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1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71화
설여원과 내가 걱정돼서 함께하겠다는 건가?
정진영은 밧줄을 고정하고 몇 차례 잡아당기더니, 엄지손가락을 들며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설여원은 창밖을 살피며 좀비의 유무를 알려주었다.
“이쪽은 안전해. 전부 정문에 몰려 있는 거 같아.”
“내가 신호하면 쇠뇌에 밧줄 연결해서 쏴.”
“알겠어.”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밧줄을 쥐고 천천히, 조심스레 1층으로 내려갔다.
손목 보호대가 장갑처럼 착용하는 형태라서 다행이다.
손바닥부터 전완근까지 보호되는 손목 보호대.
덕분에 마찰열로 인해 추락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 나 홀로 뚝 떨어진 기분.
기억에 의존한 채, 발소리를 죽이고 102동으로 이동했다.
102동 4층에 도착하자마자 맞은편 7층에 있는 설여원에게 손을 흔들자, 쇠뇌에 밧줄을 연결한 정진영이 창문으로 쇠뇌를 겨누었다.
퉁!
몸을 피한 채 기다리자, 밧줄에 연결된 화살이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화살을 붙잡고 옆으로 보이는 배관에 줄을 묶었다.
두 사람에게 고정됐다고 손짓하자, 설여원과 정진영은 밧줄에 클립을 연결하고 102동으로 넘어왔다.
먼저 설여원이 도착하고, 뒤이어 도착한 정진영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이거 애들은 못 타. 밧줄 연결한 부위가 뭉툭해서 몸으로 반동 줘야 해.”
“어른들이 같이 타고 오면 됩니다. 사람들 넘어올 밧줄이랑 클립은 충분해요?”
“충분해. 7층 창가에 전부 두고 왔으니 알아서 넘어올 거야.”
고개를 끄덕이며 무전기를 들었다.
“정우 형, 정우 형 제 말 들려요?”
치지직- 칙- 삑.
-너희 어디야!
다급함이 묻어나는 이정우의 목소리.
무전기 너머로 좀비들의 육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속으로 일행의 목소리도 담겨 있었다.
난 무전기 버튼을 누르며 얘기했다.
“정우 형, 지금부터 제 얘기 잘 들어요.”
현재 계획을 간략하게 설정하자, 오래 지나지 않아 이정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셋이서 대장 좀비를 잡으러 가겠다고?
“못 버틸 거 같으면 지금 얘기해요. 정문에 있는 좀비들 이쪽으로 유인해서 압박부터 줄이고…….”
이미 여러 가지 차선책을 생각해둔 상태였다.
그러자 이정우는 내 말을 자르며 얘기했다.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이미 몇 수는 생각하고 102동으로 넘어간 거잖아. 그럼 이쪽은 우리한테 맡겨. 너희는 대장 잡는 일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성공해라. 오래는 못 버텨.
* * *
우린 102동 6층으로 올라가 박재우에게 받은 망원경으로 좀비들의 숫자를 살폈다.
400마리가 넘는 좀비들이 103동을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의 표면이 일렁이고, 버스와 승합차를 짓밟으며 103동으로 밀려드는 좀비들.
103동은 사람들의 기합과 좀비들의 포효가 뒤섞여 아비규환에 빠진 상태.
전신을 더듬는 그 이질적인 울음소리에, 털끝이 곤두섰다.
사람들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어서 대장을 찾아야 한다.
현재 계획은 대장 좀비의 포획.
놈의 목숨을 쥐고 협상한다면 공격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전황을 살피기 위해서는 대장 좀비도 높은 곳에 있을 거야.’
주변의 층고가 높은 건물들을 이 잡듯이 살폈다.
어둠이 내려앉은 야심한 시각에 좀비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 숨은 거냐.’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침착하게 사방을 살핀 끝에, 300m가량 떨어진 5층 빌라의 옥상에서 붉게 충혈된 안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한쪽 눈에서 피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설여원이 발사한 화살에 맞은 녀석임이 틀림없었다.
103동에 집중하느라 이곳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
난 망원경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설여원과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찾았습니다. 가죠.”
“나갈 수 있겠어? 정문에 좀비들 너무 많은데.”
