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9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아틀란티스 4화
“그럼 구역별 연결로에 감시초소도 만들어야 돼. 여권처럼 사용할 문서도 필요하고, 여권 확인할 사람도 필요하고.”
“…….”
“아직 개간해야 하는 땅도 많은데, 인력 충당할 수 있나?”
박재우의 물음에 이번엔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지. 문제는 사람들이 여권을 받아들이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여권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박재우가 눈꼬리를 치켜뜨자, 황덕록은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지난 한 달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오가던 통로를 줄 서서 검사받고 지나가야 한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황덕록의 말에 결인들은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정우를 쳐다봤다.
이정우는 동생들의 시선을 느끼고 곽찬혁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저희가 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투표로 정하죠.”
곽찬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명석에게 얘기했다.
“투표로 정하는 건 어떤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어려울 건 없지.”
김명석은 각 국가의 대표들에게 지금껏 주고받은 대화를 전달했다.
대표들은 서로 눈치 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표로 정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전 세계 인구가 15만밖에 안 되는 시대였다.
소수의견을 묵살하기엔 인구 자체가 너무 적어서, 자칫 잘못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이를 파악한 곽찬혁은 손깍지를 끼며 턱을 괴더니, 대표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강압적으로 진행하고 싶지 않지만…… 되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강압과 배려,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긴 말이었다.
모든 말에는 시기라는 게 있다.
똑같은 말을 해도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투표가 끝난 뒤에 저런 말을 했다면 대표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반대의견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생각할 테니까.
억지로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반항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표도 하기 전에 저렇게 못을 박아버리니, 반대하려던 사람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덕배는 팔짱을 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찬혁이가 잘해.”
곽찬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김명석을 쳐다봤다.
김명석이 통역하자, 대표들은 감정동요 없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곧 미국 대표가 검지로 책상을 톡톡 치며 얘기했다.
김명석은 그의 의견을 유심히 듣더니, 곽찬혁과 이정우에게 통역해 주었다.
“제어실에서 여권 설정이 가능하냐고 묻는데?”
곽찬혁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옆에 있는 한지현에게 물었다.
“지현아, 제어실에서 여권 발행 가능할까?”
“잠시만.”
제어실은 아틀란티스 관리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장소였다.
동식물의 개체 수, 인구분포도, 개간지 상황, 공기순환 장치와 씨앗 게이지까지 전부 제어실에서 관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장치.
제어실의 중앙 컴퓨터에는 설정 추가 기능이 있었다.
편하게 중앙 컴퓨터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마력으로 이루어진 에스파디아의 시스템이었다.
그곳에 필요한 기능을 추가하면 적정 여부에 따라 새롭게 추가할 수 있었다.
한지현은 볼펜 크기의 홀로그램 기기를 작동시키며 제어실 상황을 확인했다.
인구분포도를 살피더니, 각 생명체의 정보 입력이 가능한지 살폈다.
띠링-!
-개체 분석 기능을 추가하시겠습니까?
홀로그램에 떠오르는 문장을 보고 한지현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가능해.”
“봐봐.”
곽찬혁은 홀로그램을 살피더니, 망설임 없이 수락을 눌렀다.
-대상의 이름과 성별, 나이, 지역, 국가, 특기, 가족 관계 및 직업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장과 함께 선택된 생존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홀로그램에 떠오른 생존자는 전완수였다.
곽찬혁이 전완수의 정보를 입력하자, 인구분포도가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이전엔 구역별 생존자의 숫자만 적혀 있었는데, 이젠 구역별 생존자의 이름과 성별, 국적까지 표시되었다.
띠링-!
-정보가 추가된 생존자에게 신분증을 지급하시겠습니까?
“신분증에 여권 기능까지 추가할 수 있나?”
-가능합니다. 여권 기능을 추가하시겠습니까?
“어.”
-여권의 효력 발생 기준을 설정해 주세요. 구역 이동(통로) or 국경 진입.
홀로그램의 문장을 보고 곽찬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야? 우리 국경은 설정한 적 없잖아.”
