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9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69화
난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두통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흔들리는 버스 때문인지, 아이들의 울음소리 때문인지, 도통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웠다.
인상을 찌푸린 채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자, 옆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괜찮다는 무성의한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른팔을 이마 위에 얹은 채 미동도 하지 않자, 설여원의 씁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은 살렸지만…… 중형차를 잃었어.”
말에 가시가 들어 있었다.
몇 달간 고생해서 만든 좀비카.
3대 중 한 대를 탈출 하루 만에 망가뜨렸다.
난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전완수의 뒷모습을 살폈다.
심혈을 기울인 좀비카를 잃었으니, 가장 심란한 사람은 전완수일 테니까.
버스에 탈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전완수의 옆에도 처음 보는 사람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 싶어서 유심히 쳐다보자, 옆에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완수 여동생이야.”
“……완수도 동생이 있었어?”
“동생들도 친구라, 완수랑 나랑 더 친해진 거야. 부모님끼리도 서로 친하고.”
최현의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여동생 최지혜.
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씁쓸한 마음에 시선을 돌렸다.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는 게 옳은지, 아니면 내버려 두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
전완수의 동생까지 합치면 생존자들은 총 13명인가?
기대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숫자였다.
반면에 이덕배는 살아남은 딸과 감격의 상봉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만석이란 남자는 이현배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저분들은 누구고, 이 차는 또 어디서 구한 거야?”
“자세한 건 돌아가서 얘기해요.”
이현배는 내 눈치를 보며 얘기했다.
생존자를 구출하는 과정에 중형차를 잃었으니, 이들도 우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뒤, 난 전완수의 곁으로 걸어갔다.
전완수는 운전에 집중할 뿐,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생각이 많아진 것으로 보였다.
난 전완수의 옆에 있는 여학생에게 물었다.
“완수 동생이라고?”
“네? 아…… 네.”
“이름이 뭐야.”
“전수연이요.”
얼마나 울었으면 눈가는 빨갛게 부어 있고, 두 볼에는 눈물 자국이 굳어 있었다.
곁눈질로 전완수의 표정을 살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덤덤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기가 없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전수연에게 부모님의 부고를 전해 들은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많은 의미를 담아내기도 하기에, 조심스레 전완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전완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운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존자를 구출하고,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살아남았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 * *
부우웅- 투둥- 퉁- 드드드-
얼마나 달렸을까.
아파트 단지의 초입에 다다르자, 버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동이 꺼졌다.
전완수는 버스를 이리저리 조작하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연료 다 떨어졌어.”
난 전완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뒤에 있는 생존자들에게 얘기했다.
“다들 103동으로 이동하세요.”
생존자들이 미동도 하지 않자, 이덕배가 그들을 인솔하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던 승합차는 버스의 측면에 정차하고, 이정우는 창문을 내리며 내게 물었다.
“왜 내려. 여기서 정차한다고?”
“버스에 기름이 없어요.”
“좀비들 위치는.”
“로터리 벗어난 뒤로 쫓아오는 놈은 못 봤어요.”
대장 좀비나 알파 변종이면 위험하지만, 공명 좀비는 추격에 특화된 놈들이 아니다.
사고기능을 지녔다 한들, 시야에서 벗어나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
난 주변을 살피며 이정우에게 얘기했다.
“형은 사람들이랑 같이 103동으로 들어가 주세요. 혹시 모르니 계단에도 바리케이드 설치해 주시고요.”
“바리케이드를 더 만들라고?”
“고등학교에 대장 좀비가 없었어요. 그게 좀…… 마음에 걸립니다.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넌 어쩌려고.”
“혹시 모르니 여원이랑 주변 정찰하고 올게요.”
이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103동으로 들어갔다.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표정에서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난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설여원에게 사과부터 했다.
“미안하다, 여원아.”
“……뭐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되묻는 모습이 정확하게 뭘 잘못했는지 얘기하라는 것으로 보였다.
