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6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46화
난 설여원을 진정시키며 박재우에게 물었다.
“넌 망원경으로 우리를 봤잖아. 우리가 생존자를 팔아먹는 놈으로 보여?”
“아니,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야. 흥분하지 마.”
“…….”
“이하진…… 역시 그 새끼가 거짓말을 한 거네. 잠깐 혼란스러워서 그런 거니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대체 이하진이 누구냐고.”
“기숙사에서 온 놈이야. 본인이 플레이어라고 하더니,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기숙사라는 말에 매점에서 봤던 남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숙사에 은신처가 있다며 나를 유인하려 했던 남자.
설마 하는 마음에 박재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하진이란 남자, 혹시 거들먹거리지 않았어? 웃을 때도 약간 비웃는 것처럼 보이고.”
“어? 맞아.”
“혹시 은신처가 있다고, 너희한테 같이 가자고 안 그랬어?”
박재우는 대답 대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박재우에게 물었다.
“그 새끼 어디 있어.”
“너희도 이하진 알아?”
“몰라. 이름도 지금 처음 알았고. 다만 개새끼라는 건 알아.”
“……?”
“그 새끼가 뭐래?”
“아까 얘기했잖아. 플레이어 만나면 조심하라고, 생존자들 팔아먹는 파렴치한 놈들이라고…….”
“허! 지가 하는 짓을 아주 뻔뻔하게…….”
설여원이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에,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그러자 박재우는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아니. 우리도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고. 그래서 같이 안 가겠다고…….”
“그런데 우리를 의심한 거 아니야!”
설여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항상 침착하던 설여원이 이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 봤다.
의로운 성격이라서 그런가?
분위기가 과격해지려 하기에, 다시 한번 설여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진정하라는 말을 눈으로 대신하자, 설여원은 시선을 회피하며 세차게 혀를 찼다.
난 박재우를 쳐다보며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하진은 지금 어디 있어.”
“어젯밤에 갑자기 사라졌어.”
“어제? 이하진이랑 여기서 같이 지냈어?”
“이틀 정도 같이 있었나?”
“그놈한테 (신)학생회관 얘기도 했어?”
“…….”
박재우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얘기한 모양이다.
박재우는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미안…… 처음엔 생존자라 생각하고 이것저것 얘기해 버렸어.”
“됐고, 그놈이 또 무슨 소리 했어?”
“그게 다야.”
“하…….”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이하진, 그놈 사라진 뒤에 대장 좀비가 왔어.”
“대장 좀비?”
대장 좀비가 왔는데 멀쩡하다고?
말이 안 되잖아.
따지듯이 되물으려는 찰나, 머릿속으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곳으로 오기 전에 겪은 일이 떠올랐다.
김민형.
(신)학생회관 외벽에서 만난 대장 좀비.
어젯밤에 이하진이 없어졌고, 그 뒤에 김민형이 찾아왔다고?
그렇다면 김민형은 종합강의동에 들렀다가 (신)학생회관으로 왔다는 건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황덕록에게 물었다.
“그 대장 좀비, 다른 좀비랑 다르지 않았어?”
“우리한테 그러더라. 떠나라고, 죽기 싫으면 떠나라고.”
(신)학생회관에서 만난 김민형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김민형이 내게 얘기한 존재는 둘.
대장 좀비 조성훈과 변종으로 변한 혁진이란 남자.
혁진은 내가 죽였으니 생각할 필요 없고, 남은 건 조성훈이다.
조성훈이 악의 축이고, 기숙사 매점에서 만난 이하진이 바람잡이 역할인 모양이다.
김민형은 인간을 섭취하지 않으면 변종으로 변할 운명이었으니, 조성훈이 이하진을 통해 교내의 생존자를 찾으라고 지시한 모양이다.
아무리 개새끼라도 이하진도 사람이기에, 생존자들에게 접근하기 수월할 수밖에 없다.
수하들을 붙여서 이하진을 보호했다면, 이하진은 자유롭게 교내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이하진은 종합강의동에 있는 박재우와 황덕록을 찾았고, 이를 조성훈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럼 조성훈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본인이 박재우와 황덕록을 섭취하거나, 김민형에게 넘기거나.
