이래요? 어디 초상났습니까?”
정진영의 말에 이덕배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재형이는…… 같이 못 왔다며?”
“안 죽었어요. 일이 있어서 같이 못 온 거지.”
“뭐어?!”
이덕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완수를 노려봤다.
“완수 이 녀석아! 네가 같이 못 왔다고 해서 놀랐잖아!”
“죽었다고 한 적 없는데요? 같이 못 왔다고 했지.”
“예끼 이놈!”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덕배와 이현배.
천호진은 얼마나 놀랐으면 다리까지 풀렸다.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정진영의 농담으로 환기되고, 이정우는 뒤에 있는 1만의 생존자를 돌아보며 이덕배에게 물었다.
“재형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덕배 아저씨 혹시 숙식 문제는…….”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사람들 세워놓고 우리끼리 너무 오래 떠들었구먼.”
이덕배는 옆에 있는 이현배와 최만석에게 얘기했다.
“현배야, 만석아. 너희가 여기 계신 분들 숙소로 안내 좀 해줘.”
이현배와 최만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의 안내를 도왔다.
이덕배는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이는 일이 있어서 같이 못 온 거야?”
“그건…… 차차 말씀드려도 될까요?”
이정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자, 이덕배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듣고 싶지만, 이정우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이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래, 재형이도 재형이지만, 먼저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지.”
“다른 분들은 잘 지내고 계세요?”
“자네들 왔다고 하면 엄청 좋아할 거야. 어서 가지. 다들 보고 싶어 했어.”
이정우의 머릿속으로 함께했던 일행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덕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마침 식사 시간이니 식당부터 가자고. 민정이, 슬기, 신혜, 전부 식당에 있을 거야.”
이민정과 한슬기, 이신혜.
부산에서 헤어진 그리운 인물들이었다.
결인들은 이덕배를 따라 식당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