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2화
“채널이나 다른 건 내가 다 맞춰놨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사용할 때 여기 버튼 있지? 이거 누르고 말하면 돼.”
“이거?”
“어, A팀이랑 소통할 때는 이거 쓰면 돼. 참고로 상대방이 말하고 있을 때는 듣기만 해야 돼.”
“또 알아야 하는 건?”
“없어.”
송수신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 단위라고 했으니 여기서 공대까지 무전기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뒤이어 황덕록이 다가와 또 다른 무전기를 건네주었다.
“이건 밖에서 사용할 무전기. B팀끼리 서로 갈라지는 상황에 쓰면 돼.”
“이것도 사용법은 똑같아?”
“설정은 우리가 다 해뒀으니 전원만 켜면 돼.”
무전기가 많아지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헷갈릴 수도 있으니 따로 표시라도 해둬야겠다.
캐비닛으로 걸어가 A팀과 소통하는 무전기에 붉은색 스티커를, 그리고 B팀이 사용하는 무전기에 푸른색 스티커를 붙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B팀을 돌아보자, 설여원이 가방을 건네주었다.
밖에서 먹을 음식과 식수 등이 들어 있는 가방.
내 가방까지 싸준 건가?
가방을 등에 메고,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A팀은 되도록 창가에 다가가지 말고, 순찰할 때도 3층까지만 돌아요.”
“그래, 혹시 모르니 바리케이드도 새로 만들어야겠어.”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재우랑 덕록이는 정우 형한테 이것저것 배워.”
“배워? 어떤 거를.”
“좀비 죽이는 방법.”
“아…… 그래.”
박재우는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종합강의동을 벗어날 당시, 박재우와 황덕록은 고작 2마리의 좀비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수비진영이라도, 전투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모든 일행의 얼굴을 돌아본 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얘기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평균적인 장마 기간을 생각했을 때, 앞으로 장마가 그칠 때까지 길어봐야 일주일.
그 안에 차량 개조를 마치고 교내를 벗어날 생각이다.
교내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
* * *
눅눅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기나긴 장마가 지속되는 동안, B팀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습실로 향했다.
A팀은 수비를 담당하면서도 전투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꾸준한 운동 덕분에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지속된 장마의 끝을 알린 건 맑은 하늘과 매미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마침내, 학생회관 뒷문의 주차장으로 개조된 차량들이 주차되었다.
“봐봐! 이게 바로 좀비카다, 이 말이야!”
전완수는 인생의 역작을 마주하듯,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윤혜리와 김희연은 차량의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저게 굴러가요?”
“엄청 무거워 보이는데.”
전완수는 후배들의 못마땅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열을 내며 설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정진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형, 저기에 다 들어갈까요?”
“어떤 거?”
“태양광 패널도 넣어야 하고, 라꾸라꾸나 식량 같은 거요.”
“글쎄, 넣어봐야 알 거 같은데.”
승합차와 중형차는 전투에 쓰일 것이고, 버스는 짐을 싣는 용도와 길을 뚫는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승합차와 중형차의 개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버스를 개조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버스 좌석의 절반 이상을 뜯어내고, 모든 창문에 쇠창살을 달았다.
또한 측면에 날카롭게 벼린 철판을 달았다.
철판은 대각선으로 달았으며, 좀비들의 허리와 목을 자르기 쉬운 높이였다.
버스의 전면부에는 삼각뿔 모양의 철판도 달았다.
두께 15T에 달하는 삼각뿔.
길가의 차량을 밀어내거나, 좀비들이 붙어도 측면으로 밀쳐낼 수 있도록 말이다.
중형차와 승합차의 바퀴 휠에는 옛날 전투 마차의 바퀴에 칼날을 박아넣은 것처럼,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달리기만 해도 좀비들의 하체가 썰려 나갈 것이다.
중형차와 승합차의 창문에도 쇠창살을 달았으며, 안개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라이트 밝기를 조절했다.
전완수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종일관으로 외친 LED 조명.
교내에 주차된 차량의 LED 조명이란 조명은 모조리 뜯어서 좀비카의 상단에 고정했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차량의 모습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태양광 패널 철거는 우리가 할 테니 너희는 쉬어.”
“옮길 때 얘기해. 옮기는 건 도와줄 수 있으니.”
버스의 시동을 시종일관 걸어둘 수는 없다.
시동을 끄면 냉장도가 돌지 않기에, 태양광 패널은 필수적이었다.
또한 우리가 챙긴 공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하고, 이는 태양광 패널로 충당할 생각이다.
이정우는 감회가 새로운지, 떨리는 표정으로 좀비카를 바라봤다.
이정우의 곁으로 걸어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긴장돼요?”
“이제 이 학교도 안녕이네.”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우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물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도 이제 안녕인가?”
“지켜봐야죠.”
시야의 우측 상단에 있는 에피소드 진행 현황판을 열자,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안전가옥’을 완료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 진행을 위해 교내를 벗어나세요.
교내를 벗어나면 두 번째 에피소드가 열리며 현황판도 초기화될 것이다.
이정우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뒤늦게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물었다.
“스탯 확인하는 거야? 얼마나 올랐어?”
상대방의 홀로그램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내가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왕 홀로그램을 켠 김에 플레이어 정보도 확인해야겠다.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스탯: 근력 7(+12), 체력 7(+5), 반사 신경 5, 동체 시력 5, 정신력 10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114/200
-남은 포인트: 0
※개방되지 않은 스킬이 존재합니다.
