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1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1화
저녁을 먹으며 대장 좀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진영은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대장 좀비가 학교 밖으로 나갔다고?”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사과대로 대장 좀비를 유인하고, 우리를 찾지 못한 대장 좀비는 바로 옆의 후문으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높다.
교내에 대장 좀비의 흔적이 사라졌기에 가능한 추측이었다.
“이제 어떡하죠? 교내의 좀비들은 대장 좀비가 데려갔으니 더는 위험하지도 않고, 차량 개조부터 끝낼까요?”
설여원은 씹고 있던 돈가스를 삼키며 모두에게 물었다.
이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차량 개조가 끝나면 첫 번째 에피소드도 끝이야. 목적지부터 정하고 차량 개조를 끝내야 돼.”
현 상황에 무작정 차량 개조를 끝내는 건 위험하다.
난 시야의 우측 상단으로 보이는 에피소드 진행 현황판을 살폈다.
-에피소드 ‘안전가옥’ 진행도.
-안전가옥 확보(Clear)
-플레이어 모집(Clear)
-차량 개조(미완료)
차량 개조가 끝나면 첫 번째 에피소드 안전가옥을 클리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두 번째 에피소드 방랑자가 시작되고, 정처 없이 떠돌며 살아남아야 한다.
아무 목적 없이 살아남을 게 아니라,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이동해야 한다.
설여원도 본인의 홀로그램을 열고 현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가 방랑자였지?”
“어, 게임에서는 아크로 이동하라는 퀘스트를 받으면서 시작돼.”
그러자 냉장고 앞에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아크에 도착하기 전에 세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지 않아?”
“맞아요. 사실 방랑자는 생존에 중점을 둔 에피소드에요. 게임의 개발자가 플레이어의 자질을 파악하는 거죠.”
“그래서 포기한 유저가 태반이잖아.”
“그렇죠. 타이머의 압박을 못 버티고 포기하는 유저가 대부분이었죠.”
타이머라는 말에 정진영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타이머? 그게 뭐야.”
“제한 시간 동안 살아남으면서 게임의 이해도를 높여야 하거든요. 게임에서는 주요 캐릭터들의 감정 기복을 줄이고, 서로의 의존도를 높이면서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요.”
“현실에선 필요 없잖아. 우리가 서로 헐뜯을 것도 아니고.”
“네, 게다가 방랑자를 진행하다 보면 문제 있는 쉘터를 찾게 되고, 그 쉘터를 파괴하면서 각성도 하게 돼요. 물론 현실은 게임처럼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난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게임 설정대로 가만히 앉아서 제한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메인 퀘스트부터 클리어하는 건 어때요?”
내 의견에 모든 일행은 서로 눈치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팔짱을 끼며 얘기했다.
“난 동의. 메인 퀘스트부터 차근차근 클리어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크가 서울이랑 부산에 있다고 나왔으니, 가까운 부산으로 가죠.”
“넌 본가가 하남이라며? 부산으로 가면 집이랑 멀어지는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이정우가 덤덤하게 묻자, 설여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는 건 살아남은 여러분의 가족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거예요. 수십 명은 될 텐데, 다 같이 서울로 이동할 수 있겠어요?”
“…….”
이정우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설여원과 내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행의 부모님이 살아계실 경우, 최소한 2명씩 추가될 것이다.
그들을 데리고 돌발 퀘스트를 완료하며 서울까지 가는 건 솔직히 버겁다.
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완수, 현이, 희연이 집부터 확인하고 그 뒤에 구미, 포항으로 이동하죠.”
“구미랑 포항?”
설여원이 묻기에 일행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정우 형 고향이 구미고, 진영이 형이랑 혜리 고향이 포항이야.”
“그럼 경산, 구미, 포항, 부산 순으로 이동하자는 거지?”
“어.”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박재우와 황덕록이 손을 들었다.
아차, 저들을 깜박하고 있었다.
“재우랑 덕록이는 집이 어디야?”
“우리 둘 다 수성구.”
“수성구?”
대구 제일의 부자 동네.
이 녀석들, 돈 많은 집 자제들이었네.
박재우의 S급 퀘스트를 묻자,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하는 퀘스트라고 했다.
“그럼 경산부터 확인하고 수성구, 구미, 포항, 부산 순으로 이동하죠.”
상황을 정리하며 얘기하자, 다들 수긍했다.
고심에 잠겨 있던 이정우도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건을 정리하고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의 눈빛에서 근심이 엿보였다.
“괜찮아?”
“어? 응.”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표정으로 씁쓸한 기운이 엿보였다.
본인이 얘기한 방안이지만, 내심 부모님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하남과 잠실은 목적지에서 제외되었으니까.
난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서울에는 아크가 있잖아. 괜찮으실 거야.”
잠실과 하남.
설여원의 부모님과 내 부모님은 아크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다른 일행에 비해 높다.
뒤이어 이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그럼…… 오늘은 다들 피곤할 테니 불침번만 정하고 일찍 자자.”
다들 지칠 대로 지쳤기에, 오늘은 운동을 거르기로 했다.
2시간 단위로 돌아가면서 서는 불침번.
정진영과 윤혜리가 가장 먼저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난 멍하니 창밖으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장대비를 보고 밖에 나가는 걸 자살행위라 했다.
하지만 몸소 겪어본 결과, 그 반대였다.
장대비는 우리의 체취를 지워주고, 좀비의 청각을 마비시켜주었다.
