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necromancer villain in a game novel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성채 공장의 은밀한 장소. 파프닐은 다리를 쭉 뻗은 채로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든다.
컴컴한 통로 너머에서 발소리도 없이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신이 피에 젖어 있는 그는 움직임에 걸맞은 이름을 갖고 있다.
“여, 왔군.”
“이 자식, 장난치는 거냐? 32명이라고?”
유령왕은 흥분한 어조로 닦달한다.
파프닐이 어딘가 숨겨 둔 한 수가 있다는 건 틀림없지만 자신의 배를 넘는 속도로 처리할 정도로 현저한 격차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놈들은 그리 녹록한 실력이 아니었다. 하이 랭커에 버금가는 그들 3인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비상식적인 능력을 보였다.
“무슨 수를 쓴 거냐?”
통로 뒤에서 바알런이 나타나며 물었다.
“아, 그거. 별거 아니야.”
파프닐은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 적 없거든.”
“뭐? 지금 바보 취급하는 거냐?”
유령왕이 발끈하자, 파프닐이 손을 저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목을 끌 거라고 생각했거든.”
“무슨 말이냐?”
유령왕은 눈썹을 가로로 모으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이 자리에서 너를 처치해 버릴 수도 있다.”
바알런이 음산하게 말했다.
실은 적대적이었던 3인이다. 이 위태로운 동맹 관계는 언제 깨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애초에 신뢰가 구축된 관계는 아니었다.
그 사실은 파프닐도 잘 알고 있다.
“우리끼리 또 싸우면 재미없을 텐데?”
“농간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뭐, 그리 열 낼 필요 없어. 착실히 내 생각대로 진행됐으니까.”
바알런과 유령왕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파프닐은 차분히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3인이 힘을 합쳐 놈들을 물리치는 건 무리다. 우리는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네크로맨서니까.”
논리가 비약해 있지만 두 사람은 금세 알아듣는다.
RPG는 롤플레잉.
역할 놀이에서 시작된다.
서로 협업하고 힘을 합치는 게 RPG의 기본이다.
그러나 네크로맨서는 다르다.
남들과 힘을 합치는 것보다는 홀로 역경을 이겨 내는 걸 선호한다.
고독하고 쓸쓸할지라도 거기서 재미와 보람을 찾는다.
한마디로 솔로 플레이를 즐겨 하는 유저들이 주로 선택하는 직업이다. 소환, 공격, 방어, 보조……. 회복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마법을 익힐 수 있는 어찌 보면 완벽한 클래스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 셋이 힘을 합친다고 시너지 효과가 나지는 않는다. 너희 둘의 연계 플레이가 신기한 것이지…….”
“그래서? 우리만 놈들과 싸우게 하고, 네놈은 이런 곳에 처박혀서 뭘 하고 있던 거냐?”
“……라고 내가 말한 정도는 상대의 지휘관도 알고 있겠지? 감히 우리를 이용해 먹으려 한 간 큰 놈이니까.”
파프닐은 가볍게 양팔을 뻗는다.
“머리가 좋은 놈이란 거지. 충분히 우리를 상대할 수 있는 거라는 계산하에 일을 벌인 것일 터다.”
듣고 있던 바알런이 크게 웃는다.
“그거야 내가 바라던 바지. 그런 벌레 같은 놈들을 내가 두려워할 거 같아?”
“실제로 도망갔잖아?”
“그건……. 그때는 소환수와 마력을 너무 소모했을 뿐이다.”
비장의 수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대 네크로맨서의 자존심과 긍지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줬다.”
파프닐은 연달아 말했다.
“사람이 가장 방심할 때는 바로 모든 게 자기 생각대로 흘러간다고 판단했을 때니까.”
***
모든 게 생각대로 이뤄지고 있군.
한때는 집무실로 사용했던 곳일까? 헥스는 낡긴 했어도 으리으리한 의자에 앉은 채, 거만하게 다리를 올리고 있었다.
“길마 님, 20명가량 당했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헥스가 입꼬리를 올린다.
“어떻게?”
“각자 따로 움직이고 있는 거 같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파프닐이 5명, 유령왕이 9명, 바알런이 6명 정도 처치한 것 같습니다.”
헥스가 손깍지를 끼고 배 위에 올린다.
“말씀하신 대로군요.”
“그렇지.”
길드원들이 당했다고 하는데도 헥스의 표정은 여유롭다. 아니, 여유를 넘어서서 만족감마저 배어 나온다.