“제가 괜히 102동으로 왔겠어요? 쪽문으로 나가면 좀비들의 후각 범위를 벗어날 수 있어요. 크게 돌아서 이동해야 합니다.”
정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계단을 내려갔다.
102동을 빠져나와 우측의 쪽문을 나서자, 사람 두세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비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나타났다.
예전이었으면 감빛의 가로등이 듬성듬성 들어오며 굉장히 운치 있었을 골목길.
지금은 인기척이 사라진 유령 도시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전락했다.
골목길 주변의 건물들은 전부 단층으로 되어 있기에, 고개를 내밀어 5층 빌라의 위치를 살피기 수월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이동하며 빌라의 위치를 계속해서 살폈다.
이윽고 5층 빌라의 근처에 다다른 순간, 설여원이 내 팔을 붙잡으며 얘기했다.
“입구에 좀비들.”
최소한의 방어병력까지 배치해둔 건가?
설여원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좀비 주제에 너무 지능적인 거 아니야?”
근처 30m 내로 접근하면 놈들의 후각에 발각될 것이다.
‘아니지, 감지 범위도 달라졌을 거야.’
두 번째 에피소드에 진입하며 좀비들의 감각은 1.5배 증가했다.
기존의 좀비들은 시야 20m, 청각 30m, 후각 30m가 한계였다.
하지만 1.5배가 증가했으니 시야 30m, 청각 45m, 후각 45m까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설여원의 브리핑에 따르면 1층 입구로 보이는 좀비들은 대략 10마리.
내부에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식은땀이 맺혔다.
하지만 지금은 안전을 기할 여유가 없다.
시간을 끌수록 103동에 있는 생존자들의 체력이 고갈될 것이다.
대장 좀비가 도망칠 시간을 주어서도 안 된다.
난 떨리는 두 팔에 힘을 주며 헌팅 나이프를 고쳐 쥐었다.
“방법이 없어. 저것들 다 죽이고 들어가야 돼.”
설여원과 정진영도 이게 최선이라는 걸 알기에, 두 눈을 부릅뜨며 좀비들의 위치를 직시했다.
정진영은 어깨에 메고 있던 쇠뇌를 꺼내며 얘기했다.
“이거 여원이가 들어. 안 보여서 쏠 수가 없다.”
“아…… 네.”
설여원은 쇠뇌를 견착하며 빌라를 직시했다.
설여원이 준비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이기에, 정진영과 나는 지면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퉁! 퉁- 퉁! 퉁!
크어어어어어!!
쇠뇌 촉이 날아들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목젖을 갈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정진영과 나는 좌우로 흩어져 좀비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며 일사불란하게 놈들의 관자놀이와 안구를 꿰뚫었다.
카하악!
좌측에서 들려오는 목젖을 가는 울음소리.
다급히 상체를 비틀어 헌팅 나이프를 치켜드는 찰나, 신장이 140㎝도 안 되는 좀비가 달려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아.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두 팔에 힘이 풀리고, 예기치 못한 망설임이 날아들었다.
‘아니야, 저거 사람 아니야.’
푸른색의 핏줄이 하지정맥류에 걸린 사람처럼 전신에 도드라지는 모습.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살점을 탐하는 좀비일 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있는 힘껏 좀비의 안구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그러자 작디작은 아이는 힘없이 쓰러지며 경련을 일으켰다.
작은 몸으로 전신을 부르르 떠는 모습.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 없는 광경에, 죄책감이 엄습했다.
“크윽!”
우측에서 정진영의 비명이 들려왔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자, 바닥에 엎어진 정진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급히 그의 곁으로 달려가 상체에 올라탄 좀비의 경추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괜찮아요?”
쓰러진 정진영을 부축해 일으킨 순간,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뒤!”
카하악!
재빨리 뒤를 돌아보자, 싯누런 치아를 들이미는 좀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틈에 접근한 거지?
머릿속으로 울리는 경종과 귓바퀴를 찌르는 이명으로 인해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찰나.
푹!
좀비의 관자놀이에 쇠뇌 촉이 박히며 옆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설여원은 쇠뇌를 어깨에 메고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며 물었다.
여자와 아이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게 쇠뇌라더니, 설여원은 금세 익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둘 다 괜찮아요?”
