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98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외전 시작과 끝 4화
육번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스파디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기억하느냐? 주신과 대적한 오그도아드의 이야기를.’
‘당연히 기억하죠. 주신의 몸에서 태어난 세 명의 관리자와 오그도아드의 몸에서 태어난 칠죄종의 이야기.’
‘주신에게 패한 오그도아드는 부활을 꿈꿨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알아요. 그러니까 육번뇌가 뭐냐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에스파디아는 안타깝다는 듯이 얘기했다.
‘이루지 못한 미련의 찌꺼기가 바로 육번뇌다.’
‘네?’
‘육번뇌는 과욕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지. 육번뇌에겐 자아가 없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타락한 영혼도, 마물도, 악마도, 그 무엇도 아닌 존재라는 말이다. 자아도 없고, 이상향도 없다. 오직 하나의 미련에 잠식된 괴물이지.’
‘그 무엇도 아니라면…….’
‘아이라가 이루지 못할 욕심에 눈이 멀었다는 거지.’
‘그럼 아이라가 탐(貪)의 모습이 되었다는 건 설마…….’
말끝을 흐리자, 에스파디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예상이 맞아. 루드라바의 근원과 굴라의 근원을 흡수한 게야. 소화할 수 없는 걸 섭취하니, 결국 육신과 자아마저 상실한 게다.’
‘그럼 저게 아이라라는 말씀입니까?’
‘이미 아이라와 굴라, 루드라바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오로지 근원을 탐내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에스파디아의 대답을 듣고 탐(貪)을 쳐다봤다.
게이트를 찢고 포효를 내지르며 나타나는 존재.
압도적인 덩치와 회갈색의 피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거대한 입.
목과 머리가 있어야 하는 곳에, 수백 개의 날카로운 치아가 박힌 주둥이만 있었다.
이에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간단하네요.’
‘비록 찌꺼기라고 부르지만, 근원을 흡수하는 괴수다.’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결국 거대한 좀비랑 다를 바 없다는 거잖아요?’
‘거대한 좀비?’
‘그렇잖아요. 자아도 없고, 오로지 근원만을 탐내는 괴물이라면서요? 인간의 살점을 탐하던 좀비랑 뭐가 달라요.’
싱겁게 웃으며 대답하자, 에스파디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좀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야. 수준이 다르다고.’
‘뭐가 됐든, 제가 해야 하는 건 하나잖아요? 때려죽이면 그만입니다.’
‘…….’
‘간단명료해서 좋네요.’
에스파디아는 연신 헛바람을 뱉으며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에스파디아의 입꼬리가 올라간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정말…… 너를 누가 말려.’
뒤이어 앞에 있던 루시퍼가 전신의 마력을 방출하며 얘기했다.
“인간이여.”
“응?”
“시스템 구축까지 얼마나 걸리지?”
“얼추 20시간.”
루시퍼는 심호흡으로 긴장감을 달래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시간 지켜라.”
“뭐 하려고.”
“저놈이 네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버텨주마.”
“그냥 같이 싸워. 처리하고 다시 구축하면 되잖아.”
“이미 타락한 영혼의 좌표가 이곳으로 설정됐어.”
“…….”
“시스템 구축을 중단하면 이곳에 도착한 타락한 영혼들은 마물의 모습으로 변한다. 혹은 네 마력 흐름을 방해할지도 모르지.”
루시퍼의 말을 듣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타락한 영혼들을 살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온 우주의 영혼들이 이곳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잠시만 내버려 두어도 수천, 수억 마리의 마물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방도가 없기에, 루시퍼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죽지 말고 버텨.”
“시스템 구축이나 신경 써.”
쾅-!!!!
그 말을 끝으로 지면을 박차며 날아가는 루시퍼.
크어어어어어어어어!!!!!
루시퍼의 근원을 인지한 탐(貪)은 대지가 울릴 정도로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쩡-!!!!!!!!!
루시퍼의 낫이 탐(貪)의 오른팔을 가격하자, 거센 바람과 함께 고막을 찌르는 파찰음이 들려왔다.
탐(貪)의 피부는 푸석하기 짝이 없는데, 로그나이트로 전신을 감싼 것처럼 압도적인 방어력을 자랑했다.
