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9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59화
천호진은 이덕배와 이현배가 언성을 높이기 전에, 다급히 두 사람 사이를 가르며 얘기했다.
“일단 계산대 밑에 식량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겠어요. 얼핏 봐서는 꽤 많은 것 같았는데, 현배 아저씨가 볼트 챙기고, 덕배 아저씨가 식량 챙겨요. 그럼 됐죠?”
천호진이 상황을 정리하자, 이덕배는 혀를 끌끌 차며 얘기했다.
“으이그…… 호진이 네가 현배보다 형 같다.”
“형님, 제가 하고 싶은 소리예요. 우리가 볼트랑 식량 들면 좀비는 누가 상대합니까? 호진이 혼자 잡으라고 할 거예요? 하나는 포기하자고요.”
두 사람이 또 옥신각신하자, 천호진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분명 이덕배와 이현배는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났는데, 어쩜 이리도 안 맞을까.
누가 보면 친형제가 아니라 원수라 생각할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던 두 사람인데, 대학교에서 내려온 괴물이 원룸촌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로 서로 간의 의견 마찰이 자주 발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문제로도 자주 싸우기 시작했다.
천호진은 40대 아저씨들을 두고 홀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트의 계산대로 걸어가 종량제봉투에 담긴 식량을 확인하며 들고 갈 수 있는 봉투가 몇 개나 되는지 확인하는 찰나.
스윽-
천호진의 머리 위로 드리우는 검은 인영.
천호진은 그림자를 보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거봐요. 안 싸우고 같이 옮기니까 얼마나 좋…….”
크르르르…….
이덕배도, 이현배도 아니었다.
다리 하나를 절며 살기가 담긴 눈빛으로 천호진을 내려다보는 존재.
좀비였다.
“으어억!”
천호진은 기겁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어어어어어!!
눈앞의 좀비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천호진을 향해 몸을 날리는 찰나.
퉁!
짧고 명쾌한 파열음과 함께 좀비의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가는 쇠뇌 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이현배와 말다툼을 하던 이덕배는, 어느새 쇠뇌를 견착하고 좀비들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마트 정문의 좀비들에게 볼트를 발사하며 외쳤다.
“빨리 튀어나와!”
천호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이덕배의 곁으로 달려갔다.
“식량, 식량은 어떡해요, 아저씨!”
“지금 식량이 문제냐 이놈아! 빨리 현배랑 뒷문으로 나가!”
퉁! 퉁! 퉁!
이덕배는 연달아 볼트를 발사하며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뒷길을 확보한 이현배는 천호진과 이덕배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크어어어어!!
마트로 들어차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이덕배가 마트를 빠져나오자, 이현배는 뒷문을 닫으며 물었다.
“어디로, 이제 어디로 가요 형님!”
이덕배는 아주 찰나의 고민 끝에 이현배와 천호진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우리 장점을 살려야지. 예전에 했던 대로.”
이덕배의 말에 이현배와 천호진은 근처의 빌라를 살피기 시작했다.
곧 1층이 열린 빌라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은 망설임 없이 옥상까지 올라갔다.
두두두두두두두-
안개를 벗어나 옥상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인간의 체취를 맡은 좀비들은 금세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
지층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에 이덕배는 옥상 난간으로 달려가 안개의 표면을 살폈다.
일렁이는 안개의 표면이 점점 빌라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수의 좀비가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 * *
박재우는 생각보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엔 좀비를 마주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몇 차례 싸움을 통해 긴장감을 떨쳐내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황덕록은 매 순간이 위험한 외줄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설여원과 난 황덕록의 싸움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직시했다.
황덕록이 실수하면 언제든 달려나갈 수 있도록,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고 말이다.
“흐읍!”
황덕록은 덩치를 이용해 좀비를 넘어뜨린 뒤, 있는 힘껏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고작 세 마리의 좀비를 처리했을 뿐인데,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난 가방에 넣어둔 물병을 꺼내 박재우에게 건네주었다.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하자.”
“고맙다.”