※요구조건: 변이바이러스 흡입(0/1)
꾸준한 운동을 통해 근력과 체력이 1씩 더 증가했다.
그 외에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의 요구조건.
변이바이러스 흡입이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얻을 수 없는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어떻게 얻는 것인지 설명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스터에그는 개발자가 꼭꼭 숨겨두는 이벤트에 가까운 요소기에, 설명이 불친절한 게 당연했다.
에피소드를 진행하다 보면 변이바이러스 흡입이 뭔지 단서를 알게 되지 않을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현재 스탯을 이정우에게 들려주었다.
이정우는 신기하다는 듯이 탄성을 뱉으며 얘기했다.
“초반만 잘 넘기면 에덤이 좋긴 좋구나.”
“아직이에요. 더 강해져야 합니다.”
앞으로 철새처럼 이동하며 살아야 한다.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남은 식량은 아껴먹어 봐야 일주일.
이정우는 웃고 떠드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근심이 많아 보였다.
앞으로는 선택의 연속일 것이고, 그럴 때마다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게 대표였다.
압박감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난 이정우의 등을 토닥이며 얘기했다.
“잘할 수 있어요.”
“후…… 그래. 제일 먼저 어디부터 가지?”
“일단 완수랑 현이, 희연이 본가부터 들러야죠.”
“그 뒤에 수성구, 구미, 포항, 부산인가?”
“네.”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 미안하다, 재형아. 너도 부모님 걱정 많이 될 텐데.”
계속 마음에 담아둔 건가?
이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모님의 안부를 걱정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걱정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지금의 미쳐버린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라스트아크를 클리어해야 한다.
서울에도 아크가 있으니, 부디 부모님이 아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벌써 태양이 중천에 걸린 시각,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난 좀비카를 구경하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구경은 그쯤하고 슬슬 준비하자.”
식량과 냉장고, 태양광 패널, 그 외에 각종 필요한 물품 등을 옮기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도 해가 떨어질 것이다.
버스의 짐칸에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를 넣고,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식량 등은 좌석을 뜯어내고 생긴 공간에 단단하게 고정했다.
그 외에 라꾸라꾸와 이불, 갈아입을 옷도 빠짐없이 챙겼다.
얼추 정리가 끝나자,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뻐근한 허리를 주무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종합강의동에 있는 태양광 패널도 가져와야 할 거 같아. 여기 있는 태양광 패널로는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길 거야.”
“또 챙길 게 뭐 있지?”
“챙겨야 하는 건 없고…….”
박재우는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고마워, 합류시켜줘서.”
“나한테 고마워하지 말고 정우 형한테 고마워해. 모든 결정은 정우 형이 하니까.”
“당연히 감사하다고 했지. 그래도 너한테 많이 의지하게 되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옆에 있던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든 결정하기 전에 너한테 제일 먼저 묻더라. 다들 너한테 의지하고 있을 거야.”
“…….”
“정우 형이 대장이라고 하지만, 대장의 의견도 바꿀 수 있는 게 너잖아.”
위험한 생각이다.
무슨 반역자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의 느낌이지 않은가?
난 손사래 치며, 됐다고 어서 짐이나 옮기자고 했다.
괜히 찜찜하다.
만약 정우 형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건……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우린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갈 채비에 나섰다.
어제 모든 짐을 차량에 실었기에, 이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 되어준 동아리방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이정우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일행의 모습을 살피며 얘기했다.
“다들 명심해.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야.”
“넵!”
모두의 힘찬 대답과 함께, 이정우를 선두로 동아리방을 나섰다.
난 마지막으로 동아리방을 나서며 텅 빈 동아리방을 눈에 담았다.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동아리방.
대학 생활의 시작과 끝이 묻어난 장소.
동아리방의 벽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고맙다.”
정든 동아리방도 이젠 안녕이다.
마지막으로 동아리방을 나서며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일행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 * *
버스운전은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전완수가 담당하기로 했다.
게임을 통해 버스 운전을 배웠다고 의기양양하게 얘기하기에 못 미더웠지만, 워낙 현실 고증이 잘 된 게임이라 그런지 숙련된 조교처럼 깔끔하게 운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의 운전실력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이정우는 예전부터 동아리 MT를 갈 때마다 승합차 운전을 담당했기에, 자연스레 승합차 담당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중형차 운전은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시야 확보가 가능한 설여원이 운전하는 게 좋지만, 그녀는 핸들을 잡아본 적이 없다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차량에 시동을 걸고 비상등을 한 번 점멸했다.
그러자 이정우와 전완수도 덩달아 비상등을 깜박였다.
우리가 정한 신호.
문제없다, 출발하겠다, 이러한 신호를 비상등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반대로 문제가 있을 때는 세 번 점멸하는 것으로 정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0일의 시간.
고작 50일 만에, 안개가 퍼지기 전의 세상이 머나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우리를 뒤쫓던 이성을 지닌 좀비는 어디로 간 걸까.
사과대에서 우리를 놓친 뒤에 후문으로 내려갔다면…… 시가지에서 다시 마주칠 가능성도 있다.
난 무전기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다들 집중해요. 우리 놀러 가는 거 아니니까.”
-시작부터 움츠러들 필요 있나? 여유롭게 가자고.
전완수가 깐족거리기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그러다 실수하지 말고 집중해.”
-오케이! 그럼, 오라이!
선두에서 길을 뚫어야 하는 버스가 가장 먼저 출발했다.
그 뒤로 이정우의 승합차가 출발하고, 내가 운전하는 독일산 중형차가 후방을 담당했다.
우리의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