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4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84화
난 아랫입술을 깨물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너무 흥분했다.
문득, 학교 본관에서 좀비에게 종아리를 물린 기억이 되살아났다.
섣부른 판단으로 경솔하게 행동했던 기억.
일행이 김희연을 포기하는 줄 알고, 나도 모르게 격분하고 말았다.
이정우는 나를 타이르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재형이 네가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 항상 결과가 좋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어떨 것 같아? 살 떨려 인마.”
“…….”
“남들은 잘 챙기면서, 네 몸뚱이는 너무 막 다뤄. 알아?”
“그야 형이랑 진영이 형이 치료해 주면 되니까…….”
“그러다 죽으면.”
“…….”
“딱 한 번이야. 딱 한 번 실수로 죽는 거라고.”
이정우의 진심 어린 말에, 난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 숙였다.
그러자 이정우는 일행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5분 안에 가장 괜찮은 방안 떠올려서 움직인다. 각자 의견 내봐.”
* * *
5분이 지나도록 최선의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정진영이 얘기한 화염병이 그나마 가장 희망적인 방안이지만, 그렇다고 확 와닿는 방안도 아니었다.
“야 잠깐만, 지금 군인들 없지?”
그 순간, 뒤에 있던 박재우가 기발한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두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이에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박재우는 탄약고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굳이 화염병으로 잡을 필요 없잖아? 더 좋은 무기가 있는데.”
맞네?
지금은 합법적으로 폭약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약고로 향했다.
여분의 탄알집과 수류탄, 연막탄, 섬광탄 등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뒤이어 황덕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덕록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는 직사각형 모양의 철판 같은 걸 들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재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대박, 그거 설마…….”
박재우는 입을 떡 벌린 채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상자를 들고 있던 황덕록이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맞아, 클레이모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정확한 명칭은 KM-18A1 수평세열지향성지뢰라고 한다.
박재우와 황덕록이 눈을 반짝이며 얘기하기에, 난 클레이모어 쪽으로 손을 뻗으며 물었다.
“이게 뭔데?”
“어어 손대지 마!”
박재우는 다급히 내 손등을 때리며 앞을 가로막았다.
멋쩍은 마음에 얼얼한 손등을 문지르며 물었다.
“이거 어떻게 쓰는지 알아?”
“덕록이랑 내가 누구야? 로즈잖아.”
그러자 뒤에 있던 이덕배와 이현배도 고개를 슬쩍 내밀며 얘기했다.
“그거 크레모아 아니야?”
“클레이모어 말씀하시는 거예요?”
박재우가 되묻자, 이덕배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요즘엔 뭐라고 하는지 몰라도, 우리 때는 크레모아라고 했어.”
“아.”
“크레모아 설치는 우리한테 맡기게.”
이덕배의 말을 듣고, 난 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었다.
“이거 설치하고 쓰는 거예요? 폭탄처럼 생기진 않았는데.”
“미필인 거 티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박재우가 입맛을 다시며 얘기하기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빠졌다.
이덕배는 클레이모어가 들어 있는 상자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혀를 두르며 말을 이었다.
“변종이란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이 정도 크레모아면 뼈도 남지 않을 거야.”
이정우는 상황을 지켜보더니, 뒤에 있는 윤혜리를 불렀다.
“혜리야, 가서 지도 좀 들고 와줘.”
“아, 네!”
윤혜리는 재빨리 버스로 달려가 이 지역 전도를 들고 왔다.
책상 위에 지도를 펼치고, 이정우는 현 위치와 산업도로의 거리를 살폈다.
난 이정우의 옆에서 지도를 살피다 문득, 어느 한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사거리의 고가도로.
분명 이정우와 박재우를 구출하러 가는 길에, 박성훈은 분대원들에게 이러한 얘기를 했었다.
-산업도로로 좀비들 유인하고 고가도로에서 따돌리도록.
박성훈이 얘기한 2차 작전지가 고가도로일 것이다.
산업도로에서 고가도로까지는 족히 800m 거리였다.
박성훈은 도보로 이동했으니, 버스와 승합차를 이용한다면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 있다.
난 이덕배를 쳐다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이것만 있으면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거죠?”
“변종이 얼마나 강하기에 그러나?”
“뼈가 바위 같아서 칼도 안 들어요.”