그러자 전완수가 홀로그램을 살피며 물었다.
“에스파디아가 만든 시스템은 스스로 생각하고 설정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여기 있는 생존자들이 처음 아크에 들어와서 구역별로 이동했을 때, 이미 기본 설정이 완료된 거 아닐까요?”
전완수의 설명에 곽찬혁은 이마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그럴 수가 있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럼…… 우린 국경 없이 지내지만, 시스템 스스로 임의로 설정한 국경이 있다는 거네?”
“그렇죠.”
곽찬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구역 이동 시 여권이 필요하도록 설정했다.
-시스템 적용이 완료되었습니다.
-추후 남은 생존자의 프로필 설정을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확인한 곽찬혁이 미국 대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Yes, we can.”
곽찬혁의 짧은 대답에 미국 대표는 어깨를 으쓱이며 뭐라 뭐라 말을 이었다.
김명석은 곧장 통역해 주었다.
“여권 발행이 가능하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하네. 본인은 찬성한다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곽찬혁이 결인들을 쳐다보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각 국가의 대표들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곽찬혁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기 위해,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고 했다.
20명의 대표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손을 들었다.
만장일치로 여권 발행과 유동인구 조사에 긍정적인 대답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곽찬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남은 4년 11개월, 이곳에서 무탈하게 지내고 돌아가죠.”
* * *
한 명씩 입력해야 하다 보니 프로필 설정에만 한 달이 걸렸다.
프로필 설정을 완료하자, 모든 국경에 푸른색 바리케이드가 생성되었다.
바리케이드는 불투명한 장막처럼 생겼고, 이를 통과한 사람은 자동으로 인구분포 그래프에 표시되었다.
유동인구 파악이 한결 수월해지고, 범죄자 추적도 손쉬워졌다.
그에 따라 사건 사고도 줄고, 사람들의 일상에 평화와 풍요가 가득해졌다.
줄 서서 여권 검사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동에 어려움이 없으니, 반대하는 사람이나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도 없었다.
편리하고, 보다 안전한 세상으로 변화하며 각 국가의 대표와 아크의 간부들은 높은 신뢰를 얻게 되었다.
평화의 시대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일상에 여유도 생겼다.
“마이 볼!”
박성하는 라켓을 말아쥐며 외쳤다.
탁!
궤도 계산을 잘못했는지, 셔틀콕은 박성하의 라켓을 빗겨나갔다.
“왜 이리 못해?!”
전수연이 미간을 찌푸리자, 박성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심판을 쳐다봤다.
심판을 보고 있던 최현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경기 끝! 성하랑 수연이 패배. 지혜랑 여원이 승!”
여가 시간에 배드민턴도 치고, 족구도 하고, 축구도 하는 생활.
아틀란티스의 생존자들은 지상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풍족한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최지혜는 깔깔거리며 얘기했다.
“성하야 고맙다. 매번 네 덕에 이기네?”
“아 팀 바꿔! 나도 여원 누나랑 하면 이긴다고!”
박성하가 심술을 내자, 옆에 있던 전수연이 그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얘기했다.
“네가 못하는 걸 누굴 탓해?”
“아으으!”
박성하가 분한 표정을 짓자, 전수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동생들의 모습을 설여원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쇠파이프를 쥐고 있던 손으로 배드민턴 라켓을 쥐고, 좀비들의 머리 대신 셔틀콕을 휘두를 수 있는 세상.
그토록 꿈꿔온 세상인데, 어딘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뒤이어 최현이 다가오며 물었다.
“2차전 안 해?”
“난 좀 쉴게. 네가 대신해.”
설여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하자, 최현은 대수롭지 않게 라켓을 쥐며 동생들에게 얘기했다.
“내 상대는 누구냐!”
“…….”
“아무도 안 해줘?”
“형이랑 하면 온종일 공만 주워야 해서 허리 아파요.”
박성하가 투덜거리자, 최현은 호쾌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오케이! 내 상대는 성하!”
“아 왜 나만 갖고 그래요!”
“너 괴롭히는 게 제일 재밌어.”
