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4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4화
차를 타고 시가지로 들어서자, 불 꺼진 신호등과 대로변에 정차된 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유령도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풍경.
잠시나마 웃고 떠들며 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길가에 널브러진 온갖 쓰레기와 전단지들 사이로, 미동도 하지 않는 인간의 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 구의 버려진 시신이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었는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조수석에 있던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뒷좌석에 있던 최현은 착잡한 표정으로 창밖의 참상을 응시했다.
둘 다 말문이 막혀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감을 못 잡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핸들을 쥐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지옥을 경험한 줄 알았는데, 우리가 겪은 일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학교가 산의 초입에 위치한 덕에, 우린 배부른 줄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정문을 기점으로 그 너머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이 시신을 뜯어먹고 있었다.
최현은 길가에 널브러진 시신을 살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좀비 시신이 아니야.”
옆에 있던 설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일 거야. 좀비로 변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머리를 뚫은 것 같아.”
덜컹- 드득- 덜컹-
차량 앞에 달린 강판으로 시신들을 밀어냈지만, 미처 밀어내지 못한 시신들이 바퀴에 깔리며 듣기 거북한 소리를 자아냈다.
뼈마디 으스러지는 소리와 그 감촉들이, 핸들을 쥐고 있는 내 손끝으로 느껴졌다.
질척하고, 거북한 감촉에 몸서리치게 되었다.
까마귀들의 울음소리와 매미 울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이질적인 불협화음을 자아냈다.
말문이 막히는 참혹한 광경에, 차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치직- 치직-
-아아, 들립니까?
전완수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들려왔다.
“얘기해.”
-뭔가 이상해. 대로를 막아선 차량이 하나도 없어. 여기 있던 사람들 다른 곳으로 떠난 거 같은데?
전완수의 말대로 길목을 막아선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은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을 처리한 뒤에 다른 곳으로 대피했을지도 모른다.
대로를 따라 얼마나 이동했을까.
우측으로 대형마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원아, 앞에 무전 쳐봐. 마트 확인하고 갈 건지 그냥 갈 건지.”
설여원은 시키는 대로 따라주었다.
앞서가던 버스가 정차하고, 잠시 이견조율의 시간을 가졌다.
짧은 상의 끝에, 이정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확인하고 가자.
식량은 확보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확보하는 게 옳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기에, 우린 대형마트 주차장에 차량을 정차시킨 뒤 조심스레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까- 악, 까- 악.
매엠- 매엠- 매엠- 메-
요란하게 울리는 까마귀 소리와 고막을 찌르는 매미 울음소리.
잡음이 심한 탓에 좀비의 인기척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좀비의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좀비도 보이지 않고, 생존자도 보이지 않았다.
시신과 쓰레기더미로 점철된 도시.
죽은 사람들을 묻어줄 여력도 없이 다들 어디로 떠난 걸까.
근방의 주거단지를 뽑으라면 크게 3곳이 있다.
현재 두 발 딛고 선 원룸촌과 실개천 너머의 아파트단지, 그리고 금호강 건너의 대형 아파트단지.
금호강 건너의 대형 아파트단지는 거리가 있어서 이동하기 어렵고, 원룸촌을 버리고 떠났다면 실개천 너머의 아파트단지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개천 너머의 아파트단지는 전완수와 최현의 본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뒤이어 차량을 정차시킨 일행이 다가왔다.
다들 상체를 낮게 숙인 채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 익숙하지 않은 지형.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마트 들어가면 통조림이랑 과자, 라면, 음료 같은 것만 챙겨서 나온다.”
“잠깐만요, 다들 밖에서 대기해요. 현이랑 여원이만 따라오고.”
최현과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하자, 이정우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내 팔을 잡았다.
“왜, 어쩌려고.”
“좀비부터 처리하고 움직이죠.”
“좀비?”
“마트 안에 좀비가 있을지도 몰라요. 다 같이 들어가지 말고, 일부는 밖에서 경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까마귀랑 매미 소리 때문에 좀비들의 인기척을 확인하기 어려우니까.”
이정우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추가설명을 덧붙였다.
“물건 챙기면서 좀비들까지 상대하는 건 어려워요. 입구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안에 있는 놈들이 알아서 나올 겁니다. 계산대에서 좀비들부터 죽이고 다 같이 들어가죠.”
“좋아. 재형이랑 현이, 여원이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에서 주변 경계한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최현과 설여원은 내 뒤를 따라 마트로 진입하고, 나머지 일행은 마트의 정문을 경계했다.
크르르르르…….
실내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아니, 일곱?
명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비좁은 계산대를 이용하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현과 설여원에게 좌우를 살피라고 지시한 뒤, 엄지와 검지를 입에 물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크어어어어어!!
마트에 있던 좀비들이 소리에 반응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진열대를 밀치고 넘어뜨리며, 대략 아홉 마리의 좀비가 달려들었다.
재빨리 헌팅 나이프를 뽑아 들고 코앞으로 다가온 좀비의 안구를 향해 내질렀다.
뒤따라 접근한 좀비의 허벅지에 발길질을 가하자, 무릎이 반대로 꺾이며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놈이 균형을 잡기 전에, 재빨리 헌팅 나이프를 반대로 고쳐 쥐며 관자놀이를 찔렀다.
크어어어!
그 순간, 계산대를 밟고 올라선 좀비가 내 머리 위로 몸을 던졌다.
