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5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5화
오래 지나지 않아 설여원과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계단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전력이 수급되고 있는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변수에 대응하기 어렵기에, 우린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곧장 3층까지 올라가자, 서서히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일행은 심호흡을 통해 살인적인 습도로부터 폐부를 환기했다.
최현은 건물 내부를 훑으며 얘기했다.
“더럽게 크네. 좀비들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가는 건 어렵겠는데.”
그러자 뒤에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좀비가 안 보여. 이미 정리가 끝난 것 같아.”
이정우의 말대로 좀비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토록 거대한 건물에 1층을 제외하고 좀비가 없다니.
꺼림칙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종합강의동의 생존자는 남자 둘.
둘이서 이토록 거대한 건물을 정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핑-!
그 순간, 앞서가던 전완수의 발밑에서 가느다란 실이 번뜩이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황급히 전완수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쾅!!
좌측의 방문이 세차게 열리며 밧줄에 엮인 기다란 철근들이 쏟아져나왔다.
코앞을 스치는 철근들을 보고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철근에 좀비들의 혈흔이 묻어 있다.
3층부터 좀비들이 없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완수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은 채 붕어처럼 입술을 벙긋거리더니, 두 눈을 껌벅이며 입을 열었다.
“고, 고맙다. 죽을 뻔했네.”
“…….”
좀비를 처리하기 위해 설치한 덫에 우리가 걸리게 생겼다.
난 일행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다들 움직이지 말아요. 어디에 뭐가 있을지 몰라요.”
“어떡해. 여기서 큰 소리로 불러볼까?”
최현의 의견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덫을 뚫고 들어가는 건 위험부담이 크기에, 7층에 있는 생존자들을 부르는 게 최선이었다.
난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외쳤다.
“저기요!!”
목소리는 메아리치지만, 생존자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은 난간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이 뻥 뚫린 구조기에, 설여원은 난간에 상체를 기울이며 외쳤다.
“여기…… 어!”
떵-!
허리춤 높이의 좌우 길이 20m에 달하는 난간이 일제히 옆으로 기울었다.
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재빨리 몸을 날려 설여원의 발목을 잡았다.
설여원은 난간 너머에 거꾸로 매달린 채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근력을 높이지 않았다면 설여원을 놓쳤을 것이다.
있는 힘껏 설여원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왼팔을 뻗어 설여원의 손을 잡았다.
설여원은 3층 복도에 엎어진 채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놀라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완수는 탄성을 뱉으며 얘기했다.
“에덤의 능력이 괜히 강화가 아니네. 재형이 힘 좋은 거 봐라.”
에덤 화이트의 능력으로 근력 스탯이 12나 올랐으니, 평범한 사람에 비하면 4배나 강한 근력을 지녔다.
웬만한 성인 여자, 혹은 남자도 거뜬히 들 수 있다.
타닥-
뒤이어 7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를 따라 위를 올려다보자, 체구가 작은 남자가 이곳을 쳐다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망원경으로 내 모습을 보고 양팔을 흔들었던 남자.
“어? 거기 가만히 있어요!”
남자는 우리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자는 건물에 설치된 덫을 하나하나 해체하며 3층으로 내려왔다.
건물에 설치된 덫만 족히 6개는 되었다.
“장마 그치면 온다더니 왜 이리 일찍 왔어요? 얘기라도 하고 오시지.”
남자는 쏟아져 내린 철근을 옮기며 얘기했다.
간략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올라가서 얘기하죠. 따라오세요.”
* * *
3층으로 내려온 남자의 이름은 박재우.
박재우는 다소 왜소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170㎝가 약간 안 되는 키.
그리고 드론을 날려 우리를 구해준 남자의 이름은 황덕록이었다.
황덕록은 180㎝에 달하는 키와 굵은 뼈대를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신소재학과의 과탑을 번갈아 하는 엘리트들이었고, 대학원생의 일손을 돕고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소개를 듣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럼 두 분 다 저보다 형님이겠네요.”
“저희 스물하나밖에 안 됐어요.”
“예?”
“네?”
저 얼굴이 스물하나?
나랑 동갑이라고?
잠시나마 정적이 내려앉았다.
박재우는 헛기침과 함께 목을 가다듬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일단…… 형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박재형이고, 동갑이니 말 편하게 해.”
“스물하나라고?”
“…….”
다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박재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편하게 얘기할게.”
“그래.”
종합강의동은 교내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높은 건물.
이들은 망원경을 통해 각 건물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미대와 기숙사 쪽은 가망이 없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연대 근처에는 40마리 정도 있고, 음대 앞에는 100마리가 넘어. 도서관이랑 학생회관 쪽의 좀비들은 일전에 미대 쪽으로 유인했으니 설명하지 않아도 알지?”
“알고 있어.”
“그리고 사과대 옥상에서 생존자들을 봤는데…… 거긴 좀 이상해.”
사과대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살인귀에 대해 아는 건가?
대답을 기다리자, 박재우는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거기 있는 놈들은…… 좀 멀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속옷만 입고 있더라고. 거기 있는 놈들은 마치…….”
