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96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시작과 끝 2화
아이라는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곧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방법이 없다면, 그것이 방법이다.”
“아이라, 그건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이 아니야.”
“아니,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느냐?”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옳다는 말이더냐?”
“그 무엇도 없는 세계. 그것이 우리의 이상향이다.”
“아이라!”
“내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허무의 세계. 파국을 직면하는 거야.”
굴라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라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자, 굴라는 황급히 오른손을 뻗어 게이트를 열기 시작했다.
펄럭!
아이라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자, 굴라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왼손으로 마력장을 생성했다.
접근하면 공격하겠다는 무언의 압박.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라는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함께 가자. 굴라.”
“정신 나간 자식……!”
지잉-!
아이라의 날개로 마력이 응축되자, 굴라의 손끝에서도 마력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아이라의 날개에서 섬광이 번뜩이고, 일대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 * *
풀 한 포기 자라날 수 없는 암담한 환경.
그것이 언노운의 모성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손으로 만지면 먼지로 변하고, 지면을 어루만지면 잿가루가 일어났다.
“에스파디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합니까.”
‘아이라의 성으로 가거라. 그곳에 모성의 핵으로 이어지는 마력진이 있을 거야.’
에스파디아의 말에 따라 아이라의 성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성의 잔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잔해를 치우며 마력진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지면에 그려진 커다란 마력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루시퍼는 마력진을 발견하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완전히 말라비틀어졌구나.”
“말라비틀어지다니?”
“마력진이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야. 행성이 죽었으니, 마력을 공급받지 못한 거야.”
“이게 무슨 마력진인데.”
“모성의 핵과 연결되는 마력진이다. 행성의 마력이 이곳을 통해 들어가고, 이곳을 통해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지.”
쉽게 말하면 지구의 나무 같은 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로 바꾸어 세상에 퍼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곳은 지옥이었으니, 타락한 영혼의 에너지는 이곳을 통해 모성의 핵으로 전이된 건가?
모성의 핵으로 전이된 에너지가 언노운의 마력으로 바뀌어 행성의 생태계를 운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타락한 영혼들은…… 그 힘에 이끌려 마물로 변했을 것이다.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력진에 앉아라.’
‘여기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돼요?’
‘이미 죽어버린 행성이라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해봐야지.’
에스파디아의 지시에 따라 마력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영혼을 빨아들일 것처럼 강력한 중력이 느껴졌다.
오랜 갈증에 시달린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물을 들이켜는 것처럼, 마력진은 성배의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마와 목에 핏대가 솟아나고, 반사적으로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루시퍼는 내 마력을 유심히 살피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이봐, 괜찮아?”
“괜찮…… 으니…… 컥! 아이라랑…… 굴라가 오면…… 네가 막아.”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루시퍼에게 신신당부하자,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에스파디아, 이거 위험한 거 아닙니까?’
‘할 수 있다.’
‘……보통이 아닌데.’
‘집중하거라. 정신을 잃으면 언노운의 마력에 지배당할 수도 있어.’
에스파디아의 말에 이 악물고 버텼다.
이 상태를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 걸까.
두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척추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어깨를 짓누르는 힘이 유압 프레스로 찍어누르는 것 같다.
‘얼마나 버텨야 하는 겁니까.’
‘모성의 핵이 원하는 만큼.’
‘……예?’
‘언노운의 모성을 살리고 싶다면, 죽어버린 모성의 핵부터 회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시스템이든 뭐든 도입할 수 있어.’
‘후……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는 거죠?’
‘할 수 있겠느냐?’
‘해야지 어떡해요. 누르는 힘이 워낙 강해서 일어날 수도 없는데.’
두 주먹 불끈 쥐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마력으로 이루어진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하기 시작했다.
뽑혀나가는 마력을 충당하기 위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면의 마력에 집중하자, 따스한 아슈루의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질서와 유지, 조화와 조율의 관리자 아슈루.
내게 힘을 보태고 있었다.
격하게 들썩이던 마력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가차 없이 뽑혀나가던 마력도 조절되기 시작하고, 한층 편안해진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슈루에게 인사하자,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내게 전해졌다.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아슈루가 환하게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죽어버린 언노운의 모성을 태동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별을 살리는 것과, 이미 죽은 별을 재생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
행성의 핵부터 바꾸는 작업이기에 많은 시간과 마력이 필요했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기에, 머릿속의 잡념을 비우고 걱정의 고리도 끊어야 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상황이지만, 아슈루와 에스파디아, 그리고 루시퍼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예전 언노운의 모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루시퍼가 초안을 만들어주었기에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또한 모성의 핵이 안정된 뒤로 에스파디아가 행성의 기반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역시 창조의 신이라서 그런지, 기반을 닦는 건 에스파디아의 영역이었다.
행성이 안정을 찾기 시작하자, 그 뒤엔 아슈루의 마력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지옥의 모습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슈루도 힘쓰고 있었다.