루시퍼를 도와서 저 거대한 괴수부터 처리하고 싶지만, 내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탐(貪)의 움직임을 살피면서도, 시스템 구축을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 * *
‘미친……!’
루시퍼는 두 눈 부릅뜨고 탐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20시간을 버티겠다고 호기롭게 얘기했지만, 첫 합을 주고받은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거대한 벽이 시야를 차단한 것처럼, 전신이 짓눌리는 위압감을 느꼈다.
그어어어어어어!!!!
탐(貪)은 쉴 새 없이 괴성을 내지르며 루시퍼를 향해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루시퍼는 날개를 펄럭이며 거리를 벌린 뒤, 양손으로 낫을 말아쥐었다.
우우웅-!
루시퍼의 낫에 마력이 실리자, 검붉은 섬광이 연달아 번쩍였다.
마력의 밀도가 높아지고, 극한으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뒤이어 루시퍼의 두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죽어라.”
훙-!
사선으로 낫을 긋자, 궤도를 따라 거대한 마력 파장이 탐(貪)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쾅-!!!!!!!
쏜살같이 날아든 마력에 탐(貪)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나고, 탐(貪)의 전신이 휘청거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슈욱-!
하지만 연기를 뚫고 날아드는 기다란 무언가.
텁!
탐(貪)의 피부에서 기다란 촉수가 날아들더니, 그대로 루시퍼를 붙잡았다.
으어어어어…….
끄어어어어어…….
촉수가 아니었다.
탐(貪)의 신체를 이루는 망령들이 고무줄처럼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이라가 신체와 자아를 잃자, 체내에 갇혀 있던 망령들이 방출된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탐(貪)의 모습으로 변질된 것이리라.
루시퍼는 이 악물고 전신에 힘을 더했다.
뜨드득- 뜨득-
“커헉!”
하지만 망령들의 힘은 거스를 수 없었다.
슈욱-!
탐(貪)은 붙잡은 식량을 쏜살같이 잡아당겼다.
콰득-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루시퍼를 집어 삼켜버리는 탐(貪).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20시간을 버티겠다던 루시퍼는, 단 5분도 버티지 못하고 탐(貪)에게 잡아먹혔다.
* * *
“어……?”
무의식적으로 멍청한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지금…… 루시퍼가 잡아먹힌 것 같은데?
‘아직이야.’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아직은 뭐가 아직이에요? 잡아먹히는 거 못 봤어요?’
‘루시퍼의 마력에 집중하거라.’
에스파디아의 말을 듣고 탐의 모습을 직시하자, 그 속에서 일렁이는 루시퍼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뱃속에 들어가면 마력을 감지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데, 어째서 루시퍼의 마력은 느껴지는 거지?
이에 의문을 품자, 에스파디아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루시퍼는 여타 악마들과는 달라.’
‘뭐가 달라요?’
‘엄연히 따지면 악마가 아니야. 타락 천사지.’
그래서 뭐?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줘야 할 것 아냐?
불만을 표출하자, 에스파디아는 찬찬히 설명을 들려주었다.
‘루시퍼에게 시스템 관리자의 권한을 일부 부여했지?’
‘네.’
‘악마에게 관리자의 힘을 양도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어? 그렇네?
관리자의 힘을 일부 부여할 때,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이에 의문을 품자, 에스파디아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루시퍼는 대악마도, 관리자도 될 수 있는 존재다. 타락 천사라는 말은, 타락의 기운을 제거하면 다시금 천사가 될 수 있다는 거니까.’
‘그럼…… 왜 지금까지 악마로 있게 내버려 둔 거예요?’
‘얘기했을 텐데? 루시퍼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다고.’
‘…….’
‘비록 스스로 깨닫지 못했지만, 네가 좋은 영향을 주었어.’
‘아니 그래서, 시스템 권한의 일부가 루시퍼의 손에 들어가서 지금 마력이 느껴진다는 거예요?’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루시퍼가 관리자에게 강하다고 얘기했지?’
‘네.’
‘그건 루시퍼가 관리자의 마력을 받아쓸 수 있기 때문이야. 루시퍼는 내 마력을 받았고, 그 덕에 생존 여부를 알 수 있는 게다.’
‘반대로 생각하면…… 제 마력을 흡수하면서 저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거야. 그래서 악마들도 루시퍼를 죽이지 않은 거지. 관리자를 겨눌 수 있는 창이니까.’
