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2화
저녁노을이 서서히 내려앉는 시각, 실습실로 향했던 B팀이 돌아왔다.
우린 정성껏 준비한 돈가스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고생한 B팀에게 대접했다.
“대박! 이거 돈가스 아니야?”
“이거 어디서 구했어요?”
“실화야?”
B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색을 띠며 다급히 책상 앞에 앉았다.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다소 눅눅한 돈가스지만, 통조림에 비하면 몇 배나 군침이 도는 음식이었다.
설여원은 돈가스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입에 고인 침을 삼켰다.
전완수는 호쾌하게 웃으며 돈가스를 집어 입속에 욱여넣었고, 정진영은 감격스러운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이정우는 일행의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넘치게 많으니까 다들 천천히 먹어. 부족하면 말하고.”
간만에 활기찬 저녁을 즐겼다.
웃음으로 가득한 동아리방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정우는 동아리방 입구 쪽으로 걸어가더니, 구석에 세워둔 어쿠스틱 통기타를 손에 쥐었다.
일전에 정진영이 그것만큼은 망가뜨려선 안 된다고 소리쳤던 통기타.
이정우는 조심스레 기타를 조율하더니, 예전에 자주 연주했던 ‘기적의 산’이라는 곡을 연주했다.
허겁지겁 식사를 이어가던 일행은 청각을 어루만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너도나도 수저를 내려놓고 이정우를 돌아봤다.
침묵으로 지내온 지난날이 무색할 만큼, 귓가를 어루만지는 선율은 아름답고, 몽환적이었다.
정진영은 이정우의 연주를 가만히 지켜보더니, 연주가 끝나자마자 구석에 놓인 또 다른 통기타를 손에 쥐었다.
“오랜만에 맞춰볼까?”
“어떤 곡?”
“오늘 같은 날 잘 어울리는 곡이 있지. 데파페페의 ‘좋은 날이었어’ 어때?”
이정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기타를 조율했다.
난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울인 채 두 사람의 합주에 귀를 기울였다.
이정우와 정진영의 합주를 다시 듣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울컥하는 마음도 들고, 감격스럽기도 하고, 걸레짝이 되어 너덜거리던 마음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선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코를 훌쩍이자, 설여원은 이쪽을 힐끗 쳐다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민망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지만, 전완수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어? 우냐?”
“누가 울었다고.”
“푸하핫! 박재형 인마 운다!”
전완수가 박장대소를 터뜨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전완수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얘기했다.
“앉아, 시끄럽게 하지 말고.”
“아파 인마!”
“아프라고 꼬집은 거야.”
최현과 전완수의 투덕거림조차 즐겁게 느껴졌다.
윤혜리는 최현과 전완수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다시금 이정우와 정진영의 연주에 집중했다.
두 사람의 연주를 처음 보는 김희연은 선망 어린 눈빛으로 연주를 지켜봤다.
설여원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지금껏 보지 못한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모두가 웃고 있다.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즐거운 순간이, 오늘 밤 다시 찾아왔다.
심장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기운에,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구)학생회관, 도서관, 대운동장의 좀비들, 심지어 변종까지 처리했기에 좀비들의 위협도 없었다.
우린 밤이 늦도록 웃고 떠들며, 그동안 잊고 있던 낭만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 * *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는 때늦은 장마가 되어 몇 날 며칠 쏟아졌다.
자욱한 안개에 잠식되었던 세상은 더욱 눅눅하고, 습해졌다.
밤에만 2층까지 차오르던 안개도 장마가 시작되면서 온종일 2층과 3층을 오가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 모든 운동기구를 5층으로 옮기고, 실습실로 향하던 일상도 잠시 미루게 되었다.
잠시나마 비가 그치면 옥상으로 올라가 종합강의동의 남자들과 소통을 이어갔다.
신소재학과에 재학 중인 두 사람은, 태양광 패널을 관리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린 배터리를 확인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들은 부서진 태양광 패널도 고칠 수 있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를 좀비로부터 구해줬을 뿐 아니라, 기계를 다루는 일에도 능통한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로즈의 빈자리를 채워줄지도 모르겠다.
통신 장비도 다룰 줄 안다고 하고, 고장 난 라디오도 고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도 기술자가 필요하기에, 추후 비가 그치면 합류하자는 의사를 밝혔다.
전완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한숨을 내쉬는 날이 많았다.
꿈에만 그리던 좀비카의 완성이 코앞인데, 실습실로 향하지 못하니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난 전완수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조급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실습실이 물에 잠길까 봐 걱정돼서 그렇지.”
“홍수 난 것도 아닌데 잠기겠어?”
“나흘째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잖아. 가뭄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홍수 날 가능성이 높아.”
“땅이 물을 흡수하잖아.”
“가뭄에 시달려서 쩍쩍 갈라진 땅은 흡수력이 떨어져.”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이런 문제는 모르겠다.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기가 저지대도 아니잖아. 잠기진 않을 거야.”
“지금처럼 계속 쏟아지면 모를 일이지. 아니면 산사태라도 나면 공대는 끝나는 거고.”
공대 건물은 우측에 가파른 절벽을 끼고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산사태가 발생한 적이 없지만, 지금처럼 폭우가 쏟아지면 혹시 모를 일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산사태뿐만 아니라, 장대비는 좀비들의 진화도 촉진시키니까.
난 전완수와 함께 한참이나 창밖 풍경을 응시했다.
쏟아지는 장대비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
하수 기관은 제대로 작동할까?
만약 하수도가 역류라도 한다면…… 전완수의 말대로 실습실이 물에 잠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참이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방문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주목!”
다급한 최현의 목소리.
이에 풀어졌던 긴장감이 차올랐다.
좀비들의 공습인가?
