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62화
이예정이란 이름에 이덕배는 뒤에 내려둔 쇠뇌를 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재빠르게 쇠뇌를 견착하며 불안한 눈초리로 내 얼굴을 직시했다.
그러자 이현배가 벌떡 일어나 그의 손을 붙잡았다.
“아 형님!”
“저 새끼가 어떻게 내 딸을 알아. 내 상처는 또 어떻게 알고? 너 뭐야. 너 뭔데?”
심히 당황한 모양이다.
이덕배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과자를 먹고 있던 일행도 각자의 무기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모두에게 진정하라고 손짓하며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아둔 일기장을 이덕배에게 보여주었다.
“미행한 거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여기서 봤습니다.”
일기장을 건네주자, 이덕배는 한 손으로 일기장을 받아들며 곁눈질로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딸의 일기를 처음 보는 건가?
천천히 문장을 읽어내려가는 그의 동공이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들고 있던 쇠뇌를 내려놓으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하…… 미안하네. 내가 좀…… 지금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괜찮습니다. 대뜸 따님 이름을 들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정말 미안하네. 이게…… 나도 모르게 자꾸 쇠뇌부터 겨누게 되네.”
난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덕배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따님의 일기로 얼추 알게 됐습니다. 일기의 마지막 장, 그 뒤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최대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묻자, 격분했던 이덕배는 심호흡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아랫입술을 핥으며 입을 열었다.
“좀비 떼가 휩쓸고 간 뒤에…… 웬 남자가 나타났어.”
“어떤 남자요?”
“이하진이란 놈이었는데, 그놈이 은신처가 있다고 그러더라고.”
순간, 이덕배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설여원이 미간을 구기며 되물었다.
“이하진? 정말 이하진이 왔다고요?”
“아는 사람인가?”
“잘 알죠. 그 개새끼.”
설여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뜸 욕부터 박았다.
박재우와 황덕록을 구출할 때도 이러더니, 이하진이란 이름만 나오면 분기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하긴, 대장 좀비에게 설여원을 팔아먹으려고 한 녀석이니, 곱게 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나 또한 기숙사 매점에서 이하진에게 당할 뻔했으니, 그를 옹호할 수 없었다.
설여원의 욕설을 듣고 이덕배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아무런 말도 잇지 않았다.
뒤이어 소리결 사람들을 눈으로 훑으며 물었다.
“자네들도…… 이하진에게 당한 게 있는 모양이구먼?”
우리가 아군이라는 걸 마침내 깨달은 모양이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하진 덕분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덕배는 이마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이하진이 그러더군.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고. 교내에 은신처가 있다고 그랬어.”
“그 말에 동조한 사람 있습니까?”
“대학생들은 그 말을 믿더라고. 난 절대 아니라고, 그 괴물 좀비가 대학교에서 내려왔는데 교내에 은신처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괴물 좀비라면…… 대장 좀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좀비들을 수하처럼 부리는.”
“자네도 아는 눈치구먼. 얘기가 빨라지겠어.”
이덕배는 한 차례 목을 가다듬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학생회장이 이하진한테 완전히 홀리는 바람에, 생존자들끼리 파가 나뉘었지.”
그러자 옆에 있던 이현배가 세차게 혀를 차며 읊조렸다.
“은혜도 모르는 놈들. 우리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마찰이 있었습니까?”
“당연히 있었지. 학교에서 내려온 괴물 좀비 때문에 젊은 주민들은 거의 다 죽었고, 대학생들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많이 살았거든.”
“힘이 대학생들 쪽으로 기울었겠네요.”
“그렇지, 그 뒤로는 사사건건 마찰이었지. 결국 대학생들은 이하진 따라가는 추세였고, 우린 실개천 너머 생존자들이랑 합류하는 추세였고.”
이현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자, 이덕배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분명히 안 된다고 했어. 이하진 그 자식…… 눈깔부터 맛이 갔었다고.”
원룸촌에 살던 대학생들.
안개로 인해 태반이 좀비로 변했다 쳐도, 수천 명의 대학생이 이곳에 살았으니 못해도 수백 명의 대학생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처음엔 동네 주민들과 대학생들이 힘을 합쳐 좀비들을 저지하고 방어선을 구축한 것 같다.
좀비들이 뭉치기 전에 좁은 골목을 이용해 좀비들의 머릿수부터 줄인 것이다.
하지만 대장 좀비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 떼의 공습, 그리고 이하진의 등장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좀비 떼의 공습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타나자, 대학생들과 주민들의 다툼이 이어지고 서로에 대한 차별이 발생한 것이다.
젊은 나이대의 주민들은 좀비 떼의 공습으로 대부분이 죽었고, 그 탓에 주민들의 힘이 대학생들에 비해 약해졌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젊은 대학생들이 나이 많은 주민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하고, 이하진은 그 점을 파악하여 대학생들을 꾀어낸 모양이다.
모든 상황을 전해 듣고 이덕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대학생들이랑 이하진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나야 모르지. 학교 후문 쪽으로 올라간 게 마지막이야.”
“그럼…… 원룸촌에 남아 있던 생존자들은 전부 실개천 너머로 이동한 겁니까?”
“그렇지. 내 딸도 거기 있고.”
“거기도 식량이 여유 있는 건 아닌가 보네요. 마트로 돌아오신 걸 보면.”
“식량도 식량이지만 여기 두고 온 볼트 때문에 다시 왔지.”
“볼트요?”
“쇠뇌용 화살.”
마트 진열대에서 봤던 수백 발의 화살.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덕배에게 물었다.
“이 근방에 다른 은신처는 없습니까? 실개천 너머 말고 다른 곳이요.”
이덕배는 이곳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동네 생존자들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원룸촌의 생존자들, 실내천 너머의 생존자들, 금호강 건너의 생존자들.
