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93화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자, 벌써 발치까지 다다른 변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잔발을 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앞만 보고 달리던 변종은 본인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체육학원에 다니며 배운 기술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변종의 기다란 양팔이 팽이처럼 회전하더니, 옥상 바닥을 긁으며 멈추는 모습을 보였다.
저 정도면 살점이 쓸리고 뼈가 부러져야 정상이지만, 변종에게는 정상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았다.
다급히 옥상 철문을 열어젖히고 내부로 들어갔다.
변종의 키는 3m에 달하기에, 옥상에서 회피할 게 아니라 비좁은 지형을 이용해야 한다.
크어어어어어!!
건물 내부에 있던 좀비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쾅! 쾅!!
껴어어어억!
뒤에서는 분기에 차오른 변종이 철문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뿐.
“후…….”
가빠진 숨을 한 차례 심호흡으로 가다듬으며 계단에 들어찬 좀비들의 안면에 발길질을 가했다.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총구를 떠난 탄알처럼, 쏜살같이 주먹을 내질렀다.
팡! 떠걱- 빡! 탕!
근력과 체력이 대폭 증가한 뒤로, 좀비를 타격할 때마다 총성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권투 글러브를 착용하고 묵직한 샌드백을 때릴 때 발생하는 소리와 비슷했다.
주먹에 맞은 좀비들은 두개골이 함몰되고, 일격에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터지며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64%, 63%, 62%, 61%.]빠르게 줄어드는 보호대의 내구도.
부위별로 남은 내구도를 살피며 파괴되지 않도록 조절했다.
12마리의 좀비를 순식간에 처리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봤다.
철문을 두드리던 변종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귓가를 울리는 이명 사이로 심장의 고동만이 맴돌았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귓가로 들리는 발소리도 없고, 변종의 음성이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밑으로 내려간 건가?
걸음을 떼려는 찰나, 계단 통유리 너머로 기다랗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두대처럼 치켜든 오른팔의 모습.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재빨리 상체를 숙였다.
챙그랑!!
내부로 들어올 수 없으니 외벽을 타고 내려온 건가?
빗자루로 쓸 듯이 계단을 훑는 변종의 팔.
버스에서 알파 변종을 상대할 당시, 한쪽 팔을 제압하고 경추를 뜯어버린 기억이 떠올랐다.
총에 맞아도 안 뚫리는 단단한 뼈를 지니고 있는 미확인 변종.
하지만 이유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뼈를 아작 내진 못해도, 연골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재빨리 놈의 팔꿈치를 붙잡았다.
동시에 깨진 창틀을 지렛대로 삼아 반대로 꺾었다.
뜨득!
놈의 인대에서 들려오는 실밥 터지는 소리.
가능성이 보인…….
훙-
‘어?’
순식간에 느껴지는 부유감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변종은 불편한 짐가방을 던지듯, 내 전신을 복도로 던져 버렸다.
쾅!
“커헉!”
대략 5m는 날아간 것 같다.
등으로 느껴지는 저릿한 기운에 눈살을 찌푸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변종의 얼굴.
놈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마치 장난감 상자에 들어 있는 물건을 이리저리 흔들며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빌라에 갇힌 나를 나락으로 몰아세우며 즐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안구가 없는 게 아니라,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 없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콧대는 깨끗하게 잘려나간 모습.
쭉 찢어진 입꼬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두 눈에 들어왔다.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덩치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으니, 어떻게든 시선을 유도해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문득, 바닥에 떨어진 쇠뇌가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쇠뇌를 쥐고 볼트를 장전했다.
그러자 변종은 기이하게 머리를 비틀며 내가 들고 있는 무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보인다.
지능이 존재하는 건가?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생각은 접어두고 망설임 없이 볼트를 발사했다.
퉁-!
팍!
껴어어어어어억!!
놈은 괴성을 내지르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피부와 뼈는 단단하지만, 각막까지 단단한 건 아니었다.
