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95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시작과 끝 1화
아슈루의 모성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한 달 이내에 모든 악마를 처단하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스모데우스의 행성에서 아이라와 굴라를 놓쳤을 때도, 금방 실마리를 풀고 그들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들의 뒷덜미가 보일 때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꼬리를 밟을 때면 도마뱀처럼 끊고 도망갔다.
시간은 무던히도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난 미궁에 갇히는 기분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뒤쫓고 있는데, 나아가는 속도보다 시간이 몇 배나 빠르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기분.
모호한 경계에 갇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루시퍼도 지치기 시작했다.
아이라는 마물을 이용해서 시간을 끌고,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도주했다.
그럴수록 우린 깊은 수렁에 빠졌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옆에 있던 루시퍼가 물었다.
“인간이여.”
“왜.”
“지금도 네 의지는 굳건한가?”
“당연하지.”
“지금도 너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있는가?”
“하고 있어. 그러니 계속 나아가는 거잖아.”
루시퍼는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그렇다면 표정이 왜 그 모양이지?”
표정?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저 멀리 보이는 호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으로 걸어가 내 얼굴을 살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덥수룩한 수염.
엉겨 붙고 산발이 된 머리.
깨진 손톱과 때 묻은 얼굴.
심지어 영혼이 없는 것처럼, 퀭한 두 눈을 하고 있었다.
이에 고개를 들고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에스파디아,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겁니까.’
‘4년.’
4년?
벌써 그렇게 지났다고?
그럼…… 지구 복구 작업이 앞으로 1년 뒤에 완료된다는 거야?
허탈한 마음에 그 자리에 주저앉자, 옆으로 루시퍼가 다가왔다.
“벌써 지친 게냐.”
“…….”
“그렇게 거창하게 얘기하더니, 고작 5년도 버티지 못할 정신이었단 말이냐?”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루시퍼.
그의 입에서 들려온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나도 쳇바퀴만 도는 영겁의 굴레에 갇힐까 봐.
잡을 수 없는 존재를 잡으려고 내 청춘을 불태우는 건 아닐까?
루시퍼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얼굴을 주시하더니, 세차게 혀를 차며 얘기했다.
“한심하구나. 고작 이런 놈을 믿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루시퍼의 모진 말에 흐려졌던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잠시나마 목표의식이 흐려진 건 사실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이에 두 주먹을 쥐었다 펴기도 하고, 뻐근한 어깨도 풀며 얘기했다.
“지치긴 누가 지쳤다고 그래?”
“……?”
“기다려.”
입고 있던 명왕의 갑주를 벗어 던지고 호수로 들어갔다.
마물들의 혈흔으로 얼룩진 피부를 씻어내고, 기다랗게 자라난 수염과 머리를 흑도 명월로 잘라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다.
4년을 쫓았는데, 여기서 포기하는 게 더욱 어렵다.
살육에 젖어 흐려졌던 목표를 다잡고, 영혼 잃은 동공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물이 차가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온천에 들어온 것처럼 따뜻했다.
30분, 40분, 1시간이 넘도록 지친 몸을 온탕에 지지며 피로를 풀었다.
강인한 정신은 강한 육체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맑은 정신은 깨끗한 육체에서 나온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몸단장을 마치고 다시금 호수 밖으로 나왔다.
루시퍼는 팔짱을 낀 채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고작 더러워진 몸을 씻었다고 네 마음이 편해지더냐?”
“영겁의 세월을 살아서 모르나 봐?”
“뭐를 말이냐.”
“원래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샤워하면서 나오거든.”
“……그래서, 네가 도출한 방안이 뭐지?”
루시퍼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긴 뭐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지.”
“아이라와 굴라를 쫓아가겠다고? 그 결과는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느냐.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잡을 수 없어.”
“…….”
“4년간 반복하고도 모르는 게냐?”
루시퍼의 물음에 기지개를 켜며 얘기했다.
“잠시 일탈했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줄도 알아야지.”