중형차를 고장 내서? 설여원의 말을 듣지 않아서? 그것도 아니면…….
지은 죄가 많다 보니, 에둘러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면목 없다.”
“결과가 좋으니 이번엔 넘어가지만, 이번처럼 막무가내로 나오면 곤란해.”
“…….”
“중형차 잃은 거로 끝나서 그나마 다행이지. 운 나빴으면 너나 나나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그 자리에서 다 죽은 거야. 알지?”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만약 벽이 부서지지 않았다면, 중형차의 앞 범퍼가 버티지 못했다면, 버스가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우린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목이 부러지든, 허리가 끊어지든, 하체가 짓눌리든, 좀비들에게 둘러싸이든, 최악의 상황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내가 무모한 선택을 내린 게 맞기에,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설여원은 뚫어지게 내 얼굴을 노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본인의 목숨을 내가 함부로 대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일행의 목숨을 구한 건 사실이기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설여원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치료부터 받자. 정찰은 그다음이야.”
말은 강하게 하지만, 정진영에게 걸어가는 설여원의 걸음이 허전했다.
이마에서 피를 많이 흘린 탓도 있지만, 차내에서 충격을 많이 받은 탓에 설여원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설여원을 뒤따라가는 찰나, 시야의 우측 상단에서 반짝이는 노란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지금껏 노란 불이 반짝이는 줄도 몰랐다.
퀘스트를 클리어한 것도 아닌데 왜 반짝이는 거지?
홀로그램을 켜고 확인하자, 플레이어 정보에 노란불이 들어온 상태였다.
‘설마.’
지체할 필요 없이 플레이어 정보를 열었다.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스탯: 근력 7(+12), 체력 7(+5), 반사 신경 5, 동체 시력 5, 정신력 10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200/200(Clear)
-남은 포인트: 20
※개방되지 않은 스킬이 존재합니다.
※요구조건: 변이바이러스 흡입(0/1)
200마리를 처리했다고?
차량으로 처리한 좀비도 카운트에 포함되는 건가?
그럴 리가.
지금껏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한 좀비가 아니면 카운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화염으로 태워죽인 좀비들은 카운트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방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뒤늦게 플레이어 정보의 하단에서 점멸하는 노란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빛을 누르자,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두 번째 에피소드 ‘방랑자’에 진입하셨습니다.] [파티원이 좀비를 처리할 경우, 어시스트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파티원이 5마리의 좀비를 처리할 경우 1카운트가 주어집니다.]어시스트 포인트.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
굳이 파티를 설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전부 어시스트 포인트를 위함이었나?
멍한 표정으로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있자, 앞서가던 설여원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해? 치료 안 받아?”
“아, 받아야지.”
정진영에게 치료를 부탁하고, 20개의 포인트를 골고루 분배했다.
정신력은 제쳐두고, 다른 4개의 스탯에 5개씩 투자했다.
띠링-!
-근력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근력에 3개의 포인트를 투자하자,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수치에 한계가 존재한다고?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때는 제한이 없었는데?
이것도 난이도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의 육체가 지니는 한계가 문제인지,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근력에 3개의 포인트를 투자하고 체력에 7개 포인트를, 반사 신경과 동체 시력에 각각 5개의 포인트를 투자했다.
-근력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스탯이 생성됩니다.
-스탯: ‘골밀도’가 생성됩니다.
-추후 근력 스탯을 높이기 위해서는 골밀도를 최대치로 높여야 합니다.
골밀도?
이런 스탯은 처음 본다.
라스트아크에서는 스탯 성장에 제한이 없었지만, 현실에서는 골밀도를 높여야 다시금 근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잠깐, 그럼 다른 스탯도 최대치까지 높이면 새로운 스탯이 생성되는 건가?
이러면 나쁘지 않은데?