차근차근 작업을 이어나갔다.
시간의 흐름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마력을 개방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인간이여.”
옆에서 루시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았던 두 눈을 서서히 뜨자, 빛에 적응하지 못한 홍채가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의 근원지를 살피자, 루시퍼의 윤곽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들어왔다.
대답하기 위해 입을 벌리자,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기침부터 나왔다.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탓인가?
이에 목을 가다듬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행성은.”
“직접 보아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휘청-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탓일까?
입술을 퍼석하고, 속은 텅 빈 느낌.
루시퍼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뒤, 몇 번이고 눈을 껌벅였다.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고, 주변 일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옥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성을 재생했는데,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정반대였다.
지상낙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회갈색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개어 있었다.
천지를 뒤덮은 안개와 먼지, 먹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발목 높이까지 자라난 풀잎과 드넓은 초원, 거대한 호수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비늘.
두 볼을 스치는 따스한 바람결을 느끼며, 괜스레 울컥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루시퍼는 울컥하는 마음을 삼키며 얘기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루시퍼.
그의 눈에도 이곳이 지상낙원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에 힙겹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감동이라도 받았어?”
“……감격스럽구나.”
루시퍼의 떨리는 목소리.
이에 두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이제 네가 일할 차례야.”
“내가?”
“타락한 영혼의 좌표. 여기로 바꿀 수 있겠어?”
루시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을 기다리자, 루시퍼는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곳을 타락한 영혼의 모성으로 만드는 건…… 너무나 아까운 일이야.”
“그래서, 아이라랑 굴라가 계속 힘을 키우게 내버려 두겠다고?”
“…….”
루시퍼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기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결정해.”
“무엇을 말이냐.”
“오그도아드가 될지, 아니면 이 행성을 수호하면서 살아갈지.”
루시퍼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이라와 굴라의 근원을 흡수하면 넌 오그도아드가 될 수 있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오그도아드가 되면 이 행성은 초토화된다. 물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행성이 폐허로 변하겠지.”
“…….”
“아스모데우스를 살리기 위해 오그도아드가 될지…… 아니면 여기, 언노운의 주인이 될지, 이제 그만 결정해.”
루시퍼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을 망설였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행성을 바라보며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어차피 타락한 영혼이 이곳으로 모이면…… 이곳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유지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고?”
루시퍼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언노운의 모성은 타락한 영혼의 마력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
‘아니요, 가능합니다.’
‘뭐?’
‘잊었어요? 제가 누굽니까.’
‘……이곳에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게냐?’
에스파디아의 물음에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될 건 또 뭐예요? 성배를 지닌 저라면 가능합니다. 타락한 영혼 갱생 시스템을 만들면 되죠.’
에스파디아는 반박 대신 생각에 잠긴 것으로 보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락한 영혼을…… 갱생하는 시스템?’
‘네, 갱생 시스템을 만들어서 갱생 안 되면 소멸, 되면 환생의 기회를 주는 거죠.’
에스파디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동하는지, 헛기침과 함께 물었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언노운의 모성을 재생하겠다고 한 게냐?’
‘당연하죠. 안 그러면 제가 왜 쓸데없이 힘을 쓰겠어요?’
‘관리자들도 못 해본 생각을 네가 하는구나.’
‘관리자의 힘으로는 언노운의 모성을 이렇게 바꿀 수 없으니 당연하죠. 제가 성배라서 가능한 거지.’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마음이 전해졌다.
감격스러운 듯, 그의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아슈루의 온기가 느껴졌다.
관리자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제가 얘기했죠? 모두를 살릴 거라고.’
‘지구와 아슈루의 모성에 해당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범우주적인 생각이었더냐?’
‘기반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보수작업을 계속해야 하니까요.’
‘넌 정말…… 나를 놀라게 만드는구나.’
‘저랑 같이 가면 재밌을 거라고 그랬잖아요.’
‘하하!’
에스파디아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호탕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
지금껏 에스파디아의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에스파디아 당신 웃을 줄도 아네요?’
‘세상에 웃을 줄 모르는 존재도 있나?’
밝아진 에스파디아의 모습에 덩달아 나까지 좋아졌다.
심호흡을 통해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고, 옆에 있는 루시퍼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정했어?”
루시퍼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을 반복하더니, 경건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좋다. 네 뜻에 따르겠다.”
“그럼 약속해. 아이라와 굴라의 근원은 흡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만약 한 놈이라도 흡수하려고 하면, 그땐 내 손으로 너를 죽일 거야.”
“…….”
루시퍼는 대답 대신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할 수 있다면 해보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이에 질세라 두 눈에 살기를 담자, 루시퍼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렇게 하지.”
“오케이, 그럼 일단…….”
“단, 나도 조건이 있다.”
루시퍼는 내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얘기했다.
“성배를 포기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