“고작 칼 따위랑 크레모아를 비교해? 이건 한번 폭발하면 안에 있는 구슬 수백 개가 마하 3의 속도로 퍼져. 눈도 깜박이기 전에 죽는 거야. 이거 맞은 놈은 본인이 죽은 줄도 모를걸?”
마하 3?
미친 무기였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일행에게 얘기했다.
“승합차에 클레이모어 싣고, 정우 형은 덕배 아저씨랑 같이 고가도로로 이동해 주세요.”
“너는?”
“클레이모어 설치할 시간은 벌어야죠. 저는 완수랑 버스 타고 변종들 몰고 있을게요.”
“갈 때 무전기 꼭 챙기고. 다들 움직여!”
이정우가 박수를 치며 얘기하자, 모든 일행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승합차에 이정우와 설여원, 박재우, 황덕록, 이덕배, 이현배가 탑승했다.
그리고 변종을 유인해야 하는 버스에 전완수와 내가 탑승했다.
남은 사람들에게 수비를 부탁하고, 다시 한번 계획을 복기하며 작전지로 이동했다.
전완수는 버스의 액셀을 밟으며 내게 물었다.
“이 작전이 정말 통할까? 그리고 변종들이 많다는 건…… 이 동네에 플레이어가 많았다는 거 아니야?”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다수의 변종, 길거리에 가득한 좀비들, 함락된 대단지 아파트.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금호강 건너에 남아 있다.
난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짐작가는 건 있는데……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군인들부터.”
더는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군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테니까.
* * *
크어어어어어!!
버스를 타고 대로로 들어서자, 길거리에 남아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목젖을 갈며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완수는 두 눈 부릅뜨고 사방을 살피며 버스에 가속을 더했다.
“꽉 잡아!”
콰가가가가각! 콰각!
버스의 정면에 달린 삼각뿔에 갈리고 찢겨나가는 좀비들.
난 운전석 옆의 기둥을 붙잡고 갈려 나가는 좀비들을 직시했다.
그렇게 많은 수의 좀비를 죽였는데, 여전히 수백 마리의 좀비가 남아 있었다.
시야를 차단하는 좀비들의 혈액에 버스 와이퍼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질척하게 젖어가는 유리창을 보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 전완수는 앞이 보이나?
가브리엘의 능력이 대단한 건지, 전완수의 운전실력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거센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범선처럼, 버스는 격하게 출렁이며 길을 뚫었다.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전방을 응시하더니, 뒤이어 마른침을 삼키며 외쳤다.
“빌딩들 보인다! 저 앞이 산업도로야!”
“변종이랑 군인들 보여?”
“좀비밖에 안 보…… 어?”
전완수는 말을 하다 말고 정면을 유심히 살피더니,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변종들 시신. 시체다! 왼쪽!”
그 말을 듣고 좌측 창가로 다가가 바깥 상황을 살폈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보이는 변종들의 시신.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변종의 시신만 3구는 될 것 같았다.
군인들이 처리한 건가?
그렇다면 생존한 군인들이 이곳에…….
끼이이이익-!
그 순간, 갑작스레 급정거하는 버스로 인해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넘어지는 과정에 팔꿈치로 바닥을 찍어서, 온몸으로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미간을 찌푸리며 전완수에게 한마디 하려는 찰나, 그는 다급히 기어를 바꾸며 후진하기 시작했다.
난 기둥을 붙잡고 일어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 인마! 앞에 큰길 돌아서 고가도로로 가야지!”
“미, 미친……!”
전완수는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후진했다.
후진하려면 뒤를 보든 사이드미러를 봐야지, 왜 앞을 봐?
덩달아 전방으로 시선을 돌린 찰나,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키리릭- 키릭-!
끼에에에에에에엑!!
시체를 뜯어먹고 있던 변종들이 일제히 이곳을 돌아보더니,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완수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손을 덜덜 떨며 변종들의 모습을 응시했다.
핸들을 조작하는 것도 잊었는지, 마냥 액셀만 밟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변종은 2마리.
전완수에겐 몇 마리나 보이는 걸까.
전완수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으며 읊조렸다.
“너, 너무 많아. 여긴 못 지나가.”
“그렇다고 계속 뒤로 갈 거야? 목적지랑 멀어지잖아 인마!”
