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6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96화
크르르르…….
좀비들의 인기척을 피해 바로 옆의 빌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나 역시 평범한 인간.
물리면 감염의 위험이 있고, 지금은 보호대의 효과도 사라진 상태였다.
흑색이던 보호대는 죽어버린 산호초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복구되는 동안은 이렇게 색이 변하는 모양이다.
임시방편으로 1인용 냉장고 문짝을 뜯어 방패로 사용하고, 오른손에는 헌팅 나이프를 쥐었다.
그렇게 옥상을 넘나들며 얼마나 이동했을까.
마지막 빌라에 다다르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2차선 도로와 공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변종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차올랐다.
지금은 보호대가 제 역할을 하지 않기에, 좀비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숙사를 탈출할 때는 고작 쇠파이프 하나로 안개 속을 뛰어다녔는데, 지금은 왜 이리 불안한 걸까.
장비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올챙이 시절이 가물가물했다.
이래서 없이는 살아도, 있던 사람이 없이는 못 산다고 하는 건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발소리를 죽인 채 빌라 1층으로 내려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 조심스레 공터로 나아갔다.
차도와 공터를 구분 짓는 계단은 좀비들의 시신이 즐비한 상태였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좀비들의 시신에 동그란 구멍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언덕에서 내려오는 좀비들을 저지하기 위해 격발한 모양이다.
엄폐물 하나 없는 드넓은 공터.
냉장고 문짝 손잡이를 말아쥐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크르르…….
뒤이어 좀비들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고,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가까운 거리에서 들렸는데?
텁.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차디찬 냉기가 종아리로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며 지면을 살피자, 빈사 상태에 놓인 좀비가 내 종아리를 붙잡고 있었다.
아니, 손가락이 없으니 붙잡지는 못하고, 더듬는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이다.
소매에 벌레라도 들어간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한발 물러섰다.
끄어어…… 카학…… 하악…….
팔 하나 남은 좀비는 내 종아리를 붙잡기 위해 헛손질을 반복했다.
그러자 지면에 널브러져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죽지 않고 숨만 붙어 있는 좀비들.
차마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치 귀천의 영혼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 헌팅 나이프를 말아쥐고 죽지 않은 좀비들의 안구와 관자놀이에 찔러넣었다.
더는 고통이 없는 곳으로, 허기와 절망으로 점철된 이들의 삶을 정리해 주었다.
물론 좀비 카운트는 덤.
지면에 바퀴 자국으로 보아, 일행은 공터를 돌며 좀비들을 처리한 모양이다.
어시스트 포인트가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안전한 상가 지역에 도착…….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390/700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391/700
“어?”
그 순간, 좀비 카운트가 올라갔다.
이는 어시스트 포인트가 들어왔다는 것이고, 상가 지역에 있는 일행이 좀비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뜻이 된다.
빠르게 올라가는 수치에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좀비 5마리를 죽여야 1카운트가 올라가는데.
지금은 5초에 1씩 올라가고 있었다.
좀비들의 공습인가?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고가도로로 이동했다.
크어어어…… 카하아악!
고가도로에 다다를수록 좀비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새하얀 안개 너머로 흐릿한 인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하아악!
그와 동시에 좌측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시선을 돌리자, 사지 멀쩡한 좀비가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재빨리 상체를 틀어 헌팅 나이프를 일직선으로 내질렀다.
정확하게 안구를 뚫고 들어가는 헌팅 나이프.
엄지와 검지가 좀비의 안구 뼈에 닿자, 질척한 핏물이 손등으로 묻어났다.
크어어어어!
흐릿하던 인영들이 일제히 이곳을 돌아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내게 달려드는 숫자만 족히 스물.
보호대만 있어도 손쉽게 처리할 숫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난 냉장고 문짝을 방패 삼아 좀비들의 위치를 유심히 살폈다.
놈들이 일제히 내 상체를 덮치면 위험하기에, 방향을 틀어가며 빈틈을 만들어야 한다.
카하아악!
가장 앞에 있는 좀비가 코앞으로 다다른 찰나, 방패를 휘둘러 놈의 하관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우측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얼굴.
재빨리 오른팔을 뻗어 놈의 안구에 헌팅 나이프를 찔러넣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타닷-!
등 뒤로 느껴지는 발소리.
방패를 돌려 등을 방어하자,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좀비의 양팔이 어깨너머로 나타났다.
붙잡히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와 상체를 틀어 등에 매달린 좀비를 떨어뜨리고, 왼발로 놈의 안면을 짓밟았다.
꽈득!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전율과 전신으로 퍼지는 긴장감.
지금의 긴장감은 두렵거나, 공포감에서 오는 긴장감이 아니었다.
살아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느껴지는 떨림이었다.
크어어어!!
‘정면에 두 마리.’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텝을 밟으며 방패를 치켜드는 찰나.
퉁! 퉁- 퉁!
좀비들의 이마를 뚫고 나오는 기다란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재형아!!”
뒤이어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
퉁! 투퉁! 퉁! 퉁!
주변의 좀비들에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볼트 세례.
번- 쩍!
안개 속에서 점멸하는 상향등.
고작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고작 불빛을 봤을 뿐인데.
심장이 먹먹해지고, 괜스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미동도 없이 정면을 응시하자, 흐릿한 안개 너머에서 쇠뇌를 견착한 네 명의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곧 가장 앞에 있던 사람이 쇠뇌를 내려놓고 내 곁으로 달려왔다.
설여원이었다.
설여원이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울컥하는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자, 설여원도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안겼…….
뻑!