헌팅 나이프를 휘두르기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
관자놀이에 박힌 헌팅 나이프를 있는 힘껏 뽑으며 칼자루로 놈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러자 좀비의 콧대가 내려앉으며 목이 뒤로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금세 머리를 비틀며 내 손목을 향해 치아를 들이미는 좀비.
경험이 쌓이면서 좀비들의 움직임이 읽히기 시작했다.
충분히 예상한 움직임이기에, 상체를 비틀어 왼손으로 좀비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그와 동시에 좀비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헌팅 나이프로 성대를 그었다.
그와 동시에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선혈이 내 안면을 적셨다.
“윽!”
반사적으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카하악! 하학!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또 다른 좀비가 계산대를 비집고 들어왔다.
한쪽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리자, 계산대로 들어선 좀비의 양팔이 내 안면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헌팅 나이프를 내지르자, 놈은 왼팔을 뻗어 헌팅 나이프를 손으로 막았다.
손바닥에 박힌 헌팅 나이프를 짓누르며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좀비의 압력으로 인해, 엉거주춤 뒷걸음치게 되었다.
턱!
‘젠장!’
바닥에 쓰러진 좀비 시신에 뒤꿈치가 걸린 나머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고작 4마리의 좀비에게 허점을 보이다니.
물리지 않기 위해 뒤로 넘어지는 와중에 왼손으로 좀비의 목젖을 쥐었다.
따닥! 딱! 딱!
쉴 새 없이 치아를 부딪치며 내 살점을 탐하는 좀비의 얼굴.
압력을 떨쳐내기 위해 팔꿈치로 놈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푹!
그와 동시에 좀비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오는 칼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좌측을 담당하던 최현이 두 마리의 좀비를 처리하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새 무뎌진 거야? 좀비 네 마리에 쩔쩔매면 어떡해.”
최현의 도발에 얼굴이 붉어졌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쩔쩔맨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간만에 느껴보는 살기에 십 년 감수했다.
설여원은 뒤늦게 내 전신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난 얼굴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얘기했다.
“미안하다, 방심했다.”
최현은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더니,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농담이야 인마. 뭘 그렇게 기죽고 그래.”
멋쩍은 마음에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화제를 돌렸다.
“혹시 모르니 좀 더 기다렸다가 움직이자.”
“오케이.”
하체가 절단된 좀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놈들은 바닥을 기어 천천히 접근하기에, 무턱대고 들어가기보다 기다렸다가 움직이는 게 안전하다.
그 뒤로 3분 정도 기다렸지만, 계산대로 접근하는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트 내부에 좀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밖에 있는 일행을 불렀다.
태양이 중천에 떠오른 시각이지만, 안개가 들어찬 마트 내부는 어둑했다.
쓰러진 진열대를 지나 매장 깊숙이 들어가자, 오랫동안 방치된 해산물로 인해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콧잔등을 찌푸린 채 수색을 거듭한 결과, 벌써 먹을 만한 음식은 깔끔하게 털린 상태였다.
윤혜리와 김희연이 찾은 통조림 몇 개가 전부였다.
만족스럽지 않은 수확에 정진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영이 형, 저희 식량 얼마나 남았어요?”
“아껴먹으면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어.”
사람이 많아지면서 식량이 줄어드는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이에 최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현아, 이 근처에 대형마트 더 없어?”
“저쪽 원룸촌 깊숙이 들어가면 대형마트 하나 더 있어. 가는 길에 편의점도 있고.”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재우가 조심스레 오른손을 들었다.
얘기하라고 하자, 그는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태양광 패널도 충전해야 된다.”
“배터리 전력 얼마나 남았어?”
“20%. 최근 이틀간 충전 못 해서 별로 안 남았어.”
그러자 박재우의 옆에 있던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오늘 밤은 20%로 버틸 수 있는데, 내일은 장담 못 해.”
“지금부터 충전하면 얼마나 찰까?”
“로즈 능력에 전력량 증가 버프도 있어서 완충 가능해.”
황덕록의 설명까지 듣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팀을 짜서 움직이죠.”
“다 같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정우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10명이 다 같이 이동하는 건 비효율적이에요. 근처에 좀비도 없으니,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비팀이랑 공격팀을 정하죠.”
다들 이정우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의견이 갈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뒤이어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단순히 수비팀 공격팀으로 나눌 게 아니라, 이번엔 좀 더 체계적으로 정하자. 인원도 많아졌으니까.”
“어떤 식으로?”
“식량, 보수, 수비, 수색대로.”
설여원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의 역할을 정하면 중간에서 혼동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설여원의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이 없자,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이번엔 여원이 네가 정해볼래?”
“제가요? 그래도 돼요?”
“반대하는 사람 있어?”
이정우가 일행을 돌아보며 묻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전완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난 어디에 투입되는지 들어보고 정할 거야.”
“완수는 수색대. 반대는 반대한다.”
전완수가 반박하려 하자, 최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전완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뒤이어 윤혜리가 손을 들며 얘기했다.
“저! 저랑 희연이는…… 식량 담당해도 돼요?”
“물론이지.”
설여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전완수는 연거푸 탄식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여원은 한 명 한 명을 호명하며 얘기했다.
“혜리랑 희연이가 식량, 재우랑 덕록이가 보수, 수비는 정우 오빠랑 진영이 오빠, 전투는 재형이랑 나, 완수, 현이. 어때요?”
모두가 수긍하는 결과였지만, 전완수만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설여원은 입맛을 다시며 전완수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