내가 사용하던 헌팅 나이프는 변종의 공격으로 부러졌기에, 캐비닛에 넣어둔 새로운 헌팅 나이프를 챙겨둔 상태였다.
손에 익지 않은 헌팅 나이프를 뽑으며 최현에게 물었다.
“좀비들이야?”
“희연이가 무전기 있는 곳을 알고 있어!”
뜬금없는 소리에 눈꼬리를 치켜뜨자, 김희연은 오른손을 슬쩍 들며 얘기했다.
“저, 저 무전기 어디 있는지 알아요.”
“무전기? 갑자기?”
이정우도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우리 그 얘기 많이 했잖아요. 실습실로 이동한 B팀이랑 A팀의 연락수단이 있으면 좋겠다고.”
모두의 시선이 김희연에게 쏠리자, 그녀는 우물거리며 얘기했다.
“그…… 우리 학교에 산악 동아리 있잖아요? 거기 무전기 있다고 들었어요. 과 동기 중에 산악 동아리 가입한 친구가 얘기해 줬어요.”
“확실해?”
“확실해요. 등산하다가 길 잃으면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동아리방에 무전기 있다고 그랬거든요.”
조난을 대비하기 위해 무전기를 지니고 있다라…….
난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우리 학교 산악 동아리 어디 있어요?”
“산악 동아리? 저기잖아.”
이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더니, (구)학생회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안개와 장대비로 인해 건물의 테두리를 제외한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눈살을 찌푸린 채 (구)학생회관을 응시하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창문에 쓰여 있네. 산악회라고.”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전완수가 창문에 적힌 글자를 읽어주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코앞에 있는데 지금껏 몰랐다.
일전의 전투로 도서관과 (구)학생회관의 좀비들이 상당수 줄었다.
게다가 우리 동아리방에서 보이는 위치라면…… 정문으로 나가서 10m만 이동하면 된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에게 물었다.
“지금 이동해서 무전기부터 확보하는 게 어때요?”
“지금? 비가 이렇게 오는데?”
전완수는 입맛을 다시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우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물었다.
“무전기 사용해 본 적 있어?”
“없죠.”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텐데.”
“무전기도 사용법이 따로 있어요?”
“종류가 많잖아. 어떤 거는 자격증 있어야 쓸 수 있다고 들었어.”
생각보다 복잡한 모양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엄청 쉽게 사용하던데.
그러자 옆에 있던 정진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했다.
“그럼 종합강의동에 있는 사람들 데려와서 같이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기계 잘 다룬다며.”
이정우가 고개를 끄덕이기에, 난 일행의 얼굴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그럼 비 그치면 종합강의동에 있는 남자들부터 구출하고, 그 뒤에 산악회로 가죠.”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정진영은 콧방귀를 뀌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학교에 동아리가 많아서 그런가? 조금만 찾아보면 뭐가 계속 나오네.”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획을 정리하고 벽시계를 살피자, 시침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양손을 비비며 일행에게 얘기했다.
“슬슬 저녁 준비할까요?”
“오늘은 돈가스랑 스팸 좀 구워서…….”
쾅-!
정진영이 저녁 메뉴를 설명하고 있는데, 지면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빗소리 때문에 소리는 선명하지 않았지만, 잔잔하게 떨리는 창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벽을 쳤다는 증거.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도 느꼈는지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황급히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1층을 살폈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완수야, 여원아.”
두 사람을 부르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1층을 내려다봤다.
“저게 뭐야.”
“좀…… 비?”
둘 다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이에 의구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뭔데?”
“누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어.”
전완수의 대답에 나도 눈꼬리를 치켜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좀비라면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인간이라면 벽에 머리를 들이받을 이유가 없다.
통증을 느끼는 좀비라면…….
‘대장 좀비?’
난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며 전완수와 최현에게 얘기했다.
“현이랑 완수는 나 따라와. 여원이는 여기서 동태 파악하고.”
전완수와 최현은 카타나를 손에 쥐며 곧장 내 뒤로 붙었다.
동아리방을 나서자마자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자욱한 안개는 3층까지 차오른 상태였고,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장마가 시작된 뒤로 안개의 농도가 짙어져서 그런가?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와 씨…… 이건 좀 심한데?”
뒤에 있던 최현이 안개의 상태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완수도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완수야, 너도 안 보여?”
“약간 불투명하게 보여. 예전처럼 훤히 보이는 정도는 아니야.”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전완수마저 시계가 짧아졌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건물 외벽만 확인하고 돌아오자.”
안개 속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좀비들의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칼자루로 계단 난간을 때렸다.
떵-
은은한 울림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인기척을 확인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지만, 좀비들의 발소리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전완수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앞이 잘 안 보이니까, 흩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카타나를 고쳐 쥐며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1층에 도달하자, 깨진 유리 조각이 사방에 즐비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발밑을 확인하며 조심스레 밖으로 나가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장대비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안개 속을 거닐 때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면, 장마가 시작된 안개 속은 사방이 꽉 막힌 벽에 갇힌 기분이었다.
오감이 차단된 상태에서 정찰을 하는 게 가능할까?
전완수는 혀를 두르며 얘기했다.
“야, 나도 잘 안 보이는데 너흰 앞이 보여?”
“아무것도 안 보여.”
“이건 좀 심한데.”
그냥 돌아가는 게 옳을까?
잠깐의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오감이 차단되는 건 좀비도 마찬가지.
장대비로 인해 좀비들의 청각은 마비되었고, 우리의 체취도 지워졌다.
좀비들도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건물 외벽에 있는 놈이 정말 대장 좀비라면…… 이대로 두는 건 위험하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벽에 붙어서 이동할 거니까, 다들 안 떨어지게 조심해.”
경계 방향을 지정해 주고,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