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4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74화
설여원과 교대하고 옥탑방으로 들어와 바닥에 누운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상체를 일으키며 하품을 하자, 두통과 함께 삭신이 쑤셔왔다.
어제는 너무 무리했다.
신체 능력을 강화한 나도 이렇게 피곤한데, 정진영과 설여원은 괜찮을까?
방 안을 둘러보자, 아직 일어나지 못한 설여원의 얼굴이 두 눈에 들어왔다.
새근새근 잠을 청하는 모습에 차마 깨울 수 없었다.
조금 더 자도록 두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는 정진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
“일어났어?”
정진영은 한쪽 눈이 충혈된 상태였다.
좀비에게 물려서가 아니라, 가시지 않은 피로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형 괜찮아요?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걸을 때마다 뼈마디가 울려.”
그는 싱겁게 웃으며 들고 있던 망원경을 내게 건네주었다.
“저쪽 봐봐.”
망원경을 들고 정진영이 가리키는 방향을 살피자, 이곳에서 한참은 떨어진 거리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는 탓에, 명확한 원인은 확인할 수 없었다.
“저기가 어디죠?”
“거리만 두고 보면 금호강 건너야.”
금호강 건너.
우리의 다음 목적지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
정진영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밥 짓는 연기는 아닌 거 같지 않아?”
“거리가 멀어서 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 때문에 연기가 더 넓게 퍼질 가능성도 있고요.”
“어떻게, 오늘 바로 이동할 거야?”
정진영의 물음에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건 이정우에게 물어봐야지, 왜 내게 묻는단 말인가?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정진영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아니지, 먼저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부터 생각해야지.”
“네, 돌아가서 천천히 의견 맞춰보죠.”
옥상 난간으로 걸어가 지면의 상황을 살폈다.
여전히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지만, 아침노을 덕에 좀비들의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방에 있던 좀비들은 밤새 뿔뿔이 흩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설여원의 눈이 필요했다.
“형, 들어가서 여원이 깨울게요. 이동할 루트 좀 미리 파악해 주세요.”
“알겠어.”
옥탑방으로 들어가 설여원의 어깨를 흔들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졸음이 가시지 않았는지, 두 눈에 짙은 쌍꺼풀이 생겼다.
“일어나 여원아, 움직여야 돼.”
“왜, 좀비들이야? 몇 마리.”
설여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칼자루부터 잡았다.
자나 깨나 좀비 걱정.
난 설여원을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그런 거 아니야. 물 좀 줄까? 잠 좀 깨야 할 거 같은데.”
가방에 넣어둔 물병을 꺼내자, 절반 정도 남은 상태였다.
설여원에게 건네주자, 그녀는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뒤이어 주변 상황을 살피며 내게 물었다.
“좀비들은 어때, 여전히 많아? 정우 오빠랑 연락했어?”
대답 대신 설여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녀는 이마를 긁적이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미안, 질문이 너무 많았지.”
“좀비들 숫자는 네가 파악해야 하고, 연락은 지금 하려고 했어.”
“진영이 오빠는?”
“이동 루트 파악해 달라고 하긴 했는데 어디까지 갔는지…….”
탕-!
그 순간, 고막을 때리는 파열음이 먼발치서 들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상체를 숙이고, 놀란 눈으로 설여원을 쳐다봤다.
설여원도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인 채, 멍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쏟아지던 졸음도 순식간에 쫓아내는 소리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총성이다.
설여원은 입술을 벙긋거리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내게 물었다.
“방금 뭐야. 이 소리 설마…….”
난간 너머로 슬쩍 고개를 내민 채 소리의 근원지를 살폈다.
먼 거리에서 들려온 소리라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탕-! 타당! 탕-!
하지만 연달아 들려오는 총성으로 인해, 이 소리가 금호강 건너에서 들려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감을 못 잡고 있는데, 저 멀리 100m는 떨어진 거리에서 양손을 좌우로 흔드는 정진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여원과 함께 옥상을 타고 넘으며 정진영의 곁으로 달려가자,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너희도 들었어? 총 소리?”
