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화
테라스에 앉아 쥐 죽은 듯이 기다리자, 더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첫 번째 에피소드 안전가옥에서는 좀비들의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안개 밖에서는 후각이 작용하지 않기에, 놈들에게 발각되거나 소리만 내지 않으면 충분히 회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에 갇혔다는 것.
밤이 되면 안개가 2층까지 차오르기에, 여기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난간 너머에는 추락한 좀비들이 깔려 있다.
저들 중 숨이 붙어 있는 녀석이 있을 수 있기에, 이전처럼 이불보를 타고 내려가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다른 수가 없기에, 등을 붙이고 있던 유리문을 쳐다봤다.
커튼으로 가려져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몇 차례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유리문을 두드렸다.
똑, 똑.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방은 좀비들이 없는 건가?
조심스레 유리문을 열고, 왼손으로 커튼을 걷었다.
퀴퀴한 냄새와 후덥지근한 열기가 두 볼을 스쳤다.
방 안을 샅샅이 살폈지만 좀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안개가 퍼질 당시, 이 방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먹을 게 남아 있지 않을까?
모든 서랍을 열어봤지만 흔하디흔한 간식거리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방문 앞으로 걸어가 복도의 상황을 살폈다.
복도를 거니는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퍼진 건 새벽 시간.
2층에 있던 사람들은 자다가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전처럼 무턱대고 나가는 건 위험하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가방 속의 물품을 확인했다.
무기로 사용할 만한 도구가 없을까?
아무리 봐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1m 길이의 몽둥이뿐.
커터칼로는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다.
어떻게든 좀비를 처리하고 포인트를 얻어야 하는데, 20마리라는 목표치는 버겁게 느껴졌다.
당장에 살아남는 것도 어려운데, 좀비와 전면전을 펼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게임에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이나 전기톱 등의 무기라도 주어지지만,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에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보름 전 기숙사 사감의 안내 방송이 떠올랐다.
분명 2층 화장실 보수 공사로 시끄러울 수 있으니, 양해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공사가 안 끝났다면 쇠파이프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식수도 보충해야 하니, 화장실부터 확인해야겠다.
다시 한번 복도의 상황을 살피고, 방문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열었다.
카학, 카학! 학!
204호와 202호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라스트아크의 설정을 따른다면, 아직 안개가 차오르지 않았기에 체취를 맡진 못할 것이다.
자세를 낮추고 발소리를 죽인 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이동했다.
숨죽인 채 복도 끝에 위치한 화장실로 향하자, 화장실 내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크르르르르…….
목젖을 가는 소리.
슬쩍 고개를 내밀어 화장실 내부를 살피자, 슬리퍼를 질질 끌며 세면대 앞을 서성이는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울에 비친 본인의 얼굴을 보고 상체를 앞뒤로 흔들고 있다.
그 옆으로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바닥에 널브러진 배관과 쇠파이프, 멍키스패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놈만 처리하면 쇠파이프와 멍키스패너를 얻을 수 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심호흡을 반복하고,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고 되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몽둥이를 양손으로 말아쥐고, 쏜살같이 좀비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소리를 내지르기 전에, 숨을 들이켜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딱!!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콧대가 내려앉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몽둥이질을 가했다.
마치 광기에 휩싸인 짐승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좀비의 두개골을 가격했다.
퍽!
뒤이어 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가 부러지기에, 날카로운 끝부분을 좀비의 머리에 꽂았다.
바닥을 적시는 피.
좀비의 두 팔이 파르르 떨리더니, 힘없이 축 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헉……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묻은 혈흔을 옷소매로 닦았다.
납작해진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전신에 벌레가 붙은 것처럼 불쾌한 소름이 돋았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양팔을 문질렀다.
소란을 듣고 몰려드는 좀비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마른침을 삼키며 복도의 상황을 살폈다.
드득- 득- 드드득.
방문을 긁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 안에 갇혀 있던 좀비들이 소리를 듣고 반응하고 있었다.
‘나가야 돼.’
재빨리 쇠파이프와 멍키스패너를 챙겼다.
500mL 페트병에 식수를 보충하고 복도를 살폈다.
크어어어어!!
쾅! 콰광!
사방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
계단으로 향하는 20m 거리가 천리만리처럼 느껴졌다.
긴장감이 차오를수록 심장의 고동이 격해졌다.
금방이라도 문을 부수고 쏟아져나올 것 같은 좀비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상체를 낮춘 채 계단으로 향했다.
현재 좀비들은 체취를 맡을 수 없으니, 시야에 발각되지만 않으면 아우성도 잦아들 것이다.
혹여나 1층과 3층에 있는 좀비들이 이곳으로 접근할지도 모르기에, 쇠파이프를 들고 한참이나 계단 난간을 응시했다.
1분, 2분, 3분…….
대략 7분 정도 지났을까?
좀비들의 아우성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2층으로 들어서는 좀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며 뻐근한 목덜미를 주물렀다.
좀비들의 생명력이 아무리 질기다 한들, 쇠파이프만 있으면 몽둥이보다 몇 배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긴장감으로 인해 손바닥에 고인 흥건한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쇠파이프를 고쳐 쥐며 안개가 들어찬 1층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고요하다.
지구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것처럼,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했다.
안개 속에서의 시계는 5m가 한계.