그러자 뒤에 있던 최지혜가 최현의 옆구리를 찌르며 얘기했다.
“살살해.”
최지혜의 반응에 최현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너 뭐냐?”
“뭐가?”
“나 쳐다볼 때는 고릴라처럼 쳐다보면서, 왜 박성하 쳐다볼 때는 멜로 눈깔이야?”
“내가? 내, 내가 언제?”
“너 설마…….”
“아, 닥쳐!”
최지혜는 괜히 짜증을 내며 코트 옆에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최현은 어벙한 표정을 짓더니, 박성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성하 이리와.”
“……네?”
“형이랑 면담 좀 하자.”
“아, 아니 형. 저희 진짜 아무것도…….”
“넌 뒤졌어.”
최현이 전력으로 달려가자, 박성하는 반사적으로 줄행랑부터 쳤다.
이를 지켜보던 설여원이 전수연에게 물었다.
“뭐야? 성하랑 지혜랑 사귀어?”
“사귀는 건 아니고 썸타는 정도요?”
“성하랑 썸은…… 수연이 네가 타고 있는 거 아니었어?”
“제가요? 어우, 전혀요. 극혐.”
전수연이 치를 떨기에, 설여원은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예전에는 너랑 성하랑 붙어 다니지 않았어?”
“아, 그거 연애상담 들어준 거예요. 제가 지혜랑 친하니까.”
“그런 거였어?”
“그럼요. 저랑 박성하라니, 어우 상상도 하기 싫어요.”
전수연은 양팔을 비비며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 설여원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그보다 언니는…… 뭐 없어요?”
“뭐가?”
“언니 예쁜 건 한국 사람들 다 아는데.”
“다들 좀비 때려잡는 모습만 기억할걸?”
설여원이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전수연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언니 매력이잖아요. 걸크러쉬! 언니한테 관심 보이는 남자 없어요?”
“됐어. 관심 없어.”
설여원은 손사래 치며 시선을 돌렸다.
전수연은 설여원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재형 오빠 때문에 그래요?”
“…….”
“어휴, 재형 오빠도 너무하네. 우리 언니 제일 예쁜 시절을 이렇게 보내게 만들고.”
설여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천장을 바라봤다.
박재형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많이 힘들진 않을까?
부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고, 묵묵하게 나아가기를 내심 기도했다.
설여원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하자, 이를 파악한 전수연이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언니.”
“뭐가?”
“제가 괜한 얘기 해서…….”
“괜찮아.”
설여원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하자, 전수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뒤이어 설여원이 말을 이었다.
“누굴 탓하겠어. 내가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
“그리고……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기다렸으면 만나야지.”
“나도 몰라. 그냥…… 그런 느낌이야.”
전수연은 설여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수연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긁적이자, 설여원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얘기했다.
“아으, 귀여워.”
“네? 제가요?”
“수연이는 연애하지 마. 언니랑 놀자.”
“아 왜요. 저도 연애할 거예요.”
“누구랑?”
“있어요. 그런 사람.”
전수연이 수줍은 표정을 짓자, 설여원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누구야? 우리 수연이 마음도 몰라주는 놈이?”
설여원이 묻자, 전수연은 슬쩍 고개를 들고 박성하를 쫓아가는 최현을 쳐다봤다.
“있어요. 짝사랑이지만.”
설여원은 전수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현이?!”
오빠 친구에 대한 로망, 뭐 그런 건가?
설여원이 재미난다는 듯이 웃자, 전수연은 얼굴을 붉히며 얘기했다.
“에이 됐어요! 아니에요.”
“언니가 도와줄게.”
“진짜요?”
금세 화색을 띠는 전수연.
설여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우리 수연이가 아깝긴 하지만, 수연이 마음이 그렇다면 언니가 밀어줘야지.”
“저희 오빠한테는 비밀이에요.”
“완수는 몰라?”
“당연히 모르죠. 비밀 지켜줄 거죠?”
“알겠어. 약속.”
지옥 같은 나날을 지나온 생존자들.
그 끝에 찾아온 평화는 미래를 꿈꾸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