놈이 고통에 발악하는 지금,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야 한다.
난 지면을 박차고 아래로 내려갔다.
4층, 3층, 2층, 마침내 1층에 다다르자 자욱한 안개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안개에 대한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변종의 위협이 더욱 두려웠으니까.
나침반이 고장 난 채 망망대해에 버려진 기분.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디든 여기보다 안전할 것이다.
‘정신 차려.’
두려움에 굳어가는 사지에 힘을 주어 재빨리 우측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로 폭 2m의 비좁은 골목.
버려진 쓰레기더미 때문에 전속력으로 달리기 어려웠다.
탁! 탁, 딱! 따각!
뒤이어 허공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운에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안개 너머로 드리우는 흐릿한 인영.
인영? 아니, 저건 인영이 아니다.
알파 변종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은, 죽음의 그림자였다.
미확인 변종은 덩치 때문에 골목으로 들어오진 못하고, 옥상으로 이동하며 내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알파 편종과 흡사하지만, 덩치부터 신체 능력까지 월등한 존재.
라스트아크 도감에도 없는 새로운 변종이 나타났다.
놈을 떨쳐내기 위해선 어떻게든 유효타를 입혀야 하는데…….
절그럭-.
그 순간, 가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수류탄.
아무리 강철 같은 피부라도, 수류탄을 정면으로 맞으면 쓰러지지 않을까?
충분한 공간과 거리가 필요하다.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자, 좌측으로 낡은 방범창이 눈에 들어왔다.
카르르르…… 카하악!
있는 힘껏 낡은 방범창을 뜯어내자, 내부에 있던 좀비가 소리를 듣고 창가로 다가왔다.
까드득 이를 갈며 있는 힘껏 좀비의 안면에 주먹을 내질렀다.
두 달간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한 좀비라서 그런지, 힘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고개를 슬쩍 내밀며 내부를 살피자, 비좁은 원룸 구조였다.
실내에 다른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단숨에 창틀을 넘어 원룸으로 진입하고, 현관을 열자마자 계단을 뛰어올랐다.
크어어어어!
복도에 있던 좀비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뼈마디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신체를 강화해도, 나 역시 인간이었다.
지속적으로 충격이 쌓이며 뼈가 울리고 근육이 저리기 시작했다.
체력 수치도 22까지 올렸지만 숨은 거칠고 입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4층까지 쉬지 않고 오르자, 외벽에서 기이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합판을 지르밟으며 벽을 타는 소리.
변종이다.
건물로 들어올 수 없으니, 외벽에서 기회를 엿보는 게 틀림없다.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선 변종의 입에 수류탄을 쑤셔 넣는 게 최선이지만, 이는 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
우선 변종의 정확한 위치부터 파악해야 한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바닥에 쓰러진 좀비의 시신을 집어 들었다.
좀비의 시신을 방패로 삼아, 조심스레 계단 앞의 통창으로 접근했다.
훙-!
챙그랑!
그 순간, 기다란 팔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순식간에 좀비의 다리를 붙잡더니, 그대로 창밖으로 끌고 나갔다.
변종은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좀비의 시신을 세차게 흔들더니, 먹잇감이 아니라는 걸 파악하고 괴성과 함께 시신을 집어 던졌다.
퍼걱!
지면에서 들려오는 거북한 소리.
만약 좀비가 잡히지 않고 내가 잡혔다면…… 저 소리의 주인은 내가 됐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건 사실이지만, 덕분에 변종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왼쪽 상단.’
위치 파악을 마치고 다급히 뒤로 물러서서 변종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지능이 있으니, 놈도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창밖을 응시하자, 곧 귓불을 간질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으…… 아…… 으아…… 아? 으아아…… 으아아?”
뭐 하는 거지?
놈은 비명을 지르지도, 섣불리 공격을 취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이전처럼 창가로 얼굴을 들이밀지도 않았다.
안구에 볼트를 맞고 본인의 취약한 부위를 깨달은 건가?