“들었어요.”
“금호강 건너에 군부대 있는 거 아니야?”
“저는 모르죠. 완수나 현이한테 물어봐야 알 것 같은데요.”
“무전 보내봐.”
곧장 무전기를 들고 이정우를 불렀다.
“여보세요. 정우 형, 정우 형 들려요?”
치지직- 치직-
-방금 무슨 소리야. 무슨 일 있어?
이정우도 총성을 들은 모양이다.
잔잔한 호수 위에 돌멩이가 떨어진 것처럼, 고요한 세상에 울려 퍼진 총성은 주변 수 킬로미터 정도까지 울려 퍼졌다.
“금호강 건너에서 들려온 소리예요.”
-금호강 건너?
“혹시 완수랑 현이 옆에 있어요?”
-있어. 얘기해.
“금호강 건너에 군부대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오래 지나지 않아 이정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거리는 좀 되는데, 금호강 건너에 공병대랑 특공여단 있대.
군부대가 움직이고 있다.
안개가 세상을 잠식한 지 두 달이 넘어서야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좀비들이 창궐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도 모자랄 판에, 왜 이제 와서 움직인단 말인가?
뒤이어 무전기 너머에서 윤혜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봐요! 제가 그랬잖아요! 분명 구조대가 올 거라고 그랬잖아요!
한껏 들뜬 목소리.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두 달간 방치하던 민간인을 이제 와서 구출한다고?
이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어쩌면…… 방역 대책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민간인과 좀비를 동일 선상에 두고, 모조리 궤멸시키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마를 문지르며 지금의 착잡한 마음을 한숨으로 내뱉었다.
곧 무전기에 대고 얘기했다.
“일단 돌아가서 얘기하죠. 저희 지금 이동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중 나갈게. 위치 알려주면…….
“아니에요. 근처까지 도착해서 상황 보고 도움 요청할게요.”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소수로 움직이는 게 더 발각될 위험도 낮고요.”
-근처 도착하면 얘기해.
무전을 마치고 정진영을 쳐다보자, 그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였다.
정진영을 따라 옥상의 뒤편으로 걸어가자, 이곳에서 5m 떨어진 거리에 4층 높이의 빌라가 있었다.
“재형아, 저쪽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나야 충분히 가능하지만, 정진영과 설여원에게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저쪽으로 넘어가면 안전한 길이 있어요?”
“우리가 있는 곳은 5층 빌라촌이고, 저쪽부터는 3층에서 4층 높이 빌라들이 아파트까지 이어져. 저기 말고는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거 같아.”
5m라면 1차선 도로가 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말이 된다.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1층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밑으로 내려가는 건 위험해. 눈에 보이는 좀비만 20마리가 넘어.”
설여원의 말을 듣고 가방 속에 넣어둔 물건들을 살폈다.
분명 밧줄도 챙겼던 것 같은데…….
오래 지나지 않아 20m 길이의 밧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가 건너가서 밧줄 연결할 테니까, 밧줄 잡고 넘어올 수 있겠어요?”
“넌 어떻게 넘어가려고.”
“뛰어넘으면 되죠.”
“이 거리를?”
“저 에덤 화이트에요.”
싱겁게 웃으며 허리에 밧줄을 묶었다.
이정우와 설여원에게 반대편 밧줄의 끝을 잡으라고 한 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반대편 빌라 옥상으로 뛰었다.
탓!
훙-
귓바퀴를 스치는 바람과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
깃털처럼 가벼운 몸과 선명하게 보이는 착지 지점.
4층 빌라의 옥상에 발이 닿자마자 하체와 상체를 접으며 옆으로 굴렀다.
육체에 조금의 부담도 없는, 안정적인 착지였다.
정진영과 설여원은 와, 라는 탄성을 뱉으며 서둘러 옥상 귀퉁이에 있는 쇠기둥에 밧줄을 연결했다.
나 역시 밧줄이 풀리지 않도록 기둥에 단단하게 고정하고, 두 사람에게 건너오라고 손짓했다.
