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9화
샛길에서부터 이어진 불길은 하나의 벽을 형성했다.
‘뭐야.’
기름이라도 부어둔 건가?
누가?
영문은 모르겠지만, 갑작스레 일어난 불길에 미대에서 달려온 좀비들은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난생처음 보는 불꽃에 망설이는 모습.
텁!
뒤이어 내 어깨를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좀비라 생각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려는 찰나, 어깨 위에 있던 손이 내 팔꿈치를 붙잡았다.
물린다는 생각에 재빨리 왼손에 쥐고 있던 멍키스패너를 내지르는 찰나.
‘……어?’
좀비들처럼 창백하지 않은 피부.
푹 눌러 쓴 모자 너머로 보이는 휘둥그레진 눈.
이름 모를 여자였다.
멍키스패너는 정확히 여자의 눈앞에서 멈췄다.
여자는 놀란 눈으로 멍키스패너를 쳐다보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대뜸 내 팔을 잡아끌었다.
두뇌 회전이 일순간 멈추고, 멍한 상태로 여자를 뒤따랐다.
여자가 향한 곳은 플라워디자인과 건물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입구를 봉쇄하고, 새까만 천으로 유리를 가렸다.
“4층에서 기다려.”
여자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토 달지 않고 4층까지 올라가자, 책상과 의자 등을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리케이드 입구를 찾기 위해 좌우를 살피고 있는데, 뒤따라 올라온 여자가 내 등을 톡톡 건드리며 개구멍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여자를 따라 개구멍으로 들어가자, 407호 강의실에 설치된 텐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407호로 들어서려 하자, 여자는 내 옷깃을 잡아끌며 반대편 408호 강의실로 밀었다.
육체가 한계에 다다른 상태기에, 갑작스러운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408호 바닥에 엎어졌다.
여자를 돌아보자, 그녀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강의실 문에 자물쇠를 걸었다.
놀란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 하는 짓이야. 그거 안 풀어?”
“알 수 없잖아.”
알 수 없어?
뭐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물렸을지도 모르잖아.”
“안 물렸어.”
“못 믿어.”
“여기서 옷이라도 벗을까?”
“30분 뒤에 열어줄게. 기다려.”
좀비에게 물렸을 때 인간의 이성이 버티는 시간은 길어봐야 20분.
본인의 안전을 위해 나를 가두겠다고?
억울하지만, 한편으론 여자의 입장이 이해되었다.
408호에 좀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여자에게 일행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407호에는 텐트가 하나뿐이었고,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난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얘기했다.
“30분 뒤에 다시 얘기하자고.”
“…….”
* * *
기숙사 매점 앞으로 좀비들이 모여들자, 실내에 있던 남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좀비들을 응시했다.
매점 앞의 좀비들은 두 남자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 선뜻 공격을 취하지 않았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터벅- 터벅-
좀비들 사이로 발소리가 들려오자, 매점 앞에 있던 좀비들은 좌우로 갈라서는 모습을 보였다.
좀비들 사이로 걸어 나오는 대장 좀비.
매점 창고에 숨어 있던 남자는 대장 좀비를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대장 좀비는 두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손가락으로 유리문에 글자를 적었다.
-생존자.
“그게……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대장 좀비가 아무런 글자도 적지 않자, 창고에 있던 남자는 황급히 변명을 꺼내 들었다.
“우, 우리도 어쩔 수 없었어, 그 자식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고! 게다가 들을 생각조차 안 하는데 어떡해.”
-어디로 갔어.
“저쪽, 미대 쪽으로 갔어.”
대장 좀비는 박재형이 도망친 방향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뒤이어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더니, 사포로 긁는 것처럼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하진…… 너…… 내가…… 생존자…… 찾으면…… 잡아두라고…… 했지?”
“조성훈 너, 너 이제 말도 할 수 있어?”
“저번…… 여자도…… 놓쳤잖아…….”
조성훈이 인상을 찌푸리자, 이하진은 진정하라는 듯이 양손을 들며 얘기했다.
“기숙사, 기숙사에도 아직 생존자 많을 거야. 내가 어떻게든 찾을 테니 진정해.”
“사람…… 뇌…… 가져와.”
이하진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조성훈은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눈살을 찌푸리며 까드득 이를 갈았다.
“빨리…… 안 찾으면…… 다…… 죽어.”
“걱정하지 마. 넌 무슨 일이 있어도 혁진이처럼 안 변해. 내가 있잖아.”