“그 말이 아니잖아.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것 아니냐.”
대답 대신 덤덤하게 명왕의 갑주를 착용하자, 루시퍼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물었다.
“네가 여유롭게 목욕이나 하는 동안, 아이라와 굴라의 마력이 사라졌다. 간신히 유지하던 거리가 더욱 멀어졌단 말이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4년을 쫓았는데 그놈들 마력도 못 느낄까 봐?”
“한심한 놈, 천하태평이구나.”
“너도 태평하게 목욕이라도 하고 나와. 흰 피부가 상아색으로 변했네.”
루시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억지로 호수로 끌고 가자, 루시퍼는 물을 기피하는 고양이처럼 발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밀지 마. 내 발로 들어갈 테니.”
“뜨거운 물 싫어해?”
“내가 누구라 생각하는 거냐? 불구덩이에서 부활한 내가 고작 저런…….”
“시끄럽고, 빨리 씻어.”
루시퍼의 등을 밀치자, 그는 호수에 빠지며 허우적거렸다.
수영을 못하는 거야?
결국 루시퍼의 팔을 잡고 땅을 잡도록 도와준 뒤, 머리맡에 앉으며 물었다.
“어때, 따뜻하고 좋지?”
“…….”
“몸 좀 풀어. 그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마물이랑 싸웠잖아.”
“계획이 뭐냐.”
“잠깐이라도 머리 비우면 안 돼?”
“내 머리가 멈추는 건 용납할 수 없어.”
“기존의 생각을 끊어야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지. 계속 같은 생각만 반복하니까 다른 방안이 안 떠오르는 거야.”
“……계획이 있는 거냐?”
루시퍼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목욕이나 하라고 했다.
루시퍼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게 한 마디 대화도 없이 1시간 동안 머리를 비웠다.
이름 모를 행성, 이름 모를 지역, 이름 모를 호수.
귓가로 들리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들짐승의 인기척.
조금 전까지 마물들을 상대한 행성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루시퍼에게 얘기했다.
“방법을 바꾸자.”
“좋은 방안이라도 떠오른 게냐?”
“쫓는 걸 포기하는 거야.”
진지하게 얘기하자, 루시퍼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아이라가 도망치는 속도가 더 빨라.”
“그래서.”
“차라리 언노운의 모성으로 돌아가는 게 맞아.”
“돌아가서 어쩌자는 거지?”
“죽은 행성도 살릴 수 있는 게 에스파디아와 아슈루의 힘이야. 성배의 힘으로 언노운의 모성을 살려줄게.”
루시퍼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설명해 봐.”
“모성을 살리면 타락한 영혼들의 좌표도 다시 설정할 수 있잖아.”
“다른 행성으로 통하는 좌표를 전부 지우자는 거냐?”
“전부 지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성을 살리면 방안이 생기지 않을까?”
“불확실함에 모든 걸 걸자고?”
“언제는 확실한 게 있었어?”
루시퍼는 대답 대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따뜻한 물에 얼굴을 반쯤 담근 채 고민하더니, 곧 벌떡 일어나며 얘기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얼굴에 묻은 물기를 털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갑자기 일어나고 그래? 사람 놀라게.”
“어차피 아이라와 굴라는 너와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산 송장이나 다름없잖아?!”
너무 흥분하는데?
내가 생각한 방안을 루시퍼도 생각한 모양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찾아 나서는 게 아니라, 찾아오게 하자는 거지?”
“이제 알겠어?”
“오오!”
루시퍼가 들뜬 모습을 보이기에,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오그도아드의 힘을 불러내려면 에스파디아와 아슈루의 근원이 필요하잖아. 아이라가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어.”
“…….”
“너를 이용해서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우리가 같이 쫓고 있다는 것도 눈치챘을 테고.”
“그놈들도 도주하는 데 급급해서 다른 생각을 못 한 건가?”