그 너머는 테두리만 간신히 보이는 정도.
코끝을 찌르는 퀴퀴한 냄새와 피부를 감싸는 습기, 후덥지근한 열기에 숨쉬기도 버거웠다.
안개 속의 바이러스에 감염될지도 모르지만, 불안한 마음만큼이나 확신도 있었다.
난 에덤 화이트의 능력을 전수받았다.
라스트아크의 주요 캐릭터들은 안개에 대한 면역이 있고, 면역뿐만 아니라 특수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하고, 데니는 독심술, 레이첼은 힐링, 로즈는 모든 장비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한다.
1층 복도에 인기척은 존재하지 않았고, 좀비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좀비가 없는 건가?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입구로 나아갔다.
크어어어어!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바로 옆의 사감실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감실에 있던 좀비가 체취를 맡은 건가?
그와 동시에 1층의 모든 방에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숙사 출입구로 달렸다.
밖으로 나가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안개가 퍼진 건 새벽 3시경이었다.
기숙사 통금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기에, 관계자를 제외하면 기숙사 단지를 거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즉, 실내보다 야외로 나가는 게 안전하다.
기숙사 출입구로 달려가 있는 힘껏 유리문을 밀쳤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유리문은 굳게 잠긴 상태였다.
‘설마.’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학생증을 깜박했다.
생존에 필요한 물건은 챙겼지만, 기숙사 출입에 필요한 학생증을 두고 나왔다.
크어어어어!!
점점 더 격해지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챙그랑!
사감실의 창문이 깨지더니, 좀비로 변한 사감이 상체를 반쯤 내민 채 양팔을 휘젓기 시작했다.
난 쇠파이프를 고쳐 쥐며 있는 힘껏 출입구를 가격했다.
깡-!
분명 유리문인데,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강화유리인가?
안간힘을 쓰며 연달아 쇠파이프를 휘둘렀지만, 당최 부서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사건 사고가 몇 차례 발생한 뒤로 보안이 철저해졌다고 하더니, 견고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사감은 유리 파편에 쓸리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빠져나오고 있었다.
좀비로 변한 사감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쩌렁쩌렁한 사투리로 항상 쏘아붙이던 사감이지만, 타지 생활에 지친 나를 인간적으로 많이 챙겨준 사람이었다.
-박재형이! 또 술 먹고 왔나?
-너 또 통금 시간 놓쳤제? 벌점 10점이다, 알제?
-밥은 제때 챙겨 먹으라 안 캤나! 식당에 얘기해둘 테니 빨리 가서 밥부터 먹고 온나.
사감과 주고받았던 대화들이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 정 많은 사감이…… 지금은 나를 공격하려 한다.
난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사감을 바라봤다.
사감의 목에 걸린 마스터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사감의 정수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뻑!!
몽둥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묵직한 타격감.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듣기 거북한 소리가 귓바퀴를 스쳤다.
머리가 반쯤 으깨지자, 발악에 가깝던 사감의 움직임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다시 한번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경추에서 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감의 상체는 물에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졌다.
오른손을 덜덜 떨며 사감의 목에 걸린 마스터키를 뜯어내고, 다시금 입구로 달려갔다.
마스터키를 리더기에 올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력이 끊겨서 그런 건가?
전력이 끊겼는데 문은 왜 잠겨 있는 거야!
시간이 없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경황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찰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에 샛길로 통하는 쪽문이 있지 않았나?
더 깊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재빨리 지하로 이동해 쪽문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 심지어 안개까지 자욱해서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벽을 더듬으며 한참을 나아가자, 쪽문 앞을 거니는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어어어어…….
경비 아저씨.
경비 아저씨를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눈살을 찌푸리며 경비 아저씨의 관자놀이를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경비 아저씨는 한 차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목이 꺾인 채로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시금 팔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가 내 팔뚝을 깨무는 게 빨랐다.
“으윽!”
팔뚝으로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에 까드득 이를 갈며 그의 두 눈을 직시했다.
붉게 충혈된 안구는 나를 죽이겠다는 집념뿐이었다.
도저히 쇠파이프를 휘두를 수 없는 거리.
주머니에 넣어둔 멍키스패너를 쥐고 경비 아저씨의 안구를 향해 내질렀다.
푸딩을 뚫고 들어간 포크가 접시에 닿는 듯한 묘한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 질척한 감촉에 신음을 토하며 경비 아저씨의 상체를 밀쳤다.
경비 아저씨는 감전된 사람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왼팔을 살피자, 팔뚝에 감아둔 1.5㎝ 책의 표지가 너덜거리고 있었다.
안도할 새도 없이, 멍키스패너를 들고 쪽문으로 향했다.
단단히 잠긴 철문.
하지만 내부에서 잠금장치를 풀 수 있기에,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잠금장치를 풀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크어어어어!!
기숙사 내부를 울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에, 다급히 철문을 닫고 사방을 살폈다.
경사가 가파른 절벽이 병풍처럼 내 앞을 막아섰다.
어디로 가야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쪽문은 거의 이용한 적이 없어서 낯설었다.
안개 때문에 시야도 짧다 보니, 나아가야 할 길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답이 없으면 찍어야지.
안개 속에서 망설이고 있을 여유는 없다.
좀비들이 내 체취를 맡고 따라올 테니까.
육두문자를 읊조리며 좌측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