이하진이 어르고 달래듯이 얘기하자, 조성훈은 목젖을 갈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속에서 들끓는 좀비의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다.
이하진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민형이랑은 얘기 잘 됐어?”
“민형…… 아직…… 선택하지…… 못했어.”
“그럼 어떡해? 계속 사람 먹는 걸 거부하면 걔도 혁진이처럼 변할 텐데?”
“일단…… 지켜본다.”
“되도록 빨리 결단해. 그러다 다 죽는 수가…….”
쾅!
조성훈은 주먹으로 유리문을 치더니, 사시나무 떨듯이 사지를 떨었다.
입에서 침이 흐르고, 이마 위로 핏대가 솟아났다.
“더…… 더는…… 못……!”
이하진은 조성훈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사람처럼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계산대에 있던 남자가 이하진과 조성훈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야, 네 친구 왜 저래. 쟤 왜 저래!”
이하진은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굳게 닫혀 있던 매점 문을 열었다.
뒤이어 계산대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며 외쳤다.
“빨리 가서 성훈이 팔 잡아! 주사기 가져올 테니까!”
“어? 어어! 알았어.”
계산대에 있던 남자는 재빨리 조성훈의 팔을 잡으며 뒤에 있는 이하진에게 물었다.
“잡았어! 이제 어떡해?”
철컥.
이하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유리문을 잠갔다.
졸지에 매점에서 쫓겨난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이하진을 쳐다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야 장난치지 마. 빨리 가서 주사기…….”
“병신 새끼. 이게 무슨 감기냐? 약이 어디 있어?”
“……뭐?”
“그냥 뒤지라고 빙신아.”
뒤늦게 사태파악을 마치고,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이 개새……!”
텁! 콰득!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시나무처럼 전신을 떨던 조성훈이 그의 목덜미를 물었다.
끝맺지 못한 말을 대신하듯,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려왔다.
이하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직시했다.
조성훈이 남자의 뇌를 잘근잘근 씹어먹은 뒤에야, 그 끔찍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멎었다.
조성훈이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이하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불렀다.
“서, 성훈아?”
귓불에 걸릴 듯이 올라간 조성훈의 입꼬리.
조성훈은 한층 편해진 모습으로 이하진을 쳐다보더니, 입가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얘기했다.
“생존자, 빨리 찾아. 다음은 너니까.”
이하진은 목이 빠지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복도에서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강의실 상단에 있는 유리를 쳐다보자, 나를 이곳으로 밀어 넣은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더니, 자물쇠를 풀며 얘기했다.
“미안해. 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어.”
“됐어. 덕분에 살았는데 내가 감사해야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서자, 은은한 라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허기짐에 입맛을 다시며 아랫배를 문지르자,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배고파?”
대략 170㎝ 정도 될까.
여자는 407호로 나를 안내하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양은 냄비를 내밀었다.
면은 보이지 않고, 뻘건 국물만 남아 있었다.
“잘 찾아보면 면도 조금 남았…….”
후루룩-
여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양은 냄비를 들고 입속에 들이부었다.
국물만 있어도 좋다.
지금은 타는 듯한 갈증에 뭐라도 마시고 싶었다.
혀끝을 자극하는 달콤한 맛과 황홀한 향기.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맛이었다.
숨도 쉬지 않고 냄비에 있는 국물을 전부 삼킨 뒤, 옷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얘기했다.
“고맙다.”
“어어…….”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조금 전까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었다.
급변한 분위기가 어색하기도 하고, 여전히 골이 울리고 사지가 떨려서 무슨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남은 건더기를 건져 먹으며 여자의 눈치를 보자,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내게 물었다.
“너…… 혹시 기숙사에서 왔어?”
기숙사라는 말에 눈꼬리를 치켜뜨며 여자를 쳐다보자, 그녀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거기서 이상한 남자들 못 봤어?”
이상한 남자라면…… 매점에 있던 놈들을 말하는 건가?
이 여자, 매점에 있던 놈들을 어떻게 아는 거지?
그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 있다.
난 여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하나만 묻자.”
“내가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하고…….”
“어떻게 알았어?”
무덤덤한 목소리로 묻자, 여자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되물었다.
“……뭐를?”
“내가 밖에 있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
여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시선을 회피하며 대답했다.
“그야 소리가 들리니까…….”
“불 붙인 거 너지? 내 위치를 어떻게 단번에 찾은 거야?”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개 때문에 5m 앞의 사물도 분간하기 어려운데, 내 위치를 단번에 파악한 건 말이 안 된다.
