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6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6화
대형마트의 뒷길을 따라 200m쯤 이동했을까?
주변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들어 정지신호를 보내고, 옆에 있는 설여원에게 물었다.
“보이는 거 있어?”
“여기서 기다려.”
설여원은 우측 벽에 바짝 붙은 채 발소리를 죽이고 귀퉁이로 걸어갔다.
고개를 슬쩍 내밀어 우측 골목을 살피는가 싶더니, 황급히 벽 뒤로 몸을 숨기며 손짓했다.
오른손 검지로 연달아 건물을 가리키는 모습.
건물로 들어가라는 건가?
뒤에 있는 일행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한발 앞서 빌라 1층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지면에 깔려 있던 티끌 먼지가 걸음을 뗄 때마다 올라왔다.
안개와 먼지로 점철된 내부.
실내에 좀비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설여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저쪽은 못 지나가.”
“몇 마리나 되는데.”
“발 디딜 틈이 없어.”
그렇게 많다고?
지금껏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 좀비들이 저곳에 몰려 있는 모양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저쪽 골목만 그러지? 우리가 걸어온 길은 깨끗했잖아.”
안개 속에서는 정처 없이 떠도는 게 좀비들의 본능이었다.
최현의 말대로 좀비들이 뭉쳐 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난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며 얘기했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확인하자.”
원룸촌의 빌라들은 대부분 5층이었다.
옥상에서 주변 상황을 살필 정도로 시야가 트이는 건 아니지만, 좀비들이 뭉쳐 있는 이유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옥상 문은 열려 있었고, 지체할 필요 없이 난간으로 걸어갔다.
곧 안개 속을 확인한 설여원과 전완수는 입을 떡하니 벌리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 뭐가 있는데 그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자, 설여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시체들.”
“시체?”
“죽은 사람들…… 모아둔 곳이야.”
옆에 있던 전완수도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못해도 200구는 넘는 거 같아. 산처럼 쌓여 있어.”
최현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시체를 저렇게 쌓아둔다고? 혹시 뭐 소각장으로 쓰이던 곳인가?”
“근처에 시신 묻을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니, 불가능한 건 아니야.”
전완수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최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시가지 들어서면서 봤던 시체들은 뭐야. 그 시신들은 왜 길가에 버려둔 건데?”
“내가 어떻게 알아? 치울 새도 없이 도망쳐야 하는…… 뭐 그런 이유라도 있었나 보지.”
전완수와 설여원은 시체를 파먹는 좀비들을 보고 꽤나 충격받은 모습을 보였다.
난 두 번째 에피소드 방랑자에 진입하며 확인했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두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며 좀비들에게도 패시브 스킬이 생성되었다.
시체 먹기.
저곳에 있는 좀비들은 시체를 뜯어먹고 파괴된 신체 부위를 복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곳에 있는 좀비들은 대부분 부상을 입었다는 뜻이 된다.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이 좀비들과 사투를 벌였다는 게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한편, 최현은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앞이 편의점인데, 편의점은 포기해야겠지?”
“편의점만 문제가 아니야. 좀비들이 뭉쳐 있으면 마트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해.”
전완수의 추가 설명에 분위기는 금세 암울해졌다.
난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좀비들의 숫자는 예상을 뛰어넘고, 마트까지 가는 길도 막힌 상황.
앞으로 500m는 더 가야 대형마트가 나오는데…….
‘잠깐, 500m?’
그러다 문득,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옥상 주변을 살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에, 원룸에 살던 친구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었다.
-우리 집은 햇살도 안 들어와. 창문 열면 앞 건물 외벽밖에 안 보여.
-야, 나는 샤워하다가 옆집에 과 동기 사는 거 처음 알았다. 서로 눈 마주쳐서 얼마나 민망했는데.
-여자냐?
-남자지 변태 새끼야. 서로 손만 쭉 뻗어도 물물교환이 되더라.
-에이 구라치지 마. 그렇게 가깝다고?
-아니 진짜로. 긴 우산만 있으면 다리도 만들 수 있을걸?