박재우는 한 차례 코를 훌쩍이며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뒤이어 인중에 고인 땀방울을 닦으며 내게 물었다.
“나 제대로 하는 거 맞나? 왜 이리 힘들지.”
“신체적인 조건도 무시할 수 없어.”
“내 키 작다고 놀리는 거가?”
박재우는 싱겁게 웃으며 곁눈질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꽤 친해진 뒤로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서로 편해졌다는 방증이었다.
난 덩달아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놀리는 게 아니라 리치를 말하는 거야. 권투선수들은 팔 길이가 5㎝만 차이 나도 다른 수준의 경기가 된다고 하잖아.”
“…….”
“넌 인파이터로 들어가야 하니 더 긴장할 수밖에 없고, 많이 움직이는 만큼 체력적인 소모도 큰 거야. 조금씩 적응하면 편해질 거고.”
“그럼 덕록이는? 나보다 키도 크고 몸도 좋은데, 지금 죽을라 카는데?”
황덕록의 모습을 살피자,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고개도 들지 못했다.
설여원이 물을 건네도, 됐다는 손짓과 함께 숨 고르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황덕록의 곁으로 다가갔다.
“덕록아 괜찮아?”
“어어, 괜찮지.”
대답은 괜찮다고 하지만, 땀으로 샤워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려줘야 좋을까?
좀비를 처리하는 이론적인 방법은 이미 설명했지만, 실전은 이론과 다르다.
상황에 따라,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좌우하니까.
이건 경험에서 얻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황덕록은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단하네, 너희.”
“뭐가.”
“나는…… 고작 세 마리 죽이고 이래 힘든데, 너흰 안 지치잖아.”
황덕록은 보기보다 마음이 여린 친구였다.
겉모습은 곰처럼 생겼지만, 자꾸만 자신을 자책하고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좋아, 이러면 어쩔 수 없지.
“덕록아 일어나봐.”
“지금?”
황덕록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난 그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렸다.
황덕록은 뒤로 넘어지며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여원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야 박재형, 너 지금 뭐하는…….”
그러자 박재우가 설여원을 붙잡으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모습을 살폈다.
난 황덕록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하며 언제든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황덕록은 상황을 파악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양손으로 가드를 올렸다.
“덕록아, 내가 좀비처럼 달려들 테니까 막아봐.”
“알았어.”
대답을 듣자마자 지면을 박차고 황덕록에게 달려들었다.
황덕록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내 양손과 얼굴을 쳐다보며 어느 한 곳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그대로 황덕록의 어깨를 쥐고 그의 목덜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목숨 하나.”
나지막하게 얘기하자, 황덕록은 마른침을 삼키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방금은 나도 반응하기 힘들었어. 너 신체 능력 증가한 거 감안하고…….”
“아니, 그거랑 달라.”
난 딱 잘라 얘기하며 지켜보라고 했다.
설여원의 말대로 내 신체 능력은 이미 인간이라 보기 어렵다.
지구력, 순간 가속, 반응 속도, 힘, 모든 게 황덕록을 뛰어넘는다.
내가 원하는 건 황덕록이 날 이기는 게 아니라, 대처법을 파악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위협을 느끼다 보면 황덕록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다시 한번 황덕록에게 달려들자, 그는 내 양팔을 붙잡으며 힘으로 버티려는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인간과의 싸움에 익숙한 행동이었다.
좀비는 사람이 아니다.
깨물고, 할퀴고, 물어뜯는 짐승이란 말이다.
힘 싸움을 받아주는 좀비는 없다.
난 재빨리 양팔을 접으며 그의 목덜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으익!”
황덕록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신음을 뱉었다.
“목숨 두 개.”
물론 내가 좀비처럼 목덜미를 깨물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덕록이 신음을 뱉었다는 건, 그만큼 현 상황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황덕록은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긴장한 근육을 풀며 다시금 내 얼굴을 직시했다.
“다시 간다.”
“들어와.”
난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양팔을 쭉 뻗으며 황덕록에게 접근했다.
황덕록은 이번에도 똑같이 내 양팔을 잡더니, 힘으로 넘어뜨리려고 했다.