두 사람 모두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기에, 손이 미끄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진영이 먼저 양손으로 밧줄을 쥐고, 두 다리도 밧줄에 걸어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넘어왔다.
설여원은 정진영의 행동을 유심히 살핀 뒤, 똑같은 자세로 넘어왔다.
정진영은 4층 빌라에 발을 딛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슨 5m가 50m처럼 느껴지네.”
정진영과 설여원이 안전하게 넘어온 건 다행이지만, 밧줄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
추후 좀비들을 정리한 뒤에 천천히 회수해야 할 것 같다.
우린 옥상을 타고 넘으며 최대한 아파트 근처까지 안전하게 이동했다.
반대편 옥상에 좀비가 보이면 설여원이 들고 있는 쇠뇌로 처리하며,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신중하게 이동했다.
이윽고 아파트의 외벽이 눈에 들어올 무렵, 길이 끊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200m는 더 가야 하는데, 더는 빌라가 보이지 않았다.
설여원은 난간으로 걸어가 1층의 상태를 확인하며 얘기했다.
“직선으로 길을 뚫는 건 위험해. 대로에 좀비들은 많은데 엄폐물이 없어.”
“골목은?”
“바로 밑에는 없고, 저 앞은 단층 건물들 때문에 안 보여.”
“다른 방법이 없으니 내려가자. 내가 선두, 여원이가 중앙에서 좀비들 보이면 브리핑 해줘.”
각자의 위치를 정하고,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다행히 빌라 내부에는 좀비들이 보이지 않았다.
희뿌연 안개를 뚫고 1층으로 내려가자, 고장 난 자동문이 눈에 들어왔다.
힘으로 문을 열고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만 삐죽 내민 채 좌우를 살폈다.
“왼쪽 골목 끝에 몇 마리 있어.”
“오른쪽으로 가자.”
우측 길은 단층의 건물들이 낮은 담벼락을 끼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었다.
시계는 대략 5m.
크르르르…….
먼발치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는 무시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만 확인했다.
근처에서 좀비들의 인기척이 느껴질 때면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청각을 곤두세웠다.
난 속삭이는 목소리로 뒤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저 앞에 전봇대 지나면 왼쪽에 좀비들 있을 거야. 내가 왼쪽 볼 테니까 여원이가 오른쪽 봐줘.”
“알았어.”
“진영이 형은 정면 봐주세요. 혹시라도 숨은 좀비들이 달려들면 처리하고요.”
“오케이.”
좀비들의 후각과 청각 범위를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전봇대에 다다르자, 좌측에서 흐느적거리는 좀비 두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명 좀비일 가능성이 있기에, 놈들이 인지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게 이롭다.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고 망설임 없이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재빨리 좀비들의 관자놀이와 안구를 꿰뚫고, 뒤에 있는 일행을 돌아봤다.
반대편엔 좀비들이 없는지, 설여원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며 어서 붙으라고 손짓했다.
우린 발소리를 죽인 채, 침착하게 좀비들을 처리하며 나아갔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얼마나 이동했을까, 마침내 버스와 승합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젯밤 수백 마리의 좀비가 버스와 승합차를 짓밟으며 아파트를 공격했다.
때문에 차량의 측면에 달아둔 철판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정진영은 버스의 측면을 살피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이건 또 언제 고치냐.”
“일손도 많아졌으니 금방 고칠 수 있을 거예요.”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며 버스와 승합차를 엄폐물로 이용하여 아파트 정문으로 이동했다.
쓰러진 정문 바리케이드를 지나 단지 내부로 들어서자, 103동 입구에서 점멸하는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불빛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희연이야. 이제 안전해.”
수비팀의 김희연.
첫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하며 가브리엘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
시력이 2.0이나 되는 김희연이 가브리엘의 능력까지 얻었으니, 날개를 단 것과 마찬가지였다.
찻잔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따진 못했지만, 적장을 처리하고 금의환향하는 우리를 모든 생존자가 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