“배고…… 파…… 엄…… 마. 고파…… 엄…… 배고…… 으아아?”
설마…… 저걸 미끼라도 던진 건가?
이 음성이 변종의 목소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배고파, 엄마라는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부상자라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창가로 접근하면 변종에게 잡힐 게 뻔하고, 밖으로 나가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떻게 해야 변종의 시선을 돌리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
‘잠깐, 미끼?’
저놈이 미끼를 던지고 기다린다면, 나도 미끼를 던지면 되잖아?
바닥을 살피자, 두개골이 함몰된 좀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차디찬 주검으로 전락한 좀비의 시신.
가방에 걸어둔 수류탄을 들고, 쓰러지듯 좀비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옷은 멀쩡하기에, 수류탄을 숨길 공간은 충분했다.
시신의 바지 주머니에 수류탄을 집어넣고, 안전핀을 검지에 걸어둔 채 번쩍 들었다.
왼손으로 좀비의 멱살을 쥐고 조심스레 창가에 다다른 순간.
훙-!
인기척을 느낀 변종은 기다란 팔을 뻗어 좀비의 발목을 붙잡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낚아챘다.
팅-
검지에 걸린 안전핀과 귓바퀴를 스치는 맑은 파찰음.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그렸지만, 막상 뽑힌 안전핀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계단을 뛰어올랐다.
껴어어어어!!
낚시에 실패해서 분통이 터진 건가?
변종은 괴성을 내지르며 손에 쥔 시신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 순간.
콰아앙!!
전신이 울리는 폭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건물이 울렸다.
계단에 있던 모든 창문이 산산조각 나고, 천장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티끌 먼지와 시멘트 가루로 점철된 공기.
코끝이 따끔거리고, 연거푸 기침이 나왔다.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겼는지,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어질어질한 이마를 짚으며 흐려진 초점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간신히 거동이 가능한 수준이 되어서야, 비틀거리며 옥상으로 향했다.
변종의 바로 옆에서 수류탄이 폭발했을 것이다.
아무리 단단한 변종이라도, 수류탄을 정면으로 맞고 살아남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옥상에 오르자마자 맑은 공기로 탁해진 폐부를 환기하고, 비틀거리며 난간으로 다가갔다.
회색빛의 메케한 연기가 바람을 따라 이동하고, 지면을 잠식한 자욱한 안개가 두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안개 속으로, 미동도 하지 않는 변종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난 변종의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안도의 마음이 들 법도 한데, 내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만이 차올랐다.
홀로그램이…… 떠오르지 않았다.
변종을 죽이면 50의 좀비 카운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표시됐는데, 지금은 아무런 홀로그램도 표시되지 않았다.
즉, 저 밑에 있는 변종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젠…… 장.”
난 비틀거리며 옥상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여분의 수류탄이 있으면 몰라도, 지금 상태로는 변종과 싸울 수 없다.
밑으로 내려가서 빈사 상태에 놓인 변종을 처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이마저도 변종의 계략이라면?
저 밑에 있는 변종은 지금껏 경험한 좀비, 변종들과 달리 뛰어난 학습능력을 지녔다.
방심하다간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타당!! 타다당!!
그 순간, 고막을 찌르는 이명 사이로 총성이 들려왔다.
두통이 심한 탓에, 환청을 들었나 싶어서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타다당!! 타탕!!
환청이 아니었다.
설마 박성훈이 돌아온 건가?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금 옥상 난간으로 돌아가 지면을 살폈다.
전방 30m 거리에서 번쩍이는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접근하는 좀비들을 향해 쉴 새 없이 불을 뿜어내는 총구.
그런데 숫자가 적다.
박성훈이 왔다면 소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여럿 보여야 하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불빛은 2개가 전부.
‘저 사람들 설마…….’
찾아도 보이지 않던 두 명의 군인.
지금껏 어디 숨어 있었는지 몰라도, 폭음을 듣고 나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