“덕분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한 차례 심호흡했다.
지금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대장 좀비만 생각하자.
마른세수와 함께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고, 헌팅 나이프를 말아쥐며 빌라로 들어섰다.
* * *
계단과 각 층의 복도로 듬성듬성 보이는 좀비들.
놈들의 안구를 꿰뚫고, 살점을 찢어발기며 계단을 올랐다.
확실히 이전에 처리했던 좀비들과 다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진입하며 1.5배 증가한 좀비들의 감각은 반사신경에도 영향을 끼쳤다.
마트에서 좀비들을 처리할 당시, 단순히 내가 방심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좀비들의 반응이 이전보다 빨라진 탓이었다.
물론 근력과 체력,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을 높인 지금의 내게는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정진영은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어어어어어!!!
가장 앞에서 길을 뚫으며 올라가고 있는데, 바깥에서 좀비들의 포효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
동시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다수의 발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비병력이 줄어드는 걸 알아챈 건가?
옥상에 있던 대장 좀비가, 103동의 좀비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뛰어! 시간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좀비들이 도달하기 전에 대장 좀비를 잡아야 한다.
각 층의 안전을 확인하며 나아갈 여유가 없다.
옥상까지 곧장 길을 뚫어야 한다.
복도를 무시하고, 계단에 들어찬 좀비들을 처리하며 길을 뚫었다.
설여원과 정진영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벌써 체력적으로 지친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이 눈에 들어오고, 난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덜컥, 덜컥, 덜컥덜컥.
이미 잠겨 있는 철문.
좀비 대장이 철문을 잠가둔 건가?
크어어어어!!
어느새 계단을 울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진퇴양난의 상황.
정진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우측의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대부분의 빌라 옥상에는 창고가 있고, 창고에는 옥상으로 통하는 창문이 있기 마련이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고로 몸을 숨겼고, 난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히 문부터 걸어 잠갔다.
쾅! 콰광! 끼이익! 쾅!
크어어어! 카하악!!
창고 문을 긁고 두드리며 포효하는 좀비들.
문 너머의 지옥에서 내게 오라 손짓한다.
난 온몸으로 문을 막으며 소리쳤다.
“빨리 창문 열어!”
“잠겼어!”
정진영이 안간힘을 쓰지만, 창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설여원이 바닥에 놓인 의자를 들어 창문을 향해 집어 던졌다.
쩍!
유리에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생기자, 설여원과 정진영은 창문을 향해 연달아 의자를 휘둘렀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지만, 두 사람은 눈살을 찌푸려가며 쉬지 않고 의자를 휘둘렀다.
챙그랑!
마침내 창문이 깨지자, 둘은 재빨리 창틀을 넘어 좌우를 살폈다.
난 창고에 놓인 침대 매트리스와 책상 등으로 문을 틀어막은 뒤, 두 사람을 따라 나갔다.
“잡아!”
옥상에서 정진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창틀을 넘어 바깥 상황을 살피자, 옥상 난간에 오른발을 걸쳐둔 두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온몸을 날려 우측 남자의 다리를 붙잡았다.
정진영은 옥상에 즐비한 노끈을 쥐고 설여원이 붙잡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히익! 놔, 놔! 이거 놔!”
설여원에게 발길질을 하며 발악하는 남자.
내게 익숙한 얼굴.
이하진이었다.
이하진이 붙잡히거나 말거나, 이하진의 옆에 있던 놈은 맞은편 빌라 옥상으로 넘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두 눈 부릅뜨며 지면을 박차고 나아갔다.
저놈이다.
뇌리에 선명하게 남은 옷차림.
교양관에서 우리를 농락하고, 사과대에서 간신히 떨쳐냈으며, 원룸촌과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을 도륙한 대장 좀비.
조성훈.
교내에서부터 이어진 질긴 인연도 여기서 끝이다.
탓!
난 단숨에 난간을 타고 반대편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전신이 떠오르는 부유감과 함께 피부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
멀리뛰기 세계 최고 기록이 대략 9m라 했던가?
몇 배나 증가한 근력 덕에, 족히 14m를 넘게 체공하며 맞은편 빌라 옥상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