이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난 시체들로 둔덕을 이룬 정면이 아니라, 옥상의 좌측 방향을 살폈다.
‘역시.’
따닥따닥 붙은 빌라들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간의 거리는 멀어봐야 2m.
이 정도면…… 옥상을 넘나들며 이동할 수 있다.
뒤이어 내 모습을 살피던 일행이 곁으로 다가왔다.
전완수는 구레나룻을 긁적이더니,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 너희 생각은?”
설여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더니,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 해보자.”
옆에 있던 최현도 콧방귀 뀌며 대답했다.
“까짓거 뭐. 이것도 못 뛰면 사람 아니지.”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손에 쥐고 있던 헌팅 나이프를 레그홀스터에 넣고 난간에 올라섰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가장 먼저 맞은편 건물로 뛰었다.
탓!
체육 학원에 다닐 당시, 난 제자리멀리뛰기만 285㎝를 뛰었다.
지금은 근력까지 몇 배는 증가했으니, 손쉽게 넘어올 수 있었다.
뒤에 있는 일행을 쳐다보자, 너도나도 난간을 박차고 넘어오는 모습을 보였다.
다소 긴장한 모습의 설여원과 달리, 전완수는 이 상황이 재미난다는 표정이었다.
* * *
수비를 담당한 일행은 주변 정찰을 마치고 2층 스터디카페에 모였다.
이정우는 카페에 들어서며 윤혜리에게 물었다.
“별일 없었지?”
“너무 별일 없어서 불안해요.”
윤혜리의 대답에 옆에 있던 김희연이 이정우를 쳐다보며 추가 설명에 들어갔다.
“옥상에서 주변을 쭉 둘러봤는데, 저희가 학교에 있을 때랑 똑같아요.”
“학교? 어느 시점을 말하는 거야.”
“재형 오빠가 대장 좀비를 사과대에서 따돌린 뒤에, 지금이랑 비슷하지 않았어요? 좀비도, 생존자도 없는…… 그런 상황이요.”
첫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보상으로 김희연은 플레이어의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본래 시력이 2.0인 김희연이 가브리엘의 능력까지 얻은 건 희소식이었다.
김희연은 옥상에서 주변 일대를 샅샅이 살폈지만, 좀비는 고사하고 개미 한 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종종 하늘을 맴도는 까마귀와 매미 울음소리가 전부였다.
바깥 정찰을 다녀온 이정우와 정진영도 아무런 소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뭐라도 자극이 있어야 반응하고 대응을 생각할 텐데, 지나치게 고요하니 순서가 잡히지 않았다.
김희연은 의자에 앉아 손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사과대에서 따돌린 대장 좀비가 시가지로 내려왔을 가능성이 커요.”
“여기가 이렇게 된 게 대장 좀비 때문이라는 거야?”
“그것 말고는 떠오르는 가설이 없어요. 근처에 좀비가 없다는 건…… 대장 좀비가 길거리의 좀비들을 수하로 만든 뒤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거니까요.”
김희연의 의견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정진영은 카페 내부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윤혜리에게 물었다.
“재우랑 덕록이는?”
“옆 건물에 있을 거예요.”
“옆 건물? 거긴 왜.”
“이불이랑 입을 옷 좀 찾아보겠다고 나갔어요.”
“왜 상의도 없이 나가냐. 위험하게.”
“무전기 들고 갔으니 괜찮을 거예요. 어차피 바로 옆이라서 무슨 일 생기면 소리로 확인할 수도 있고.”
타닥- 탁- 탁-
그 순간,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정우는 윤혜리와 김희연을 뒤로 보내고, 카페의 정문을 바라보며 손도끼를 쥐었다.
정진영은 정문 바로 옆의 벽면에 붙어, 측면에서 공격할 준비에 나섰다.
윤혜리와 김희연도 좌우로 흩어지며 쇠파이프와 낡은 창을 손에 쥐었다.
일일이 위치를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소리결의 팀워크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뒤이어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이정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도끼를 내려놓았다.