김민형이 이곳으로 왔다는 건 조성훈이 먹잇감을 양보했다는 뜻이 된다.
김민형은 조성훈의 포악함을 일찍이 깨닫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존자들을 위해 사용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김민형은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신)학생회관을 찾아온 것이다.
박재우가 이하진에게 (신)학생회관의 정보를 전달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신)학생회관에 도착한 김민형은 우리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기도 전에, 변이가 시작됐다는 걸 깨닫고 외벽에 머리를 박은 것이다.
소리를 듣고 나와 전완수, 최현이 밖으로 나간 덕에 최소한의 정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내가 생각한 인과의 과정을 모든 일행에게 들려주었다.
일행도 상황이 이해되는지, 다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전완수는 혀를 차며 얘기했다.
“내가 저번에도 얘기했지? 착한 사람은 꼭 먼저 죽는다고.”
김민형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소한의 양심, 혹은 죄책감.
정답이 뭔지 몰라도, 그가 회개한 덕에 기회가 생겼다.
* * *
무거워진 분위기는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전완수는 그 어색한 침묵이 불편한지, 내려두었던 카타나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여기 식량은 얼마나 남았어?”
“아껴 먹으면 내일 점심까진 가능할 거야.”
“어떻게 할까, 지금 바로 이동해? 아니면 여기서 하루 묵고 이동해.”
전완수의 물음에 난 창밖을 살폈다.
벌써 해가 떨어졌다.
장대비로 인해 가뜩이나 어둑하던 세상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좋든 싫든, 오늘은 이곳에서 묵고 내일 아침에 움직여야 한다.
그래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니, 일행에게 각자의 의견을 물었다.
다들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바깥 상황을 살피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회관에 남은 정진영과 윤혜리, 김희연이 걱정이다.
학생회관이나 종합강의동이나, 오늘은 불안한 마음으로 밤잠을 설칠 것 같다.
내가 조성훈이라면 어떻게 나올까.
김민형이 복귀하지 않았으니, 조성훈이 직접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학생회관을 먼저 갈까, 아니면 종합강의동을 먼저 갈까.
김민형의 발자취를 따라 움직인다면, 종합강의동을 먼저 찾아올 것이다.
종합강의동에는 덫이 설치되어 있기에, 공격을 받더라도 여기서 싸우는 게 이롭다.
(신)학생회관은 뒷문도 부서지고, 쇠창살도 박살 난 상태니까.
뒤를 돌아보자, 근심 걱정에 빠진 일행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이 동요하지 않도록, 애써 태연하게 얘기했다.
“불침번부터 정하자.”
* * *
새벽 어스름이 서서히 가시는 시각, 가장 먼저 일어나 창밖의 상황을 살폈다.
나흘이나 쏟아지던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다시 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기에, 깊은 잠에 빠져든 일행을 흔들어 깨웠다.
다들 젖은 옷을 입고 잠들어서 그런지, 새우잠을 청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하나둘 눈을 뜨고,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린 이정우는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이정우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으슬으슬 떠는 것으로 보아, 몸살 기운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서둘러 이동하는 게 좋겠다.
박재우와 황덕록이 부리나케 아침을 준비한 덕에 넉넉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우리가 이동할 채비에 나서는 동안, 박재우와 황덕록은 옥상으로 올라가 태양광 패널을 뜯어왔다.
크기도 크기지만, 무게도 상당한지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없는 마음이 들었다.
“그걸 들고 가려고?”
“너희 태양광 패널 고장 났다며.”
“두고 가. 나중에 챙겨도 돼.”
“언제 다시 와서 챙겨? 한 번 움직일 때 들고 가야지.”
“가다가 죽고 싶어?”
“…….”
두 사람은 묵묵부답으로 서로를 쳐다보더니,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태양광 패널을 들고 가겠다는 마음은 높이 사지만, 실습실에서 차량 개조를 마치고 다시 와서 가져가는 게 옳다.
저걸 들고 학생회관까지 이동하는 건 다 같이 죽자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우선순위를 잊어선 안 된다.
박재우와 황덕록을 데려가는 게 우선이지, 부가적인 것에 연연하면 안 된다.