목표도 정해졌으니, 내일부터 다시 차량 개조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대장 좀비의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했지만, 언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까.
인원이 늘어나면서 라꾸라꾸가 부족해졌다.
몇몇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거나, 의자를 연결해서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다.
난 소파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어젯밤 홀딱 젖은 채 불편하게 잠을 청해서 그런지, 몸이 으스스한 것 같기도 하고, 몸살처럼 찌뿌드드한 기분도 들었다.
몸을 뒤척이며 다른 일행의 모습을 살폈다.
전완수는 벌써 코를 골기 시작했고, 최현은 옆으로 돌아누운 채 새우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정우는 오른손을 이마 위에 얹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고, 설여원은 이를 갈며 자고 있었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잠이 오지 않는지, 무전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헥, 헥헥. 왈!
뒤이어 장군이가 내 곁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묘하게도 장군이를 보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반려견을 키우는 건가?
난 장군이를 가슴에 얹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장군이의 작디작은 숨소리가 손끝으로 느껴졌다.
그 미세한 움직임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내일도…… 다들 무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존재 자체가 의문인 신에게 기도하며, 나 역시 깊은 숙면에 빠져들었다.
* * *
새벽 5시쯤 됐을까.
감았던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여름의 후덥지근한 날씨도 버거운데, 습기까지 차오르자 도통 편히 잘 수 없었다.
아니면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가?
주변을 둘러보자, 일찍 잠을 청했던 전완수와 최현, 설여원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진영과 윤혜리, 김희연, 박재우, 황덕록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이정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깨어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정우 형 어디 갔어?”
“순찰 돌고 있을걸?”
“혼자?”
“어…… 그럴걸?”
최소한 둘이서 움직이라니까.
침대에서 일어나 학생회관 5층부터 3층까지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이정우는 보이지 않았다.
‘더 내려갔나?’
새벽 5시, 아직은 2층까지 안개가 남아 있을 시간.
레그홀스터에 꼽아둔 헌팅 나이프를 뽑아 들고 2층으로 내려가려는 찰나, 계단을 올라오는 흐릿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정우였다.
손에 쥐고 있었던 헌팅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그를 불렀다.
“형, 거기서 뭐해요.”
“어? 일어났어?”
이정우는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뭐냐고 묻자,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날씨가 너무 습하고 더워서, 다들 더위 먹을까 봐 아이스크림 좀 챙겼어.”
2층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온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홀로 안개 속에 들어가다니.
걱정이 담긴 잔소리를 하자,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안개가 가슴 높이까지 오더라고. 매점만 확인하고 왔으니 너무 뭐라 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만약 좀비들 들어왔으면 어쩌려고요.”
이정우는 쓴웃음을 짓더니,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지? 매점에서 혼자 맛난 거라도 먹은 건가?
“나도 경험 좀 쌓아야 할 거 같아서.”
“네?”
“너도 알잖아. 안개 속에 있으면 집중 잘 되는 거.”
안개에 들어가면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발생하니, 집중력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어처구니없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는 목덜미를 주무르며 얘기했다.
“한동안 수비만 했더니 감이 무뎌진 거 같아서. 종합강의동 가는 길에 자꾸 위축되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왜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해요.”
“나도 짐이 되는 건 싫거든.”
어제의 일이 마음에 걸리는 건가?
종합강의동에 들어설 무렵, 이정우는 좌측에서 나타난 좀비에게 허무하게 물릴 뻔했다.
강해지고 싶고, 짐이 되기 싫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혼자 안개에 들어가는 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무리하지 마요. 목숨이 2개도 아니고.”
“알았어. 앞으로 안 그럴 게, 됐지?”
내가 잔소리를 하자, 이정우는 몇 번이나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담스러워서 그랬어.”
부담? 무슨 부담.
대표라는 자리를 말하는 건가?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이정우를 무리하게 만든 모양이다.
난 뚱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지금도 충분해요.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그러시네.”
“네가 내 입장 돼봐라, 쓸데없는 일에도 눈치 보여.”
“…….”
앉아서 쉬면 눈치 보이고, 실수해도 눈치 보이고, 항상 잘해야 하는 게 대표라는 자리였다.
심지어 잘해도 욕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대안이라도, 모두의 입맛에 맞출 수는 없으니까.
잘해도 욕먹고 못 해도 욕먹고.
10명밖에 안 되는 인원이지만, 이곳도 작은 사회였다.
씁쓸한 마음에 입맛을 다시자, 이정우는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얘기했다.
“가자, 아이스크림 녹겠다.”
“…….”
“내 걱정해 줬으니까, 너 먼저 골라.”
이정우는 검은 봉지에 들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보여주었다.
10개의 멜론 맛 아이스크림.
미간을 좁히며 쳐다보자, 이정우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 * *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래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헬스장으로 이동했다.
운동을 통해 밤사이 굳은 몸을 풀고, B팀은 이동할 준비에 나섰다.
설여원은 뻐근한 어깨를 풀며 창밖을 바라보더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또 오네.”
그치는가 싶더니, 또다시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낀 것으로 보아, 오후에 한 바가지 쏟아질 것으로 보였다.
난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B팀은 슬슬 이동하죠. 장마 끝나기 전에 차량 개조 끝내야 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무기와 필요한 물품들을 가방에 넣었다.
뒤이어 박재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덕록이랑 나는 무슨 팀이야?”
“너희는 A팀. 수비해 줘.”
“아, 그럼 이거.”
박재우는 후다닥 방문 앞으로 달려가더니, 무전기를 들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