안기는 게 아니라 대뜸 내 팔뚝을 때렸다.
터지려는 눈물이 쏙 들어가고, 당황한 표정으로 설여원을 쳐다봤다.
설여원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연달아 내 팔과 등을 때렸다.
“죽은 줄 알았잖아!”
“너 때문에 죽겠어.”
“왜 혼자 남아서 사람 걱정하게 만들어!”
설여원의 양팔을 붙잡자,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대성통곡했다.
누가 보면 내가 구조대고, 설여원이 낙오자인 줄 알겠다.
난 설여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괘, 괜찮아?”
그러자 설여원은 내 목에 양팔을 감으며 얘기했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연거푸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설여원.
예상치 못한 행동에 전신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던 이정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얘기는 나중에 하고! 둘 다 빨리 차에 타!”
퉁! 퉁- 퉁!
여전히 좀비들이 달려드는 상황.
난 설여원을 번쩍 들고 차량으로 달렸다.
박성훈을 따라 고가도로 밑에 다다르자, 사거리 중앙에 정차된 전술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뒷좌석에 설여원을 던져넣고, 이정우와 정진영이 차에 탈 수 있도록 엄호했다.
모두가 차에 탑승한 걸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차량에 오르며 외쳤다.
“출발!”
부아아앙-!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마침내 돌아간다.
모두가 있는 곳으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등 뒤로 좀비들의 음성이 들려오지만, 입가로 번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 * *
좀비들을 따돌리고 상가 지역에 들어서자, 건물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난 차량에서 내리며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사 귀환을 반겨주었다.
내 다리에 매달리는 아이들도 있었고, 울먹이는 사람도 있었으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사람도 있었다.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의 표정에 안도감과 고마움이 묻어 있었다.
내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
“야! 박재형!”
뒤이어 전완수와 최현이 내 곁으로 달려오더니, 내게 와락 안기며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걱정했잖아 씨X놈아!”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욕은…….”
대뜸 욕부터 하는 전완수와 달리, 최현은 내 전신을 살피며 괜찮냐는 말을 반복했다.
난 괜찮다고, 멀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친구들 때문에, 난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저기요 아저씨들, 좀 떨어지지?”
“흐으윽…… 오빠아…….”
뒤이어 김희연이 눈물을 훔치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난 친구들을 털어내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김희연을 진정시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완수와 최현은 울먹이며 얘기했다.
“저 새끼…… 우리도 걱정했는데 여자한테만 잘해주는 거 봐. 쌍놈 새끼.”
난 싱겁게 웃으며 전완수와 최현의 등을 토닥였다.
“저기…….”
김희연의 뒤에 있던 여자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개나리아파트에서 김희연의 언니라고 밝힌 여자였다.
그녀는 양손을 오므린 채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90도로 고개 숙이며 얘기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기 있는 모두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어요.”
“……모두의 덕이죠.”
누구 한 사람이 잘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다.
모두가 힘써준 덕에,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다 문득, 군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무사 귀환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퍼 보였다.
아…… 그래.
모두가 살아남은 건 아니었다.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미확인 변종의 존재를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했을 것이다.
강 병장과 김 상병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가볍게 목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들이 무슨 감정인지 알 것 같아서, 나 역시 가벼운 목례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자, 다들 그만.”
전술 차량에서 내린 이정우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진정하라고 손짓하며 얘기했다.
“못다 한 얘기는 저녁 먹으면서 합시다.”
모두가 힘차게 대답하며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개나리아파트 사람들은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과 금세 친해진 모습을 보였다.
아니지, 이미 아는 사이인가?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풍족해진 기분이 들었다.
기숙사 갇혀 두려움에 떨던 내가, 어느새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지금껏 ‘사람 냄새’라는 표현의 의미를 몰랐는데,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소속감이었다.
* * *
저녁을 먹으며 낮에 있었던 일도 얘기하고, 대단지 아파트 생존자들과 개나리아파트 생존자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금호강 건너의 대단지 아파트는 좀비들의 공격으로 무너졌고, 남은 생존자들은 목숨을 걸고 개나리아파트로 이동했다고 한다.
김희연의 부모님도 탈출 과정에 사망했다고 한다.
슬쩍 김희연을 쳐다보자, 그녀는 언니의 손을 잡은 채 묵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옆에 있던 설여원이 내 아랫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아, 너 옷은 왜 그래?”
“응?”
“어디 걸려서 찢어진 건 아닌 거 같고, 아랫배만 파먹은 것처럼 찢어졌네.”
민망한 마음에 양손으로 배를 가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강 병장이 입을 열었다.
“박재형 씨,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대체 어떻게 빠져나오신 겁니까? 분명 발목도…….”
그는 멀쩡한 내 발목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여원은 강 병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발목? 발목이 왜. 다쳤어?”
“아니야.”
“발목 봐봐.”
설여원은 찢어진 바짓단을 보고 눈꼬리를 치켜뜨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난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내쉬었다.
숨겨서 좋을 게 없다.
의심만 커질 게 뻔하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사실대로 얘기해야겠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내 겪은 일들을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개나리아파트의 생존자들은 일찍이 라스트아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모든 설명을 마치자, 전완수는 들고 있던 통조림을 내려두며 얘기했다.
“맞네. 맞아. 에덤 화이트의 재생 능력. 그게 이제야 효과를 보이네.”
“야, 그런데 수류탄이 발밑에서 터진 거나 마찬가진데, 그게 재생으로 가능한 수준이야? 거의 창조 아님?”
최현의 물음에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재형이가 죽었어야 한다는 거냐? 그리고, 변종이 방패 역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