스터디카페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명의 남자.
박재우와 황덕록이었다.
정진영은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박재우는 일행의 모습을 보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저희예요. 무기 내려두셔도 됩니다. 하핫.”
이정우는 스터디카페 중앙의 의자에 앉으며 얘기했다.
“무전이라도 하고 오지. 그렇게 불쑥 나타나면 놀라잖아.”
“보시다시피 손이 없어서.”
박재우와 황덕록은 양손 가득 이불과 베개, 옷가지를 들고 있었다.
들고 온 짐을 카페 책상 위에 내려놓고, 박재우는 뻐근한 허리를 풀며 물었다.
“수색대에서 연락 온 거 없어요?”
“아직 없어. 마트까지 거리가 먼 것도 아닌데,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네.”
이정우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진영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박재우는 헛기침을 하며 일행의 모습을 살피더니,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얘기했다.
“자자, 그보다 중요한 걸 찾았습니다.”
“중요한 거? 어떤 거.”
이정우가 관심을 보이자, 박재우는 바지의 뒷주머니에 넣어둔 공책을 꺼냈다.
“짜잔! 바로 이겁니다.”
“……그게 중요한 거야?”
이정우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김희연은 공책의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그거 일기장 아니에요?”
박재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일행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재우는 책상 위에 일기장을 펼치며 얘기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적혀 있을 거예요.”
* * *
옥상을 타고 얼마나 이동했을까.
처음엔 손쉽게 이동하더니,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까지 금세 지친 기색을 보였다.
“다들 괜찮아?”
일행을 돌아보며 묻자, 최현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대답했다.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 약간 어지럽다.”
난간을 밟고 뛸 때마다 오감이 짜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즉사.
미끄러져도 즉사.
설령 숨이 붙어 있더라도,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살점을 물어뜯길 것이다.
없던 고소공포증도 생기는 상황.
전완수는 옥상에 주저앉아 가방을 열더니, 그 속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였다.
뚜껑을 닫는 손이 잔잔하게 떨린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여원의 상태를 확인하자, 그녀도 다를 바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500m를 평지에서 달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옥상을 타 넘으며 이동했으니 오죽할까.
난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서 마트 보여?”
“저쪽으로 300m는 더 가야 돼. 너무 돌아왔어.”
골목길로 이동했으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아야 하는 시간.
하지만 건물 사이의 간격이 좁은 곳으로 이동하다 보니, 다소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앞으로 300m만 더 가면 되는데, 현재 일행의 상태로는 실수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완수야, 지금도 밑에 좀비들 많아?”
전완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지면을 살피더니,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많지는 않아.”
“그럼 1층으로 이동하자.”
“굳이? 옥상으로 이동해도 되는데?”
“누구 한 명 떨어질 거 같다.”
뒤에 있는 일행을 가리키며 얘기하자, 전완수는 최현과 설여원의 모습을 살폈다.
뒤이어 혀를 차며 얘기했다.
“하여튼, 나약해요. 나약해.”
“다리나 떨지 말고 얘기해.”
최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하자, 전완수는 본인의 허벅지를 주무르며 시치미떼는 모습을 보였다.
난 손목과 발목을 풀며 일행에게 얘기했다.
“계속 긴장한 상태라서 근육경련 생길 수도 있어. 다들 몸 풀고 1층으로 내려간다. 오케이?”
각자 나름의 안정을 취한 뒤, 준비됐다는 신호를 보였다.
가장 먼저 1층으로 내려가자, 다시금 습한 안개가 코끝을 자극했다.
한 차례 코를 훌쩍이며 뒤를 돌아보자, 다들 무기를 손에 쥐고 사주경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다.”
크르르르…….
설여원과 함께 빌라의 정문을 빠져나오자, 근처에서 목젖을 가는 좀비의 음성이 들려왔다.
‘왼쪽.’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자, 흐릿한 안개 너머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지면을 박차며 튀어 나갔다.
놈이 시끄럽게 울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