한마디로 루시퍼는…… 평생 이용만 당한 녀석이라는 건가?
씁쓸한 마음에 입맛을 다시자, 에스파디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반면에 악마들과 대적할 수 없는 이유도 오그도아드의 조각이자 타락한 성배이기 때문이지.’
‘악마들을 상대할 땐 본연의 힘을 사용할 수 없어서요?’
‘맞아, 오그도아드는 조각은…… 부활에 필요한 악마들의 근원을 공격할 수 없으니까.’
모든 설명을 듣고 다시금 탐(貪)을 쳐다봤다.
드득- 뜩- 떡!
탐(貪)의 아랫배에서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뼈가 으스러지고, 깨지는 소리였다.
크어어어어어어!!!!
탐(貪)은 고통을 느끼는지, 전신을 배배 꼬며 비명을 내질렀다.
훅-
촤악-!!
뒤이어 탐(貪)의 뱃속에서 불꽃이 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랫배가 반으로 갈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걸쭉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찢어지고 갈라진 망령들이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란 낫을 들고 분기에 차오른 루시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근원 하나를 희생했구나.’
‘네?’
‘루시퍼의 이마를 확인하거라.’
에스파디아의 말에 따라 루시퍼의 얼굴을 쳐다보자, 이마에 표시된 피라미드 형태의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시퍼, 마몬, 아스모데우스의 근원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마몬의 근원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근원을 탐(貪)에게 빼앗기기 전에 스스로 파괴한 거야.’
‘근원이 파괴되면 행성 하나 날아갈 정도의 충격이 있다면서요?’
‘그래서 탐(貪)의 배가 찢어진 것 아니더냐.’
행성 하나 날릴 정도의 충격을 주어야 살가죽이 찢어진다고?
“인간!!”
뒤이어 루시퍼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쳐다보자, 루시퍼의 두 눈에서 이채가 번뜩이고, 분기에 차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 단축해라!!”
“힘들다는 말을 어렵게도 하네.”
그러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도 높여. 루시퍼가 사라지면 안 된다.’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전력을 다해 마력을 방출했다.
드드드드드드드드-
거대한 돔 형태의 마력장이 생성되고, 반경 300m 이내의 초목이 사라졌다.
힘들게 재생한 자연이 파괴되는 건 마음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에 루시퍼가 사망할 것이다.
* * *
루시퍼는 박재형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반경 300m 이내의 초목을 보고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하지만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높이기 위함이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끄어어어어어어……!
강력한 마력을 느낀 탐(貪)이 루시퍼를 무시하고 박재형을 쳐다본다.
이를 파악한 루시퍼는 기다란 낫을 내려놓고, 머리 위로 보이는 탐(貪)의 복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뒤틀린 황천.”
후욱-
루시퍼의 손끝으로 마력이 응축되자, 대기가 찢어지며 가로로 기다란 선이 생성되었다.
“흡!”
루시퍼가 주먹을 불끈 쥐자, 기다란 선이 벌어지며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드드드드드드드-
대지가 진동하고, 탐(貪)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전신을 잡아당기는 압력을 느낀 탐(貪).
탐(貪)의 하부에서 기다란 촉수가 뿜어져 나오고, 일제히 루시퍼를 향해 날아들었다.
화아아아아악-!!!!!
하지만 루시퍼에게 생채기조차 만들지 못하고 블랙홀에 흡수되는 망령들.
끄어어어어어어!!!!
망령들이 빨려 들어가자, 탐(貪)의 육신도 기이하게 뒤틀리며 블랙홀에 빨려들기 시작했다.
루시퍼는 전신에 힘을 주며 왼손으로 오른팔을 붙잡았다.
담을 수 없는 존재를 황천에 보관하는 건 사용자에게도 부담스러운 기술이었다.
루시퍼의 두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고, 입에서 핏물이 역류했다.
오른팔이 덜덜 떨리고, 체내의 마력이 뒤틀리고 있었다.
탐(貪)이 날뛰게 내버려 두면 박재형뿐만 아니라 언노운의 모성까지 파괴되기에, 뒤틀린 황천으로 옮겨서 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천에 옮기는 것도 어려울 줄이야.
“커헉!”
루시퍼는 무릎을 꿇으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쾅-!
그 순간, 박재형이 있던 곳에서 굉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