결국 박재우와 황덕록은 뜯어온 태양광 패널을 휴게실에 내려두었다.
황덕록은 한숨을 내쉬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단자까지 힘들게 뜯어왔는데 아깝네.”
박재우는 황덕록의 등을 토닥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레그홀스터에 넣어둔 헌팅 나이프를 뽑으며 얘기했다.
“비가 그쳤으니 좀비들의 감각이 돌아왔을 겁니다. 더 진화했을지도 모르고요. 밤새 대장 좀비가 움직였을지도 모르니 인기척 느껴지면 바로 얘기해요.”
박재우와 황덕록을 중앙에 배치하고, 나머지 일행이 두 사람을 둘러싸는 형태로 대열을 정비했다.
이정우의 상태가 썩 좋지 않기에, 그는 주변 경계 대신 박재우와 황덕록이 뒤처지지 않도록 뒤에서 살피는 역할을 부여했다.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어쩌겠는가.
한 사람의 자존심에 일행의 목숨을 맡길 수는 없다.
“가죠.”
* * *
해가 뜨고 있지만 2층까지 운무가 차오른 상태였다.
아직 장대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건가?
발소리를 죽인 채 정문으로 향하자, 유리문 너머를 거니는 두 마리의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설여원을 쳐다보며 수신호를 보냈다.
네가 왼쪽, 내가 오른쪽.
설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칼자루를 꽉 쥐었다.
유리문을 활짝 열자, 설여원은 탄알처럼 튀어 나가 좌측 좀비의 관자놀이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우측 좀비가 반응하기 전에, 난 재빨리 달려나가 좀비의 성대와 안구에 연달아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두 마리의 좀비를 처리하고 주변을 살폈다.
좀비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기에, 일행에게 어서 붙으라고 손짓했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와, 라는 탄성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좀비와 근접전을 펼친 경험이 없는 건가?
박재우는 입술을 앙다물며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후다닥 붙었다.
여전히 안개가 짙지만, 어제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도는 아니었다.
3m 앞의 사물은 육안으로 분간할 수 있는 수준.
대각선으로 이동하는 건 위험하기에, 최대한 건물의 외벽을 따라 이동했다.
두 눈을 크게 껌벅이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크르르르…….
좀비의 울음소리를 듣고 뒤에 있는 일행에게 정지신호를 보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청각을 곤두세웠다.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득히 먼 거리에서 들려온 울림소리에 가까웠다.
좀비와의 거리가 멀다는 판단하에, 이동하자는 신호를 보였다.
“어?”
뒤에서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재빨리 전완수를 돌아봤다.
대장 좀비를 계속 인식해서 그런가?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왜, 무슨 일이야.”
“저기.”
전완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정면을 가리켰다.
전완수가 가리킨 방향은 어제 좀비 떼가 뭉쳐 있던 흡연 부스였다.
그곳엔 안개를 제외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아무것도 없잖아.”
“그게 뭐.”
“아무것도 없으면 안 되는 거잖아.”
전완수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렸다.
뒤늦게 털끝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맞네?
어제는 검은 무더기의 형체라도 보였는데, 지금은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
전부 어디 간 거지?
좀비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사방에 지뢰가 깔린 길을 걷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쏟아지던 장대비는 가랑비가 되었고, 세차게 몰아치던 돌풍도 지금은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
우리가 이동하기 쉽다는 건, 좀비들에게도 제약이 사라졌다는 뜻이 된다.
전신을 더듬는 긴장감에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속도 올린다.”
긴장감을 떨쳐내기 위해 헌팅 나이프를 말아쥐며 속도를 높였다.
크르르르…… 카학!
그 순간,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온 소리.
‘우측.’
소리의 크기와 울림으로 보아 놈들의 후각에 잡힐 수 있는 거리.
무더기가 아닌 단신.
체취를 맡고 달려들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뒤에 있는 일행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할 새도 없이, 다급히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나갔다.
10m 정도 나아가자, 좀비의 인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닥에 엎드려 있는 녀석.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헌팅 나이프를 치켜드는 순간, 좀비의 모습을 보고 정체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뭐지 이놈?
코앞까지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달려들기는커녕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