“거긴 신경 쓸 필요 없어.”
저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다.
사과대를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인간성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덤덤하게 얘기하자, 박재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박재우의 옆에 있던 황덕록이 콧잔등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이미 아는 눈치네. 그럼 그놈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우리가 정리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뭐?”
황덕록은 어벙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반면에 박재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그…… 정리라는 게 혹시…….”
“죽였어.”
“아.”
두서없이 얘기하면 우리를 불신할 수도 있기에, 일전의 사건사고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사과대에서 겪은 일화를 설명하자, 두 사람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재우는 폐부에 들어찬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대단하네. 정리할 생각을 했다는 게.”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선수 치는 게 이로우니까.”
“그래도 사람을 죽인다는 게…….”
박재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일행의 얼굴을 훑었다.
무덤덤한 일행의 표정을 보고 덜컥 겁이 나는지, 헛기침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우린 그렇게 냉정하지 못해.”
“상대가 사람이든 좀비든 해가 되면 죽여야지.”
“…….”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건가?
황덕록과 박재우는 입술을 달싹이며 서로 눈치만 봤다.
첫인상만큼이나 무른 성격이었다.
이들과 함께해도 되는 걸까?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보다 못한 이정우가 내 어깨를 흔들며 얘기했다.
“재형아, 잠깐 나 좀 보자.”
모두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이정우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이정우는 젖은 옷을 벗어서 쭉쭉 짜며 얘기했다.
“이게 무슨 꼴이냐. 다 젖어서.”
“…….”
“빨리 돌아가서 씻고 싶다. 그치?”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이정우는 젖은 상의를 어깨에 걸치며 물었다.
“네 마음대로 해.”
“네?”
“생존자 합류는 네가 결정하라고.”
“형이 결정해야죠. 형이 우리 팀 대표잖아요.”
그러자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난 걱정을 하는 사람이고, 넌 대책을 생각하는 사람이잖아.”
“…….”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일을 생각했을 때, 네가 나서지 않으면 진전이 없었어. 그만큼 네가 좋은 길잡이라는 증거지.”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곤란한 마음에 구레나룻을 긁적이고 있는데, 휴게실의 방문이 열리며 최현이 나왔다.
최현은 방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더니, 후다닥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박재우랑 악수했어.”
악수?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자랑할 일이야?”
“아니, 상대방의 신체에 손이 닿아야 생각을 읽을 수 있잖아.”
아! 그래.
최현의 능력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최현의 능력은 데니.
독심술이었다.
최현은 휴게실을 슬쩍 돌아보더니,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휴게실에 있는 사람 플레이어야.”
플레이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데니.
NPC와 관련된 퀘스트에 유용하고, 배신자를 일찍이 파악할 수 있기에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하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정우는 휴게실 쪽으로 눈을 흘기며 최현에게 물었다.
“누가 플레이어야. 둘 다?”
“아니요, 키 작은 남자요.”
“박재우? 직업은.”
최현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이정우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뒤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로즈에요.”
* * *
로즈라는 말에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전투 인력으로의 활용도는 떨어지지만, 기술자로 합류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난 고개를 끄덕이며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휴게실에 들어서자, 박재우와 황덕록은 긴장한 모습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가 모략이라도 세운다고 생각한 건가?
난 박재우의 앞에 앉으며 얘기했다.
“직업이 로즈라고 들었는데, 맞아?”
“……어?”
박재우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옆에 있던 황덕록은 마른침을 삼키며 일행의 모습을 훑었다.
우리를 경계하는 모습.
박재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 걸음 물러서며 얘기했다.
“너희 뭐야.”
“…….”
“뭔데 내 직업을 알아!”
우리가 뒷조사라도 한 줄 아는 건가?
흥분한 박재우에게 진정하라는 말과 함께 얘기했다.
“우리도 플레이어야.”
박재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신경전이 오가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 끝에 박재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너희도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했다고? 대한민국에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한 사람은 100만 명도 안 되는데?”
“유저들 나이대는 알고 하는 소리야?”
“…….”
“유저들 나이대 분포가 대부분 20대에서 30대였어. 플레이어의 대부분이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이라는 거지.”
“……너희 중 몇 명이 플레이어야.”
박재우의 물음에 일행을 손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다.”
박재우는 그 자리에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황덕록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 전부 플레이어라고? 너희들 직업이 뭔데.”
난 일행의 직업을 하나씩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박재우와 황덕록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라는 말에 발작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까무러치는 이유가 뭐지?
아무리 놀라도 그렇지.
저건…… 놀란 게 아니라 경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난 눈꼬리를 치켜뜨며 박재우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 말고 다른 플레이어 만난 적 있어?”
“너 혹시 이하진 알아?”
이하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대답 대신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재우는 이마를 문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에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급할 거 없으니 천천히 얘기해 봐. 이하진은 누구고, 너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박재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일행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너희를 의심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하진이란 녀석이 그랬어. 플레이어 중에 생존자들을 대장 좀비에게 팔아먹는 녀석이 있다고.”
“뭐?”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욕설을 읊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