난 다급히 두 다리에 힘을 주어 균형을 잡았고, 힘으로 황덕록을 억눌렀다.
“아아악! 자, 잠깐! 손목, 손목!”
황덕록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난 황덕록의 손을 놓아주고 뒷걸음질 치며 얘기했다.
“힘으로 상대하려고 하지 마.”
“…….”
“그게 네가 빨리 지친 이유야.”
“…….”
“너보다 힘이 강한 좀비가 나타나거나, 지금처럼 네가 지친 상태면 어떻게 상대할 건지, 거기에 집중하고 생각해 봐.”
황덕록은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두 눈을 껌벅였다.
뒤이어 양손으로 가드를 올리며 내게 얘기했다.
“들어와.”
이번에도 좀비처럼 달려들자, 황덕록은 대뜸 내 얼굴로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고개를 비틀어 황덕록의 주먹을 회피했다.
좀비를 상대하는 것처럼 하라니까, 대뜸 주먹을 날려?
한마디 하려는 찰나, 황덕록은 주먹을 날린 손으로 내 목덜미를 잡고는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으로 짓눌렀다.
균형을 잡기 위해 다급히 오른발로 바닥을 짚으려고 했지만, 황덕록의 왼발이 내 발목을 걸었다.
결국 지지대를 만들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박재우와 설여원은 그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악역이 된 것 같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씁쓸한 표정으로 황덕록을 쳐다봤다.
황덕록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주먹은…… 안 되겠지?”
“내가 좀비였으면 그 주먹부터 깨물거나, 내 목덜미를 잡았을 때 팔뚝을 물었을 거야.”
“……미안.”
“그래도 시도는 좋았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어?”
“어, 아까 내 다리 걸어서 넘어뜨린 거, 무게 중심에 집중하라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해는 했네.
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좀비들은 무게 중심이 불안전해. 그러니 좀비의 손이랑 이빨보다 먼저 봐야 하는 게 다리야. 발목, 무릎, 허벅지만 잘 봐도 쉽게 넘어뜨릴 수 있어.”
“무게 중심을 흔들려면 지금처럼 붙은 상태에서만 가능한 거 아니야?”
“덕록이 네가 나한테 달려와 봐.”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이해하기 쉽겠지.
황덕록은 자세를 잡더니, 양손을 쭉 뻗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난 달려오는 황덕록을 유심히 살피다가, 오른발을 뻗어 그의 왼쪽 허벅지를 툭, 하고 찼다.
“억!”
그러자 황덕록은 비명을 뱉으며 그 자리에 엎어졌다.
무릎을 붙잡고 앓는 소리를 내는 황덕록.
난 황덕록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무릎을 살폈다.
“괜찮아?”
“으으으…….”
이건 당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내가 있는 힘껏 찼다면 황덕록의 다리는 반대로 접혔을 것이다.
무에타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기술이었다.
황덕록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고통스러워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안 붙어도…… 충분히 넘어뜨릴 수 있네.”
“균형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야. 오늘은 들어가서 치료받고, 다음에 또 알려줄게.”
“무릎 인대 나간 거 같은데? 다리를 못 접겠어.”
“근육이 놀라서 그래. 혹시 모르니 정우 형한테 치료받고,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황덕록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자, 그는 연거푸 아오, 아오, 하는 소리를 내며 다리를 절었다.
뒤이어 박재우가 다가와 황덕록의 반대편 팔을 부축하며 내게 물었다.
“나도 기술 알려주면 안 되나?”
“들어가서 알려줄게.”
“재형이 너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아?”
“나도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야. 체육학원 다닐 때, 운동 배운 친구들한테 조금씩 배운 게 전부지.”
박재우는 나지막하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박재우와 황덕록을 쳐다보며 물었다.
“둘 다 좀비들 상대해 보니까 어때?”
“좀…… 글쎄. 여전히 무섭네.”
그래, 좀비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싸워본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용기를 내서 먼저 다가와 준 두 사람이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난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싸우는 법 배우고 싶다고, 먼저 얘기해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