“랭커란 놈들은 원래 자기 잘난 맛으로 사는 놈들이니까. 솔로 랭커는 더더욱.”
강한 힘을 지닌 야수일수록 미끼에 조심성을 보이지 않는다. 일단 물고, 그다음의 일은 압도적인 힘과 흉성으로 처리하려 든다.
놈들도 마찬가지다. 일단 셋이 뭉쳐서 피해 다니거나 일점 돌파로 이곳을 빠져나갔다면 헥스는 큰코다치게 됐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하니까.’
내던진 길드원들은 미끼.
자신들이 죽을 것을 알고도 각오를 다지고 죽는다. 실제가 아닌 게임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모두 소집해. 단 병력을 셋으로 쪼개서.”
“알겠습니다.”
게릴라를 상대로 오히려 병력을 쪼갠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부관은 헥스의 말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헥스에게는 게임에 대한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손해를 본 일은 절대 없었다.
‘시기만 잘 탔다면 한국 서버를 장악한 남자는 틀림없이 철혈패군이 아니라 헥스였을 거다.’
그리고 그 시기는 지금이다. 부관은 그리 확신했다.
“집합을 마쳤습니다.”
“출발시켜. 결번은?”
“강성현 병가, 이창수 병가……. 이상입니다.”
“두 명이면 조금 많군……. 다음에 조치를 취하도록.”
“예.”
화성 길드는 다른 길드와 다르다.
보통은 인게임 내에서 스카우트와 영업이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
그러나 이들은 실제로 현실에서 얼굴을 보는 사이다.
지방에 다수의 VR 기기와 장비를 마련하고, 마치 진짜 회사와 회사원처럼 계약서를 쓴 채 일하는 거다.
이 때문에 모든 인원이 명령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모인다.
개인 사정이나 스케줄?
여기엔 그런 형편 좋은 말은 없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움직이고, 게임 한정이지만 필요하다면 목숨마저도 서슴없이 던진다.
마치 군대와도 같은 집단.
사실상 이들과 비교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기업형 길드, 그중에서도 파이브스타 정도였다.
“그동안 좋은 미끼로 기세를 올려 뒀으니, 이제 곧 소식이 오겠군.”
헥스는 씩 웃으며 차를 마셨다. 뜨거운 잔이 서서히 비어 갔다.
[바알런과 조우, 유령왕 미확인. 교전 진행 중.]잠시 후 각 조에서 소식이 왔다.
[파프닐과 교전, 해골병 32기 격파. 엘리트 해골병들은 도주.]파프닐과 각 일행의 전투를 적은 내용.
곧이어 헥스와 부관이 예상하던 보고가 들려왔다.
[놈들이 전부 최하층으로 이동했습니다. 보스 룸에서 저항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전부 다, 전부 다 예상대로군.”
헥스는 마시던 찻잔을 비우고 일어났다.
전광석화 같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의 움직임.
놈들이 대응하기 전에 그물을 조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가지. 놈들을 처리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딱 맞겠군.”
“알겠습니다.”
준비를 마친 헥스와 화성 길드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보스 룸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녀석들도 그동안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다.
던전 심층부로 움직이던 헥스와 화성 길드원들은 곧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 잠깐. 여기서 밀면……!”
“딱딱딱!”
“으아아악! 살려 줘!”
뜨거운 쇳물이 흐르는 다리에서 갑자기 해골병들이 육탄 돌격을 해 온다거나.
“잠깐, 메탈 바퀴들이다!”
“해골병들이 메탈 바퀴들을 끌고 오는……. 컥!”
몬스터들을 몰아오는 건 기본.
“뭐야, 여긴 벽이 없었는데?”
“설마…….”
심지어 해골병들을 작업시켜 던전 지형 자체를 바꾸기까지.
워낙 개개인이 강력하기에 많은 희생이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피해가 생겼고, 움직이는 시간도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헉, 헉…….”
“쉬지 마라! 놈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꼬리를 잡아야 한다!”
“저기다!”
마침내 보스 룸에 길드원들이 진입했다. 벽 반대편에 올라온 그림을 본 헥스가 씩 웃었다.
“멈출 수 없는 돌진!”
헥스의 몸이 금빛 오라에 휩싸여 움직였다. 순식간에 그림 앞까지 온 그가 검을 휘둘렀다.