“그렇지. 불필요한 술래잡기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감 때문에, 쫓는 쪽도 쫓기는 쪽도 시야가 좁았던 거야. 그렇지?”
“맞아. 그래도 뭐, 마물의 숫자를 대폭 줄였으니 완전히 시간낭비는 아니야.”
루시퍼는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연신 탄성을 뱉었다.
이에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꼬리잡기 그만하고, 알아서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언노운의 모성을 복구하면서?”
“그렇지. 그렇게 시간을 가지면…… 결국 우리에게 유리해.”
루시퍼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에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일단 옷부터 입지?”
“……그러지.”
루시퍼는 후다닥 물기를 털어내고 옷을 입었다.
뒤이어 마력을 개방하더니, 대뜸 게이트를 열며 얘기했다.
“가지.”
“어디로 통하는 거야?”
“어디긴 어디야. 언노운의 모성이지.”
“…….”
루시퍼는 생각을 마치면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이었다.
추진력이 좋다고 해야 좋을까?
하긴, 추진력이 좋으니 기회가 왔을 때 마몬을 처리하고 함정도 뚫고 나왔겠지.
나도 지체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루시퍼와 함께 언노운의 모성으로 이동했다.
지금 생각한 방안이 최선인 건 맞지만, 내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아이라와 굴라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분명 아이라와 굴라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올 텐데, 그게 언제가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지구가 복구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1년.
설여원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 *
“아이라, 에스파디아와 루시퍼의 마력이 사라졌다.”
“드디어 추격을 멈춘 건가?”
초목이 우거진 이름 모를 행성.
아이라는 질척한 흙바닥에 지친 몸을 눕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굴라는 아랫배를 붙잡더니, 복통을 호소하며 얘기했다.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어.”
“…….”
“루드라바의 근원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지난 4년간 에스파디아와 루시퍼로부터 정신없이 도주하기 바빴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잠시도 쉬지 못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 과정에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마물이 죽었다.
마물의 소멸은 아이라의 힘을 쇠약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루드라바의 근원을 뱃속에 품은 굴라마저 지치기 시작하니, 아이라가 마력을 불어넣어도 더는 굴라가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라는 허탈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천하의 아이라, 꼴이 말이 아니구나.”
“아이라, 지금 네 꼴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
“루드라바의 근원이 완전히 깨어나면…… 내 근원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굴라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얘기하자, 아이라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수십, 수백 번 복기해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후회와 회의감의 끝에, 아이라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아니, 방안이 아니다.
아이라에게 선택권은 없으니까.
아이라가 굴라를 쳐다보자, 굴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느냐 아이라.”
“문제의 시발점은…… 우리가 에스파디아와 아슈루를 우습게 보고, 루드라바부터 상대한 거야.”
“그래서.”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후회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아. 그렇다면 우리가 쥐고 있는 패를 최대한 사용해야지.”
관리자들 중 가장 강력한 루드라바.
그를 생포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며 루드라바의 모성을 침략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동안 창조의 힘을 지닌 에스파디아가 성배를 제작했고, 그것이 오판의 시작이었다.
패착을 두었지만, 마지막 한 수가 남았다.
아이라는 굴라를 쳐다보며 물었다.
“굴라, 만약 루드라바의 근원을 타락시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냐.”
“루드라바의 근원을 흡수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굴라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정신 차려라, 아이라. 그건 위험한 발상이다.”
“무엇이 위험하다는 거냐.”
“관리자의 근원과 악마의 근원을 합치다니. 자칫 잘못하면 빅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빅뱅? 그것도 나쁘지 않군.”
“아이라!”
“만약 빅뱅이 아니라면?”
아이라의 물음에 굴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건…… 네 탐욕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겠지.”
“탐욕?”
“육번뇌.”
육번뇌라는 말에 아이라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굴라는 아이라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우리는 사라진다.”
“우리가 사라진다는 건 우리의 육체를 말하는 게냐, 아니면 정신을 말하는 게냐.”
“우리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