심지어 좀비들의 접근을 불길로 가로막은 것도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난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너, 혹시 라스트아크 플레이어야?”
여자는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되물었다.
“어떻게 라스트아크를 알아? 설마 너도?”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말도 잇지 않았다.
여자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직업, 캐릭터 이름이 뭐야. 대답하기 전에는 못 믿…….”
“에덤 화이트.”
“헐! 진짜 플레이어야?”
여자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가로 번지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반응이 이렇게 다르다고?
뒤이어 오른손을 내밀며 얘기했다.
“반가워, 난 설여원.”
“……박재형이야.”
“대박, 진짜 플레이어라니.”
“넌 가브리엘이지?”
설여원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플레이어면 플레이어지, 진짜 플레이어냐고 묻는 건 뭐야?
의아한 마음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 말고 다른 플레이어 만난 적 있어?”
“아니, 대신 플레이라고 거짓말하는 놈들은 만났어.”
“거짓말을 한다고?”
지금의 미쳐 버린 세상이 라스트아크를 배경으로 한다는 걸 일반인이 알 턱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플레이어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문득, 조금 전에 설여원이 내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거기서 이상한 남자들 못 봤어?
매점에 있던 놈들.
난 덤덤한 표정으로 설여원의 모습을 살폈다.
그러자 설여원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너도 기숙사 매점에 있던 남자들 만났어?”
“…….”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 같다.
대답만 안 했을 뿐, 표정에서 전부 드러난다.
순수하다고 해야 좋을지, 천성이 선하다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인간에 대한 정이 있으니 내 목숨을 구해주고, 라면 국물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인간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았고, 꼼꼼한 성격을 지녔기에 408호에 나를 가둔 것이라 생각된다.
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도 붙잡힐 뻔했어. 도망치는 길에 이렇게 된 거고.”
“그놈들 따라온 건 아니지?”
“따라왔으면 지금 나랑 같이 있겠지?”
“아…… 맞네.”
설여원은 이마를 긁적이며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본인이 겪은 일들을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안개가 퍼지고 일주일이 지날 무렵, 식량이 떨어진 설여원은 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살기 위해 죽음이 도사리는 밖으로 나와야 하는 실정.
어렴풋이나마 설여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장병철이 구비해 둔 식량이 다 떨어질 무렵, 이판사판으로 뭐든 하자고 다짐했으니까.
“그렇게 기숙사를 빠져나왔더니…… 눈앞에 홀로그램이 생성되더라고.”
“퀘스트?”
“응, 메인 퀘스트랑 본가에 계신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하라는 S급 퀘스트.”
기숙사를 벗어난 이유가 부모님 때문인가?
하긴, 다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가족이 제일 먼저 걱정될 것이다.
나 역시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하라는 S급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S급 퀘스트는 하나밖에 보유할 수 없고, 메인 퀘스트급에 해당한다.
설여원의 본가는 경기도 하남이라고 했다.
내 고향이 잠실이라고 하자, 설여원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박, 이라는 말을 읊조렸다.
407호에 맴돌던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바로 옆 동네에 사는 사람이었다니.
근처에 살지만, 서로 돌고 돌아 경산에서 만났다.
호구조사는 이쯤하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물었다.
설여원은 기숙사를 벗어난 뒤에 안전가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안전가옥부터 구하고 플레이어를 찾으려고 했어.”
가브리엘의 장점이라면 안개 속에서도 시야 확보가 가능하기에, 좀비들의 위협을 미리 알고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생존자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고, 그 과정에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둘 구비했다고 한다.
지금의 텐트와 버너, 라이터, 쇠파이프, 식량도 그때 얻었다고 한다.
내 무기도 쇠파이프, 설여원의 무기도 쇠파이프.
설여원의 쇠파이프는 내가 사용하는 것과 달리, 지름 3㎝ 정도의 끝이 날카로운 쇠파이프였다.
어디서 구했냐고 묻자, 기숙사 연못의 분수대에서 뽑아왔다고 한다.
설여원은 신기하다는 듯이 두 눈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나도 기숙사에 있었고 너도 기숙사에 있었는데 그동안 왜 못 만난 거지?”
“움직인 시간이 달라.”
설여원은 나보다 일주일이나 먼저 기숙사 단지를 벗어났다.
난 보름 동안 구조대를 기다리며 방안에 구비된 식량을 아껴먹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설여원은…… 망해버린 세상을 나보다 일주일이나 먼저 받아들이고,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