“크하!”
단칼에 그림을 찢은 헥스의 뒤로 길드원들이 다가왔다.
“이건…….”
“아무것도 없는데……요?”
파프닐과 다른 두 놈은커녕, 공간 하나 없는 벽뿐.
그 순간 길드원들의 주변에서 수많은 해골이 모습을 일으켰다.
칼날 같은 기세의 엘리트 해골병들.
그 사이로 온몸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파이어 골렘, 살점으로 만든 플레시 골렘 등이 걸어 나왔다.
데스나이트, 리치와 같이 고레벨 네크로맨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골렘들!
그런 놈들을 저렇게 무더기로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역시 이렇게 나오셨나.”
그 군대를 지휘하는 기사는 더욱 무시무시했다.
수많은 희끄무레한 형체를 주변에 감은 기사, 유령왕이 창을 들었다.
“파프닐 놈 말이 맞았어. 네놈들이 예상하는 대로 움직여 주면 무조건 이번에 걸려들 거라 하더니, 정말 정확하게 제 죽을 장소로 걸어들어 오는군.”
“포, 포위됐다!”
“나갈 길이 없어……!”
보스 룸에 고립된 화성 길드원들을 포위하는 수많은 언데드.
절체절명의 상황이지만, 헥스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포위라, 웃기는 소리.”
작정하고 저 녀석들을 여기로 몰고 달려온 건, 결코 감정에 따라 움직인 게 아니었다.
헥스는 곧바로 검을 들었다.
“겁먹지 마라! 저놈들은 지난번에 너희가 때려잡던 해골병과 똑같다. 한 번 더 부스터를 써라!”
“아 참……? 그랬지.”
“저 녀석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세지도 않잖아.”
잠시 움츠러들었던 길드원들이 곧바로 흥을 냈다.
거기에 헥스가 기름을 부었다.
“놈들을 잡고 흥하면, 너희에게도 두둑이 배당금이 갈 터! 인당 천만 원까지 줄 테니, 다들 농땡이 치지 말고 제대로 하도록!”
“……건당 천만 원?”
바알런이 기가 막히다는 태도로 중얼거렸다.
“진짜 가스라이팅이 무섭긴 하구먼. 우리 목에 고작해야 천만 원밖에 안 준다고 해도 저런 반응이라니.”
“우와아아!”
달려든 길드원들과 해골병들이 부딪쳤다. 다음 순간 사방에서 뼈의 파도가 생겨났다.
검은 오라에 둘러싸인 화성 길드원들이 스킬을 쓸 때마다 바알런의 군대는 수수깡처럼 쓸려 나갔다.
“다들 전진! 사냥감이 저기 있다. 이번엔 놓치지 마라!”
화성 길드원들은 순식간에 전열을 무너뜨리고 파프닐과 바알런, 유령왕이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쉴더와 워리어, 아처, 메이지 등이 어우러진 해골병 군대도.
강력한 골렘이나 밴시, 까다로운 몬스터인 고스트 등도 이 녀석들 앞에선 시간 벌이에 불과했다.
“젠장, 역시 더럽게 강하잖아! 내 데스나이트들이!”
바알런이 머리를 잡아 뜯는 사이.
유령왕은 파프닐을 보았다.
“이 상황까지 왔으니 슬슬 준비했다는 그 패를 꺼내야 하지 않겠나.”
“그렇긴 하지.”
“그럼 언제 꺼낼 거야?”
“천하의 유령왕도 핀치에 몰리면 성급한 면이 있군.”
파프닐은 메시지창을 보고 씩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제 막 도착했다니까.”
***
황량한 바람이 분다. 사람의 발자취가 거의 닿지 않는 곳에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처음부터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걸치고 있는 묵빛의 장포가 시야에서 그들을 지워 내고 있었다. 기척을 드러낸 것은, 선두에 선 자가 스스로 원했기 때문이다.
후드 사이로 얼핏 보이는 수염을 기른 입술이 달싹인다.
“저곳인가.”
눈앞에 보이는 건 기계성. 아직까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미개척 던전.
“그 녀석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는군.”
“건방진 놈입니다. 감히 주군을 이래라저래라 부르다뇨.”
곁에 서 있던 자가 반감을 드러내나, 선두에 선 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계약을 했으니 지켜야지.”
“하지만…….”
“그만, 약속한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았네. 가지.”
묵빛 장포의 무리는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기계성으로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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