“외벽에서 내려오는 변종까지 합치면 5마리야 미친놈아!”
5마리?
심지어 빌딩에서 계속 내려와?
변종이 빌딩 외벽에 붙어 있다는 건…… 미끼가 되었던 군인들이 전멸했다는 건가?
난 찰나의 고민 끝에 전완수의 어깨를 잡으며 얘기했다.
“완수야, 진정하고 내 말 들어.”
“…….”
“변종들 유인하는 게 우리 목적이잖아. 이대로 멀어지면 저것들 고가도로로 갈 게 뻔해. 정우 형이랑 다른 사람들 죽게 내버려 둘 거야?”
“그렇다고 저길 뚫자고? 버스가 못 버틸 거야.”
“아무리 변종이라도 버스에 받히고 온전하진 않겠지.”
전완수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끝내 육두문자를 씹으며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버스가 거의 멈춰서는 순간, 다시금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1단, 2단, 3단, 빠르게 올라가는 기어와 거칠게 들려오는 엔진 소리.
뒤이어 안개에 가려져 시야에서 사라졌던 변종들이 다시금 나타나고, 놈들의 징그럽기 짝이 없는 면상이 두 눈에 들어왔다.
“꽉 잡아!”
드드드득-! 떠걱! 콰득!!
정면에 있던 변종은 미처 회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스에 받히는 모습을 보였다.
변종의 다리가 삼각뿔 밑으로 들어가며 듣기 거북한 소리가 차내로 들려왔다.
살갗이 갈리고 뼈마디가 어긋나는 소리.
끼에에에에에에엑!!!
놈은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변종들은 버스의 측면을 붙잡고 매달리더니,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철판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버스를 맨손으로 잡고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니.
쾅! 끼이익! 쾅! 팡!
버스의 측면에 달아둔 철판이 휘고, 부러지고, 뜯어지는 파찰음이 고막을 찌른다.
떵-!
오래 버티지 못하고 우측의 철판과 쇠창살이 뜯기자, 변종의 얼굴이 두 눈에 들어왔다.
놈은 내 얼굴을 직시하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유리를 가격했다.
챙그랑!
차내를 휘저으며 뭐든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놈은 버스의 손잡이를 붙잡고 깨진 창틈으로 상체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살갗이 찢어지는 와중에도 귓불에 걸린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내로 들어오게 해선 안 된다.
놈이 완전히 들어오기 전에, 미리 처단해야 한다.
쏜살같이 변종에게 달려들어 놈의 팔을 꺾었다.
뜨드득- 뜩-
팔이 부러지지 않도록 힘으로 버티는 변종.
근력 수치가 22에 다다른 내게, 힘 싸움은 충분히 해볼 법한 일이었다.
“제발 좀…… 부러져라……!”
이 악물고 젖먹던 힘을 다하자, 킹크랩 다리를 부러뜨릴 때와 비슷한 감촉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끼에에에에에엑!!
그러자 버스에 매달려 있던 변종은 비명을 내지르며 부러진 팔을 휘둘렀다.
다급히 상체를 숙여 놈의 공격을 회피하고, 지면을 박차고 나가 놈의 머리를 붙잡았다.
일전에 기요틴 초크로 변종을 처리했을 때처럼, 이변에도 변종의 경추를 공략했다.
키…… 에엑…… 켁……!
숨넘어가는 소리를 뱉으며 아무런 저항도 못 하는 변종.
왼팔은 부러진 상태였고, 오른팔과 양다리는 창밖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모든 조건이 내게 이롭게 다가오고 있었다.
난 두 눈을 부릅뜨고 열리지 않는 뚜껑을 비틀어 따듯이, 놈의 머리를 비틀었다.
뜨드드도득- 떠걱! 떡!
변종의 경추에서 뼈마디가 어긋나며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외벽을 붙잡고 있던 오른팔이 축 처지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덜렁거리는 머리와 바람에 나풀거리는 사지.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50점이 주어집니다.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손에 쥐고 있던 변종의 목을 놓았다.
바람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창밖으로 떨어지는 변종.
난 덜덜 떨리는 양손을 쳐다보며 심장의 고동에 집중했다.
힘으로 변종을 압도하다니.
나도 모르는 새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