역시 주거단지 주변으로 여러 대형마트가 있기에, 자연스레 구역이 나뉜 모양이다.
금호강 건너라면 김희연의 본가가 있는 곳이고, 실개천 너머라면 최현과 전완수의 본가가 있는 곳이었다.
이덕배의 말에 전완수와 최현, 김희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구심이 남았다.
그럼…… 대체 대장 좀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난 이덕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덕배 아저씨가 얘기한 그 괴물 좀비, 그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옆구리에 쇠뇌도 맞았고, 창에 찔려서 후퇴했어.”
“그놈이 끌고 온 좀비들도 많이 죽었습니까?”
“엄청나게 죽었지. 도망칠 땐 거의 50마리도 안 됐지? 우리가 똘똘 뭉쳤으면 충분히 재건할 수 있었어. 그런데 이하진 하나에 우리가 분열됐으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거야. 그 괴물 좀비가 언제 또 좀비들 모아서 공격할지 모르니, 다들 불안해서 흔들린 거지.”
“실개천 너머는 안전합니까?”
“다리를 틀어막았어. 좀비들이 건너오지 못하도록.”
그러자 이덕배의 말에 찬물을 끼얹듯,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학교 후문 쪽 2차선 도로로 올라가면 실개천 너머로 연결되지 않습니까? 그쪽 다리도 막은 거예요?”
“…….”
이정우의 물음에 이덕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덕배의 불안한 표정에, 이정우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어딘지 모르세요? 학교 뒤쪽 길로 넘어가면 폭 엄청 좁은 다리 하나 나오는…….”
“알아. 나도 아는데…… 거긴 막은 기억이 없어. 실개천 너머 은신처랑 거리가 멀어서 거기까진 정찰도 한 적 없어.”
이덕배의 대답에 나 역시 불안한 마음이 차올랐다.
상당히 돌아가는 거리지만,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10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학교 후문으로 이동했다면…… 지금쯤 대장 좀비는 대학생들을 모조리 수하로 만들었을 것이다.
물량을 회복한 대장 좀비가 실개천 너머의 은신처를 공격한다면?
난 이덕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덕배 아저씨, 볼트 가지러 언제 나온 거예요? 이하진이 여길 찾아온 건 언제고.”
“볼트 가지러 나온 건 사흘밖에 안 됐고, 이하진이 찾아온 건 일주일 정도 됐나?”
사흘밖에?
사흘이나 지난 거지.
사흘이면 대장 좀비가 군사들을 재정비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심지어 제 발로 걸어들어온 대학생들이 있으니, 손쉽게 머릿수를 회복했을 것이다.
넘겨짚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사태가 심각하다.
이덕배는 현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난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이동하죠.”
“해 떨어졌는데 어딜 간다고 그래?”
구석에 앉아 있던 정진영이 되묻기에,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실개천 너머, 이미 좀비들한테 함락됐을지도 몰라요.”
그러자 옆에 있던 이현배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실개천 너머 은신처는 생존자들 말고 아무도 몰라. 허름하고 구석진 아파트라서 인적도 드물고, 무엇보다 실개천 너머 생존자들도 200명은 돼. 쉽게 무너지지 않아.”
“그래서 위험한 겁니다. 구석진 아파트면 좀비들한테 둘러싸였을 때 도망칠 길이 없다는 거잖아요.”
“위치를 모르는데 어떻게 공격한다는 거야?”
“이미 알 겁니다.”
“……뭐? 어떻게.”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전부 사실이니까, 집중해 주세요.”
이덕배와 이현배, 천호진을 앞에 두고 라스트아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흘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이들도 알아야 한다.
내가 과민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이덕배의 말이 사실이라면 원룸촌의 생존자들과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 금호강 건너의 생존자들은 정찰대를 통해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서로의 은신처가 어디인지, 명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곳에 있던 대학생들도 실개천 너머, 금호강 건너의 은신처를 알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하진이 대학생들을 데려갔으니, 대장 좀비의 귀에 은신처의 정보가 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장 좀비 조성훈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이하진과 한패니까.
그 뜻은 전완수와 최현의 부모님이 위험하다는 말이 된다.
전완수와 최현, 그들에게 주어진 S급 퀘스트.
본가를 확인하라는 퀘스트에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 * *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덕배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현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아니 지금…… 그 말을 우리더러 믿으라고? 이 미친 세상이 게임 때문이라고?”
이현배가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난 레그홀스터에 넣어둔 헌팅 나이프를 뽑아 손바닥을 그었다.
손바닥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자, 카페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형, 치료 좀 해주시겠어요?”
이정우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곁으로 다가와 양손으로 손바닥을 감싸주었다.
이정우의 손끝에서 은은한 빛이 일렁이자, 찢어진 손바닥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덕배와 이현배, 천호진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현배는 말까지 더듬으며 이덕배에게 물었다.
“혀, 형님. 형님도 보셨습니까?”
“내가 잘 못 본 거 아니지? 현배 너도 똑똑히 본 거지?”
천호진은 말까지 더듬으며 내게 물었다.
“그럼…… 정말 재형이 형이 기숙사에서 하던 게임이 현실이 된 거예요?”
“보고도 못 믿어?”
“그럼 이하진을 따라간 대학생들은…….”
“벌써 좀비로 변했을 거야. 그러니 빨리 실개천 너머로 가야 돼. 대장 좀비가 은신처를 공격했을지도 몰라.”
말을 마치고 일행의 모습을 살피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벌써 해가 떨어진 상황.
밖에 나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실개천 너머의 은신처가, 전완수와 최현의 부모님이 좋은 못한 상황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덕배는 그제야 상황 파악을 마치고 쇠뇌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다들 따라오게나.”
그의 눈빛으로 지금의 불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