흡족한 마음에 다시금 플레이어 정보를 살폈다.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스탯: 근력 22(Max), 체력 7(+12), 반사 신경 5(+5), 동체 시력 5(+5), 정신력 10
-스탯 2: 골밀도 5
*스탯 2는 2포인트에 1스탯씩 증가합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112/400
-남은 포인트: 0
2포인트에 1스탯이라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습득하는 포인트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도 모자라, 이젠 2배를 소모하라고?
어시스트가 생긴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어처구니가 없다.
치료를 마친 설여원은 뻐근한 어깨를 풀며 내게 물었다.
“우리 둘이 정찰 나가도 괜찮을까?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근처만 돌고 돌아오자. 혹시라도 따라붙은 좀비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설여원은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진영은 모든 치료를 마치고 내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버스까지만 같이 가자. 완수가 무전기랑 쇠뇌 하나 두고 내렸다고 그랬거든.”
“그러죠, 혹시 모르니 형도 무기 챙기세요.”
이동하기 전에 103동의 모습을 한번 살폈다.
계단에서 이것저것 옮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벌써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정우에게 정찰 다녀오겠다고 얘기했으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얘기할 필요 없겠지.
난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가죠. 떨어지지 않게 붙어서 이동해요.”
설여원과 내가 정면을 담당하고, 후방을 정진영이 살피며 버스를 세워둔 장소로 이동했다.
아파트 정문을 지나 30m 정도 나아가자, 서서히 버스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진영은 버스에 올라 내부를 살피고, 그동안 설여원과 나는 주변을 경계했다.
축시가 넘어서자 월광이 밝아졌다.
덕분에 흐릿하게나마 주변의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여전히 몸이 찌뿌드드한지, 어깨를 빙빙 돌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많이 안 좋아?”
걱정되는 마음에 묻자, 설여원은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안 좋다. 누가 난폭운전해서.”
“…….”
“레이첼의 능력에 뭉친 근육 풀어주는 마사지 효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부러진 뼈도 붙이고, 찢어진 피부도 도로 붙여주는 레이첼.
하지만 뭉친 근육을 풀어주거나, 피로감을 해소하는 힘은 없었다.
설여원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하…… 오늘 달 예쁘다. 보름달이네.”
“잘 보여서 좋겠다.”
“안 보여? 안개 때문에 그런가?”
“흐리멍덩한 빛이 보이는 정도.”
“신기하다. 현실에서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누군 보이고, 누군 안 보이고.”
설여원의 말이 맞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과 게임의 어딘가, 그 모호한 경계에 걸쳐 있는 느낌이었다.
버스에 기대어 잠시나마 두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을 때면, 고요의 형태가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는 백색 소음이라 부를 것이고, 또 누구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부를 것이다.
나는…… 인간이 지니는 생존본능이 아닐까 싶다.
시각을 차단하면 그 어느 때보다 청각이 예리해지기에, 긴장감이 차오르며 작은 소리에도 오감이 반응한다.
평소에는 들을 수 없던 미세한 떨림까지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두 볼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 코끝을 간질이는 습한 공기.
예전에는 두렵게만 느껴지던 안개가, 오늘따라 안락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미쳐버린 세상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다사다난했던 하루에 피로감이 몰려오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상황을 겪으며, 이런 위험한 상황에도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걸까.
슥-
그 순간, 주변을 에워싼 침묵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소리가 귓바퀴를 스쳤다.
감았던 두 눈을 뜨며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 봐?”
“쉿.”
조용히 하라는 손짓과 함께 미동도 하지 않자,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10초간의 정적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내겐 희뿌연 안개와 어둠만이 내려앉은 세상.
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응시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난…… 쉽사리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금껏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이 생겼다.
직감적으로, 털끝이 곤두서는 압박감과 함께 무언가가 우리를 좁혀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슥- 스슥-
또 들렸다.
난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며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설여원에게 물었다.
“다시 똑바로 봐봐.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 맞아?”
“아무것도 없다니까? 저 멀리 주유소 하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